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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여자 - 푸른 파도 위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
김상옥 지음 / 창해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북춤으로 이어지는 사람의 마음
가끔 바다에 간다. 일부러 바다를 보기위해 가기도 하지만 바다와 마주선 순간은 늘 먹먹한 기분이다. 바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없이 다 받아주고 있다. 싫든 좋든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태생이 그렇다. 하여 넓고 깊은 품에 세상을 말없이 받아들이다가도 때론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격정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한때 바다의 그러한 넉넉한 품이 그리워 마주선 바다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깊고 깊은 그 속에 담겨져 있을 말없는 슬픔을 감내하는 바다의 깊은 마음을...
[북 치는 여자]는 바로 진도북춤의 근원지인 진도가 무대이고 그 진도북춤을 추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김상옥이라는 작가의 신작 소설인데 작가의 대표작이로 할 [하얀 기억 속의 너] 이후 한 여자의 너무 슬퍼 차라리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사적 문화유산과 섬사람들의 질박한 삶이 잘 이어져 오는 진도의 부잣집 외동딸 은서와 한 5년 전 진도 땅에 자리 잡은 작가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갯바위 낚시에서 보기 드는 대물을 낚았지만 다시 바다로 놓아주는 은서의 행동에 관심을 보인 하윤은 그 여자의 행방을 찾아 수소문 하지만 여의치 못하고 국립진도국악원 공연장에서 진도북춤을 추는 사람이 찾았던 그 여자임을 알고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은서라는 여자와 직접적인 대면 없이 주변 사람들의 머뭇거림 속에서 들은 이야기는 그녀의 파란 만장한 이야기를 짐작하게 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은서는 북춤에 매료되어 국악을 전공하게 되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외국 공연단에 뽑혀 미국공연을 하던 도중 아버지의 사고소식을 듣고 귀국, 어머니와 아버지의 간병을 지극정성으로 하지만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만다. 부모를 잃은 슬픔도 잠시 아버지의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고 뒷수습을 하면서 범인을 잡으려는 은서의 행동은 계속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범인은 죽었지만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이후 다시 진도북춤을 추면서 생활하지만 그 충격은 내내 가슴속에 자리 잡아 삶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하윤과 은서의 만남은 다시 낚시로 이어진다. 갯바위 낚시에서 풍랑에 휩쓸린 은서를 구하면서 본격적인 대면을 하게 되는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삶을 누르고 있는 무게로 인해 서로를 알아보게 되고 은서는 가슴속에 쌓아 두었던 삶의 무게를 고백을 통해 하윤에게 털어 놓으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마음을 터놓은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지만 각기 다른 길을 떠난다.
자전적 소설을 쓴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 여기저기 등장하여 굳이 전작 [하얀 기억 속의 너]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한다. 어떤 사람이든 가슴속 묻어둔 이야기 하나쯤은 있겠지만 작가의 경험은 상식을 넘어서는 애절함이 있다. 다소 무겁고 어두운 내용이지만 읽어가는 속도를 멈출 수 없게 하는 흡입력이 있는 글 솜씨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만큼 단숨에 읽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여운을 깊고도 길게 이어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구도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가족, 배신, 사랑의 모습이 주인공들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아 있고, 진도 사람들과 진도 북춤이 보여주는 내면의 모습과 은근히 이어지고 있다. 바다, 낚시, 섬 그리고 북춤을 매개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당당하고 숙연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북장단에 넋을 놓고 진도 북춤을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국립진도국악원의 마당에서 바라본 바다의 전경도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진도북춤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병천 선생님의 사후 진도 북춤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많다고 한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누구나 갈망하는 것이 사랑이지만 그 모습과 형태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사랑, 하윤의 경험이나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 주부의 경험이든 은서가 바라는 사랑이든 이 모두 모범 정답은 아닐 것이다. 누구든 자신 만이 개척하고 누려나가야 할 삶의 굴레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