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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 ㅣ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시집 읽기와 시 읽기가 같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예전 시집들은 시인들이 다른 매체에 발표했던 시들을 묶고 엮어서 시집을 냈다. 따라서 시집에 어떤 일관성이 없는 경우도 많았는데... (시집 전체적인 의미를 고민하기 보다는 그냥 시들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시를 감상하면 되었다)
최근에는 시인들이 다른 매체에 발표하지 않은 시들을, 또는 발표를 했다고 해도 시집을 낼 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시들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집 읽기는 그 시집에 실린 개별적인 시 읽기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시집 전체적인 배열, 구조, 주제 등을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시집이 한 편의 글이 되어 다가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집 속에 있는 각 시들은 전체글을 완성해 가는 하나의 요소로 기능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한 편 한 편의 시가 그 자체로 독립적이지 않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독립된 시들이 모여 또다른 주제를 만들어내는 시집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시집 전체를 읽는 법, 범위를 이문재의 이 시집으로 좁히면 이 시집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법은 시집의 뒤에 실린 '신형철'의 해설에 잘 나타나 있다.
어쩌면 이 해설은 시집을 전체적으로 읽는, 그렇다고 개별적인 시들을 간과하지 않는 그런 읽기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이 구성되어 있는 4부를 유기적으로 연관되게 해설해 내고, 여기에 더해서 좋다고 하는 시도 소개하고 있는 그런 해설. 따라서 이 시집에 대해서는 신형철의 해설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을테니... 이 시집에 대한 이해는 그의 설명에 맡기고.
나는 이 시집에서 제목이 된 시 '지금 여기가 맨 앞'을 내 나름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지금 여기가 맨 앞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6년 1판 10쇄. 142쪽.
'지금 여기'라는 말에서 자신이 있는 자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다. 현재의 장소.
'맨 앞'이라는 얘기는 뒤로 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맨 앞이다. 누가 낸 길을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길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이 바로 내 상황이다.
단지 시간적, 공간적 위치가 아니다. 우리는 삶에서 늘 맨 앞에 있다.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바로 맨 앞이다. 그 맨 앞임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맨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맨 앞'은 바로 '맨 끝'이 된다.
끝은 곧 시작이다. 나아가야 하므로. 끝에서 뒤돌아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내가 '정면'을 볼 수밖에 없다. 눈은 정면을 향하고, 발은 정면을 향해 걸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손은? 앞뒤로 흔들리지만 손은 다른 누구와 함께 맞잡고 가야 한다. 손은 옆으로 함께 해야 한다.
(이 시집에서 '발'과 '손'이 나온다. 시집에 나온 손과 발의 의미를 빌리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삶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자꾸만 뒤로 가고 싶을 때, 그때 이 시를 읽어 보자. 그러면 우리 삶에서 뒤는 없다는 것, 우리는 늘 맨 끝에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딛고 나갈 수밖에 없음을, 우리가 맨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맨 앞임을 인식하게 된다.
다만, 홀로 가서는 안 된다.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몸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손이 옆으로 뻗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누군가와 함께 맞잡고 갈 수 있게. 그렇게 가자고, 가야 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삶에서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늘 맨 끝에 있으므로, 그 맨 끝이 맨 앞이므로. 포기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고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시다.
덧붙이면 이 시집에 마음에 드는 시들이 참 많았다. 계속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시들, 또 해설에서 이야기했듯이 인용할 수 있는 경구(아포리즘)가 될 수 있는 시구절들도 많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