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 - 옛 책 속을 거닐며 미래를 여행하다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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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책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는 즐거움
역사 속 인물을 찾아 탐구하는 여행길에 서면 선조들의 놀라운 업적이 늘 반갑다. 열악한사회적 환경과 기술문명의 미흡에도 불구하고 어쩜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심마저 일어난다. 특히 조선시대 성리학이 학문의 주류로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고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비교적 학문의 접근에 자유스러웠던 양반들의 무시와 때론 천대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학문에 대한 열정은 더욱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사회 정치적 분위기에 묻혀 점점 잊혀져가고 있음을 알게 될 때마다 마음 한구석 무거움이 있다. 선조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유산을 현대 사람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바라봐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때 이종호 교수의 [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는 의미심장한 출판물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2003년 우리 역사에서 과학기술의 업적과 활동이 뛰어난 인물을 기리기 위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업적을 밝혀 놓은 책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뽑은 8가지 저작을 중심으로 또 다른 명저를 추가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가 뽑은 저작으로는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며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히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열하일기), 세계적인 천문학의 과학적 보고인 이순지의 칠정산(의산문답), 세계 최초 온실에 대한 기록과 서민들의 식생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농작물의 재배 방법과 음식조리법까지 담고 있는 전순의의 산가요록(음식디미방 ․ 규합총서), 세계 3대 중국 시행기라 평가받고 있으며 조선 선비의 자긍심을 보인 최부의 표해록(문순득의 표해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허준의 동의보감(향약집성방 ․ 의방유취), 우리나라 해양생물학의 신기원을 연 정약전의 자산어보(우해이어보), 우리나라 최초 문화백가사전인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시대 최고, 최대의 목판본 전국 지도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등 8가지의 뛰어난 업적을 담은 저작물들이다.

괄호 안의 제목들은 이 책에서 또 다른 명저로 함께 설명되어진 비슷한 성격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저작물들이다. 주요 8가지 저작물에 결코 뒤지지 않을 가치를 지닌 저작물들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책(의산문답, 우해이어보, 오주연문장전산고 등)들을 중심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이 책들 간의 상호관계성까지 살피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저자인 이규경은 정조 때 사람 이덕무의 손자로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지구전도의 최한기 등 조선후기 실학자들과의 교류를 살펴봄으로써 당시 시대정신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재목의 저작들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아 이런 저작물과 사람이 있었나 싶은 것들도 있다. 저자는 각각의 저작물에 대해 저작물이 담고 있는 구체적 내용을 본문까지 참고해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당시 어떤 배경으로 저작물이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시대상황과 국제적인 가치까지 살피며 나아가 오늘날에도 충분한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 세계 권력의 중심이 서양으로 재편되며 동양의 뛰어난 문화유산이 상대적으로 저급한 문화와 과학기술로 평가되어 온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점차 동양문화의 우수성이 밝혀지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살피듯 세계 어느 나라 누구보다 뛰어난 문화유산을 가진 민족이지만 그를 대하는 태도가 그것들이 가진 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요즘 들어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유산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그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산이 가지는 가치와 의의를 현대의 눈으로 다시보기 시작했다. 저자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 싶어 심심한 응원이나마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옛 책속에서 찾아낸 선조들의 열정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의 미래를 희망으로 가꿔갈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자 : 284페이지 정양전은 1814년 → 정약전은 18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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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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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닮고, 산에 기대어 살다간 고산자 김정호
방외지사(方外之士)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테두리 안이나 제도권을 벗어나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종종 자신의 삶에서 숙명처럼 여기며 그 일에 매달려 평생토록 몸과 마을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든 평생 꿈꾸어온 것을 이룬 한마디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게 한 분야에서 이치를 통달하게 되면 자신이 매진해온 그 분야 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순리를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살아온 어느 시대에나 그런 사람들은 있었다. 누가 알아주던 그렇지 않던지 간에 묵묵히 어려움을 극복하며 뜻한 바를 이뤄간 사람들 말이다. 학창시절 역사를 배우며 접했던 사람들 중 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 중 지도에 미친 김정호라는 사람이 있다. 출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기록을 발견하기 어려운 사람이면서도 대동여지도라는 걸출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사람이다. 진정한 방외지사가 아닐까 싶다. 숙명처럼 떨치지 못한 지도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삶을 오롯이 복원하여 오늘에 되살려 내는 작가의 작품을 만난다. [고산자]라는 박범신의 작품이다.

[고산자]는 저가 박범신이 [통찰력이 뛰어난 인문학자였고, 조국을 깊이 사랑했던 산인(山人)이었으며, 집념이 강한 예술가였다]라고 평가한 김정호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홍경례의 난 등 사회적으로 어지러웠던 조선말기 아버지의 실종을 밝혀 달라고 산벗나무 꽃피던 어느 봄날 관아의 높다란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매달리던 한 소년이 고향을 등지고 전국을 떠돌며 삶을 이어가 결국에 자신의 소망을 이뤘지만 그게 다 부질없음을 알고 사랑하는 피붙인 딸과 조용히 사라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어버지의 죽음, 부패한 권력, 외세의 침입, 천주교라는 낯선 사상의 도입, 실사구시 학문의 대두, 벗의 사귐과 그들의 죽음을 선고하는 만장 등 이는 고산자 김정호가 살았던 시대, 그가 직면한 현실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매개를 이용하여 발 딛고 살아가는 산천의 주인이 백성임을 알고 백성들의 삶의 시작과 끝이 되는 산천을 온전히 담아내 백성들 품으로 돌려주고자 했던 김정호의 마음을 읽어간다. 한 사람의 삶을 외롭고(孤), 높으며(高), 옛산을 담고자 하는 마음(古)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가 또라젓, 화각, 금량관, 고산자 그리고 대동여지전도로 표현한 만장을 든 김정호을 통해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뭘까? [바람이...... 가는 길을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길을 내 몸 안에 지도로 세겨넣을까 하이. 오랜...... 옛산이 되고 나면 그 길이 보일걸세. 허헛, 내 처음부터 그리고 싶었던 지도가 사실 그것이었네](본문 347 페이지) 아마도 이 구절에 담고 싶었을 한 방외지사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등장하는 또 한사람인 해강 최한기, 양반신분이면서 중인 김정호와 벗이고, 실사구시 학문의 뜻을 이루고자 했던 시대정신을 담은 지식인이다. 대단한 장서가이며 앞선 시대를 살았던 간서치 이덕무와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책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의 교류엔 무엇이 우선인지 알게하는 사람들이다. 의외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조선시대 지금처럼 과학기기가 발전한 것도 아닌 그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실측지도를 만들 수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한 생각은 대동여지도 뿐 아니라 과학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세종 때의 그 많은 과학기기들 역시 마찬가지의 의문을 가지게 한다. 천문관측도구, 시계, 측우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업적들을 오늘의 과학문명의 잣대로 살펴봐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의 업적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할 것이다.

고산자를 읽는 동안 탄탄한 문장을 쫒아가는 마음이 성급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느긋한 마음도 아니다. 먹먹해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려 한동안 손을 놓게 만들지만 금세 다시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바람과 시간이 가는 길을 내 몸 안에 그리고 싶었을 고산자를 생각하며 눈길을 먼 산으로 돌려본다. 
한 작가의 노력의 결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여실히 알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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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입학식 -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키워드 한국문화 4
김문식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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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속에 담은 뜻 - 제왕으로 가는 길, 입학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한다. 100년 앞을 내다보고 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말이리라. 하지만 오늘날 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은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목소리를 높인지도 오래되었다. 오늘 당장의 결과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아쉽다.

나는 우리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유, 무형의 문화유산과 더불어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기록물 역시 늘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역사의 중심엔 권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권력을 둘러싼 다툼과 그에 얽힌 이야기 중 단연코 왕권과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절대왕권의 나라에서 왕은 어떻게 만들어 지며 왕에서 왕으로 이어지는 권력은 어떻게 준비되는지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제왕학, 하늘을 대신해서 백성의 안위를 살피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가는 왕이 되기 위한 출발 바로 그것이다.

[왕세자의 입학식]은 그런 왕위의 계승자가 왕으로써 갖춰야 할 소양을 쌓는 출발점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 국립교육기관인 성균관에 왕세자들이 입학하는 입학례를 중심으로 제왕교육이 이뤄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왕세자입학도첩(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을 통해 상세하게 살피고 있다.

우선 왕세자의 입학식 풍경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홉 살 어린나이 효명세자는 엄격한 절차에 의거하여 궁궐을 나서는 순간부터 공자의 문묘에 술을 올려 신고하고 박사를 앞에 꿇어앉아 소학을 문답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오는 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조선의 예법과 절차에 관하여 기록한 책 [국조오례의]에 의거해서 차기 왕으로 내정된 왕세자의 품위에 맞는 격식과 내용을 겸비한 행해지는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다.

저자는 입학식이 전 과정이 담긴 왕세자입학도첩의 각 그림들을 상세히 관찰하고 왕세자의 구채적인 행보와 참여하는 사람 그리고 그에 담긴 의미와 뒷이야기까지를 이야기 한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조선에서 최고 가치는 유학의 가르침이었다. 그에 따라 유학을 가르치는 중심 성균관의 위상이 어느 때 보다 높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입학식에 환관이 어린 왕세자를 보필하기 위해 참석하는 것도 막을 정도였다. 이는 당연하게 공자의 유학의 근간인 부자, 군신, 장유의 예를 지켜는 명분이며 조선을 유지하고 지탱해온 근간에 대한 출발로 보았다고 평가한다.

차기 왕위를 이어갈 왕세자에 대한 교육은 일찍부터 시작한다. 시강원이 설치되고 원로대신을 스승으로 모셔 왕이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을 배운다. 하루 종일 강의와 학습으로 이어지는 일상에 매월 두 차례 치러지는 회강에선 임금을 비롯하여 시강원 사부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배운 교육의 결과를 평가받기도 했다.

[왕세자의 입학식]을 통해 저자는 왕세자의 입학식 풍경 뿐 아니라 입학례가 치러지는 전후 과정을 살펴 왕세자의 입학례가 가지는 의미를 더 자세하게 밝힌다. 입학례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왕이 선물을 준다거나 별시를 통해 관리를 선발하고 범죄자들을 사면하는 등 전 국가적으로 왕세자의 입학례를 통해 온 나라가 축하하고 기뻐하는 모습과 왕의 나라에서 후계자의 성장이 가지는 의미를 밝히고 있다. 또한 왕들의 왕세자에 대한 부모의 애뜻한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에선 시대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모마음의 따스함을 알 수 있다.

왕세자의 입학식이라고 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입학식 장면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중심이다. 형식에 치우친 면이 아쉽다는 말이다. 성균관 입학례에 박사와 대면하는 교육에서 언급되는 소학과 대학이 다뤄지긴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교육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더 상세하게 언급되었다면 왕세자의 제왕학에 대한 이해를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책이나 드라마에서 평생 학문을 연구한 학자들보다 더 깊이 있는 내용으로 원로대신들과 학문과 정책을 나누는 왕들의 모습에서 어떻게 공부했기에 이럴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세종이나 영조, 정조를 비롯한 왕들의 모습은 그들 한 사람의 노력뿐 아니라 학문을 중요시 여기는 조선의 제왕학이 있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보게 된다.

스승 앞에선 책상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까다로운 격식이 요구되는 입학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학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왕이 갖춰야 할 성군의 기본 소양과 자질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삼국시대, 고려, 조선으로 이어져오며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오랜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근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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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유고 - 조선 중기의 명재상 양파 정태화 문집
정태화 지음, 박세욱 외 옮김, 이장우 감수 / 연암서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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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재상 양파 정태화
시대를 불문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스승과 제자를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스승은 자신의 뜻을 잘 펼 수 있는 방향성을 잡아 올바른 길을 가는 지침을 얻기 위해서 일 것이고 제자를 잘 두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이 일구어 온 업적을 후대에 남기며 빛을 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리라 생각된다. 스승에서 자신 그리고 제자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그 분야의 성과가 오롯이 남겨지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당대를 당차게 살았던 사람들이나 조용히 초야에 묻혀 오직 자신의 학문의 성취를 이뤄가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 중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 사람의 흔적이 기록물로 남아 있거나 구전되는 이야기 속에서만 알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혀져간 사람과 그들의 업적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안타까움마저 일어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을 만난다. 수 백 년이 지난 오늘 그 사람의 문집 [양파유고]를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사람 정태화다. 안동김씨와 동래정씨가 명문집안으로 실세를 보였던 시기 정씨집안에서 태어난 양파 정태화는 조선시대 선조 때 태어나 인조, 효종, 현종 대를 거치는 지극히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살았다. 그것도 평범한 삶이 아니라 임금을 보좌하는 재상으로 20여년을 지낸 사람이다. 인조 때 최명길에 의해 인정받기 시작한 후 병자호란을 거쳐 조정에서 능력을 인정 받았으며 이후 접반사로 봉직하며 민감한 외교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효조의 북벌정책에 호응하였으며 송시열과 송준길 등을 정계로 이끌기도 했다. 자식을 효종의 딸과 혼인시켜 왕족과의 사이가 더욱 긴밀하게 되기도 했다. 어지러운 시대, 당색에 의해 목숨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던 시대를 권력의 핵심부에서 오랫동안 재상을 역임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인 사람이다. 저서로는 포사일기, 서행기, 음빙록, 기해일기 등이 있다.

[양파유고]는 바로 양파 정태화의 문집을 번역한 책이다. 권력의 핵심부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문인들과 교류하며 나눈 시문과 임금의 부름에 답하는 상소문, 일상적인 삶을 기록한 글을 비롯하여 연행록, 접반사, 기해일기 등 다양한 글들을 담고 있다. 1권부터 6권까지는 주로 자신의 창작시, 답시, 만시 등 시문을 기록하고 7권과 8권은 상소문을 모았다. 주로 사직에 관련된 상소문이 주류를 이룬다. 9권은 제문이나 발, 표전 등을 수록하고 10권은 포사일기로 각화사에 있던 사고를 살펴보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11권은 기해일기로 효종이 승하한날부터 국상을 준비하고 치루는 전체 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2권은 원접사로 중국 사신을 맞이하고 송별하는 과정을 기록한 서행기다. 13권과 14권은 중국을 다녀온 기록으로 날짜별로 기록한 일기다. 15권은 사직 상소를 허락하지 않은 답글과 어찰을 기록하였다. 부록으로 김석주의 글을 비롯하여 임금의 교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1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고 익숙하지 않은 한문본을 번역한 글이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권력의 실세로 살며 22년이나 재상을 지낸 사람의 글이라고는 하지만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성스러운 마음,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묻어나는 사직상소문, 문인들과 나눈 시문 등에 담긴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이 있어 딱딱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다. 국가 중요행사나 개인적인 교류에서 사람들이 시문을 짓고 나누는 모습이 생소하지만 또한 부러움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학문에 대한 공부가 부럽다는 것이다.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효종의 죽음으로 시작된 예송논쟁, 명나라에 대한 의리가 중요한 때 청에 대한 북벌론 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보는 것이다. 목숨이 달린 혼란스러운 시대를 당파에 메이지 않고 나름대로 처세한 정태화의 모습이 보이는 듯싶다. 11권의 기해일기 또한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모시던 임금이 죽음과 그 후 처리과정을 날짜별로 상세한 기록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지난해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그 후 장례절차를 보며 왕의 나라에서 왕의 죽음과 관련 된 복잡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또한 13권과 14권에 수록된 중국 방문에 대한 기록이다. 힘들고 거친 일정을 다녀온 사람의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후대 사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생각하며 읽어가는 맛이 좋았다.

방대한 분량을 한권으로 옮겨 놓는다는 점의 어려움이 있지만 본문과 주석의 구분이 별 차이가 없어 처음 책을 읽어가는 동안 어려움이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의 경우 주석이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겠지만 본문보다 작은 글씨로 눈에 들어오게 편집이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사족을 보텐다. 그만큼 그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는 말이다.

황희 정승하면 누구나 알지만 그와 버금갈 정도로 오랜 기간 정승을 지낸 사람 정태화는 낯설기만 하다. 무엇이 이렇게 달리 보이게 만들었을까? 역사적 인물을 후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계기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사람이 살았던 당시 삶을 비롯하여 다시 그 사람을 보게 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다. 한사람의 삶은 개인적인 것 뿐 아니라 당시를 사는 시대정신이 함께 들어있기에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문집을 오늘에 되살려 내는 노력이 세삼 소중한 일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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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여자 - 푸른 파도 위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
김상옥 지음 / 창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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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북춤으로 이어지는 사람의 마음
가끔 바다에 간다. 일부러 바다를 보기위해 가기도 하지만 바다와 마주선 순간은 늘 먹먹한 기분이다. 바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없이 다 받아주고 있다. 싫든 좋든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태생이 그렇다. 하여 넓고 깊은 품에 세상을 말없이 받아들이다가도 때론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격정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한때 바다의 그러한 넉넉한 품이 그리워 마주선 바다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깊고 깊은 그 속에 담겨져 있을 말없는 슬픔을 감내하는 바다의 깊은 마음을...

[북 치는 여자]는 바로 진도북춤의 근원지인 진도가 무대이고 그 진도북춤을 추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김상옥이라는 작가의 신작 소설인데 작가의 대표작이로 할 [하얀 기억 속의 너] 이후 한 여자의 너무 슬퍼 차라리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사적 문화유산과 섬사람들의 질박한 삶이 잘 이어져 오는 진도의 부잣집 외동딸 은서와 한 5년 전 진도 땅에 자리 잡은 작가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갯바위 낚시에서 보기 드는 대물을 낚았지만 다시 바다로 놓아주는 은서의 행동에 관심을 보인 하윤은 그 여자의 행방을 찾아 수소문 하지만 여의치 못하고 국립진도국악원 공연장에서 진도북춤을 추는 사람이 찾았던 그 여자임을 알고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은서라는 여자와 직접적인 대면 없이 주변 사람들의 머뭇거림 속에서 들은 이야기는 그녀의 파란 만장한 이야기를 짐작하게 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은서는 북춤에 매료되어 국악을 전공하게 되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외국 공연단에 뽑혀 미국공연을 하던 도중 아버지의 사고소식을 듣고 귀국, 어머니와 아버지의 간병을 지극정성으로 하지만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만다. 부모를 잃은 슬픔도 잠시 아버지의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고 뒷수습을 하면서 범인을 잡으려는 은서의 행동은 계속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범인은 죽었지만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이후 다시 진도북춤을 추면서 생활하지만 그 충격은 내내 가슴속에 자리 잡아 삶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하윤과 은서의 만남은 다시 낚시로 이어진다. 갯바위 낚시에서 풍랑에 휩쓸린 은서를 구하면서 본격적인 대면을 하게 되는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삶을 누르고 있는 무게로 인해 서로를 알아보게 되고 은서는 가슴속에 쌓아 두었던 삶의 무게를 고백을 통해 하윤에게 털어 놓으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마음을 터놓은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지만 각기 다른 길을 떠난다.

자전적 소설을 쓴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 여기저기 등장하여 굳이 전작 [하얀 기억 속의 너]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한다. 어떤 사람이든 가슴속 묻어둔 이야기 하나쯤은 있겠지만 작가의 경험은 상식을 넘어서는 애절함이 있다. 다소 무겁고 어두운 내용이지만 읽어가는 속도를 멈출 수 없게 하는 흡입력이 있는 글 솜씨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만큼 단숨에 읽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여운을 깊고도 길게 이어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구도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가족, 배신, 사랑의 모습이 주인공들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아 있고, 진도 사람들과 진도 북춤이 보여주는 내면의 모습과 은근히 이어지고 있다. 바다, 낚시, 섬 그리고 북춤을 매개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당당하고 숙연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북장단에 넋을 놓고 진도 북춤을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국립진도국악원의 마당에서 바라본 바다의 전경도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진도북춤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병천 선생님의 사후 진도 북춤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많다고 한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누구나 갈망하는 것이 사랑이지만 그 모습과 형태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사랑, 하윤의 경험이나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 주부의 경험이든 은서가 바라는 사랑이든 이 모두 모범 정답은 아닐 것이다. 누구든 자신 만이 개척하고 누려나가야 할 삶의 굴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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