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늦장을 부린건 피곤한 몸이 아니라 폭염을 건너온 마음이 시킨 것이리라. 점심도 때를 놓치고 서성이는 뜰에 햇볕을 좋아하는 채송화가 만개했다.

"꽃에 물든 마음만 남았어라
전부 버렸다고 생각한 이 몸속에"

*벚꽃과 달을 사랑하며 일본의 헤이안 시대를 살았던 가인으로 다양한 작품을 남긴 사이교의 노래다.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몸을 낮춘다. 스치는 풍경이 아니라 주목하여 멈추는 일이고, 애써 마련해둔 틈으로 대상의 향기를 받아들이는 정성스런 마음짓이다.

꽃은 보는이의 마음에 피어 비로소 향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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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여로'
여름 숲 길을 걷다 보면 가느다란 줄기가 우뚝 솟아 작은 꽃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식물을 만난다. 한껏 키를 키운 풀 속에서 그보다 더 크게 솟아나 하얀 꽃을 피운다. 자잘한 꽃 하나하나가 앙증맞다. 모여피어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여로, 이름은 익숙한데 꽃은 낯설다. 여로藜蘆는 갈대같이 생긴 줄기가 검은색의 껍질에 싸여 있다는 뜻이다. 밑동을 보면 겉이 흑갈색 섬유로 싸여서 마치 종려나무 밑동처럼 생겼다.


여로의 꽃은 녹색이나 자주색으로 피는데 하얀색으로 핀 꽃을 흰여로라고 한다. 꽃의 색에 따라 흰여로, 붉은여로, 푸른여로로 분류하기도 한다.


여로라는 이름이 낯익은 이유는 1970년대 초반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여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땅 속에서 줄기를 곧장 키워 여름을 기다려 꽃을 피우는 여로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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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염에 마음 상하게하는 일들이 줄줄이 달려든다. 한정된 공간에서 만나는 특정한 사람에게 받게되는 인상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아는지 모르는지 터진 입에선 날마다 남을 흉보는 말이지만 결국 스스로 못난 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자신만 모르고 스스로에게 돌아갈 손가락질만 일삼는다.

"이를테면 공갈빵 같은 거
속을 보여주고 싶은데
알맹이 없는 껍질뿐이네
헛다리짚고 헛물켜고
열차 속에서 잠깐 사귄 애인 같은 거
속마음 알 수 없으니
진짜 같은 가짜 마음만 흔들어주었네"

이임숙의 '헛꽃'이라는 시의 일부다. 열매 맺지 못하는 꽃을 헛꽃이라 부르는 이유야 분명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어디 참꽃만 있던가. 화려하게 유혹하는 이 헛꽃의 무상함을 알면서도 기대고, 짐짓 모른척하면서도 기대어 그렇게 묻어가는 것들이 삶에서 오히려 빈번하다.

헛꽃은 바라보는 대상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내게도 있다. 이런 헛꽃들이 만나 헛세상을 만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헛세상인줄 모른다. 그래서 헛마음으로 사는 헛세상은 늘 힘들고 외롭고 제 힘으로 건너기 버거운 세상이 된다.

헛꽃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서툴고 여린 속내를 어쩌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만이 참이라 여기는 그 마음에 피어나는 것이 헛꽃이리라.

산수국의 헛꽃이 뒤집어 졌다. 참꽃보다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매개체를 유혹하는 사명을 다하고 뒤집어져 이렇게 임무완수의 표시를 한다. 매개체의 헛수고를 덜어주려는 배려가 담겼다. 식물의 헛꽃은 그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끝마무리 까지하고서 생을 마감한다. 그렇더라도 헛꽃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헛꽃만 피고 지는 이 자리
헛되고 헛되니 헛될 수 없어서 헛되도다"

혹여, 내 일상의 몸짓이 이 헛꽃보다 못한 허망한 것은 아닐까. 시인이 경고한 헛꽃의 그 자리를 돌아보는 것은 연일 폭염보다 더한 사람의 허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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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유산(1507m)을 올랐다. 25년 전 즈음 향적봉을 처음으로 오르고 간혹 무주 구천동 계곡이나 휴양림, 스키장을 갔지만 정상을 올라볼 생각은 안했으니 기억 저편에 묻혔다고 해도 좋을 덕유산이다. 그 덕유산을 꽃 볼겸 해서 다시 오른 것이다.


이른아침 출발 낯선길을 나섰다.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벌써 주차된 차들이 제법있다. 도착 하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슬비가 내리고 마침 같이 출발하는 팀이 있어 다행이다. 입구에 도착하고 먼저 출발했다. 다소 험한 길을 더위를 식혀주는 이슬비와 함께 느긋한 걸음으로 오르고 또 오른다. 간혹 내려오는 이들과 인사 나누는 것으로 지친 몸을 쉬어가기도 했다. 결국 정상까지 혼자다.


산을 오르자 비는 멈추고 안개세상이다. 발 아래 아무것도 없다. 바로 앞 봉우리도 안보인다. 길을 따라 걷고 보이는 꽃과 눈맞춤 한다. 남덕유산 정상에서 서봉에 이르는 능선이 꽃들의 세상이다. 더딘 걸음을 자꾸 멈추게하는 꽃과의 만남은 서봉에 올라서니 절정이다.


만개한 원추리부터 긴산꼬리풀, 바위채송화, 돌양지꽃, 도라지모싯대, 단풍취, 동자꽃, 참바위취, 난장이바위솔, 구름체, 흰여로, 물봉선, 좀꿩의다리, 산수국, 곰취, 흰송이풀, 노루오줌, 일월비비추, 산오이풀, 가는장구채, 말나리, 중나리 그리고 솔나리까지 이름을 알지 못해 미안한 꽃까지 안개 속 천상의 꽃밭이다.


먼 곳에서 고향사람 만났다고 걱정해주는 사람에 울굿불굿 꽃처럼 이쁜 사람들 속에서 8시간을 걸었지만 적당히 피곤한 몸이 오히려 기분 전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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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이다. 습기를 품고 더위를 식혀줄만큼의 적당히 냉기가 흐른다.

용도폐기된 곳을 새롭게 단장하고 사람이 걷기에 적당한 밝기의 불을 밝히고 드문드문 작품을 설치했다. 제법 긴 터널을 걷는 동안 더위는 사라지고 이내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충분히 밝은 빛으로 가득하다. 나무, 사람, 물고기, 자전거, 창문ᆢ등 사람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모습 형상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걷는 속도에 따라 밀려난다. 간혹 발길을 사로잡고 주목하게 만드는 빛도 있다.

터널이다. 갇힐 수 있다거나 막힌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기에 머뭇거림 없이 들어선다.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만나고 다가오는 모든 것이 일상에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왜, 삶이라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은 늘 머뭇거림과 함께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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