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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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파리대왕이 될 수 있다. 
유사 이래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성찰하고 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그 많은 사상가와 철학자들 그리고 현대과학의 발달로 인해 실험적인 환경을 통한 분석 또한 지속되어 왔다. 이로 인해 많은 부분 생물학적인 근원은 밝혀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여전히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은 그 의미를 가진다.

동양에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할 때 주로 등장했던 것이 성선설과 성악설이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심정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그 후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이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본성이 지속적으로 한 측면을 나태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 발휘되는 모습을 보며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 하기는 부족한 점 역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역사에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쟁을 치루는 과정과 그 후 수습하는 시점에서 드러난 것은 바로 특수한 환경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심성의 발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한다. 또한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에 대한 탐구를 해 온 것이 다름 아닌 문학이다. 여러 장르의 문학을 통해 인간이 가지는 본성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가가 주요한 테마였다.

[파리대왕]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특수한 환경에 처한 집단을 통해 어떻게 발휘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이야기다. 저자 윌리엄 골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의 장교로 복무하며 전쟁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고 말살하는가를 지켜봤던 사람이다. 종전 후 저자가 주목했던 인간의 이중적인 성격의 발현에 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파리대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파리대왕은 인간의 본성을 알아볼 수 있는 실험집단으로 대수의 소년들을 선택해 무인도에 떨어뜨린다. 숫자가 몇 명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무인도에 오게 되었는지도 불투명한 이 소설의 시작은 랄프와 새끼돼지라 불리는 아이가 산호섬 모래사장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들 이외에 다른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에 그들을 소라껍질 이용해 회의를 소집하고 민주적 질서에 의해 집단사회를 구성하고 각자 역할분담을 시작하여 공동체를 구성한다.

랄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는 정체를 알지 못하는 짐승에 대해 아이들이 가지는 공포에 의해 균열이 생기고, 그 틈에 사냥꾼의 대표인 잭과 충돌하게 된다. 이는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과 민주적인 절차의 대표로 랄프 그 반대편 즉 생존에 필요한 사냥과 독재와 집단적 무의식을 대표하는 잭으로 대별되고 있다.

점점 확산되는 공포가 두 대표세력 사이의 균열을 벌려나가는 결정적인 사건이 낙하산을 멘 추락한 비행기의 조종사 시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잭의 배신과 그의 추종자들이 늘어나면서 집단의식이 강화되고 결국 사이먼과 새끼돼지가 죽게 되고 혼자된 랄프는 잭의 집단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고 쫓기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저자는 실험집단을 소년들로 구성했다. 소년들은 아주 원시적인 상태와 문명의 중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특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문명에 익숙한 어른들이 아니기에 본성에 훨씬 더 가까울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극단적으로 본다면 선과 악, 민주와 폭력 등을 랄프, 새끼돼지와 잭, 로저로 대별되는 두 집단의 성격으로 나타내고 있다. 인간본성의 적나라한 표출을 보여주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나 무인도에 낙오된 사람을 그린 ‘로빈스 크루소’등은 그 대상이 어른들이다. 기존 문명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지만 파리대왕은 아직 문명화로 고착화 되지 않은 소년들이기에 어쩌면 더 인간의 본성에 한발 짝 더 근접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인간 개인의 본성과 집단 속에 속한 인간의 본성의 발현은 어떤 조건에서 상이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일까? 같은 환경에 속하더라도 왜 본성의 발현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파리대왕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 꼬리를 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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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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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만남 -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여름 밤 숲속 나무의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공유하는 바가 함께여서 깊어가는 밤이지만 누구하나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술잔이 넘나드는 사이 지칠 만도 하지만 이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소리가 좋고 그 소리 중에서도 대금이라는 악기를 매개로 만나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언제부턴가 사람 사귐이나 학문에 뜻을 두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모습의 모범답안을 찾기에 주저함이 없이 옛 선인들의 흔적을 찾게 된다. 그들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묻어나는 은근한 향기가 못내 부럽고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그 향기를 비슷하게나마 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마음이 비온 뒤 안개처럼 피어나곤 한다.

[미쳐야 미친다]는 내가 부러워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한 시대를 불같이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비록 숨어 지내는 은자처럼 보이지만 그들 가슴에 담긴 세상을 향한 꿈은 마치 타오르는 화산과도 같다. 저자 정민 선생인 주목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노긍, 김영 등이다. 온전히 갖춘 사람들이 아니고 서얼, 역적, 기생, 가난 등 하나같이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지만 나로서는 부럽기만 한 사람들이다.

저자가 이들을 통해 주목하는 점은 불광불급(不狂不及) 곧 벽(癖)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미칠 수 없다는 말에 담긴 그들의 삶에 녹아있는 진수를 뽑아내고 있다. 사람의 사귐, 학문을 탐구하는 정신,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인의 자세 등 무엇 하나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책의 구성이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지만 모두가 맛난 사람들의 만남이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자. 홍대용을 비롯한 박지원 등이 한여름 밤에 펼치는 음악회는 그야말로 멋들어진 정취가 아닐 수 없다. 신분, 나이 차이는 이미 그들에게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 이덕무를 비롯한 박지원 등의 벗에 대한 마음은 정(情)을 넘어선 사상적 동지 그 이상이다. 온전히 상대를 가슴에 품고 자신과 똑 같이 대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사람을 향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이다.

천하의 지극한 문장에 관한 홍길주의 이야기다. “문장은 다만 책 읽는 데 있지 않다. 독서는 단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천운물과 조수초목의 볼거리 및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모두 독서다.” 글을 쓰고 글이 담아야 하는 바를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특별한 문장이 갑자기 생겨나지 않음이며 일상을 바라볼 안목을 기르지 않고는 올바른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를 따라가기가 버거울 때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의 변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산천이 변하고 도시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사람사이의 지켜야 할 도리가 순간적으로 변하는 사회를 살아가다보면 그 혼란스러운 소굴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절로들 때가 많다. 이럴 때 가장 부러운 것이 바로 선조들의 사람 사귐이 아닌가 한다. 사회적 조건이나 개인이 처한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굴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의 사귐이 그것이다. 

저자는“이 책에서 기록의 행간에 숨어 잘 보이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를 먼지 털어 전달하는 사람의 소임만을 다하고자 한다”고 했지만 나는 옛글을 접하며 웃고 우는 동안 현실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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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치료 이야기 -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전현수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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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는 불교의 화엄경의 중심사상으로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나타난다는 말로 이해된다. 곧 같은 상황도 마음먹기에 따라 나에게 오는 결과는 달라진다는 말일 것이다. 좌우명처럼 늘 가까이 두고 나 자신을 경계하는 말이다. 여기서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늘 이것이 중심적인 관심사다.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음 치료 이야기]는 바로 이 마음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 전현수가 직접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직업인 정신과 치료의 임상 경험을 접목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내용이 중심이다. 서양의학을 전공하고 환자를 상담하고 치료하던 정신과 전문의가 불교라는 종교에서 하는 수행법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수행하는 과정과 치료의 접합이라는 독특한 경험이 담겨 있어 주목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 치료 이야기]에는 마음이라는 것을 열기, 알기, 다루기, 나누기의 네 가지 구성을 보인다. 우선 예전에 [마음 알고 다루고 나누기]라는 비슷한 제목의 책을 본 기억이 있어 친근감이 있다. 저자는 우선 자신이 불교수행 과정에서 얻은 귀중한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반화 시켜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에게 긍정적이고 좋은 결과를 보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정신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의 임상 경험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예증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중요시하는 것으로는 무엇보다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존재를 이해하고 우리 몸을 이해하고 결국 자신을 올바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초가 마련되었을 때 비로써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들고나는 마음의 일으킴에서 자유스러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또한 불교라는 종교를 그 기반으로 하는 책이지만 불교에 국한 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을 바로 바라보고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안내하고 있다. 더불어 전문가들만의 정신분석학적 측면이나 심리학 등의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염원하는 누구나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는 책이다.

불교가 2500년 전 인도사람 붓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시대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근저에 흐르는 사람의 정신활동과 마음이라는 작용의 원리는 같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상태, 자살률 1위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안내하는 책을 발견하는 반가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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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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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곧 사람이 중심이다.
순한 성품의 백의민족이라 일컬어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 인식은 그를 평가하는 시대와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 달라지기 마련이다. 무엇을 중심에 놓고 무엇을 이해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오늘날의 시각에 의해 재해석하는 일이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자세가 아닌가 한다.

그동안 역사 이야기의 중심인물이었던 조선시대 태조,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 등에서 이제 새로운 인물들이 조명 받고 있다. 이처럼 새롭게 조명 받는 역사인물 중 조선시대 인조와 대한제국의 고종이다. 각기 성격은 달라도 그들이 처한 상황은 이웃나라와 내부적 문제를 바라볼 때 조선의 운명을 가르는 사건이라는 비슷함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 외침에 의해 국권과 나라의 존립 자체가 흔들렸던 전쟁이 있었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이 그것이며 이러한 전쟁 후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지난한 시간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소현]은 병자호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운의 주인공이라고 부르는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 세자의 이야기다.

[소현]은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볼모로 끌려가 청과 명나라의 대 격돌과정에 어버이의 나라 명이 멸망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조선으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소현 세자를 살려내고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쟁 모습 뿐 아니라 막강한 청나라의 내부 권력 투쟁 과정, 두 나라 사이에 끼어 조선의 살길을 찾아야 하는 세자의 고뇌와 갈등이 섬세한 필치로 담겨 있다.

8년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훗날, 조선의 운명을 이끌어야 하는 세자의 고뇌, 아버지 인조와의 사이에 좁혀지지 않은 간극,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의 알듯 모를 듯 이어지는 감정 그 사이를 새로운 인물 흔과 막금, 만상이 단절의 사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적국에서 생활하지만 심기원, 심석경 부자로 대표되는 조선의 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담고 있다. 

작가는 적국에서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에 대한 볼모로 잡혀 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소현의 심리적 변화과정을 고독과 외로움으로 그려내고 있다. 지극히 말을 아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고 그 목숨은 소현 세자 개인의 목숨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이었다.

작가는 소현 세자의 볼모 생활과 환국, 좌의정 심기원과 회은군을 중심으로 한 역모 사건, 명과 청의 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실과 소현 세자, 봉림 대군, 심기원, 심석경 등의 실존 인물 사이로 흔, 막금, 만상의 이야기를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엮어 냈다. 역사서 속 차가운 인물들이 작가의 펜에 의해 생생히 살아나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애환을 뜨겁게 그려내고 있다.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리하리라. 그리되기를 위하여 내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

[소현]을 읽어가는 내내 몇 번인지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는 손이 멈추게 된다. 먹먹한 가슴을 쓰러 내리고 나서야 겨우 다음 장을 읽어갈 기운을 차리게 된다. 병자호란을 다룬 김훈의 남한산성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글의 흐름이다.

볼모의 신분 소현 세자를 오늘에 되 살려낸 작가는 이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이 작은 나라의 비루함이 아니었다”라는 말의 깊이는 담고자 하는 사람의 가슴 깊이만큼씩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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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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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중심적 사상을 만나다.
주목받는 사상가의 주장에 대해 당대 다른 사상가나 관련된 학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들 중 자신과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들과의 격정적인 논쟁을 통해 시대의 진일보한 발전을 꾀하게 된다면 긍정적인 기대를 해 본다.

현대 사회학의 독보적인 존재로 일컬어지는 독일의 막스 베버의 저작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발표 당시부터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주장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발전에 대해 고찰하며 자본주의의 정신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이는 크게 마르크스의 물질 중심적 사고에 의한 분석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출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이익창출 정신과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이윤추구는 정당한 행위로 인정받게 된 다는 베버의 인식을 확인한다.

저자 막스 베버는 이 책의 서두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적 측면과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직접적인 연결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현세적금욕주의의 종교적 토대에서 종교 개혁가들의 혁신이 자본주의 정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저자는 자본주의 정신의 회복과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막스 베버의 강연을 모아 놓은 다른 저작 ‘ 직업으로서의 학문’,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도 보이지만 이 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다분히 서구 유럽중심의 사고가 드러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모든 문명, 과학, 종교의 발전에 유럽에 그 원형이 있음을 밝히는 다분히 서구 유럽중심의 사고가 팽배함을 볼 수 있다. 역사적 진실이 어떻든 심정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독보적인 한 사상가의 일면을 통해 그를 전반적으로 이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또한 단편적인 사실 몇 가지로 심리적 거리감을 느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가 이룩한 분명한 업적을 이해하고 살피는 것이 우선되지 않아야 할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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