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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죽음 ㅣ 알베르 카뮈 전집 5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5년 9월
평점 :
절판
카뮈의 작품을 꾸준히 틈나는 대로 읽고 있는 중. 소설이건 희곡이건 수필이건 다 읽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한 권씩 한 권씩 구입해 읽고 있다.
이 소설이 죽음에 대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또 이방인의 전편 또는 이방인을 쓰기 위한 구성단계의 초고라는 말도 있던데, 읽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도대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왜 카뮈가 생전에 이 소설을 출판하지 않았겠는가라는 혹평이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혹평할 필요는 없는 소설일 것 같고.
제목을 중심으로 소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제를 제목과 관련이 있는 이 구절에서 파악한다. 이 소설의 1부 1장에 나오는 메르소의 생각을 표현한 구절이다.
'그처럼 무르익은 공기와 풍요로운 하늘 가운데서 사람들이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이란 사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0쪽)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답을 주는 사람이 바로 메르소가 죽인 자그뢰스다. 그는 이렇게 메르소에게 말한다.
'돈이 없으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 다만 행복해지려면 시간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도 많은 시간이. 행복 역시 길고 긴 인내에서 오는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돈을 버느라고 삶을 허비해요. 돈으로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요.' (82쪽)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어요. 아니 모든 것이 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지요. 부자이거나 부자가 된다는 것, 그건 바로 우리가 행복해질 자격이 있을 때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해요.' (83쪽)
그러나 그는 돈만이 행복을 불러온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돈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 ... 돈만 있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얘기는 다만 어느 계층의 사람들에겐 행복이란 - 시간이 있을 때만이지만 - 가능하다는 것과, 돈이 있다는 것은 돈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85쪽)
그러므로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저절로 오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서 올 수밖에 없다. 즉, 돈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이 오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자그뢰스는 메르소에게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오직 행복만이 비극적이란 걸 알아두시오.' (87쪽)
이 구절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행복이 비극적이라니. 결국 행복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온다는 말인가? 그건 아닐테고. 하여 비극적이라는 말을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예전 서양의 비극. 그 비극은 바로 평범한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자신의 뜻에 맞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다가 좌절하는 것 아니었던가.
이것을 행복이 비극적이라는 말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행복을 찾아 온갖 노력을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행복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찾을 때 오히려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메르소는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그가 찾은 행복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더불어 완성되는 것이다.
2부에서는 그의 행복찾기가 시작된다. 자그뢰스를 죽임으로써 그의 많은 재산을 확보한 메르소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떠난 일이다. 2부의 1장은 그래서 여행으로부터 시작한다. 여행은 자신을 낯선 곳에 놓아둠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이 첫번째 할 일이다. 그렇게 떠나 고독 속에 자신을 내맡기지만 행복은 거기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일상을 떠난 행복이 있을 수 없듯이.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그가 돌아오는 곳은 같은 장소가 아니다. 비슷한 곳이기는 해도. 여기서 그는 사랑을 찾는다. 사랑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 속에서도 그는 고독을 찾는다. 고독 속의 행복. 이것은 행복은 자신의 것이지 남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랑한다고 생각한 사람, 뤼시엔과의 관계다. 메르소는 그녀와 동등하게 지적으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오로지 그녀는 그의 생각대로 행동해야만 한다. 그의 생각 밖에서 그녀가 들어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런 그녀에 대한 설명.
'그녀는 필경 지적인 여자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잘됐다고 기뻐했다. 정신이 깃들이지 않은 미(美)에는 어떤 신성한 데가 있는 법인데 메르소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 점에 민감했다.' (144-145쪽)
메르소에게는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또한 일상생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서 온다.
'행복은 선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그 선택 안에서는 어떤 신중하고 냉정한 의지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167쪽)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니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고 해야 한다. 우리가 행복을 일상을 떠난 그 어떤 곳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시간을 벌어주는 돈 역시 일상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그는 부끄럽게도 (이건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 ... 자신이 찾고 있는 특이한 행복은 바로 이른 아침의 기상과 규칙적인 해수욕과 의식적인 건강법에 있다는 부끄럽기 짝없는 진실을 뼈저리도록 느끼고 있었다.' (168쪽)
'행복이란 인간적인 것이고 영원이란 일상적인 것이다. 요는 하루하루의 리듬을 우리의 희망이 그리는 곡선에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하루하루의 리듬에 순응하도록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 (170쪽)
이렇게 깨달은 그는
'행복에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든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해야 한다든가 하는 조건이 있다고 믿는 건 잘못이야. 중요한 것은 말이지, 다만 행복의 의지이고 언제나 뚜렷하게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야.' (178쪽)
라고 말한다. 행복은 결코 일상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에서 내가 행복을 깨우치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할 수가 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최종적인 행복이 죽음에 있다. 어떻게 죽느냐...
'운명이 인간 속에서 창조하는 선택을 그는 의식과 용기 속에서 행했던 것이다. 바로 거기에 그의 모든 삶과 죽음의 행복이 있었다. 짐승처럼 날뛰면서 그가 바라보았던 죽음, 그는 이제 그 죽음을 겁낸다는 것은 바로 삶을 겁낸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죽는 것에 대한 공포는 인간 속에 살아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정당화해주는 것이었다.' (199-20쪽)
이 말은 삶에 대한 집착은 삶이 주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삶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라는 말로 이해가 된다. 그것은 결국 사라져버릴 것들에 자신의 마음이 매여 놓여나지 못하게 되는 것, 거기서 행복은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느냐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느냐와 같은 질문이 될 수 있음을,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은 메르소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는 죽을 때 미소를 짓고 죽는데, 그것은 자신이 행복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단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소설 속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행복한 죽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급작스럽다.
그리고 삶에서도 그는 행복을 찾는다고 하지만 지루한 일상을 반복할 뿐이다. 아무리 행복이 우리의 일상에 있다고 해도,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고 말을 하려고 해도, 그리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와 선택이라고 해도 소설을 읽으며 그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그런 생활을 하는데, 즉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생각할 여유가 있는 시간을 벌게 된 것이 살인으로 얻은 돈이기 때문이다. 수단부터 정당할 수 없는데, 어떻게 행복이 올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소설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이 소설이 카뮈 생전에 발표가 된 소설도 아니고, 완성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소설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데, 잘 못 찾겠다.
그냥 소설 속 구절들을 따라가면서 혹, 이런 말을 하고자 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소설을 한쪽으로 밀어넣고 더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정말로 우리는 어떤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정말로 돈이 시간을 벌어다 주고, 그것에서 행복이 찾아질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돈은 필요조건이기는 하다.
그 필요조건인 돈을 충분조건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이고 선택이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산 사람은 죽을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즉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메르소는 행복한 죽음과는 거리가 좀 먼데... 그는 돈을 행복의 충분조건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 그리고 잘못된 수단으로 얻어진 돈은 결코 행복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행각하므로...
앞으로도 계속될 카뮈 작품 읽기... 왜 이 작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그것이 의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