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에 마음 상하게하는 일들이 줄줄이 달려든다. 한정된 공간에서 만나는 특정한 사람에게 받게되는 인상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아는지 모르는지 터진 입에선 날마다 남을 흉보는 말이지만 결국 스스로 못난 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자신만 모르고 스스로에게 돌아갈 손가락질만 일삼는다.
"이를테면 공갈빵 같은 거
속을 보여주고 싶은데
알맹이 없는 껍질뿐이네
헛다리짚고 헛물켜고
열차 속에서 잠깐 사귄 애인 같은 거
속마음 알 수 없으니
진짜 같은 가짜 마음만 흔들어주었네"
이임숙의 '헛꽃'이라는 시의 일부다. 열매 맺지 못하는 꽃을 헛꽃이라 부르는 이유야 분명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어디 참꽃만 있던가. 화려하게 유혹하는 이 헛꽃의 무상함을 알면서도 기대고, 짐짓 모른척하면서도 기대어 그렇게 묻어가는 것들이 삶에서 오히려 빈번하다.
헛꽃은 바라보는 대상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내게도 있다. 이런 헛꽃들이 만나 헛세상을 만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헛세상인줄 모른다. 그래서 헛마음으로 사는 헛세상은 늘 힘들고 외롭고 제 힘으로 건너기 버거운 세상이 된다.
헛꽃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서툴고 여린 속내를 어쩌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만이 참이라 여기는 그 마음에 피어나는 것이 헛꽃이리라.
산수국의 헛꽃이 뒤집어 졌다. 참꽃보다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매개체를 유혹하는 사명을 다하고 뒤집어져 이렇게 임무완수의 표시를 한다. 매개체의 헛수고를 덜어주려는 배려가 담겼다. 식물의 헛꽃은 그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끝마무리 까지하고서 생을 마감한다. 그렇더라도 헛꽃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헛꽃만 피고 지는 이 자리
헛되고 헛되니 헛될 수 없어서 헛되도다"
혹여, 내 일상의 몸짓이 이 헛꽃보다 못한 허망한 것은 아닐까. 시인이 경고한 헛꽃의 그 자리를 돌아보는 것은 연일 폭염보다 더한 사람의 허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