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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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시인 중에서는 꽤 알려진 시인일 것이다. 시로 알려지기보다는 텔레비전에 패널로 출연해 얼굴을 비쳤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시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그의 시를 보기 힘들었다. 그 이유가 다른 곳에 시를 잘 발표하지 않았고 (못했고 - 여기에 대한 대략적인 사연은 김도언이 쓴 [세속 도시의 시인들]이란 책에 나와 있다. 그 책에서 류근 편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듯) 미발표 시들을 모아 시집을 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시인이라고 나오는 그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시를 썼을까 하다가 김도언의 책을 읽었고, 어려서부터 시로 촉망받는 사람이었다는 얘기 읽고, 그렇다면 그의 시를 읽어봐야지 하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들었고...

 

검색해 보니, 시집이 두 권인데... 그래도 먼저 출간한 시집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골라 읽은 시집.

 

읽으면서 이상하게 요즘 젊은 시인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 하긴 시집에 보면 '86학번, 일몰학과''86학번, 황사학과'라는 시가 있는 걸로 봐선 시집이 2010년에 나왔지만 그는 요즘의 젊은 시인들과는 경험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표현에서도 다를 수 있다는 얘긴데... 이상하게 기교가 없는 듯한 시들이 모여 있는데, 어떤 기교가 느껴진다. 그냥 자유롭게 풀어놓고 있는 듯하지만 무언가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그의 시가 지닌 매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난해시 운운하는, 실험주의 시 운운하는 그런 시대에 그의 시는 어쩌면 과거의 시들을 떠올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류근의 시집을 읽으며 학창시절에 지겹도록 외웠던 '생명파'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들의 시를 제대로 읽고 감상하지도 못했으면서 시험에 나오니 서정주, 유치환은 생명파 시인, 생명의 본능과 의지를 노래한 시인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시험용 공부를 했던.

 

그러다 조금 나이들어 읽어보면서 왜 생명파라고 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시들... 그런 느낌을 류근의 시집을 읽으며 느꼈다.

 

어쩌면 생명 또는 삶을 날것 그대로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격동의 80년대 대학을 다녔으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그의 주변에 머물 뿐이다. 오로지 그의 시에는 자신만 있다. 자신의 감정, 자신의 경험, 자신의 욕망, 자신의 본능, 이런 것들이 시집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심지어는 포르노그래피라고 할 수도 있는 욕망들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렇게 삶의 욕망을 그는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시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과거의 '생명파'들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가 어찌 과거의 것, 현재의 것, 미래의 것이 따로 있으랴. 시는 시대를 관통하는 본질적인 인간의 감정을 노래한 것 아니겠는가. 그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래서 류근의 시집, 어렵지 않게 읽힌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데, 편안하지만은 않은 시들이 류근의 시집에 실려 있다.

 

제목이 된 '상처적 체질'도 좋았지만,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점 아닌가 해서... 류근이 개인의 욕구에 충실한 시를 썼다고 하지만, 개인의 욕망에 충실하다보면 이렇게 사회 문제와 연결이 안 될 수가 없다.

 

개인의 욕망은 사회적 욕망의 일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따라서 개인의 삶은 사회 속에서 녹아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으며... 요즘 세태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렇지만 큰 울림을 주는 시다. 제목을 읽는 사람이 자기 멋대로 바꾸어도 좋을 시라는 생각을 한다. '치타'라는 시다.

 

가을, 시를 읽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사회는 자꾸 시에서 사람들을 멀어지게 한다. 그러면 안 되는데...

 

치타

 

전속력으로 달려가 톰슨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치타를 보면

 

먹이를 물고 나무에 오를 힘마저 탕진한 채

하이에나 무리에게 쫓겨 주춤주춤

먹이를 놓고 뒷걸음질 치는 치타를 보면

 

주린 배를 허리에 붙인 채 다시 평원을 바라보는

저 무르고 퀭한 눈 바라보면

 

쉰 살 넘어 문자 메시지로

전속력으로 해고 통보받은 가장을 보면

닳아 없어진 구두 뒷굽을 보면

 

거울을 보면

 

류근, 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사, 2015년 초판 11쇄.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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