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다'
모든 꽃은 외침이다. 나를 봐 달라는 몸부림이다.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향기까지도 다 나를 주목해 달라는 아우성인게다. 하여, 나비와 벌, 바람 등 나를 봐주는 것들의 수고로움에 의지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한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고도의 사고체계를 가졌다는 사람들은 이 풀과 나무의 그것을 모방하여 자신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를 쓴 치말한 계획만으로는 성공하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 가슴을 울리지 못함이 그것이다.


이 드러냄은 신중 해야한다. 애써 앞서지도 미루지도 않고 필요한 때 적절하게 어색할지라도 진심을 담아 스며들듯 그렇게ᆢ. 과대포장해서도 안되지만 더욱 촉소해서도 안된다.


말, 표정, 기호, 사진ᆢ. 어느 것 하나 이것을 벗어난 것은 없다. 비록 때를 못맞춰 설익어 떨어지거나 어설퍼 전하고자하는 바를 다 전하지 못해 당황스러울지라도 상대에게 드러내야 한다. 드러내면 달라진다. 달라지는 것은 상대도 나도 마찬가지다.


그대와 나 사이 시간에 기대어 온 수고로움이 모두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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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8-11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이의 표현이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건 아마도 그 자신의 가슴이 울리지 않아서일 겁니다. 악기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건 그 진동이 전해져서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가득 차면 흘러넘치듯이 마음도 그렇겠지요.
드러내면 달라진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할 때가 많더라구요.
하늘이 담긴 사진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닭의장풀의 잎을 닮았네요. 애써 드러냈더니 시커먼 실루엣만 찍혀서 저 식물은 서운해하지 않을까요?ㅎㅎ

2015-08-11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5-08-11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그럴 수도 있겠네요. 동양화의 백미라는 `여백의 미`처럼요.
무진님의 공간에 언젠가 올려놓으시면 글과 함께 겸사겸사 보러오겠습니다^^ (음. . 무소유를 추구하는 거룩한 인간이라며 자체 포장하는 건 비밀이옵니다ㅋ^^;)
 

'말은 무게가 있어야 한다'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우선 말을 하지 않으면 편하다. 몸도 편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렇다고 말을 전혀 하지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필요한 말,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한다는 말이다.


밖으로 나온 말은 힘을 가진다. 상대와 소통을 위한 내면의 울림을 전달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힘이다. 이 말의 힘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상대와의 시간의 겹을 쌓아가는 수고로움이 동반되었을때 발휘된다. 그러니 말은 당연히 무게를 지닌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아침과 저녁에 달라지면 말의 무게는 없다.


무게와 힘이 없는 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애써 말을 아낀다는 것은 말에 무게를 얹어 힘을 갖게 만드는 일이다. 무게와 힘이 있는 말은 지극히 아름답고 깊은 울림을 전한다.


그대의 한마디 말이 내 가슴에 쌓여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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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8-11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복면가왕>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는 오직 목소리만으로 노래부르는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말이나 글에도 색깔이 있다면 내가 쓰는 글은 무슨 색일까 하구요. 글만으로 서재 주인을 판단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나는 어떤 이미지로 그려질까 하는.
TV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은 일부 출연자를 가리켜 `잘생긴 목소리`라 합니다.
음. . 그렇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무게와 힘이 있는 말, 꾸밈이 없는 진실된 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말들은 잘생긴 말에 해당하겠군요^^

무진無盡 2015-08-11 20:47   좋아요 0 | URL
단어하나 짧은 문장에도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극도로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는가 봅니다. 착한 목소리는 어떨까요.~^^
 

'마음의 속도'
정해진 속도는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만 있을 뿐이다. 한자리에 이웃한 꽃도 피고 진다는 순리는 어기지 못하나 제 각기 조건과 환경에 따라 더디가기도 하고 서두르기도한다.


하물며, 꽃보다 더 많은 온갖 조건에 휘둘려야 하는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리. 꽃이야 피고 진다는 방향이라도 있지만 사람 마음은 이 방향조차 오리무중이다.


하여, 마음의 속도를 조절한다는게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일인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니, 그대여 애써 더디가지도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말고 마음이 움직이는 그 속도를 따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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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8-10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문동과 같은 류의 꽃을 볼 때면, 저 많은 꽃들이 동시에 쫙 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똑같은 가지를 공유하고 있어도, 같은 햇살을 받았어도, 가지고 있는 바탕과 서 있는 위치에 따라 피어나는 속도가 다른 것이겠죠?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표류`라서 `스스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다 원치 않는 항구에 닿을 수도 있다`구요. 인생이든 마음이든 조절을 한다는 건 말씀하신대로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가끔 생각하죠.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도를 타 듯 자연스럽게 말이죠. 결국 삶이라는 것도 `내 마음의 주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일까요?

무진無盡 2015-08-10 20:32   좋아요 0 | URL
마음대로 라고 써놓고는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 왔다갔다 그야말로 지맘대로잖아요. 그런데 그마져도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내 마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더라구요.

나비종 2015-08-10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게 가장 기쁜 선물을 하는 방법은 그를 잘 관찰하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건네주는 거라 하더군요. 그럴 때면 상대방이 내 행동의 주인인 듯 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원하는 대상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마음의 절반은 내가 주인인 걸로ㅎㅎ
 

염染,
그대를 통과한 빛으로 나를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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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8-08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한 살의 무늬를 만지면, 스러질 듯이,
생시인지, 꿈인지, 하네..

무진無盡 2015-08-08 00:50   좋아요 0 | URL
생시를 지향합니다

나비종 2015-08-10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쪽으로 염색해 본 적이 있습니다. 헝겊을 쪽물에 담그는데, 너무 뜨거워도 차가워도 안된다더군요.
`그대를 통과한 빛`에 온도가 있다면,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염색할 때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온도겠지요? 사람을 기분좋고 편안하게 하는 온도요.
메꽃처럼 생긴 꽃의 빛깔이 참 곱네요. `설렘`에 색깔이 있다면 이런 빛일까요?^^

무진無盡 2015-08-10 22:05   좋아요 0 | URL
투명에 가깝지만 맑은 색이 주는 느낌이 좋아요. 나팔꽃입니다. 온기ᆢ가 느껴지는 색ᆢ그것이 사람을 가슴에 담은 마음의 온도를 나타내지 않을까요?

나비종 2015-08-10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맑음`.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색에 적용해도 느낌이 좋네요. 붉은 색, 푸른 색처럼 특정 방향을 가리키지도 않고, 무슨 색에든 어우러진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아침에 찍으셨나 봅니다. 나팔꽃의 영단어를 알았을 때,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편지지에 있던 마크가 그냥 그려진 것이 아니구나 했죠. 오후에 파마 머리처럼 쪼그라든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었구요. 아침의 영광. 참 기막히게 적절한 이름입니다.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담겨있어도 살아가는 게 그리 외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진無盡 2015-08-10 23:36   좋아요 1 | URL
그렇게ᆢ상대의 빛으로 나를 동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에ᆢ
 
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믿음을 권하는 보관 가계

깊은 사연이 있으나 이제는 보내야 하는 물건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용도 폐기될 물건이지만 그렇게 처분하기에는 마음에 무게를 감당하기가 버거운 것일 때는 난감할지도 모른다이런 것을 해결해 주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오먀마 준코의 하루 100엔 보관가계가 바로 그런 일을 해 주는 곳이다이른바 하루 100엔으로 물건을 맡아주는 보관가게가 그곳이다여기는 누구든 어떤 물건이든 하루 100엔에 기한을 정해 물건을 맡기고 찾아가면 된다찾아가지 않으면 주인이 알아서 처분한다는 조건에 동의해야 가능한 거래이니까주인은 손님이 가져온 물건을 소중히 맡아 보관하고 손님이 다시 찾아오면 내어준다어떤 물건이든 상관없다그 물건을 맡김으로 위안 받는다.

 

보관가계에는 주인과 사장이라 불리는 고양이 그리고 진열장과 출입문 위 휘장이 전부다이들이 보관가계를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엮었다보관가계가 만들어지기 까지 과정을 설명한 후 그 가계와 온 특별한 손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아버지와 엄마의 이혼 서류사람을 다치게 한 권총아버지에게 졸업 선물로 받은 자전거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오르골도서관에서 대출 받은 책 등 속사정을 간직한 물건들을 맡기는 손님들은 보관가게와의 인연을 계기로 자신의 진심을 다시금 확인한다.

 

눈먼 주인과 고양이 사장이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런 곳이 있다면 나는 이 보관가게에 무엇을 맡길 수 있을까그 물건을 맡겨 위안 받을 무엇이 있기는 한 걸까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 얽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위고하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는 사람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사연 한 두 개 쯤은 안고 살아간다.그런 사연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수 있다면 그로부터 위안과 치유는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이 보관가계는 물건을 맡아주는 것으로 그 일의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준다.

 

무엇으로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치유의 길로 들어서는데 단초를 만들어 주는 곳이라면 말이다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물건을 특별히 안심할 수 있는 곳에 맡긴다는 것은 스스로 위안 삼고자하는 출발이다그 출발선에 보관가계가 있다이 보관가계의 설정은 눈먼 장인이 주인이라는 것과 주인 이외 다른 시점으로 관찰한다는 점이다주인이 눈먼 사람을 설정한 것은 손님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비밀스러운 물건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하는 장치다그리고 주인이나 손님의 시점이 아니라 그 공간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다른 사물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보다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장치로 보인다.

 

"이곳은 모두가 돌아올 장소입니다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장소입니다."

 

하여이 소설은 성공적으로 보관가계의 임무를 완성해간다이는 한번 찾았던 손님이 식나이 훌쩍 지난 훗날 다시 찾아와 살아오며 가슴에 쌓아 두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자 한다는 것이다흐른 세월만큼이나 변한 손님들이 이제는 돌아와 자신을 찾아갈 의지처로 삼는다는 것에서 확인한다.

 

이러 공간이 있다면 난 무엇을 맡길까아니 맡길 수나 있을까맡긴다는 것이 스스로 치유의 시작을 한다는 것이게 쉽지 않을 결정이 될 것이다물건은 맡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은 가슴 뭉쿨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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