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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호텔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시인이란 결국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일 것이다'라는 이 시집의 뒷표지에 실린 김종철의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문재의 시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감수성이 뛰어나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사람, 그래서 자신과 남의 일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자신의 일인 것처럼 표현하는 사람, 그 표현을 통해 남을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시를 통해서 남을 자신에게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그 시는 성공했다고 말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이문재의 이 시집은 성공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시집의 제목 "제국호텔"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국에 침탈당하고, 생활은 물론 의식까지도 제국에 지배당하는 그런 상태를 보여준다고...
이 시집에서 '제국호텔'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시들은 이런 우리의 상태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보지 않으니, 시인이 우리더러 보라고 우리의 눈 앞에 그 상황을 펼쳐 보여준다. 안 보면 안 된다는 듯이.
컴퓨터 정보화시대, 초고속통신망시대, 스마트폰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까지도 지배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지구적 축제라는 월드컵에 갇혀, 그런 제국의 논리에 빠져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고 있지 못함을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제국이 어떤 나라를 의미하는지는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나란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프런트에서 왼쪽으로 이십 미터를 가면 스타벅스 / 오른쪽으로 다시 백오십 미터를 더 가면 맥도널드다' ('제국호텔 -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57쪽)
제국에서는 우리가 꿈을 이루어도 그 꿈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제국에서 탈출해야, 제국을 없애야 비로소 꿈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 제국에서 / 이루어진 꿈은 꿈이 아니다 / 그대들은 꿈★은 늘 미루어지게 되어 있다' ('제국호텔-인도에서 소녀가 오다' 중 일부 56-57쪽)
그러니 제국의 환상 속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붉은 악마의 구호를 인용해서 현실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단지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계속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럼에도 이 시집에 이런 시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들이 있고 (농업박물관 소식, 지구의 가을, 식탁은 지구다),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감성을 일깨우는 시들도 많다.
그 중에 이 시 '파꽃'을 사람이 배우는 이유에 대입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파꽃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속이 없다
이문재, 제국호텔, 문학동네. 2012년 1판 5쇄. 93쪽.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한다. 자신이 비워져야 제대로 존재할 수 있다. 만약 파의 속이 꽉 차 있다면 그것은 이미 파가 아니다. 파로서 존재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많이 배운 사람이 제 속을 비우지 못했다면, 그것은 제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이 되었다면 차라리 안 배움만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우는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우리는 배움을 채움으로 잘못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배움을 오로지 채움으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물들어 있지는 않은지, 이 시가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비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 파는 속을 비우지만 속을 비우기 위해서 자신은 꼿꼿하게 홀로 서야 한다. 꼿꼿하게 홀로 섬, 이것과 속이 빔이 함께 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파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우기나 채우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몸 자체, 항아리 그 자체이다. 몸은 튼튼해야 하고, 항라리는 단단해야 한다.'
그렇다. 바로 우리 자신들부터 바로 서야 한다. 바로 서는 공부. 바로 서는 몸. 그 다음이 바로 비우기다. 비운 다음, 채우기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인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사람이다. 우리가 외면할 수 없게 바로 우리 눈 앞에, 우리 마음에.
이문재의 시집, "제국호텔" 그 역할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