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권함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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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슬퍼할 권리를 찾자

연암 박지원의 글 중 사장(士章) 애사(哀辭)에는 나는 매양 모르겠네. 소리란 똑같이 입에서 나오는데, 즐거우면 어째서 웃음이 되고, 슬프면 어째서 울음이 되는지. 어쩌면 웃고 우는 이 두 가지는 억지로는 되는 게 아니다. 감정이 극에 달해야만 우러나는 게 아닐지. 나는 모르겠네. 이른바 정이란 어떤 모양이건대 생각만 하면 내 코끝을 시리게 하는지. 그래도 모르겠네. 눈물이란 무슨 물이건대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지. 아아, 남이 가르쳐주어야만 울 수 있다면 나는 으레 부끄럼에 겨워 소리도 못 내겠지. 아하, 이제야 알았다. 이른바 그렁그렁 이 눈물이란 배워서 만들 수 없다는 걸.”라는 대목이 있다.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 물이 눈물인데 그 눈물이 나올 수 있는 근원에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슬픔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눈물은 그 슬픔을 치유하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슬픔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그와 동반되는 울음을 울 수도 없는 현실을 강요하고 있다. 박지원은 눈물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눈물을 배워서라도 슬픔을 치유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울음을 울 수도 없는 현실을 강요하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슬픔을 권하는 사람이 있다. 2013충청도의 힘으로 주목 받았던 남덕현이 그 사람이다. 그는 나는 슬플 때 가장 착하고, 슬플 때 가장 명징하며, 슬플 때 가장 전복적이다.”라며 슬픔이 가지는 본래적 의미를 인문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도처에 죽음, 가난, 차별 등으로부터 서러움을 안고 살아간다. 특히, 2014년은 세월호 사건 이후 대다수 국민들은 슬픔을 전재로 한 분노를 다스릴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요받은 위로와 희망에 슬퍼할 기회조차 빼앗겨 정당한 슬픔을 치유해야할 권리조차 상실한 것이다.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어설픈 희망과 기쁨보다는 차라리 절절한 슬픔과 절망이 고단한 삶을 치유할 수 있다며 남덕현은 그 슬퍼할 권리를 되찾자고 억설한다.

 

남덕현은 슬픔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하여, 묶인 개, 늙은 어미와 이웃 노인들, 스치는 바람뿐 아니라 수시로 자기 자신을 직시하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 질문 속에는 해학의 미학이 함께하기에 슬프지만 웃음이 동반한다. 남덕현은 이렇게 일상적인 자신의 주변 뿐 아니라 죽어간 세월호 아이들과 굴뚝 위의 노동자들을 보면서 그 슬픔의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다. 그냥 슬퍼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슬픔이 스며들어 있는 현장에 당당하게 서 있다. 억눌린 슬픔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기쁨과 희망을 권해도 환영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슬픔을 권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다. 하지만 그 역설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곧 나는 슬플 때 가장 착하고, 슬플 때 가장 명징하며, 슬플 때 가장 전복적이다.”라는 남덕현의 슬픔에 대한 성찰이 사람을 향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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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2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물을 마셔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가끔 리뷰나 페이퍼 등 글을 쓸 때를 되돌아보면, 슬플 때 마음을 울리는 글이 더욱 잘 써졌던 것 같습니다. 글이란 정직해야 하는 거니, 슬플 때 사람은 가장 정직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 하게 되나 봅니다.
얼마 전 읽었던 「한글자」에서는 글에 대하여 이렇게 써 있더군요. ˝글을 쓴다는 건. . 바다를 바다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는 것˝ 이라구요. 슬플 때 가장 정직해진다면, 슬플 때 쓰는 글은 용기를 동반하기도 하고, 그래서 가장 전복적일 수도 있겠네요^^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엮음 / 채륜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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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0여 년 전, 우리의 모습

우리음악에 정악과 민속악이라는 분야가 있다. 정악은 제례악을 중심으로 한 궁중음악을 민속악은 민간에서 생겨나 민중 생활의 일부로서 전해 내려오는 음악을 말한다. 민속악이라고 하면 민요·농악·판소리·선소리·잡가·풍물놀이·산조·시나위 등 민중이 창작하고 즐기던 음악을 말한다. 이 중 산조는 민속악에 속하는 기악 독주곡이다. 이 산조라는 부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길게 잡아야 18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겨우 100여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국악의 대표적인 갈래로 인식되어졌다.

 

이렇듯 불과 100여년 사이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하여, 조선이라고 하면 머나먼 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모습은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현대 사회 이전을 근대사회라 한다면 그 근대사회의 직접적인 영향일 것이다. 우리에게 근대는 어느 시기로 구분되어야 할까? 보통은 개화기로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근대라고 시대구분을 한다.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는 현대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근대풍경에 주목하여 당시 변혁의 시기를 거치면서 찾아온 사회적 변화, 그리고 그 때문에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 시대를 대표하는 풍경 열 가지를 찾아 우리 삶 속에 어떤 과정을 통해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저자들이 주목했던 욕망이라는 늪에 빠진 사람들’, ‘어른와 아이의 놀이 문화’, ‘만들어진 전통, 현대 한국인의 풍속을 주제로 선별한 열 가지 풍경은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근대의 미적 기준과 성병에 주목하여 망의 늪에 빠진 근대의 시대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통해 근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가 가진 의미를 살펴보고 서양식 장난감의 등장과 함께 일어났던 여러 일화를 다루었으며, 크리스마스는 물론, 어린이날과 꽃놀이, 현대의 결혼 문화가 어떻게 조선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이라는 전통사회가 밀려드는 외국의 사상과 기술, 문화에 급격한 변화를 강요받았던 시기를 시작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일제강점기를 보내면서 전통의 것에서 벗어나 현대 생활양식을 이루게 된 문화의 변화를 살피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기본적 시각은 근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통생활방식과 변화된 생활방식을 어떻게 수용하고 향유하는지에 있어 보인다. 이 시기를 주름잡았던 대표적인 풍경 속에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의 연관성을 포착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현대 한국인의 풍속은 신문화와 전통문화가 만나 탄생한 것으로 이것이 조선 사회에 정착하여 현대 한국 사회에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전통이 된 것이다. “현대문화가 전통과의 단절이 아니라 우리의 옛 전통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에서 근대의 풍경을 살피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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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신령스러움이니,

호랑이의

산어른다운

위세로다"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조선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삼성미술관 리움

 

고금을 막론하여 우리나라 최고의 사실주의 즉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화가 바로 단원이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이다. 풍속도로 유명한 김홍도의 지극히 섬세한 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긴 몸에 짧은 다리, 소담스럽게 큼직한 발과 당차 보이는 작은 귀, 넓고 선명한 아름다운 줄무늬와 천하를 휘두를 듯 기개 넘치는 꼬리, 세계에서 가장 크고 씩씩하다는 조선 범이다.”

 

예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김홍도는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실제 호랑이를 보고자 했고 막상 호랑이와 직면하였을 때 무서움에 꼼짝하지 못하면서도 반짝이는 눈으로 호랑이를 바라보던 김홍도의 눈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정신이 오롯이 담겨진 그림이다.

 

박지원의 소설 호질(虎叱)에서 썩어빠진 선비를 꾸짖고 호통치던 꼭 그 호랑이와 같다. 하지만 무서움을 넘어선 위엄이 자리 잡고 있다. 산 중의 어른이라고 하는 호랑이의 위엄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대하는 마음이 반영된 때문이리라.

 

오주석은 그의 다른 저서 한국의 미 특강에서 현재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국보급 작품이며 즉각 국보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첫째, 호랑이를 화폭에 가득 차게 하는 균형 잡힌 구성과 여백으로 호랑이의 위엄이 절로 넘친다는 것. 둘째, 소재로 삼은 조선 호랑이 자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것. 셋째, 그림 자체의 초사실성에 있다. 넷째, 호랑이의 생태가 그림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한국미에는 '무계획적' 또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사실성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런 사실성이 한국미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최석조는 주장한다. 이에 더하여 송하맹호도의 호랑이와 같은 이런 걸작 미술품들이 박물관에만 걸려 있을 게 아니라 우리 피부에 살갑게 와 닿는 '촉촉한 생필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우리 국가대표팀 유니폼에 붙는 마크를 송하맹호도의 호랑이를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이 그림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 그림이 단원과 단원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주석은 이런 이야기는 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세에 누군가 그림 값을 높이기 위해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 공감한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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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01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홍도가 이런 섬세한 그림도 그렸군요.
풍속도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옷의 주름을 표현하는 깔끔한 선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윤곽을 이루는 가장자리의 털은(회색으로 표현된 부분이 가장 맘에 듭니다^^)윤두서의 `자화상`이 연상될 정도로 사실적이네요. 눈썹에 난 털까지도.
직접 보지 않고는 그려낼 수 없었겠죠? 사진으로 찍었어도 이런 장면이 나올까 싶네요.
김홍도의 또 다른 매력을 보고 갑니다.

무진無盡 2015-02-02 07:28   좋아요 0 | URL
김홍도의 풍속도 말고도 다른 그림 보면 마음에 드는 그림 많아요^^
 
조심 - 조심하라, 마음을 놓친 허깨비 인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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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주인은?

마음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사회 정치적인 조건에 따라 늘 변하는 것이 마음이다. 특히, 자의든 타의든 관여하고 있는 인간관계에 따라 왔다 갔다하는 것이 사람이 마음이다.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안정시킬 수 있을까?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선인들은 마음공부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홀로 있을 때는 바른 몸가짐으로부터 사회적 존재로써는 정치와 사람 사귐에서 지켜야할 도리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조심하며 마음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정민 선생의 조심(操心)’ 은 바로 선인들의 마음 붙드는 법으로서의 조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것이 아닌 마음을 잘 붙들어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조심이라고 한다.

 

몸가짐과 마음공부, 시비의 가늠, 세정과 속태, 거울과 등불 등 네 가지 주제로 묶인 백 편의 글이다.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원칙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묵직한 저울추가 되는 말씀들을 네 글자의 행간에 오롯이 담았다. 옛글 속에서 찾아낸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내용의 사저성어를 골라 이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

 

“‘조심操心은 바깥을 잘 살피라는 의미로 쓰지만, 원래 마음을 붙든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조심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 때가 없다. 우리는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원칙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재앙을 경험하고 있다. 물질의 삶은 진보를 거듭했지만 내면의 삶은 더 황폐해졌다. 김매지 않은 마음밭에 쑥대만 무성하다.”

 

지유조심에서 소년청우까지 백 개의 묵직한 저울추를 통해 정민 선생의 해설은 책 속의 글귀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사회, 정치적 상황에 의해 늘 간섭받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기에 그런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모든 제목이 사자성어로, 좁은 행간 안에 깊은 뜻을 담아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전한다. ‘소음의 언어보다 안으로 고이는 말씀이 필요한 시대에 필요한 말씀을 담았다는 이야기다.

 

팽팽 돌아가는 세상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덩달아 일희일비하다 보면 내 안에 나는 없고 세상으로 꽉 차버린다. 나를 잃으면 허우대만 멀쩡한 쭉정이 삶이다. 조심하라, 마음을 놓친 허깨비 인생

 

내 인생이 허깨비 인생이 아니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짧은 글귀에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짜여진 이 책은 그 허깨비 인생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법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자신의 현주소를 살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받아 안을 수 있는지 없는 지는 결국 자신에게 달렸다. 가까이 두고 생각날때마다 한구절씩 펼쳐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다 좋다. 지극히 옳은 말이기에 토를 달 꺼리도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사족하나 달자. 마음 붙잡기가 왜 개인의 노력, 실천의 여부로만 집중되는 것일까? 그 개인이 속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쏙 빼버리고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시작한다면 그 시작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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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1-31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제도적인 한계가 개인 탓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홍세화님의 「생각의 좌표」에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가`라는 구절이 나오는 데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의해 주입된 생각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며 살아간다더군요. 생각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거죠.
한때 다른 카페에서 `내삶의 주인`이란 닉네임을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요, 삶이든 마음이든 생각이든 주인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마음에 대해 생각하다 잠시 북플에 들렀는데, 눈에 들어오는 제목에 끌려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무진無盡 2015-01-31 23:52   좋아요 1 | URL
늘 깨어있는 삶이라면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비종 2015-01-3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가 필요한 동사로서의 삶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매순간 갈등을 많이 한답니다.

무진無盡 2015-01-31 23:59   좋아요 0 | URL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다보니 갈등하는 순간이 줄어들더군요. 조건에 끄달리지 않은 자족의 삶이 가져온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나비종 2015-02-0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삶을 살고 싶기도 하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꾸고 싶기도 해서요.
욕심이 많은 걸까요?

무진無盡 2015-02-01 00:15   좋아요 0 | URL
욕심과는 사뭇다른 느낌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에는 겉과 속의 조화가 기본이겠지만 때론ᆢ 이미 나이들었다는 반증일수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이기에 고요합니다

나비종 2015-02-01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다처럼 더 깊고 넓어져야겠습니다. 많은 걸 품고 받아들여도 고요할 수 있도록.
 
김광석 포에버
구자형 지음 / 박하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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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여전히, 그가 이토록 그리운 걸까

애써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늘 곁에 머무는 사람처럼 언제라도 부르면 데답할 것 같이 너무도 가깝게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몇 십 가지라도 나열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기에 그냥...이라 이름 붙여본다.

 

김광석을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으며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에 반응하는 방법은 달라도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 틈에서 살았기에 자연스럽게 젖어드는 공감이 있다. 하여 그가 불렀던 모든 노래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보았고 그렇게 그의 노래 속에서 살았다.

 

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니던 시절 유행했던 노래모음집이 있었다. 서울대 노래패가 만들었던 메아리가 그것이다. 노래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 아픔의 해결을 모색하는 노래운동의 시작과 함께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던 때였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노래책이 아니었기에 복사본을 다시 복사하여 손에 들고 다녔던 책이다.

 

그 시대를 김광석은 두발로 걸으며 목소리에 담아 노래했다. 한창 절정의 노래를 보여주며 관객과 호응하던 중 세상을 등진 아쉬움이 크지만 그것만이 그를 기억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생전 그가 불렀던 노래 속에 담긴 그의 진정성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위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80년대 중반이후 90년대까지의 한국 민중가요와 포크음악의 중심에 서 있던 김광석은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방송작가이자 음악평론가 구자형의 김광석 유고 19주기 기념작 김광석 포에버는 그렇게 김광석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기억하는 김광석을 되살리고 있다. 박기영, 안치환, 김창기, 김목경, 이상호, 김숙이, 백창우, 이동은, 이민영, 양병집, 김현성, 김보성, 김제섭, 임종진, 안규철, 박혜정, 임창덕, 류근... 음악동료, 작곡가, 선 후배, 노래비의 조각가 김광석 위패가 안치된 청광사 주지 광조 스님까지 김광석과 직 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김광석의 음악과 삶 속 기억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백창우에 의해 전해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199616일 새벽 4,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김광석을 그들은 기억하는 김광석에서 매번 새롭게 살아나는 김광석을 본다. 추모음악회, 뮤지컬, 방송프로그램에 등장을 하고, 온갖 영화와 드라마 속 노래 부르기 등 기억하는 방식을 각기 다르지만 그 다른 방식을 통해 노래에 담고자 했던 김광석의 마음이 전해지고 있다. 김광석이란 가객을 끝까지 오롯이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게 만든 시대를, 세상을, 그리고 자신을 자책하며 부르는 진혼가다.

 

유난히 힘들었던 2014, 슬픔에 잠긴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노래하나 가진 것 없어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김광석, 그의 노래를 듣고 싶은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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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1-30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 ˝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오는 날입니다. . 오랜만에 `서른즈음에`를 듣습니다. .참 아리게 맑은 노래네요. .

무진無盡 2015-01-30 20:54   좋아요 0 | URL
녜..그냥이요

[그장소] 2015-01-31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치지않은 편지.혼자남은 밤.타는 목마름으로.신청곡..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