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칠곡 인문학도시 총서
칠곡 할매들 지음, (사)인문사회연구소 기획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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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할매들 두 번째 시집이다. "시가 뭐고?"에 이어 그동안 칠곡 할매들이 한글을 공부하고 글쓴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시인들만이 시를 쓰는 세상은 고도로 전문화되고 분화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라는 것도 특정한 집단만이 써야 한다면, 그것은 자기 분야가 아니면 전혀 모르는 청맹과니들이 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분야말고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의학분야만 하더라도, 우리는 통칭 의사라고 하지만, 의사들도 자기 전공 분야로 나뉘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또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분야에 뭐라 말하기가 그런 세상이 된다.

 

뭐라 말하면 네가 뭘 알아? 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고. 이번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건을 보아도 대다수의 의사들과 사람들은 사망진단서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도 주치의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하면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전문화는 곧 분업화요, 분업화는 곧 소통의 단절이 될 수 있음을 이런 사태를 보면서 절실히 느끼게 되는데... 이런 전문화ㅡ분업화를 거부하고 통합, 융합으로 갈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인문학 분야 아닌가 한다.

 

인문학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학문 간의 융합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함께 하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 분야로 국한시켜 말해보면 요즘 시인들은 어려운 시들을 많이 쓴다. 그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인 양, 다른 사람과 시인을 구분해 주는 양 난해한 표현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도로 전문화, 분화된 지금 세상을 시인들이 반영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서 시 역시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있고, 시 분야에서도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나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시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행위 아니던가. 예전에는 시인이라는 직업이 없지 않았는가. 그냥 감정이 흘러 넘쳐 무언가로 표현해 내야 한다면 그것을 몸으로든 언어로든 표현하지 않았던가.

 

노래와 시는 그래서 삶과 하나였고,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분야였는데... 근대에 접어들면서 '시인'이 하나의 직업이 되면서,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좋다.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앞 부분에 중점을 두자.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부분에 말이다. 그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를 누구나 쓸 수 있게 하는 사회가 바로 좋은 사회 아니겠는가.

 

시를 특정한 사람들만이 쓰는 문학 행위라고 여기게 하기보다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쓸 수 있고, 발표할 수 있는 문학 행위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우리 사회에 시가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칠곡 할매들과 함께 한 인문학 교실, 여기서 한글을 배우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로 쓴 할매들의 결과물은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 화려하게 꾸미려 하지 않고, 자기만 아는 표현을 하려 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그들의 언어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

 

그들 삶 자체가 시일텐데... 진솔한 표현들 속에서 할매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나고 있어서 때로는 울컥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이 머금어지기도 한다.

 

시가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오고... 이런 활동을 한 사람들이 고맙고 그렇다. 이 시집에는 칠곡 할매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시, 마음에 짠하게 다가온다. 이게 바로 우리 민초들의 삶이다.

 

민초들은 바로 이렇게 살고 있다. 이런 민초들의 삶, 그것을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 권력자들이 배워야 한다. 자신들의 삶을 강요하지 말고. 

 

  내 평생

            - 남영자

 

20살에 시집 가지고 아 다섯을 낳고

삼십다섯에

혼자 돼 아 다섯 지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공부도 올재 못시킸다

그래도 여짓것 살면서

남 해롭게 안 하고 평생 거짓말

한 번 안하고 살었다

남 도와주지는 못해도

평생 남 해롭게 하지는 않았다

 

강봉수 외 118명,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삶창. 2016년 초판. 20쪽.

 

이런 시들이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이게 바로 시라는 듯이. 이렇게 삶이 바로 시가 될 수 있다는 듯이. 그래서 시가 삶에 더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준 시집이다.

 

* 표기는 할매들의 표기를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굳이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쳐서 시에 쓰인 표현에서 들을 수 있는 할매들의 목소리를 지울 필요가 없었을 듯하다. 이것이 더 좋다. 그래서 이 시들에서 할매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린다. 눈만이 아니라 귀에도 들리는 듯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늘 고맙다. 이렇게 책을 보내주면. 특히 살아있는 목소리들이 담긴 글을 담아낸 책이 오면 더욱 반갑고 고맙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더 많이 사람들 곁에 다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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