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
에드워드 베르 지음, 유경찬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권력을 향한 인간의 몸부림을 보다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말들이 있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사회적 관계는 그 사람의 지위와 긴밀한 결합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표상으로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중에 바로 권력이 있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보면 종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절대 권력의 모습은 왕권이 유지되었던 시대를 넘어서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우리의 경우도 해방 후 독재 권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박탈, 인권의 말소, 대외 외교의 사대주의 등 다양한 모습을 직접 경험한 전력이 있다. 독재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지난한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경험은 동남아시를 비롯한 이웃나라나 동구유럽, 남아메라카 등 전 세계적으로 발생해온 인류의 공통된 아픔이자 걸림돌이었다.

[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는 우리와 지리적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 있었던 동구유럽 루마니아의 정치사를 대변하고 있는 절대 권력자 차우셰스쿠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중국의 루이 황제를 담은 ‘마지막 황제’의 저자로 세계사의 굵직한 선을 그었던 현장을 목격하고 담아왔던 에드워드 베르의 작품이다.

이 책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건물 발코니에서 서서 수많은 군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은 뒤 헬리콥터를 타고 부쿠레슈티를 황급하게 떠나는 차우셰스쿠 부부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단지 절대 권력을 누렸던 한 사람의 부패정치의 이면만을 담는 것에 머물지 않고 루마니아 근현대사를 개괄하며 좌파민족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념이 형성되어가는 과정, 러시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차우셰스쿠 부부가 정치에 등장하는 모습이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담아내고 있다. 

농부의 아들로 정규학력도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한 그들이 어떻게 정치권력을 잡게 되었는지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지 절대 권력으로 국민을 억눌렀던 모습은 비슷하다. 또한 정치권력과 부정부패는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우셰스쿠 부부 역시 그 경우를 벗어나지 않고 같은 과정을 보이며 비슷한 최후를 맞이했다. 

“우리는 루마니아를 다시 세우기 위해 혁명에 가담한 것이 아니다. 해외로 도피하면 살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차우셰스쿠가 사라진 후 국경을 넘었을 뿐이다.”

생각할 여지를 많게하는 말이다. 삶을 영위하기에 급급한 절대권력 치하의 국민들의 모습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민이 바라는 것은 그렇게 거대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근본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한 자각이 자신과 이웃을 넘어서 나라와 민족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겪었던 정치적 상황과 떨어질 수 없는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이 책은 술술 읽히고 있다. 저자의 섬세한 글 솜씨와 더불어 현장감 있는 내용구성도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주변을 둘러싼 이웃나라와의 관계에서 그들 민족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가꿔온 루마니아 국민들이 차우셰스쿠 권력 이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에 따라 루마니아의 미래는 달렸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불꽃같은 삶이 전하는 깊은 울림
몇몇 알고 지내는 화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할 때면 그림 작업에 몰두한 모습을 가만히 숨죽이고 지켜보곤 한다. 창작활동에 온 정신을 다 쏟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움 그 자체라 부를 만하다. 간혹 그들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작가가 기울이는 노고와 열정을 이미 알기에 이렇다 저렇다 여러 말을 벌려놓는 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서로 마음 열어 상대를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보이고 느끼는 그대로를 열성을 다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렇게 나누는 이야기가 아픈 지적이 되고 때론 화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될지라도 서슴없이 다가간다.

이렇게 사귐을 나누는 몇몇은 오랫동안 그들의 삶과 작품 활동과정 그리고 작가가 지향하는 예술세계를 공유할 수 있어서 어느 사귐보다 깊고 넓은 마음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못내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작가들 사이에 소통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는 몇몇 화가에 국한되는 문제라면 좋겠지만 지방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는 전반적 분위기가 그렇다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화가들에게 제안도 했다. 작업, 작품 그리고 지향하는 예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바로 그러한 내 조그만 소망이 다 담긴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 책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창작활동에 몰두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글의 모음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화가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고흐가 감내해야 했던 여러 가지 문제를 간절하게 때론 아픔을 담아 동생과 나눈 편지는 작가의 일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보여 진다. 종이와 물감 살돈도 없어 동생의 지원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이 절절하게 묻어나고 있어 읽어가는 동안 가슴 먹먹해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고흐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진정한 동지인 동생 테오가 있었다. 혹여 불편함을 가진 형 고흐의 마음이 다치기라도 할까봐 마음 쓰는 모습이 역역하게 드러나 있다. 살아가는 동안 비록 힘든 삶이었고 그림 한 점 팔기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고흐는 행복한 작가였다고 본다. 바로 테오가 있었기에 그렇다. 섬세하고, 솔직하며 그렇기에 답답함마저 느껴지는 두 사람의 마음과 가족들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어 고흐라는 사람뿐 아니라 그 작품을 한층 더 가깝게 하고 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는 두 형제 사이의 두터운 정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인상파 화가들이나 절친했지만 자신의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된 고갱이 있다. 당시 화단의 흐름이나 화가들 사이의 교류를 비롯하여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기에 더 흥미롭다.

또한 이 책은 고흐가 그림을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적 흐름에 따른 편지를 모았기에 고흐 자신의 예술관이 변해가는 점을 알 수 있으며 화폭에 담긴 고흐의 그림이 있기에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자화상이라는 여러 작품을 통해 고흐가 주목하는 그때그때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고도 본다. 고흐 자화상만을 한자리에 모아 두고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편지를 읽어가는 동안 고흐의 편지가 주를 이루고 있기에 혼자만의 독백처럼 보이기도 한다. 테오의 답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요구하기에 더 많은 동생 테오의 답장이 함께 있었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고흐와 고갱의 불화나 미술평론가의 지적 등을 살펴봐도 화가들 사이 그들의 예술관에 대한 소통은 여전히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어쩌면 혼자만의 고독과 외로움의 산물일지라도 함께 그 길을 가는 작가들 사이 소통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는 편함이 없다. 그 소통에 작가 고흐, 미술상 테오, 미술애호가 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결코 작품과 괴리된 세계를 담고 있다고는 보지 않기에 보다 적극적인 활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촛불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꺼지기 직전이라고 했던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불타오르는 창작활동을 보이며 짧은 전 생애를 통틀어 예술혼으로 살다간 고흐, 그와의 만남은 시대를 넘어 삶에 대한 불꽃같은 열정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과 6펜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7
서머싯 몸 지음, 안흥규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과 현실사이의 인간 모형
우연의 연속으로 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굵직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들려오는 소문은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하나 둘 조합하여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게 된다. 마치 영화의 스틸사진을 관찰자의 자리에서 무심하게 바라보지만 스틸사진의 연속된 이미지가 모여 영화의 내용을 구성하듯 점점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형성된 이미지에 의해 한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상을 엮어가는 주변 사람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자신의 삶이 혼자만의 삶이 아니기에 가족, 친구, 동료 등 이러한 인간관계를 벗어난 삶을 구상하기에는 제약조건이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삶의 중요한 전환점에 선 사람들은 심각한 갈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의 경우 고집스럽게 자기 삶을 정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의 삶은 일상을 소통하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기에 늘 고독과 외로움 등이 동반하는 것이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바로 그렇게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가 이 소설의 모델로 삼았다는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단편적으로 쫒아가며 인간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 서머싯 몸은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영국에서 자랐다. 의학을 공부하지만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단편을 비롯하여 희곡, 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작가로서 확고한 지위에 오르게 했던 [달과 6펜스] 이외에 <인간의 굴레>, <과자와 맥주>, <나뭇잎의 하늘거림>, <높은 사람들>, <어느 작가의 노트> 등이 있다.

[달과 6펜스]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런던의 평범한 주식중개인이자 처자가 있으며 40대 남자다. 여름휴가를 다녀 온 어느 날 갑자기 처자를 버리고 파리로 간다. 문인들과의 교제를 일상으로 여기며 살던 부인은 갑작스런 상황에 혼란스러움을 겪게 되지만 남편이 화가의 길을 가기 위한 것이라는 알 수 없는 이유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파리로 간 찰스 스트릭랜드 경제적 어려움, 사람들과 소통의 문제 등 온갖 악조건을 만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간다.

오직 자신의 열정만으로 주변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찰스 스트릭랜드는 굶주림과 병으로 죽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주인공을 구한 건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더크 스트로브다. 하지만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의 부인과 동거하며 더크 스트로브를 배반하게 되고 결국 부인의 자살로 이어지는 파란을 일으키지만 자신의 도덕적 책임마저 부인하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파리를 떠나 방황하던 찰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 섬으로 흘러 들어가 그곳에서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던 중 문둥병에 걸려 삶을 마치게 된다.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따라간다는 흥미로움을 넘어 [달과 6펜스]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독특한 인간 유형을 통해 인간의 근본에 대한 성찰로 이어간다. 냉소적이며 극단적 이기주의로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삶,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도 게의 치 않는 스트로보로 대표되는 일련의 사람들의 삶이 극과 극으로 대칭되는 구도는 선과 악이라는 인간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선과 악, 이렇게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만 인간관계를 파악한다면 두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지루할 만치 섬세하게 그러지고 있는 점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방황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는 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상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의 제목 [달과 6펜스]에 담겨진 본래의 의미가 무엇일까? 결국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독한 군중
데이비드 리스먼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현대사회와 현대인에 대한 리스먼의 규정
현대사회라고 규정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접근하는 분야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산업사회의 급속한 발달에 근거하지 않을까 한다. 이는 또한 전통적으로 사회구성을 이루어 왔던 자본주의 사회 이전의 시대로부터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온 나라와 이주에 의해 원주민들을 제치고 급속한 주류를 형성한 사회 역시 비슷한 경향성을 보인다는 전재를 해 본다.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불리는 산업화, 다양화에서 비롯한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게 대두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독한 군중]은 현대사회를 규정짓는 시스템을 파악하는데 바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성격’을 중심에 두고 그 근저에 흐르는 사람들을 사회심리학을 기본으로 관찰하고 있다. 고독한 군중(대표 저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192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 저작물이다.

우선 [고독한 군중]에서는 인류의 역사적 사회성격을 인구변동과 관련해 전통지향형, 내적지향형, 타인지향형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이러한 사회가 전통지향형, 내적지향형, 타인지향형의 순으로 점차적으로 발전한다는 발전론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 전통지향형 사회는 사회 구성원이 전통을 따르는 경향에 의해 사회 동조성으로 보증되는 사회를 말하며 사회의 구조가 미분화된 사회를 포함하고 있다. 내적지향형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어릴 때부터 일련의 목표를 내면화하는 경향에 의해 동조성이 보증되는 것을 말하며 개인적인 이동의 증가, 자본의 빠른 축적, 사회의 끊임없는 확대 등으로 표현된다고 본다. 타인지향형은 사회 구성원이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에 의해 동조성이 보증되는 행위유형을 말한다.

영국이나 중국 등 토착 원주민들에 의해 발달되어 온 사회와 미국과 같이 이주민이 원주민을 강압하여 주요세력으로 등장한 사회의 발달과정에 같을지 의문스럽다. 이러한 세 가지 유형으로 파악한 사회 성격을 근거로 다시 사회 구성원을 적응형 인간, 아노미형 인간, 자율형 인간 이렇게 세 가지로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적응형 인간은 전통지향형, 내적지향형, 타인지향형에 규정되지 않고 사회에 순응하는 인간형을 말하며 아노미형 인간은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 의해 동조능력을 상실한 인간, 자율형 인간은 자아의식이 높은 인간으로 사회의 요구에 동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을 말한다.

[고독한 군중]에 의해 파악되는 사회와 인간이 현대산업사회의 선두주자 미국을 중심에 두고 분석한 결과지만 세계적으로 유용한 것은 산업사회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으며 빠르게 확대된 이유도 한 몫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변화와 인간유형의 변화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파악하고 있는 인구의 변화, 교육의 발전, 매스미디어의 역할은 바로 현대사회의 공통분모이기에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몇몇 나라에서는 법률이 부여한 정치적 특권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시간이 너무 소중한 것이어서 공동체를 위해 그 귀중한 시간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토크빌, 미국 민주주의)

고독한 군중에서 미국 정치를 분석, 파악하는 정치적인 2부의 내용은 우리 사회가 지방의회 및 교육감선거가 코앞인 시점에서 자못 흥미롭다. 팽배해 가는 사회적 무관심에 때론 극도로 표출되는 집단 이기주의가 주류처럼 보이는 우리 사회가 외부지향형 사회에 자율형 인간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회를 기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을 둘러싼 벽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루를 살며 스스로 만족하는 삶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늘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 그도 어쩔 수 없음을 알면서도 스스로 마음의 무게를 더해만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루한 일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그러한 일상에서 탈출한 사람이 있다. 처음 마음에는 스스로 나선 곤충채집의 길이었지만 외부적 억압에 의해 강제되어진 벽에 갇히게 된다. 갇힌 벽, 모래구덩이에서 탈출을 꿈꾸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다. 두 번째 만나는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가 그것이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는 교사로 생활하며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해 곤충에 관심을 갖던 주인공이 주변에 행선지도 말하지 않고 주요 관심 곤충이 모래에 사는 것을 알고 곤충채집을 위해 휴가를 떠난다. 사구가 발달한 한 마을에 도착한 남자는 관심의 대상인 곤충은 발견하지 못하고 하루 밤 지낼 곳을 찾아 마을 노인의 안내를 받게 된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 높은 모래언덕에 이상함을 느끼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만 마음 사람들에 의해 그 모래 웅덩이 집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혼자 살아가는 여자만 있는 집에 갇힌 남자는 그 여자와 집을 지키고 일상을 살지만 늘 탈출을 희망한다.

외부와의 단절, 그것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강압에 의해 한순간 삶이 변하게 된 것이다. 갇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두고 온 사람들, 가족, 직장 등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기만 한 그 전의 일상에 대한 회고는 닥친 현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남자는 탈출을 시도한다. 함께 거처하는 여자를 인질로 삼지만 좌절하고, 밧줄을 만들어 사구로부터 탈출하지만 실패하여 다시 모래 웅덩이에 던져진 신세로 돌아온다. 

3부로 구성된 이 모래의 여자는 1부는 사구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는 과정까지를 그리고 있다. 2부에선 본격적으로 사구 안에서 여자와 둘 만의 모래와, 자신 그리고 웅덩이 밖의 희망에 대한 싸움이 그려진다. 3부는 탈출에 실패한 후 현실을 받아들이는 남자의 달라진 마음이 나타나고 있다.

"납득이 안 갔어...... 어차피 인생이란 거 일일이 납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저 생활과 이 생활이 있는데, 저쪽이 조금 낫게 보이기도 하고...... 이대로 살아간다면, 그래서 어쩔 거냐는 생각이 가장 견딜 수 없어......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 게 뻔하지만...... 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왠지 좋을 듯한 기분이 들거든......"(본문 198~199페이지)

모래를 치우는 일상의 지극히 단순한 반복은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인지 모르겠다. 강제적인 외부와 단절이 주는 참담함에 할 수 있는 것은 단순노동의 반복, 내일을 내다볼 희망은 아애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서 깨달게 되는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물을 수집할 수 있는 유수장치는 갇힌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과 탈출을 꿈꿨던 모래 웅덩이 너머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을 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모래의 여자는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만주의 사막에서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모래가 가지는 물리학적 특성을 이렇게 자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억압된 환경에 처한 한 남자의 심리적 변화를 상세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은 단연 돋보인다. 마치 살아 있는 듯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를 통해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갇힌 웅덩이에서 함께 생활을 강요받았던 여자의 낙태로 인한 공백으로 외부와 단절을 끝낼 수 있는 통로인 치워지지 않은 사다리, 그 사다리를 올라선 남자의 선택을 머뭇거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