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파란 2016.여름 - 2호, 시론
파란 편집부 엮음 / 파란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선 이 책 가격에 비해서 내용이 더 알차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가격이 그리 싼 편은 아니지만, 요즘 책값들이 보통 12,000원에서 15,000원 사이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 분량에 15,000원이면 싼 편에 속한다고 본다. 450쪽이 넘는 분량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책 크기가 조금 작으니 우리가 보통 국판이라고 하는 다른 책으로 치면 400쪽쯤 되는 분량이겠다.

 

왜 가격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많은 책들이 한 번 읽고 서가로 직행해 거기서 평생을 보내거나, 또는 아예 끝까지 읽히지도 않고 어느 책 밑에 깔려 있는 운명을 맞이해서 도무지 제 밥값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펼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제 몫을 충분히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책이다. "계간 파란"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이번 호 기획은 "시론"이다. 시에 대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론가들이 펼치는 시론이 실려 있지 않고, 시인들이 말하는 시론이 실려 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평론가와 시인은 같은 작품을 놓고도 다르게 보는 경우가 많다. 평론이 시를 선도하느냐 따라가느냐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평론가들이 주장하는 시론보다는 시인이 직접 주장하는 시론이 더 시를 잘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총 28명의 시인이 시론에 대해 글을 썼다. 허만하 시인부터 정영효 시인까지. 이들을 배치한 순서는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시인으로 등단한 해에 따랐다. 1957년에 등단한 허만하 시인과 2009년에 등단한 정영효 시인까지 등단 년도만 보면 50년도 더 차이가 난다.

 

강산이 무려 다섯 번이나 바뀌었던 세월, 그 세월을 따라 시를 발표한 시인들이 자신의 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는 글들이다.

 

그 글들은 다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어느 시인의 시론이 더 시론답다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마치 우리가 '나무'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각자의 설명이 다 다르듯이. 그 설명들에 우열을 가릴 수 없듯이.

 

한 편 한 편의 시론들을 읽으며 시란 무엇이라고 꼭 정의하기 힘든 것, 그러나 이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완성된 무엇이 아니라는 것.

 

시는 변화요 움직임, 그러므로 딱 이거다 할 수 없는 것. 시란 성공할 수 없는 것, 실패를 예견하지만 쓸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읽어보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시론을 받아들여도 되니...

 

시론에 관해 내 맘에 들은 구절들은 아래에... 너무도 많은 생각해 볼만한 시론들이 있지만 주관적으로, 그냥 내 맘대로 인용한다.  

 

시는 비록 여리지만, 이따금 그 해독을 위하여 인간의 지적 체계 전부를 동원하기를 보채는 철부지다. - 허만하 21쪽

 

▶ 시인은 정해진 위대한 실패를 향해 영원히 오르고 또 오를 뿐이다. - 문정희 33쪽.

 

▶ 시는 모든 질문을 비켜 가게 만들었고, 모든 질문이 하나의 질문이 되게 했다. - 백무산 71쪽.

 

▶ 언어는 언제나 실패를 하게 되어 있고, 그 실패가 언어의 무기일 것이다. 그 실패를 다루는 자가 시인이다. - 백무산 72쪽.

 

▶ 결핍을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시 쓰기의 시작일 것이다. - 허수경 96쪽.

 

▶ 시의 언어는 ... 말해질 수 없는 말이며, 재현 불가능한 말이다. 혀를 잃어버린 입, 또는 입을 잃어버린 혀처럼.   시를 쓰는 일은 죽은 몸 위에 스스로 비문을 새기는 일처럼 답답하고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 나희덕 114쪽.

 

▶ 언어가 꾸는 꿈보다 언어가 꾸는 현실이 내가 뒹굴어야 할 시의 현장이고 사랑의 속세다. - 박용하 125쪽.

 

▶ 시는 지금 이 순간 태어나는 말이면서 저 먼 과거의 빛이며 지금 이 순간을 새기는 말이면서 태어날 미래의 입김이다. 누구나 보고 있으되 보지 못한 말이고, 누구나 듣고 있으되 듣지 못한 말이며, 무수히 말했으되 아직 말해지지 않은, 무수히 썼으되 아직까지 쓰여지지 않은, 아는 말이되 모르는 말이다. - 박용하 129쪽.

 

▶ 시 또한 뼈 없는 신체를 가진 미지의 우주적 생물체다. - 함기석 148쪽.

 

▶ 시는 기존의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되는 체험, 그 암흑의 감각으로 사물과 우주를 새롭게 인식하는 전위적 탐측 행위다. - 함기석 153-154쪽.

 

▶ 시는 환멸을 또 다른 환멸로 바꾸는 작업이며, 상상력을 통해서 잘 보이지 않는 자아, 타자, 사물, 음악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결과다.  시인은 누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는,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거나 사원을 지으려 한다. - 정재학 188쪽.

 

▶ 시는 문장에서 문장으로의 이행 자체다. - 김언 202쪽.

 

▶ 시는 눈의 문제로 시작해서 귀의 문제로 끝난다.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듣는 것으로 끝난다는 말이다. - 김언 205쪽.

 

여기에 첨부하면 이 책에는 시론이 기획으로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들이 실려 있다는 것. 그 시들을 읽는 재미.. 한 시인이 세 편씩의 시를 발표하고 있는데...16명의 시인이 작품을 실었다. 이번에는 가나다 순으로 시를 수록했고.

 

이 시들 중에... 이 시... 에고, 우리나라엔 아직도 천사가 더 필요한지... 이제, 천사는 필요없는데... 천사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슬픈 시. 이런 천사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천사들의 나라

 

우리는 이제 걱정 없을 거다

삼백 명 아이들이 천국으로 가

천사가 되었으니

두고 온 나라를 보살펴 주겠지

책임 있는 자들이 침묵하고

예수 팔아먹는 목사들이 망언을 해도

우리는 이제 잘나갈 거다

심청이처럼 바다로 뛰어든 아이들

남겨진 부모를 생각할 터이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전윤호, 천사들의 나라, 계간 파란 2016년 여름호. 433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10-14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도 문학 잡지인 계간지 하나 정기구독하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ㅎ 이렇게 또 계간지하나 소개해주시니..근질근질하네요..
문학도가 아닌데 계간지 2개보는건 오버 아닌가 싶어서.고민되네요..ㅎㅎㅎ

kinye91 2016-10-14 11:49   좋아요 0 | URL
저도 정기구독하고 있는 계간지가 있지만, 모두 구독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때그때 기획을 보면서 사 보는 편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