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들머리가 공존하는 11월의 긴 하루가 깊었다. 새벽 찬서리를 마련하느라 밤기온은 내리막길을 치닫고 음력 9월 열사흘달 환하다.


밤의 차가움과 낮의 뜨거움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단풍은 더 곱게 물들고, 꽃은 향기를 과일은 맛을 더하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 달빛의 속삭임에 손바닥만한 뜰을 거닌다. 달빛에 솟아나는 노오란 소국의 짙은 향기로 가을을 고유했던 시간의 흔적을 더듬는다.


경계라고 쓰고 공유라고 읽는다. 나와 너를 구분하고 벽을 쌓는 경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스며들어 닮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무엇을 나누고 가두어 대상과 나를 격리하기보다는 틈을 내어 벽을 허물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 틈을 허락하는 마음씀의 자리다.


대상과 내가 공존하기에 가능한 눈맞춤의 순간이다. 마음에 틈을 내어 머뭇거림을 쫓는다. 굳이 먼동이 트는 시간이나 노울이 지는 때를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가을이 허락한 일이기에 순리에 따를 뿐이다.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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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서리 내리기 전에 수확해야한다고 서둘렀다. 소에 쟁기 채워 조심스럽게 갈어엎으면 그 뒤를 따라가며 줍곤했다. 작은방 한켠에 대나무로 엮은 발을 세우고 저장해두고서 한겨울 내내 삶아먹고 구워먹고 깎아도 먹었다. 그때도 분명 보았을텐데 도통 기억에 없다.


깔데기 모양의 붉은빛이 도는 꽃이 핀다. 얼핏보면 나팔꽂 닮았지만 더 튼튼하고 강인한 느낌이다. 잎 모양은 심장형으로 단아한 맛이 깃들어 있다.


아메리카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영조 39년(1783) 부터 일본에서 고구마를 들여와 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구마라는 이름도 일본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일본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로 부모를 잘 봉양한 효자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해 관청에서 고구마를 ‘고코이모’라 했는데 우리말로는 ‘효행 감자’라는 뜻이다. 이 ‘고코이모’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구마’가 된 것이라 한다.


쉽게 볼 수 없어서 행운이라는 꽃말을 붙였다고는 하나 요즘들어 여기저기서 자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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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상서로운 서리가 내렸다. 그것도 10월의 마지막 날을 꽃으로 장식하고픈 하늘의 마음으로 이해한다. 눈이 시리도록 높고 푸르러 자꾸만 쳐다보게 하는 하늘은 잘 익은 단감 한입 베어물면 입안에 바득차오르는 시원하고 달콤한 그것과도 다르지 않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문득,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딱 이 하늘이지 않았을까 싶다. 한 고비를 넘고 다른 문을 여는 망설임과 설렘에 수면 아래를 멤돌다 숨 쉴 틈을 찾아 수면 위로 빼꼼히 목을 내놓는 물고기의 조심스러움이 담겼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대의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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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쓴풀'
느지막이 산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꽃이 필 때쯤이면 매년 그곳을 찾아가 눈맞춤하는 꽃들이 제법 된다. 이렇게 하나 둘 기억해 두고 나만의 꽃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줏빛을 띄는 꽃잎이 깊게 갈라져 있다. 꽃잎에 난 줄무늬의 선명함이 전체 분위기를 압도한다. 꽃잎은 다섯장이 기본이지만 네장에서 아홉장까지도 다양하게 보인다.


자주쓴풀은 흰색으로 꽃이 피는 쓴풀과 비슷하지만, 줄기와 꽃이 자주색이라서 ‘자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쓴풀은 아직 눈맞춤하지 못해 직접 비교해보지는 못했다. 가까운 식물로는 대성쓴풀, 쓴풀, 개쓴풀, 네귀쓴풀, 큰잎쓴풀 등이 있다.


사람과 식물 사이에 형성된 이야기를 보다 풍부하게 해주는 의미에서 찾아보는 것이 꽃말이다. '자각'이라는 자주쓴풀의 꽃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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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이 피었다. 그것도 물매화 곱디고운 얼굴에 청초함을 더해주는 귀한꽃이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계절의 선물이다.


급격히 차가워진다. 차가움은 대상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 미적대던 속내에 불을 당겨 용기를 내게한다. 서리꽃 피었으니 감춰둔 붉은 속내가 더 붉어지리라. 그붉음으로 인해 깊고 아득한 차가움의 긴 터널을 지나갈 수 있다. 정신이 더욱 맑아지는 계절이 코앞에 당도했다. 그 즐거움을 나눈다.


찰라를 더욱 빛나게 하는 서리꽃으로 귀한 하루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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