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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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닮고, 산에 기대어 살다간 고산자 김정호
방외지사(方外之士)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테두리 안이나 제도권을 벗어나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종종 자신의 삶에서 숙명처럼 여기며 그 일에 매달려 평생토록 몸과 마을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든 평생 꿈꾸어온 것을 이룬 한마디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게 한 분야에서 이치를 통달하게 되면 자신이 매진해온 그 분야 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순리를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살아온 어느 시대에나 그런 사람들은 있었다. 누가 알아주던 그렇지 않던지 간에 묵묵히 어려움을 극복하며 뜻한 바를 이뤄간 사람들 말이다. 학창시절 역사를 배우며 접했던 사람들 중 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 중 지도에 미친 김정호라는 사람이 있다. 출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기록을 발견하기 어려운 사람이면서도 대동여지도라는 걸출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사람이다. 진정한 방외지사가 아닐까 싶다. 숙명처럼 떨치지 못한 지도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삶을 오롯이 복원하여 오늘에 되살려 내는 작가의 작품을 만난다. [고산자]라는 박범신의 작품이다.

[고산자]는 저가 박범신이 [통찰력이 뛰어난 인문학자였고, 조국을 깊이 사랑했던 산인(山人)이었으며, 집념이 강한 예술가였다]라고 평가한 김정호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홍경례의 난 등 사회적으로 어지러웠던 조선말기 아버지의 실종을 밝혀 달라고 산벗나무 꽃피던 어느 봄날 관아의 높다란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매달리던 한 소년이 고향을 등지고 전국을 떠돌며 삶을 이어가 결국에 자신의 소망을 이뤘지만 그게 다 부질없음을 알고 사랑하는 피붙인 딸과 조용히 사라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어버지의 죽음, 부패한 권력, 외세의 침입, 천주교라는 낯선 사상의 도입, 실사구시 학문의 대두, 벗의 사귐과 그들의 죽음을 선고하는 만장 등 이는 고산자 김정호가 살았던 시대, 그가 직면한 현실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매개를 이용하여 발 딛고 살아가는 산천의 주인이 백성임을 알고 백성들의 삶의 시작과 끝이 되는 산천을 온전히 담아내 백성들 품으로 돌려주고자 했던 김정호의 마음을 읽어간다. 한 사람의 삶을 외롭고(孤), 높으며(高), 옛산을 담고자 하는 마음(古)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가 또라젓, 화각, 금량관, 고산자 그리고 대동여지전도로 표현한 만장을 든 김정호을 통해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뭘까? [바람이...... 가는 길을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길을 내 몸 안에 지도로 세겨넣을까 하이. 오랜...... 옛산이 되고 나면 그 길이 보일걸세. 허헛, 내 처음부터 그리고 싶었던 지도가 사실 그것이었네](본문 347 페이지) 아마도 이 구절에 담고 싶었을 한 방외지사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등장하는 또 한사람인 해강 최한기, 양반신분이면서 중인 김정호와 벗이고, 실사구시 학문의 뜻을 이루고자 했던 시대정신을 담은 지식인이다. 대단한 장서가이며 앞선 시대를 살았던 간서치 이덕무와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책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의 교류엔 무엇이 우선인지 알게하는 사람들이다. 의외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조선시대 지금처럼 과학기기가 발전한 것도 아닌 그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실측지도를 만들 수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한 생각은 대동여지도 뿐 아니라 과학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세종 때의 그 많은 과학기기들 역시 마찬가지의 의문을 가지게 한다. 천문관측도구, 시계, 측우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업적들을 오늘의 과학문명의 잣대로 살펴봐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의 업적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할 것이다.

고산자를 읽는 동안 탄탄한 문장을 쫒아가는 마음이 성급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느긋한 마음도 아니다. 먹먹해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려 한동안 손을 놓게 만들지만 금세 다시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바람과 시간이 가는 길을 내 몸 안에 그리고 싶었을 고산자를 생각하며 눈길을 먼 산으로 돌려본다. 
한 작가의 노력의 결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여실히 알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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