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유고 - 조선 중기의 명재상 양파 정태화 문집
정태화 지음, 박세욱 외 옮김, 이장우 감수 / 연암서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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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재상 양파 정태화
시대를 불문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스승과 제자를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스승은 자신의 뜻을 잘 펼 수 있는 방향성을 잡아 올바른 길을 가는 지침을 얻기 위해서 일 것이고 제자를 잘 두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이 일구어 온 업적을 후대에 남기며 빛을 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리라 생각된다. 스승에서 자신 그리고 제자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그 분야의 성과가 오롯이 남겨지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당대를 당차게 살았던 사람들이나 조용히 초야에 묻혀 오직 자신의 학문의 성취를 이뤄가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 중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 사람의 흔적이 기록물로 남아 있거나 구전되는 이야기 속에서만 알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혀져간 사람과 그들의 업적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안타까움마저 일어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을 만난다. 수 백 년이 지난 오늘 그 사람의 문집 [양파유고]를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사람 정태화다. 안동김씨와 동래정씨가 명문집안으로 실세를 보였던 시기 정씨집안에서 태어난 양파 정태화는 조선시대 선조 때 태어나 인조, 효종, 현종 대를 거치는 지극히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살았다. 그것도 평범한 삶이 아니라 임금을 보좌하는 재상으로 20여년을 지낸 사람이다. 인조 때 최명길에 의해 인정받기 시작한 후 병자호란을 거쳐 조정에서 능력을 인정 받았으며 이후 접반사로 봉직하며 민감한 외교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효조의 북벌정책에 호응하였으며 송시열과 송준길 등을 정계로 이끌기도 했다. 자식을 효종의 딸과 혼인시켜 왕족과의 사이가 더욱 긴밀하게 되기도 했다. 어지러운 시대, 당색에 의해 목숨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던 시대를 권력의 핵심부에서 오랫동안 재상을 역임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인 사람이다. 저서로는 포사일기, 서행기, 음빙록, 기해일기 등이 있다.

[양파유고]는 바로 양파 정태화의 문집을 번역한 책이다. 권력의 핵심부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문인들과 교류하며 나눈 시문과 임금의 부름에 답하는 상소문, 일상적인 삶을 기록한 글을 비롯하여 연행록, 접반사, 기해일기 등 다양한 글들을 담고 있다. 1권부터 6권까지는 주로 자신의 창작시, 답시, 만시 등 시문을 기록하고 7권과 8권은 상소문을 모았다. 주로 사직에 관련된 상소문이 주류를 이룬다. 9권은 제문이나 발, 표전 등을 수록하고 10권은 포사일기로 각화사에 있던 사고를 살펴보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11권은 기해일기로 효종이 승하한날부터 국상을 준비하고 치루는 전체 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2권은 원접사로 중국 사신을 맞이하고 송별하는 과정을 기록한 서행기다. 13권과 14권은 중국을 다녀온 기록으로 날짜별로 기록한 일기다. 15권은 사직 상소를 허락하지 않은 답글과 어찰을 기록하였다. 부록으로 김석주의 글을 비롯하여 임금의 교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1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고 익숙하지 않은 한문본을 번역한 글이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권력의 실세로 살며 22년이나 재상을 지낸 사람의 글이라고는 하지만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성스러운 마음,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묻어나는 사직상소문, 문인들과 나눈 시문 등에 담긴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이 있어 딱딱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다. 국가 중요행사나 개인적인 교류에서 사람들이 시문을 짓고 나누는 모습이 생소하지만 또한 부러움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학문에 대한 공부가 부럽다는 것이다.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효종의 죽음으로 시작된 예송논쟁, 명나라에 대한 의리가 중요한 때 청에 대한 북벌론 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보는 것이다. 목숨이 달린 혼란스러운 시대를 당파에 메이지 않고 나름대로 처세한 정태화의 모습이 보이는 듯싶다. 11권의 기해일기 또한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모시던 임금이 죽음과 그 후 처리과정을 날짜별로 상세한 기록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지난해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그 후 장례절차를 보며 왕의 나라에서 왕의 죽음과 관련 된 복잡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또한 13권과 14권에 수록된 중국 방문에 대한 기록이다. 힘들고 거친 일정을 다녀온 사람의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후대 사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생각하며 읽어가는 맛이 좋았다.

방대한 분량을 한권으로 옮겨 놓는다는 점의 어려움이 있지만 본문과 주석의 구분이 별 차이가 없어 처음 책을 읽어가는 동안 어려움이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의 경우 주석이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겠지만 본문보다 작은 글씨로 눈에 들어오게 편집이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사족을 보텐다. 그만큼 그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는 말이다.

황희 정승하면 누구나 알지만 그와 버금갈 정도로 오랜 기간 정승을 지낸 사람 정태화는 낯설기만 하다. 무엇이 이렇게 달리 보이게 만들었을까? 역사적 인물을 후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계기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사람이 살았던 당시 삶을 비롯하여 다시 그 사람을 보게 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다. 한사람의 삶은 개인적인 것 뿐 아니라 당시를 사는 시대정신이 함께 들어있기에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문집을 오늘에 되살려 내는 노력이 세삼 소중한 일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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