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픈 먹물 놈들'

"사람들은 단지 사납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다스리기 어렵다는 것만 알지, 교양 있고 어진 사람들이 다스리기 더 어렵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사납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말하기를 "내가 정사政事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사납고 어리석어 교화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면, 듣던 사람도 "원래 그렇습니다. 사슴 돼지 같거나, 나무나 돌과 같은 사람들을 그대라고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할 것이다."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의 산문 '골치 아픈 먹물 놈들'의 첫단락이다. 스스로 반성할 기회마저 가질 수 없는 그들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번역자 박동욱은 이 글에 등장하는 먹물 놈들에 대해 "이익이나 셈에 빨라서 남에게 앙보하거나 자신에게 손해를 입힐 행동을 하지 않는다. 뒤에서는 끊임없이 구시렁거리면서 저보고 하라면 발을 쏙 뺀다. 지식인이 넘쳐나는 요즘에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라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 '먹물 놈들'로 표현되는 무리 속에 자유롭지 못하다. 300년 전 사람 이용휴의 '골치 아픈 먹물 놈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늘에도 유용한 것이 못내 씁쓸하다. 어쩌면 겨울숲에서 이미 알맹이는 다 떠나보낸 고추나무 열매의 껍데기보다도 못하면서도 지식인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스스로 반성할 기회마저 잃어버린 것으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닐까. 탄핵정국과 맞물린 대선주자들의 행보도 이와다르지 않아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골치 아픈 먹물 놈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영춘화迎春花'
이른 봄나들이에 지리산 기슭 어느 마을입구 높다란 담장에서 늘어진 모습으로 만났다. 개나리도 아닌 것이 노랗기는 더하고 피기도 개나리 보다도 서두른다. 봄 색을 대표하는 노오란 색으로 따스하고 환하다. 봄 맞이하는 마음이 너 같기만하길 바래본다.


꽃모양이 비슷해보이는 개나리는 네 갈래의 꽃잎이고 영춘화는 6장의 꽃이 완전히 다르다. 영춘화는 개나리 보다 먼저 꽃이 퍼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 중의 하나이다.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에서 영춘화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매화처럼 꽃이 빨리 핀다고 황매하고, 서양에서는 겨울 자스민이라고 부른다.


집으로 드나드는 골목길 담장 위에 심어서 이 꽃으로 봄마중할 생각으로 우선 땅에 심었는데 때마침 꽃을 피웠다. 봄이 지나면 담장위로 올려줘야겠다. 봄의 마음처럼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밤사이 차가운 날이야 그러든말든 부지런해진 해는 그 환한 빛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무겁게 내리 앉은 서리도 논 가운데 얼음도 이내 사라질 모습이기에 한번이라도 더 붙잡아두고자 욕심낸 마음으로 서둘러 나선 길에 다소 긴 눈맞춤 한다.

다시, 알싸한 아침 공기의 맛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꽃다지'
산골 그것도 오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만났다. 밭이랑 사이에 노랗게 핀 자그마한 꽃이 이뻐서 한참을 들여다 본다. 먼산에 피는 꽂이나 보기 어려운 꽃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기본은 내 삶의 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꽃에 더 주목한다. 그런 의미에서 몇가지 식물이 있다.


'꽃다지1' (김애영 작사)
그리워도 뒤돌아 보지말자/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나 오늘밤 캄캄한 창살아래/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진정 그리움이 무언지/사랑이 무언지 알 수 없어도/쾡한 눈 올려다본 흐린천장에/흔들려 다시피는 언덕길 꽃다지


이 노래에 나오는 꽃다지도 그 중 하나로 내 젊은날의 가슴에 담겼던 노래들 중에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로 시작되는 '사계'와 더불어 노찾사의 노래 '꽃다지'에 등장한다.


꽃다지는 우리나라 곳곳의 들에서 자라는 2년생 풀로 꽃은 3월부터 5월까지 피며, 원줄기나 가지 끝에 여러 송이의 꽃이 어긋나게 달리며 옆으로 퍼진다. 열매는 7~8월경에 편평하고 긴 타원형으로 달린다.


꽃다지 이름은 '따지'에서 왔다. 꽃차례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향해 꽃이 피고, 열매 맺으면서 올라가며, 차례로 하나씩 피고 닫아가는 모양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으로 추정한다.


겨울을 이겨낸 봄나물들 사이에서 피어나지만 주목받지 못해서일까? '무관심'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로 이 사람'

"'차거此居'는 이 사람이 이곳에 산다는 말이다. 이곳은 바로 이 나라 이 고을 이 마을이고, 이 사람은 나이가 젊으나 식견이 높으며 고문古文을 좋아하는 기이한 선비이다. 만약 그를 찾고 싶으면 마땅히 이 기문記文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쇠 신발이 다 닳도록 대지를 두루 다니더라도 결국 찾지 못할 것이다."

*혜환 이용휴의 산문이다. 이곳에 사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이용휴는 이 사람에 대해 더이상의 다른 말이 없다.

궁금증에 결국 '이 사람'의 자리에 '나'를 대입해 본다.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이 또한 확실치 않으니 역시 아는 바가 미진한 까닭이리라.

비웠다. 무엇인가로 가득 채우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을 꽃의 진 자리다. 허망하거나 아쉬움이 아닌 뿌듯한 자부심의 자리로 읽힌다. 삶의 시간이 이와같아야 하는건 아닐까.

이 사람의 자리에 나를 대입해알고자 하는 것이 나라면 우선 이처럼 비워야하지 않을까. 스스로 젊다고 여기며 채우기에 급급했던 지나시간을 돌아본다. 나이를 든다는 것은 이렇게 스스로를 비워내는 일이고 대상과 조금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하는 것임을 비로소 안다.

볕 좋은 봄날 오후, 짧은 글을 길게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