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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6.여름 - 2호, 시론
파란 편집부 엮음 / 파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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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 가격에 비해서 내용이 더 알차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가격이 그리 싼 편은 아니지만, 요즘 책값들이 보통 12,000원에서 15,000원 사이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 분량에 15,000원이면 싼 편에 속한다고 본다. 450쪽이 넘는 분량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책 크기가 조금 작으니 우리가 보통 국판이라고 하는 다른 책으로 치면 400쪽쯤 되는 분량이겠다.

 

왜 가격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많은 책들이 한 번 읽고 서가로 직행해 거기서 평생을 보내거나, 또는 아예 끝까지 읽히지도 않고 어느 책 밑에 깔려 있는 운명을 맞이해서 도무지 제 밥값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펼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제 몫을 충분히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책이다. "계간 파란"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이번 호 기획은 "시론"이다. 시에 대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론가들이 펼치는 시론이 실려 있지 않고, 시인들이 말하는 시론이 실려 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평론가와 시인은 같은 작품을 놓고도 다르게 보는 경우가 많다. 평론이 시를 선도하느냐 따라가느냐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평론가들이 주장하는 시론보다는 시인이 직접 주장하는 시론이 더 시를 잘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총 28명의 시인이 시론에 대해 글을 썼다. 허만하 시인부터 정영효 시인까지. 이들을 배치한 순서는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시인으로 등단한 해에 따랐다. 1957년에 등단한 허만하 시인과 2009년에 등단한 정영효 시인까지 등단 년도만 보면 50년도 더 차이가 난다.

 

강산이 무려 다섯 번이나 바뀌었던 세월, 그 세월을 따라 시를 발표한 시인들이 자신의 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는 글들이다.

 

그 글들은 다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어느 시인의 시론이 더 시론답다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마치 우리가 '나무'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각자의 설명이 다 다르듯이. 그 설명들에 우열을 가릴 수 없듯이.

 

한 편 한 편의 시론들을 읽으며 시란 무엇이라고 꼭 정의하기 힘든 것, 그러나 이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완성된 무엇이 아니라는 것.

 

시는 변화요 움직임, 그러므로 딱 이거다 할 수 없는 것. 시란 성공할 수 없는 것, 실패를 예견하지만 쓸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읽어보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시론을 받아들여도 되니...

 

시론에 관해 내 맘에 들은 구절들은 아래에... 너무도 많은 생각해 볼만한 시론들이 있지만 주관적으로, 그냥 내 맘대로 인용한다.  

 

시는 비록 여리지만, 이따금 그 해독을 위하여 인간의 지적 체계 전부를 동원하기를 보채는 철부지다. - 허만하 21쪽

 

▶ 시인은 정해진 위대한 실패를 향해 영원히 오르고 또 오를 뿐이다. - 문정희 33쪽.

 

▶ 시는 모든 질문을 비켜 가게 만들었고, 모든 질문이 하나의 질문이 되게 했다. - 백무산 71쪽.

 

▶ 언어는 언제나 실패를 하게 되어 있고, 그 실패가 언어의 무기일 것이다. 그 실패를 다루는 자가 시인이다. - 백무산 72쪽.

 

▶ 결핍을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시 쓰기의 시작일 것이다. - 허수경 96쪽.

 

▶ 시의 언어는 ... 말해질 수 없는 말이며, 재현 불가능한 말이다. 혀를 잃어버린 입, 또는 입을 잃어버린 혀처럼.   시를 쓰는 일은 죽은 몸 위에 스스로 비문을 새기는 일처럼 답답하고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 나희덕 114쪽.

 

▶ 언어가 꾸는 꿈보다 언어가 꾸는 현실이 내가 뒹굴어야 할 시의 현장이고 사랑의 속세다. - 박용하 125쪽.

 

▶ 시는 지금 이 순간 태어나는 말이면서 저 먼 과거의 빛이며 지금 이 순간을 새기는 말이면서 태어날 미래의 입김이다. 누구나 보고 있으되 보지 못한 말이고, 누구나 듣고 있으되 듣지 못한 말이며, 무수히 말했으되 아직 말해지지 않은, 무수히 썼으되 아직까지 쓰여지지 않은, 아는 말이되 모르는 말이다. - 박용하 129쪽.

 

▶ 시 또한 뼈 없는 신체를 가진 미지의 우주적 생물체다. - 함기석 148쪽.

 

▶ 시는 기존의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되는 체험, 그 암흑의 감각으로 사물과 우주를 새롭게 인식하는 전위적 탐측 행위다. - 함기석 153-154쪽.

 

▶ 시는 환멸을 또 다른 환멸로 바꾸는 작업이며, 상상력을 통해서 잘 보이지 않는 자아, 타자, 사물, 음악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결과다.  시인은 누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는,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거나 사원을 지으려 한다. - 정재학 188쪽.

 

▶ 시는 문장에서 문장으로의 이행 자체다. - 김언 202쪽.

 

▶ 시는 눈의 문제로 시작해서 귀의 문제로 끝난다.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듣는 것으로 끝난다는 말이다. - 김언 205쪽.

 

여기에 첨부하면 이 책에는 시론이 기획으로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들이 실려 있다는 것. 그 시들을 읽는 재미.. 한 시인이 세 편씩의 시를 발표하고 있는데...16명의 시인이 작품을 실었다. 이번에는 가나다 순으로 시를 수록했고.

 

이 시들 중에... 이 시... 에고, 우리나라엔 아직도 천사가 더 필요한지... 이제, 천사는 필요없는데... 천사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슬픈 시. 이런 천사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천사들의 나라

 

우리는 이제 걱정 없을 거다

삼백 명 아이들이 천국으로 가

천사가 되었으니

두고 온 나라를 보살펴 주겠지

책임 있는 자들이 침묵하고

예수 팔아먹는 목사들이 망언을 해도

우리는 이제 잘나갈 거다

심청이처럼 바다로 뛰어든 아이들

남겨진 부모를 생각할 터이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전윤호, 천사들의 나라, 계간 파란 2016년 여름호. 4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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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4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도 문학 잡지인 계간지 하나 정기구독하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ㅎ 이렇게 또 계간지하나 소개해주시니..근질근질하네요..
문학도가 아닌데 계간지 2개보는건 오버 아닌가 싶어서.고민되네요..ㅎㅎㅎ

kinye91 2016-10-14 11:49   좋아요 0 | URL
저도 정기구독하고 있는 계간지가 있지만, 모두 구독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때그때 기획을 보면서 사 보는 편이거든요.
 
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시선 46
김정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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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편을 이틀에 걸쳐 보았다.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그냥 영화를 보고 싶었다고 할까? 그 두 편의 영화가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로 연결이 될 수도 있는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보고나니.

 

한 편은 "죽여주는 여자" 그리고 또 한 편은 "그물"

 

[죽여주는 여자], 얼핏 떠오르는 말은 '와, 저 여자 죽여준다!'는 말. 여기서 죽여준다는 끝내준다는 뜻, 처음에 영화는 그런 뜻의 주인공을 보여준다. 그러다 이 말을 목숨을 끊어준다는 뜻으로 바꾸어 주인공을 보여준다.

 

 성적(性的)으로 끝내주는 여자에서 사람을 죽여주는 여자로... 사람이라야 힘없는 남자 노인. 앞으로의 삶에 희망이 없는 사람들. 인생에서 쓸쓸한 겨울을 맞이한 사람. 더 이상 살아갈 어떤 이유를 찾지 못한, 빅터 프랭클의 말을 빌리면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

 

 여기에 주변 인물들은 어떤가. 함께 거주하고 있는 남자 인물은 다리 한쪽을 잃은 장애인에, 변변한 돈벌이를 못해 집세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을 보듬어 주며 사는 집주인은 트랜스젠더이고, 여자주인공이 데리고 온 아이는 혼혈아.

 

다들 사회에서 변방에 머무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소수자로 분류가 되는 사람들. 대다수가 삶 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적은 온기나마 함께 나누는 사람들. 이들에게 사회는 겨울이다. 그들의 삶을 지탱하기 어렵게 하는.

 

[그물]. 그물에 걸리면 죽는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도저도 못하고 속절없이 그물을 던진 사람의 뜻에 의해 운명이 결정될 뿐이다.

 

하여 그물에 걸린 존재는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든, 또 어떤 생각을 하든 자기가 결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그물을 던진 존재의 결정에 따를 뿐. 여기서 자신의 의지가 발휘된다면 단 하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

 

 갑자기 혹독한 겨울로 내던져진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길은 그물을 치워버리는 일인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영화는 그물에 걸린 인간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물론 영화는 남과북이라는 현실이 개인의 삶에 그물로 작용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과북이 이렇게 대치하고 서로 체제와 이념 전쟁을 하는 사이, 그 사이에 낀 개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파멸해 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개인에게 이를 계절로 표현하면 혹독한 겨울이다.

 

여기서 두 영화의 공통점을 찾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두 영화를 보고 난 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연결시켜준 책이 바로 이 시집 [국수는 내가 살게]이다.

 

이 시집에서도 '겨울'에 해당하는 삶들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첫시인 '겨울'은 반대로 생각하도록 해서 겨울의 의미를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게 한다.

 

'겨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시인데...

 

    겨울

 

겨울은 참 따뜻한 계절이다

그대의 체온을 그립게 하니까

 

겨울은 참 인간다운 계절이다

그대의 추위를 나누게 하니까

 

살 에는 평화의 소녀상에게 목도리를 씌워주고

살갑게 손잡고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겨울은 참 깊은 철학의 계절이다

묵은 정신의 때를 서슬 푸르게 벗기게 하니까

 

김정원, 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 2016년. 초판 1쇄. 12쪽.

 

따스한 봄만 있다면, 겨울을 알지 못하고 살리라. 자신의 인생에서 이상하게도 봄만을 보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겨울에 사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이 없으리라. 아니, 머리로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다시 가슴에서 손과 발로 가는 가장 먼 길을 (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 그는 절대로 가지 않으리라.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자신 역시 머리에서 가슴, 손과 발로 가는 여행이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교사이자 시인이다)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미 전성기를 지나 노년에 접어들어 사회에서 더이상의 쓸모를 잃고 잉여가 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받는 사람들, 없어서, 도무지 가진 것이 없어서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념이 달라서 배제되는 사람들...

 

기껏 가진 아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고 싶다고 해도 안보라는 이름으로 그것마저 빼앗기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삶은 얼마나 추운 겨울인가. 그런 겨울을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손과 발로의 여행을, 그리고 겨울을 나는 사람 곁에서 함께 겨울을 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시를 보라. 그렇게 겨울은 다가온다. 그에게 겨울은 주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따스한 봄 속에 갇혀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 주변에 겨울이 있음을, 그리고 그 겨울은 홀로 나면 더 힘들어짐을...

 

함께 나야할 겨울은 '묵은 정신의 때'를 벗기고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함께 나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두 영화에서 얼마나 멀까? 멀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 두 영화는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우리는 이런 혹독한 겨울에 살고 있다고. 이런 겨울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고 보여주는 거울.

 

그리고 이 시는 이런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 시에서처럼 우리는 '겨울'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함께 나려고 해야 한다. 그러면 '겨울'은 곧 '봄'에게 우리를 양보한다.

 

김정원의 이 시집을 읽고 영화 두 편과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겪고 있는 겨울을 생각하게 됐다. 그냥 춥다고 혼자만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함께 나야 더 겨울을 잘 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시이고,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이 시 말고도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시들이 제법 많다. 그 따스한 온기가 번져 나갔으면 좋겠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반갑고, 고맙고. '겨울'을 날 때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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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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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시인 중에서는 꽤 알려진 시인일 것이다. 시로 알려지기보다는 텔레비전에 패널로 출연해 얼굴을 비쳤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시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그의 시를 보기 힘들었다. 그 이유가 다른 곳에 시를 잘 발표하지 않았고 (못했고 - 여기에 대한 대략적인 사연은 김도언이 쓴 [세속 도시의 시인들]이란 책에 나와 있다. 그 책에서 류근 편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듯) 미발표 시들을 모아 시집을 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시인이라고 나오는 그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시를 썼을까 하다가 김도언의 책을 읽었고, 어려서부터 시로 촉망받는 사람이었다는 얘기 읽고, 그렇다면 그의 시를 읽어봐야지 하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들었고...

 

검색해 보니, 시집이 두 권인데... 그래도 먼저 출간한 시집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골라 읽은 시집.

 

읽으면서 이상하게 요즘 젊은 시인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 하긴 시집에 보면 '86학번, 일몰학과''86학번, 황사학과'라는 시가 있는 걸로 봐선 시집이 2010년에 나왔지만 그는 요즘의 젊은 시인들과는 경험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표현에서도 다를 수 있다는 얘긴데... 이상하게 기교가 없는 듯한 시들이 모여 있는데, 어떤 기교가 느껴진다. 그냥 자유롭게 풀어놓고 있는 듯하지만 무언가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그의 시가 지닌 매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난해시 운운하는, 실험주의 시 운운하는 그런 시대에 그의 시는 어쩌면 과거의 시들을 떠올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류근의 시집을 읽으며 학창시절에 지겹도록 외웠던 '생명파'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들의 시를 제대로 읽고 감상하지도 못했으면서 시험에 나오니 서정주, 유치환은 생명파 시인, 생명의 본능과 의지를 노래한 시인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시험용 공부를 했던.

 

그러다 조금 나이들어 읽어보면서 왜 생명파라고 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시들... 그런 느낌을 류근의 시집을 읽으며 느꼈다.

 

어쩌면 생명 또는 삶을 날것 그대로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격동의 80년대 대학을 다녔으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그의 주변에 머물 뿐이다. 오로지 그의 시에는 자신만 있다. 자신의 감정, 자신의 경험, 자신의 욕망, 자신의 본능, 이런 것들이 시집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심지어는 포르노그래피라고 할 수도 있는 욕망들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렇게 삶의 욕망을 그는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시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과거의 '생명파'들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가 어찌 과거의 것, 현재의 것, 미래의 것이 따로 있으랴. 시는 시대를 관통하는 본질적인 인간의 감정을 노래한 것 아니겠는가. 그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래서 류근의 시집, 어렵지 않게 읽힌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데, 편안하지만은 않은 시들이 류근의 시집에 실려 있다.

 

제목이 된 '상처적 체질'도 좋았지만,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점 아닌가 해서... 류근이 개인의 욕구에 충실한 시를 썼다고 하지만, 개인의 욕망에 충실하다보면 이렇게 사회 문제와 연결이 안 될 수가 없다.

 

개인의 욕망은 사회적 욕망의 일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따라서 개인의 삶은 사회 속에서 녹아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으며... 요즘 세태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렇지만 큰 울림을 주는 시다. 제목을 읽는 사람이 자기 멋대로 바꾸어도 좋을 시라는 생각을 한다. '치타'라는 시다.

 

가을, 시를 읽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사회는 자꾸 시에서 사람들을 멀어지게 한다. 그러면 안 되는데...

 

치타

 

전속력으로 달려가 톰슨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치타를 보면

 

먹이를 물고 나무에 오를 힘마저 탕진한 채

하이에나 무리에게 쫓겨 주춤주춤

먹이를 놓고 뒷걸음질 치는 치타를 보면

 

주린 배를 허리에 붙인 채 다시 평원을 바라보는

저 무르고 퀭한 눈 바라보면

 

쉰 살 넘어 문자 메시지로

전속력으로 해고 통보받은 가장을 보면

닳아 없어진 구두 뒷굽을 보면

 

거울을 보면

 

류근, 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사, 2015년 초판 11쇄.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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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R 4
김경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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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많이 들었던 시인. 특히 요즘의 젊은 시인들이 많이 언급했던 시인. 그의 시를 읽어보고 싶어 산 시집. 적어도 이름을 들어봤던 시인이라면 그의 시집 한 권쯤은 읽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이 시집은 이미 절판이 된 시집을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발간한 시집이니, (문학 전문 출판사라고 할 수 있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다시 냈다. 이건 참 고마운 일이다) 우리 곁에서 잊혀지기엔 아까운 시집이라는 판단을 출판인들이 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시들이 대체로 길다. 길고 또 시극이라는 형태를 띤 시들도 제법 있다. 이 시들이 발전해서 그의 시극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시극 '나비잠'에 대해서 이야기한 글을 어느 신문에선가 읽고 그에게 더 관심이 생겼다)

 

시집을 펼치자마자 첫시에서 어떤 울림이 온다. 이런 뭐야.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표현하는 것, 또는 있되 없는 것, 없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시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결국 시인이란 있는 것에서도 없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없는 것에서도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 세상에 있되, 이 세상 바깥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억측이 들게 만드는 시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시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내가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들이 뻔한 소리를 하는데도 그 속에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는 듯이 이리저리 말들을 곱씹고, 모르겠다, 시인은 정말 대단하다 감탄만 하는지도 모른다.

 

첫시의 제목은 '외계'다.

 

외계(外界)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문학과지성사. 2015년 초판 7쇄. 13쪽.

 

이렇게 시집을 펼치고 첫장에서 오래 머무르다 주욱 읽어간다. 시집을 주욱 읽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 단 하나만 있어도 그 시집은 성공한 시집인 것을.

 

그런데, 이 시에 이어서 마음을 때리는 시가 하나 더 나온다. 이런 이런, 이렇게 시로 표현하다니. 누구나 보지만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을, 누구나 생각하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시로 표현하다니... 형식은 시의 주인공과 같게 과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가로쓰기가 아닌 세로쓰기를 택한 것. 요즘 세로쓰기를 한 글 읽기 힘들다. 그 놈의 줄이 왜 자꾸 헷갈리는지... 그러나 이 시는 형식과 내용이 일치한다. 그래야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마치 고전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자가 잘 안 보이나... 사진을 잘못 찍어서 그런가 보다. 그렇지만 이 시를 가로쓰기를 하면 맛이 나지 않을테니... 이 시집의 53쪽에 있다. 이 시는. 그냥 이렇게 놓아둔다. 궁금하면 찾아보면 될 터.

 

이 시들만큼 내 마음에 다가온 시는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라는 시... 대체로 긴 시들이 많지만 조금 짧은 시 중에서 무언지 모를 뭉클함이 마음을 파고들어오는 시들이 있다.

 

읽고 탁 덮었을 때 어떤 여운이 남는 시들... 이것이 김경주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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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6-10-06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김경주 시인의 시집 읽었는데, 좋았어요. ^^

kinye91 2016-10-06 11:31   좋아요 0 | URL
저한테는 이 시집이 김경주 시인의 시를 더 읽고 싶게 만든 시집이에요. 천천히 다른 시들도 또 시극도 읽어봐야겠어요.
 
행복한 죽음 알베르 카뮈 전집 5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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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카뮈의 작품을 꾸준히 틈나는 대로 읽고 있는 중. 소설이건 희곡이건 수필이건 다 읽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한 권씩 한 권씩 구입해 읽고 있다.

 

이 소설이 죽음에 대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또 이방인의 전편 또는 이방인을 쓰기 위한 구성단계의 초고라는 말도 있던데, 읽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도대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왜 카뮈가 생전에 이 소설을 출판하지 않았겠는가라는 혹평이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혹평할 필요는 없는 소설일 것 같고.

 

제목을 중심으로 소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제를 제목과 관련이 있는 이 구절에서 파악한다. 이 소설의 1부 1장에 나오는 메르소의 생각을 표현한 구절이다.

 

'그처럼 무르익은 공기와 풍요로운 하늘 가운데서 사람들이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이란 사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0쪽)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답을 주는 사람이 바로 메르소가 죽인 자그뢰스다. 그는 이렇게 메르소에게 말한다.

 

'돈이 없으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 다만 행복해지려면 시간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도 많은 시간이. 행복 역시 길고 긴 인내에서 오는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돈을 버느라고 삶을 허비해요. 돈으로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요.' (82쪽)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어요. 아니 모든 것이 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지요. 부자이거나 부자가 된다는 것, 그건 바로 우리가 행복해질 자격이 있을 때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해요.' (83쪽)

 

그러나 그는 돈만이 행복을 불러온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돈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 ... 돈만 있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얘기는 다만 어느 계층의 사람들에겐 행복이란 - 시간이 있을 때만이지만 - 가능하다는 것과, 돈이 있다는 것은 돈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85쪽)

 

그러므로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저절로 오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서 올 수밖에 없다. 즉, 돈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이 오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자그뢰스는 메르소에게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오직 행복만이 비극적이란 걸 알아두시오.' (87쪽)

 

이 구절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행복이 비극적이라니. 결국 행복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온다는 말인가? 그건 아닐테고. 하여 비극적이라는 말을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예전 서양의 비극. 그 비극은 바로 평범한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자신의 뜻에 맞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다가 좌절하는 것 아니었던가.

 

이것을 행복이 비극적이라는 말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행복을 찾아 온갖 노력을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행복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찾을 때 오히려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메르소는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그가 찾은 행복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더불어 완성되는 것이다.

 

2부에서는 그의 행복찾기가 시작된다. 자그뢰스를 죽임으로써 그의 많은 재산을 확보한 메르소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떠난 일이다. 2부의 1장은 그래서 여행으로부터 시작한다. 여행은 자신을 낯선 곳에 놓아둠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이 첫번째 할 일이다. 그렇게 떠나 고독 속에 자신을 내맡기지만 행복은 거기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일상을 떠난 행복이 있을 수 없듯이.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그가 돌아오는 곳은 같은 장소가 아니다. 비슷한 곳이기는 해도. 여기서 그는 사랑을 찾는다. 사랑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 속에서도 그는 고독을 찾는다. 고독 속의 행복. 이것은 행복은 자신의 것이지 남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랑한다고 생각한 사람, 뤼시엔과의 관계다.  메르소는 그녀와 동등하게 지적으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오로지 그녀는 그의 생각대로 행동해야만 한다. 그의 생각 밖에서 그녀가 들어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런 그녀에 대한 설명.

 

'그녀는 필경 지적인 여자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잘됐다고 기뻐했다. 정신이 깃들이지 않은 미(美)에는 어떤 신성한 데가 있는 법인데 메르소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 점에 민감했다.' (144-145쪽)

 

메르소에게는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또한 일상생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서 온다.

 

'행복은 선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그 선택 안에서는 어떤 신중하고 냉정한 의지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167쪽)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니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고 해야 한다. 우리가 행복을 일상을 떠난 그 어떤 곳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시간을 벌어주는 돈 역시 일상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그는 부끄럽게도 (이건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 ... 자신이 찾고 있는 특이한 행복은 바로 이른 아침의 기상과 규칙적인 해수욕과 의식적인 건강법에 있다는 부끄럽기 짝없는 진실을 뼈저리도록 느끼고 있었다.' (168쪽)

 

'행복이란 인간적인 것이고 영원이란 일상적인 것이다. 요는 하루하루의 리듬을 우리의 희망이 그리는 곡선에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하루하루의 리듬에 순응하도록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 (170쪽)

 

이렇게 깨달은 그는

 

'행복에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든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해야 한다든가 하는 조건이 있다고 믿는 건 잘못이야. 중요한 것은 말이지, 다만 행복의 의지이고 언제나 뚜렷하게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야.' (178쪽)

 

라고 말한다. 행복은 결코 일상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에서 내가 행복을 깨우치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할 수가 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최종적인 행복이 죽음에 있다. 어떻게 죽느냐...

 

'운명이 인간 속에서 창조하는 선택을 그는 의식과 용기 속에서 행했던 것이다. 바로 거기에 그의 모든 삶과 죽음의 행복이 있었다. 짐승처럼 날뛰면서 그가 바라보았던 죽음, 그는 이제 그 죽음을 겁낸다는 것은 바로 삶을 겁낸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죽는 것에 대한 공포는 인간 속에 살아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정당화해주는 것이었다.' (199-20쪽)

 

이 말은 삶에 대한 집착은 삶이 주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삶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라는 말로 이해가 된다. 그것은 결국 사라져버릴 것들에 자신의 마음이 매여 놓여나지 못하게 되는 것, 거기서 행복은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느냐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느냐와 같은 질문이 될 수 있음을,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은 메르소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는 죽을 때 미소를 짓고 죽는데, 그것은 자신이 행복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단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소설 속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행복한 죽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급작스럽다.

 

그리고 삶에서도 그는 행복을 찾는다고 하지만 지루한 일상을 반복할 뿐이다. 아무리 행복이 우리의 일상에 있다고 해도,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고 말을 하려고 해도, 그리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와 선택이라고 해도 소설을 읽으며 그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그런 생활을 하는데, 즉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생각할 여유가 있는 시간을 벌게 된 것이 살인으로 얻은 돈이기 때문이다. 수단부터 정당할 수 없는데, 어떻게 행복이 올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소설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이 소설이 카뮈 생전에 발표가 된 소설도 아니고, 완성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소설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데, 잘 못 찾겠다.

 

그냥 소설 속 구절들을 따라가면서 혹, 이런 말을 하고자 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소설을 한쪽으로 밀어넣고 더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정말로 우리는 어떤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정말로 돈이 시간을 벌어다 주고, 그것에서 행복이 찾아질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돈은 필요조건이기는 하다.

 

그 필요조건인 돈을 충분조건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이고 선택이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산 사람은 죽을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즉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메르소는 행복한 죽음과는 거리가 좀 먼데... 그는 돈을 행복의 충분조건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 그리고 잘못된 수단으로 얻어진 돈은 결코 행복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행각하므로...

 

앞으로도 계속될 카뮈 작품 읽기... 왜 이 작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그것이 의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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