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부자들 - 나답게, 폼 나게 살아온 열 두 조르바를 만나다
조우석 지음 / 중앙M&B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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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속도를 찾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경제적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굳건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사회 각 부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 메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미루면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이렇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삶이 보통의 사람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들의 삶을 엿보고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흥미를 끌게 된다. 이러한 흥미로움을 해소시켜주는 것으로 조우석의 인생부자들이 있다. 조우석은 문화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저널리스트로 주요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음악, 미술, 연극 등 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의 전작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책이다.

 

나답게, 폼 나게 살아온 열 두 조르바를 만나다라는 부제를 단 인생부자들은 월간 여성중앙의 인터뷰 칼럼 행복한 나의 서재3년간 실린 글들을 엮어 낸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주목했던 사람들은 소리꾼 장사익, 시인 문정희, 배우 김미숙, 가수 한 대수, 시인 류근, 만화가 현태준, 광고인 김홍탁, 사진작가 김아타, 정목 스님, 고 김열규 교수 등 열두 명이다. 이들과 진솔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주인공들이 제시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문정희 시인에게 시가 있었다면, 소리꾼 장사익에게는 노래가 있었고, 현태준에게는 만화와 장난감, 한대수에게는 내 노래’, 외부 세계가 아닌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 류근 등과 같이 그들에게는 자신만이 집중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들은 내적, 외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때로는 소박하고, 때로는 장대한 꿈과 로망을 가지고 현재의 삶에 집중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열두 명의 삶을 들여다보며 찾아낸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시절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갈망했고, 그 열정에 스스로가 감복한 사람들이다. 지치지 않아 멈추지 않았고, 그 속에서 희열을 배웠고 존재를 깨달았다.”는 점이다.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잇듯이 이들을 만나는 중심 키워드는 조르바로 대표되는 자유인이다. 현대인들의 삶은 어쩌면 다양한 관계에 얽혀 있어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이런 현실이 자유인에 대한 동경이 될 것이다. 열두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기저에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는 점과 그들의 일상에 바로 그 자유에 대한 열망의 실현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조르바처럼 우직하게 자신의 직관과 본능을 추구해왔다는 공통점을 찾아내 그들의 내면에 있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 한다. 저자가 이들을 보는 또 다른 하나의 키워드는 인생 부자라는 개념이다. ‘돈이 많아 부자도 아니고, 한갓지게 사는 마음부자도 아니다라면서 인생부자를 거론한다. 인생 부자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확실한 규정이 필요하겠지만 경제적 측면이 우선되는 부자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누구나 영혼의 속도가 다르다라고 한다. 저자가 주목했던 이들의 삶은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의 긴 여정을 달리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자신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혹은 빠른 속도만이 행복을 가져다줄 지름길로 인식하며 질주하다보면 결국 자신의 삶에서 놓쳐버리는 것들이 많을 것이며 이렇게 놓친 것 속에는 행복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늘 바쁘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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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 - 고려 왕 34인의 내면을 통해 읽는 고려사
석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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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도 사람이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의 도무지 알 수 없는 태도를 보며 그 머릿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말과 행동이 비교적 많이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검증되는 시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정도가 이 지경이라면 얼굴도 모르고 소식 또한 접할 수 없는 왕조시대에 왕에 대한 이해는 어떠했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왕이든 대통령이든 독립된 존재가 아닌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는 한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인 왕은 왕이라는 존재와 개인이라는 특성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역사를 기록한 각종 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왕조사를 바라본 책이 평단문화사에서 발간한 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이다. 이는 강현식에 의해 살림출판사에서 발간한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시각으로 고려시대 왕들을 살펴보고 있다. 고려의 태조 왕건으로부터 34대 공양왕까지 475년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34명의 왕들의 왕으로써의 존재적 특성과 개인적 성향을 비교분석하며 고려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기존 역사서들이 왕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으로 주목하여 왕들의 정치를 평가하는 것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개인적 측면에 더 주목하고 있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살피고 있다.

 

이처럼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은 왕도 한 명의 인간이기에 그들의 심리 상태는 역사를 움직인 동인(動因)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하여, 역사의 사회적 배경과 왕의 심리분석을 바탕으로 한 역사해석을 통해 시기를 구분하여 고려사를 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주목되는 점은 나라를 건국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초기와 무너져가는 나라를 지탱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왕조의 마지막 시기를 지냈던 왕들에 대한 분석이다. 초기든 말기든 불안한 왕권은 왕들의 개인적 특성과 더불어 시대적 배경이 특히 중요한 요소로 대두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왕들의 개인적 성향이 또한 주목받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살피며 다양한 프리즘을 적용한다. 특히, 저자의 주관심사 중 하나인 심리, 문화 등의 지식을 배경으로 왕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은 시대,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종합적인 비교분석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역사를 이해하는 기본적 시각은 남겨진 사료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라고 본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고려왕조실록이 밑바탕이 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어디에서도 근거제시를 하고 있지 않아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에 너무 많고 심리적 측면의 분석이 앞선다는 측면도 올바른 역사이해와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다. ‘심리역사서라는 새로운 분야도 그 근거의 제시는 분명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왕에 대한 이해를 왕 이전의 한 사람으로 그들의 인간적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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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 제주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김금숙, 오멸 원작 / 서해문집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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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려면 시작해야 한다

지슬?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책의 제목이라고 한다. 제주4·3사건을 다룬 책의 제목이다. ‘지슬은 제주 말로 감자를 가리키며 땅에서 나오는 열매라는 뜻을 담아 한자어로지실(地實)’이라고도 한다. 암울하고 무거운 사건을 다루는 책의 제목을 땅에서 나오는 열매라는 의미를 담은 단어로 결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제주4·3사건은 무엇일까? 제주4·3사건은‘194731일을 기점으로 19484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에는 제주4·3사건과도 같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 아니 시작도 못한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이야기의 서두를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문학, 그림, 만화 등 무엇으로 시작하건 시작의 방법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못 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대부분의 제주4·3사건과 같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시작은 권력에서 출발하는 경우는 없었다. ‘민간인 학살이라는 배경에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여,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시작은 당한 사람들에게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들에겐 시작할 만한 힘이 없기에 이를 동조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며, 영화이며 또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책 사건인 제주4·3사건도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학으로 영화로 다시 만화라는 수단을 통해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책의 시작은 영화 지슬에서 출발하고 있다. 영화 지슬한국영화 최초 선댄스영화제 최고상 수상,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황금수레바퀴상, 이스탄불영화제 특별언급상, 부산국제영화제 4개 부문 수상, 국내 독립영화 최다 관객 동원등 다양한 수식어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기에 그림으로 만나는 이 지슬에 기대하는 바가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고 책은 책이며 특히, 작가가 다르기에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주목하는 바는 다를 것이다.

 

영화 지슬이 한 폭의 수묵화로 펼쳐지다는 괜한 광고문구가 아니다. 흑백으로 펼쳐지는 그림들이 어둡고 거칠며 삭막하다. 제주4·3사건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허허로운 마음을 옮겨놓은 듯 급기야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느낌을 그대로 가슴에 안게 만들고 있다. 제주4·3사건의 한 장면을 담아 제주4·3사건에 대한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력의 명에 의해 죽이고 죽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선상에 놓음으로 해서 가해자 위에 존재하는 명령하는 자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무엇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일까? 2014년 사건이 발생한지 66년 만에 43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적 위로 행사로 격상되었다고 한다. 19805.18광주항쟁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보훈청에서 주관하고 있다. 하지만, 추모노래 하나 가지고도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막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진보한 이야기를 되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5.18 광주항쟁보다 훨씬 긴 침묵의 시간을 강요받았던 제주4·3사건은 이보다 더 했을 것이다. 이는 피해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치유 할 무엇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그것을 이제는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죽어가면서도 남은 가족들을 위해 지슬을 가슴에 안고 있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는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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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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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시대정신

작가에게 부여된 시대정신은 어떻게 발휘되어야 할까? 작가가 작품에 담고자 하는 것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지언정 그 작가를 있게 한 일상에서 영향 받아 살아가는 작가로써 의연 중에라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무엇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그려지는 작품은 천지차가 날 것이다. 한때 많은 작가들이 가진 자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사람들에 주목하여 그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소통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한다. 한때, 주목했던 그들에게는 달라진 것이 있을까? 달라진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입고 먹고 다니는 것과 같은 보이는 모습은 달라졌다. 하지만, 삶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에선 그다지 변화를 발견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 대다수의 작가들이 외면한 사람들의 일상을 주목한 작가가 있다. ‘삼오식당의 이명랑이 그다.

 

작가 이명랑은 고개 돌리지 않고, 정면에서, 똑바로.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는 나의 고향. 내 현실을 들여다봐야만 한다라고 말하며 소위 문화산업,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너무 빨리 소설사에서 밀려나버린 사람들. 이들은 누구인가? 왜 이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내 두 발이 딛고 서 있는 곳은 대체 어디 인가?에 주목한다. 당연한 결과로 자신이 성장했던 시장 통의 사람들의 일상으로 모아진 것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삼오식당으로 모았다. 연작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은 영등포 시장의 한 식당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형성된 가게들의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그려가고 있다. 시장 통 삼오식당의 둘째딸이 시장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어머니가 있는 골목’, ‘까라마조프가()의 딸들’, ‘엄마의 무릎’, ‘보일러실 쟁탈전’, ‘잔치’, ‘결승선에서’, ‘우리들의 화장실등 각각의 이야기 주인공들은 삼오식당과 어던 형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으며 시장 통 사람들의 구체적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간다.

 

작가의 관심사는 시장 통 사람들이라고 하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인생에 히든카드 하나 없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이 생을 견뎌낼까?’에 있다. 하여 그들의 일상을 숨김없이 내 보인다.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에서부터 하는 일에 따른 그들의 사고방식까지 여과없이 드러내 보이는 솔직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장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으며 이 솔직함이 소박하고 친근한 이웃들의 눈물과 함께 따스한 시선이 담겨있다. 영등포시장 식당 집 둘째딸이었던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어 더 생동감 있게 그려질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는 사회에서 문학이 외면한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했다는 점부터 남달리 느껴진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그들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여 시대가 해결해 가야할 공통 문제에 대한 공감을 불러와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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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
한재훈 지음 / 갈라파고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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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분명 다른 길이었다

공부(工夫)라고 하면 우선 영어단어 외우고 수학문제 풀며 쌓여있는 학습지를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현실이다.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는 공부(工夫)의 사전적 의미에서도 공부의 본질적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살아보니 우리가 공부라고 여겼던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살아가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것을 공부라고 한다면 그러한 공부는 사라진 것일까?

 

요사이 한국 사회는 인문학을 빼놓고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 인문학이 이런 열풍의 중심에 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인문학의 본질적 의미에서 출발하는 것과 우리의 현실이 인간의 본질적인 삶과 동떨어진 결과로 무엇인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현실의 팍팍함으로 점철된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인문학의 본질이 사람의 삶에 관한 이해를 넓히고 그 지향점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우리시대 인문학 열풍은 분명 의미 있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이제라도 인문학이 그동안 떠나 있었던 사람의 곁으로 다가온 것이어서 반갑기 그지없다.

 

우리에게도 공부가 사람의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으로 존재했던 때가 있었다. 역사 속 선비들의 학문이 바로 그러했으며 가깝게는 서당이라고 하는 곳에서 공부의 시작을 했던 선배들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교육제도가 바뀌고 서양의 물질문명을 가치판단의 기준에서 우선시하면서부터 이러한 공부의 의미가 바뀌었으며 길을 잃고 헤매는 현실을 불러왔다고 보인다.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도 옛날 선배들이 공부했던 방식으로 서당이라는 곳에서 공부한 사람이 있다. 우리시대에 흔치않은 사람이지만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을 펴낸 저자 한재훈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한재훈은 모두가 정규학교에 갈 나이에 서당공부를 시작했다. ‘서당에서 15년 동안 한학을 배우고 다시 대학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50대 중반 사람에게나 가물가물한 기억 속 남아있을 그 서당에서 옛공부를 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당의 커리큘럼, 일과, 공부의 평가 등을 생생하게 보여줌과 아울러 서당공부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방점은 오히려 서당공부가 지향하는 것에 있다고 보인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인문학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진정한 인문학의 길이 서당에서 했던 공부에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현재 우리가 하는 공부가 무엇인가 본질에서 조금은 벗어난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당공부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의 본질적 측면에 대해 주목하며 공자와 이황의 경우를 들어 스승과 제자가 걸어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공부의 본질적 측면에서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한다.

 

사자소학, 추구 등으로 시작한 서당공부가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 경전 공부와 암송으로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붓글씨, 한시 짓기 등 서당공부가 지향하는 점은 위기지학으로 모아져 위인지학으로 나아가는참 공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참 공부는 결국 현재의 인문학이 해결해야 할 것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저자는 서당을 통해 인문학적 전통이 있었음을 확인하며 우리의 현실인식과 해결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불러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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