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취'
궂은 날씨에도 높은 산에 오르며 눈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언듯 스치는 익숙치 않은 다른색에도 지나치는 법이 없이 살피다보면 이름을 알고 모르고는 상관없이 의외의 식물을 만나게 된다. 남덕유산 높은 철사다리 밑에서 막 피어나는 곰취를 만났다.


높은 산에서 자난다는 특성으로 쉽게 만나지 못하지만 나물로 인기있어 이름은 친숙하다. 곰취라는 이름은 곰이 좋아하는 나물이라는 뜻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노란색의 꽃은 꽃대 끝에 모여달린다. 꽃보다는 잎에 주목했다. 곰취의 뿌리잎은 땅속줄기에서 뭉쳐나고 심장 모양이며 길이가 85cm에 달하는 큰 것도 있다고 한다.


어린잎을 봄철에 날것으로 또는 데쳐서 나물로 먹으며 말려서 묵나물로 만들기도 하는데 향기와 맛이 좋다. 이렇게 다양한 식재료로 사용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인지 '여인의 슬기'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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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다. 여름이니 덥다지만 한계에 다다른 건가. 올 여름은 무지막지하게 덥다. 오전과 오후 번갈아가며 쏟아낸 땀으로 기진맥진 허기진다.

이슬비와 함께 올랐던 산의 정상에 이르러 보석처럼 빛나는 물방울에 발걸음을 붙잡혔다. 힘겹게 올랐던 그 피곤함이 사그라드는 시간이다. 여리디여린 것이 그보다 더 여린 대상을 만나 서로가 서로를 더욱 더 빛나게 한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 귀한 모습으로 본다. 하루를 길게 보낸 시간 앞에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힘들여 오르고 나서 마주하는 지극히 짧은 순간의 환희가 주는 맛을 잊지못해 다시 찾는다. 이것으로 긴 하루가 주는 묵직함이 덜어내는 틈으로 삼는다.

참바위취에 보는이의 마음이 알알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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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수국'
꽃색이 전하는 맑음과 모양에서 풍기는 단아함이 으뜸이다. 한장한장 겹으로 쌓여 깊이와 무게를 더했다. 화려한 색의 수국의 화려함을 넘어서는 맛으로 넉넉함까지 전해준다.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번지는 아름다움이다.


수국, 산수국, 꽃산수국, 나무수국, 바위수국, 울릉도 수국 등 이런 수국 종류의 꽃에서는 화려하면서도 넉넉함을 본다. 헛꽃의 넖음이 주는 것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까지도 그 넉넉함에 한몫 더한다.


'나무수국'은 수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러 종류들 중에서 늦게 꽃을 피운다. 꽃은 가지 끝에 꽃자루를 만들어 달리며, 흰색이고 붉은빛을 띠기도 한다. 꽃받침잎은 타원형 또는 원형이며 꽃잎처럼 생겼다.


내 뜰에 들어와 두번째 꽃을 피웠다. 어느 봄날 거센 우박의 피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건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연두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하면서 피는모습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모르나 '변심', '냉정', '거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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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난리를 피우듯 요란한 팔월의 시작이다. 분주함 만큼은 덥지 않은 것이 산을 넘어온 구름이 힘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맑은 볕이 뜨거울 한낮을 예고한다.

꼬인듯 하지만 가지런한 모습에서 다가올 내일의 갈길을 미리본다. 갈등葛藤은 칡과 등의 엇갈린 꼬임에서 온 말이지만 그것 역시 질서 속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형성되지 못하는 꼬임인 것이다. 꼬임에 주목하다 보니 그 속의 질서는 간과한 것은 아닐까.

움츠려 때를 기다리는 모습에 여유로움이 담겼다. 지금 꼬인 그것은 멀리가기 위한 잠시의 틈이고 쉼이기에 그 움츠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뜨거운 햇볕 아래 꽃이 더 붉어지듯 팔월의 맑은 볕을 누려도 좋으리라. 입추立秋가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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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7 15: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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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갇힌 칠월의 마지막날이다. 젖은 솜이불 마냥 무거운 공기지만 어쩌다 인심쓰듯 부는 바람끝에 시원함이 서려있다.


"내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ᆢ"


*이육사의 시 '청포도'의 일부다. 칠월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암송되는 시 중에 하니다. 다 매맞으며 외웠던 학창시절 덕분이다. 내 뜰에 우박 맞아 생기다 만 먹포도는 칠월의 햇볕에 까맣게 익어가고 있다. 신맛이 강해 주인의 눈밖에 난 포도지만 새봄 그 붉디붉은 새순은 어쩌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 놓았다. 칠월과 팔월의 사이에 청포도가 익어간다.


"꽃은 지면서도/울지 않는 것처럼/보이지만/사실은 아무도 모르게/눈물을 흘리는 것/일테지요/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내가 모든 사람들을/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만 있다면/그가 지닌 향기를/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ᆢ"


*이해인의 시 '칠월의 시' 일부다. 꽃이 피지 않은 계절은 없다. 눈보라 밭에서도 피니 폭염이라고 다를 수 없듯이 꽃은 제 사명을 다하기 위해 피었다가 진다. 한여름에 피는 꽃일수록 화려한 색과 진한 향기로 무장하고 세상에 나온다. 자연 속 꽃은 늘 그렇게 주변의 조건과 조화를 이루며 사명을 다한다.


빛과 온도와 습도까지 최적의 조건에서 사람의 손에 태어난 꽃은 본래의 사명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꽃으로 피어났지만 화려하게 피어날 순간에 잘려 누군가의 마음을 뜰로 옮겨지는 것이 어쩌면 새롭게 꽃에게 부여된 사명일지도 모르겠다.


살아서 그 사명을 다했지만 죽어서까지 모진 삶이 어어진다면 어떨까. 죽어도 죽지 못한 삶이라 벽에 붙어서도 기울어진 것일까. 끝나는 칠월에도 여전히 그대를 꽃으로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으로 설렐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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