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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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만남 -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여름 밤 숲속 나무의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공유하는 바가 함께여서 깊어가는 밤이지만 누구하나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술잔이 넘나드는 사이 지칠 만도 하지만 이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소리가 좋고 그 소리 중에서도 대금이라는 악기를 매개로 만나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언제부턴가 사람 사귐이나 학문에 뜻을 두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모습의 모범답안을 찾기에 주저함이 없이 옛 선인들의 흔적을 찾게 된다. 그들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묻어나는 은근한 향기가 못내 부럽고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그 향기를 비슷하게나마 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마음이 비온 뒤 안개처럼 피어나곤 한다.

[미쳐야 미친다]는 내가 부러워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한 시대를 불같이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비록 숨어 지내는 은자처럼 보이지만 그들 가슴에 담긴 세상을 향한 꿈은 마치 타오르는 화산과도 같다. 저자 정민 선생인 주목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노긍, 김영 등이다. 온전히 갖춘 사람들이 아니고 서얼, 역적, 기생, 가난 등 하나같이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지만 나로서는 부럽기만 한 사람들이다.

저자가 이들을 통해 주목하는 점은 불광불급(不狂不及) 곧 벽(癖)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미칠 수 없다는 말에 담긴 그들의 삶에 녹아있는 진수를 뽑아내고 있다. 사람의 사귐, 학문을 탐구하는 정신,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인의 자세 등 무엇 하나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책의 구성이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지만 모두가 맛난 사람들의 만남이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자. 홍대용을 비롯한 박지원 등이 한여름 밤에 펼치는 음악회는 그야말로 멋들어진 정취가 아닐 수 없다. 신분, 나이 차이는 이미 그들에게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 이덕무를 비롯한 박지원 등의 벗에 대한 마음은 정(情)을 넘어선 사상적 동지 그 이상이다. 온전히 상대를 가슴에 품고 자신과 똑 같이 대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사람을 향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이다.

천하의 지극한 문장에 관한 홍길주의 이야기다. “문장은 다만 책 읽는 데 있지 않다. 독서는 단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천운물과 조수초목의 볼거리 및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모두 독서다.” 글을 쓰고 글이 담아야 하는 바를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특별한 문장이 갑자기 생겨나지 않음이며 일상을 바라볼 안목을 기르지 않고는 올바른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를 따라가기가 버거울 때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의 변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산천이 변하고 도시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사람사이의 지켜야 할 도리가 순간적으로 변하는 사회를 살아가다보면 그 혼란스러운 소굴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절로들 때가 많다. 이럴 때 가장 부러운 것이 바로 선조들의 사람 사귐이 아닌가 한다. 사회적 조건이나 개인이 처한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굴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의 사귐이 그것이다. 

저자는“이 책에서 기록의 행간에 숨어 잘 보이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를 먼지 털어 전달하는 사람의 소임만을 다하고자 한다”고 했지만 나는 옛글을 접하며 웃고 우는 동안 현실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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