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향기 사이로

무엇보다

미쁘고

정다운

벗들의 음성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李寅文),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조선 19세기 초반, 종이에 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우거진 소나무 성근 가지 사이로 부는 솔바람,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의 어울림만으로도 넉넉한 자연을 품에 안았다. 마주보는 절벽 사이로 설비치는 절집으로 이곳이 속세를 한참 벗어난 공간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풍경 속 백미는 보일 듯 말 듯 소나무에 가리기도 한 세 사람이다. 차라도 한잔 나눈다면 더 없이 좋은 시간일 것이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사람도 있는 걸 보면 그들은 심각한 이야기보다는 세상사와는 관계없는 이른바 정담을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풍류를 즐겼던 옛 사람들은 여름날 소나무가 우거진 계곡에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는 것을 동경하였다. 옛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엿볼 수 있는 이런 그림을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라 한다.

 

벗들이 소나무 숲에 앉아 한가롭게 여담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는 이인문(李寅文)의 노년작이다. 언제 그렸다는 글씨도 없고 심지어 작가 이름을 적은 관지조차 없지만 이렇듯 칼칼하게 자연의 정수만을 뽑아 그려 낸 화가는 그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미쁘고 정다운 소리는 바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펼치는 사랑하는 벗들의 음성이다. '논어'"익자삼우 益者三友"라 하였다.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박학다식한 사람을 벗하라"는 말이다. 오주석의 설명이다.

 

백아절현(伯牙絶弦) 의 지음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며 벗을 찾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렇게 벗을 찾지만 정작 벗과 마음 나누며 아취를 누리고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사람 사귐의 도리를 생각하지 못하는 세태를 탓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까?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의 벗들의 모습을 지금 우리들 속에서 찾는건 무리일까?

 

이인문(李寅文, 1745~1824년 이후)의 호는 고송유수관도인이며 화원으로 첨사를 지냈다. 김홍도와 동갑내기 절친한 친구이자 그와 함께 당대에 쌍벽을 이룬 화가로 꼽힌다. 산수를 비롯하여 도석인물, 영모 등 다방면에 걸쳐 수준 높은 그림을 그렸다. 특히 고송유수관도인이란 그의 호에 걸맞게 오래된 소나무와 시원한 물줄기를 그린 명품을 많이 남겼다. 이인문의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길이 8미터가 넘는 대작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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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1-13 0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잎차를 마셔본 적이 있어요. . 벗이란 그런 걸까요? 너무 진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입 안에 향기롭게 머무는. .

무진無盡 2015-01-14 21:39   좋아요 0 | URL
자극적이지 않지만 그 만의 독특한 향과 맛이 있기에..
 
은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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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을 벗어나 주체적 삶을 찾아가는 여성

전환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의 충돌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필수 과정과도 같다. 이전 시대의 특성은 아직 남아 시대를 지배하고 있지만 새롭게 등장한 흐름 앞에서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전환기의 특징은 일제 강점기나 해방 전후, 386으로 대표되는 시대 등과 같은 사회적 격변기와도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보여 진다. 이런 사회의 특징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의 혼란이 우선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문학작품에서는 바로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적 갈등이나 삶의 태도 등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사후 묻혀져 있던 작품들이 발굴되어 새롭게 독자들과 만나는 기회가 있어 반갑다. 2013표류도, 파시2014은하와 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미발표 작품이나 발표되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을 새롭게 단장하여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출판사의 노력이 귀하여 여겨진다. 195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담고 있는 은하1960년 대구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은하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이면 사회적으로 상당한 대우를 받았던 시대를 살아가는 여대생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기존 세대의 가치관과 새롭게 대두되는 가치관이 혼재된 시대를 그려내고 있다. ‘기성관념의 소산과 위선에서 벗어나 주체적 가치관을 지닌 현대적 여성의 삶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유학 간 애인으로부터 소식이 끊기고 친한 친구는 탈영한 애인을 하숙집에 숨겨주며 불안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 어느 날 애인의 친구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 애인은 유학하는 동안 만난 여자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황하면서 시골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라는 편지를 받고 시골로 내려간다. 집안을 살리기 위해 재취 자리이지만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결혼하고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계모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한축으로 살아가지만 현실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한다. 그러다 남편과 계모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 난 후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여전히 과거로부터 발목이 잡힌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에게 애인의 결혼소식을 전해준 남자와 새로운 삶의 희망을 꿈꾸게 되면서 막을 내린다.

 

소설의 제목인 은하는 사람의 수와 같이 많은 별이 무수히 흘러간다는 낭만적인 대화체로 통속적인 연애 소설로 여겨진다. 개인의 운명과 시대적 관습에 얽매여 자신의 주체적 삶을 포기해버렸던 은희가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던 위선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 삶을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60년대 시대적 격변기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낭만적 고뇌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적 환경의 변화 등으로부터 시각을 벗어난 작품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치중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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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면- 사람을 읽다, 책을 읽다
설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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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김정희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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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장 이야기
송영애 지음 / 채륜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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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맛과 멋을 찾아서

가마니, 절구, 새우젓 독, 바가지, 멍석, 신선로, 쌀뒤주, 제기, , 떡살, 옹기, 칠기, 고리, 구절판, 조리, 식칼, 가마솥, 도마, 술잔, 돌확, 수저, 채반, 맷돌, 소쿠리와 광주리, 밥상보, 주령구, ··저울, 막사발, 소반, 유기, 밥그릇, 찬장과 찬탁

 

하나 둘 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속에서는 분명하게 살아 우리의 일상과 함께한 물건들이다. 이들 중에는 여전히 우리의 식생활에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이름마저 생소한 것들도 있다. 물론 나이 50을 넘긴 내 또래들에게는 거의 모두를 기억하는 공감대가 있을 것이다.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는 문화가 변하면서 일상적인 식생활 문화도 변했다. 먹는 문화의 변화는 많은 부분에서 동반된 변화를 초래하거나 역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변화가 식생활의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이런 상호 작용에 의해 오늘날 우리들의 식생활 문화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도구들은 이제 장식용품으로 전락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잊혀져가는 식도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송영애의 식기장 이야기. 식기장은 식기를 넣어두는 장으로 그 장 속에 들어갈 만한 도구에서부터 음식을 만들 때 사용되는 갖가지 도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옛 어머니들이 식기를 모아 보관했던 식기장처럼 이 책에서의 식기장은 바로 그런 식기들의 이야기를 모아 둔 곳으로써 의믿 함께하고 있어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식도구가 단순한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도구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이다. 떡살은 남한테 빌려주지 않는 집안의 권력이었다. 특히나 우리나라 식도구들은 유난히 시집살이와 관련이 많다. 며느리들은 친정과의 인연을 끊고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라는 의미에서 칼과 도마를 받았다. 시집온 이후에는 친정아버지에게서 선물 받은 돌확에 서러움도 같이 갈았다.”

 

저자가 펼쳐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김없이 도착하는 곳이 있다. 바로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밥상이다. 그 밥상에 밥을 비롯하여 음식을 올리던 사람들의 삶과 마음까지 고스란이 담았다.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남은 흔적인 도구들에서 건져 올린 사람 사는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지역과 남녀를 뛰어넘어 결국은 옜 기억 속 어머니의 그 밥상으로 불러 모은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종가(宗家)전시가 열렸다. 웬일인지 운조루 쌀뒤주는 보이지 않았다. ‘쌀뒤주는 빌려주는 물건이 아니다, 전시하는 석 달 동안 쌀뒤주를 밖으로 내놓을 수도 없다, 운조루 쌀뒤주는 예전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집안 종부의 의지 때문이었다.”

 

음식을 대하는 옛 사람의 마음을 이보다 더 간절하게 담은 말이 있을까 싶다. 쌀뒤주에 담은 마음이 곧 밥과 사람의 관계,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마음이 곧 우리들이 보고 자랐던 음식문화였고 우리의 삶을 지켜준 정신이었다고 본다.

 

가만히 있어도 멋이 있고 바라만 봐도 낭만이 있고 만지기만 해도 그리움이 있는 서른둘의 식도구들을 찾아서 담아온 저자의 노고가 넉넉하고 따스한 이야기와 사진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 수고로움에 의해 우리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멋과 맛의 본래 자리를 찾아가는 시간을 갖기에 충분하다.

 

생활의 변화는 그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환경과 조건의 변화와 직결된다. 이제는 사라져 가는 우리의 음식문화 속에 자리 잡았던 식도구들 역시 새로운 운명 속에서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조상들의 삶의 정신이 담겨 있는 그 뜻만이라도 이어갈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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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한 선들을

관통하는

고매한 기상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 달마도(達磨圖)

조선 17세기 중반,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윽한 눈매가 심상치 않다. 억센 매부리코, 풍성한 눈썹과 콧수염, 꽉 다문 입, 턱선 따라 억세게 뻗쳐 나간 구레나룻까지 옅은 색으로 얼굴을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매에서 전해지는 묘한 느낌은 진한 먹색으로 굵고 빠른 붓놀림으로 그려진 옷에 의해 형성된 몸의 이미지 전체를 규정하기에 충분하다. 옷을 그린 외곽의 강한 선들에 의해 오히려 얼굴에 주목하게 되며 표정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온전히 받아 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그림은 연담 김명국이 그린 달마도다. 조선 인조 때인 1636년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1636년과 16432차례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에서 그렸던 수많은 달마도 중 하나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구입하여 국내로 들어오게 된 그림이라고 한다.

 

달마는 인도스님이다. 염화미소의 가섭 이래 제28대 조사(祖師). 중국으로 건너와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최초로 펼친 중국 선()의 제1대 조사가 되었다. 그는 9년 동안이나 벽을 마주하고 수련했다고 전해진다.

 

달마도를 보면 달마를 알 수 있다. 거침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본질이 아닌, 바탕이 아닌 온갖 부차적인 껍데기들을 모조리 떨구어 낸 순수 형상이다.” 그렇기에 극도로 단순화한 달마의 모습에서 달마가 지향했던 선()의 한 면모를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 또는 鳴國(1600~1662년 이후)은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도화서 화원. 술에 취하여 붓을 든다고 해서 취옹(醉翁)이란 호도 있다. 연담은 선종화禪宗畵 특히 사진에서 보는 달마도達磨圖를 잘 그렸다. 조선 후기의 미술평론가인 남태응은 그의 청죽화사(聽竹畵史)’에서 "김명국 앞에도 없고 김명국 뒤에도 없는 오직 김명국 한 사람이 있을 따름이다"라고 평하였다. 작품으로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 심산행려도(深山行旅圖), 노엽달마도(蘆葉達磨圖), 기려도(騎驢圖), 관폭도(觀瀑圖) 등이 있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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