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고야의 그림을 보면 스페인이 보이고, 우리나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재미 있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되고, 그림을 보는 재미도 느끼고, 이런 점에서 학창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미술에 대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데...

 

고야란 이름을 자주 보게 된다. 사실 예전에는 모르고 있던 화가이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화가이니.

 

그런데 그의 그림 중에 언급되는 그림들이 제법 있다. 어디선가 본 그림도 있고. 그렇다면 그는 중요한 화가? 이런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서 박홍규(그는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다.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 그에 의해 많이 소개되었다)가 쓴 "고야"에 대한 책을 보았다. 그동안 고야에 대해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간 책들을 읽은 터라 잘됐다 싶어 빌려 읽기 시작.

 

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르게 스페인의 역사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단순히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분명 대조가 아니라 비교다. 이렇게 스페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줄은 몰랐다) 시작한다.

 

도대체 고야와 스페인의 역사, 그리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관련되기에 이렇게 하나 했더니, 화가는 그 시대를 벗어날 수 없으며 고야는 그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작품으로 남긴 작가라고 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누드 그림 말고, 대부분의 그림은 스페인의 현실을, 스페인의 민중을 그린 작품들이니 스페인의 역사를 알아야, 고야가 살던 당시 혁명기의 스페인을 알아야 그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반도국가에서 비슷한 시기에 기나 긴 독재시대를 거쳤다는, 외국의 침략으로 백성들이 살해당했다는 그러한 공통점도 있고, 고야의 작품 두 점이 우리나라에서 전시 불가 판정을 받아 전시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있으니, 작가가 우리나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왜 우리나라에는 고야와 같은 작가가 없는가고 한탄하고 있다. 왜 없겠는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다만, 그와 같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고, 고야 역시 당대에는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으니, 우리나라 화가들도 작품을 제대로 발표하지 못할 뿐이다.

 

2002년에 쓰여진 이 책은 그 전까지 우리나라 화가들의 서구취향, 또는 전통 한국취향으로 위장한 자기만족에 대해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때도 우리나라 화가들 역시 시대를 직시하고, 그 시대 상황을, 민중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음 확실하다.

 

단지 고야처럼 성공적인 화가의 길을 걸은 사람이 아닐 뿐이지.

 

고야는 시골에서 태어나 아카데미에 두 번이나 떨어지는 고난을 겪는다. 그만큼 그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화가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부단한 노력으로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결국 궁정화가가 된다.

 

스페인에서 궁정화가가 된다는 얘기는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고야는 왕실의 화려함을 자랑스레 표현하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궁정화가로서 지내면서도 민중들의 삶에 대해, 스페인 현실에 대해 풍자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발표를 못하고, 또 금지 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말년에는 보수 반동의 흐름을 견딜 수 없어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삶을 마감한다고 하는데...

 

궁정화가로서 출세의 길을 달리지만 그는 그가 처한 사회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특히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중들의 삶에 눈감을 수 없었다고... 또 가톨릭의 횡포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마녀사냥이 계속되어지는 스페인의 현실에도 눈을 감을 수가 없어 그를 풍자화로 그려냈다고 하니...

 

그의 그림들을 보면 스페인의 근대를 알 수 있고, 전쟁이나 권력이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 고야의 그림들이, 그것도 민중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이 많이 실린 것은 저자인 박홍규가 권력의 비민주성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고야의 민중성, 혁명성을 더 강조하고 있고, 이런 화가가 우리나라에도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고야처럼 궁정화가는 되지 않았더라도 우리에게도 민중화가들은 많이 있다. 언뜻 떠오르는 이름만 하여도 오윤, 홍성담, 임옥상, 강요배 등이 있으니... 우리도 스페인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역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그림들을 만들어내는 화가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그래서 한 화가의 평전이지만 책의 앞뒤로 스페인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한다.

 

스페인이 몇 번의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민주화 이후에 독재로 많이도 돌아갔듯이, 우리 역시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가, 정말 그런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에도 이랬는데, 12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런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고야의 그림이 우리나라에 전시 불가 판정을 받았듯이(이 책에 의하면 그 그림은 '벌거벗은 마하'와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린시페 비오 언덕의 총살'이다) 2014년 우리나라 광주에서, 민주화의 성지라 불리는 광주에서, 광주 정신을 계승하자고 그렇게 말하는 지금 홍성담과 몇몇이 그린 그림들이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되는 것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보면... 박홍규의 절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의 마지막 구절... 2014년에도 유효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그는 권력과 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두 개의 악에 저항한다. 18세기 스페인이나 20세기 한국이나 그 두 가지는 인간을 파괴하는 두 개의 괴물을 상징한다. 그 저항으로 그는 두 장의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당대 스페인에서 금지당한 것처럼 20세기 한국에서도 금지 당한다. 한국은 아직도 권력과 성에 있어서는 미개국이다. 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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