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을유세계문학전집 1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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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종말
사회가 거대한 몸짓으로 커지고 발달할수록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규범이나 제도는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생활을 제한하거나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기반을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이렇듯 사람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사회규범이나 제도들은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심리적 거리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것들 중에서 사람의 생활을 대표적으로 제한하거나 구속하는 것으로는 ‘법’과 관련된 일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는 이해하나 현실에서 법과 관련된 일련의 경험들은 보호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권리를 구속하는 것으로 나타나기에 심리적 거부감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이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소송’은 ‘성’, ‘아메리카’와 더불어 고독의 삼부작으로 불린다고 한다. 아마도 카프카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주요관심사가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소외, 허무라는 것으로 볼 때 이해할만하다.

잘 나가는 은행의 중견간부 K는 30살이 되는 생일날 아침 법원의 감시인들로부터 체포된다. 누구에 의해 어떤 사건으로 소송이 제기되었는지도 모르고 당하는 황당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시작부터 오리무중인 이 소송에 대처해 가는 k는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직접적인 노력 보다는 변호사, 법원 대리인, 제조업자, 화가 등의 도움을 받고자 하지만 누구하나 자신과 관련된 정확한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저 막연하게 K가 소송 당한 자신의 처지를 헤쳐 나가기 위해 길고 멀게 만 느껴지는 그 길을 제 삼자가 따라가는 듯 무관하게 그려가고 있다. K가 법정과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 역시 그저 무기력하기만 하다. 무엇하나 명확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법원과 소속되어 있다는 화가의 말처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길고 지루하게 그려지는 이 소송과 관련된 전 과정은 거대한 사회구조로 대표되는 법정과 관련되어 한 인간이 겪게 되는 사회적 소외를 극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듯 보인다. ‘모든 것을 제시하고 아무 것도 확증하지 않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는 알베르 카뮈의 표현이 아닐지라도 ‘문제는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 시켜주지 않은 것’이 작가 카프카의 의도라고 하지만 그렇기에 전반적으로 읽어가는 독자에게 답답함을 벗어버리지 못하게 한다.

‘소송’의 흐름은 사회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잘 짜여 진 각본에 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굴러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적 구조, 그러한 구조에 편승해 개인의 이익을 얻고 유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소외된 개인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회와 사람들의 소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 무엇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채석장 한 구석에서 가슴에 칼을 맞고 죽어가는 K의 ‘개 같은 종말’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은 카프카를 생각하는 동안 늘 함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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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에 미치다 - 150년 전의 천재와 사랑에 빠진 빈섬의 황홀한 지적 탐험
이상국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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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으로 인해 되살아나는 추사 김정희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자신의 가슴을 차지하며 오랫동안 영향을 주는 것을 만나는 것은 어쩜 행운인지 모르겠다. 그것으로 인해 삶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도 있지만 때론 그것으로 인해 고달프거나 어려운 고비를 맞기도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삶의 방향과 지평을 넓혀주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그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그것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은 흔히 말하는 직업이나 취미활동도 되겠지만 자시의 삶을 통째로 바꿀 스승을 만나는 일이 가장 큰 것일 것이다.

개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믿고 의지하며 때론 위안 삼을 수 있는 스승의 존재는 참으로 크다. 옛 선조들의 삶에서 보면 그러한 스승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현대 사람들에게 스승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 스승의 존재를 인정하고는 있는 것일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스승에 대한 가치는 현격하게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하는 말이다. 

이러한 시대에 한사람을 향한 오롯한 마음을 전하는 사람을 만난다. 빈섬 이상국이라는 사람의 [추사에 미치다]를 통해 그가 말하는 추사보다 이상국이라는 사람에 관심이 더 가는 것은 무엇일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접하고 변하기 시작한 자신의 삶에 온통 세한도와 추사 김정희로 채워졌다는 한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있다.

그 사람 빈섬 이상국의 눈과 마음으로 들여다 본 추사는 어떤 사람일까? 이 [추사에 미치다]는 세한도을 처음 접할 때 저자가 느끼는 감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 추사, 연인들 그리고 사랑, 추사쟁이의 눈으로, 추사와 놀다, 추사 시를 읽지 않고 추사를 말하지 말라, 에필로그 : 추사와 완당, 어느 것이 대표 브랜드일까에 이어 추사를 맨가슴으로 읽는 방법까지 온통 추사 김정희를 바라보는 외 사랑의 마음으로 넘치고 있다.

저자 이상국은 추사 김정희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아니 단순한 애정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진한 감정이 책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 사람 추사 김정희에 대해 이토록 열정적인 탐구를 할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추사 김정희 대한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 추사가 관심 보였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 그리고 추사 고택이나 출생지, 제주도 대정리 추사 적거지 까지 추사의 흔적을 발품 팔아 찾아 나선다. 그 기간이 무려 장장 8년이란다. 그 노고를 무엇으로 말해야 할까? 

빈섬 이상국의 [추사에 미치다]는 추사에 관한 그동안의 이해와 추사작품을 가지고 논란이 되었던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저자 자신의 시각으로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유홍준의 추사와 빈섬 이상국의 추사, 간송미술관 최완수의 추사와 빈섬 이상국의 추사 사이의 차이점을 비롯하여 조희룡을 추사의 제자로 인정하는 빈섬 이상국의 시각 그리고 추사와 연인들에 대해선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는 추사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무한한 애정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정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점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서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 대한 이렇게 애정 어린 관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동안 추사 김정희를 말하는 사람들 특히 교과서적이고 학문적이며 현학적이기까지 해서 도저히 일반인으로서는 가깝게 여길 수 없었던 추사를 사람들 내 곁으로 친근하게 다가서게 하는 점이 좋아 보인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유홍준의 완당평전, 한승원의 ‘추사’ 등 몇 권의 책을 읽으며 단편적인 지식으로나마 추사 김정희에 관해 이해했던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거나,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세한도와 추사 묘 앞에 선 소나무 한그루가 닮아 있음은 바로 역사적 인물 추사를 살아 있는 스승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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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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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본다. 어떤 단어는 사전적 의미보다 더 다양한 느낌을 담고 있다. 전라도의 ‘그것’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처럼 문장 속의 위치나 상황과 어울리는 단어의 의미는 때론 어렵기만 하다.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사용되는 단어 역시 감으로 느껴지는 ‘그것’ 이외 숨겨진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시적표현’이다 ‘시 언어’다 라는 말이 있다. 시인이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온 세상을 표현할 때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고뇌하는 깊이를 짐작은 하지만 초보 독자인 나는 그냥 순간 느껴지는 느낌 이상을 벗어나진 못한다. 그렇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몇 문장에 지나지 않은 짧은 시 한편이 대하소설 읽는 것 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최근 [고산자], [은교] 등의 출간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박범신의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는 시집 역시 감성으로 그저 느낌만을 얻기 위해 읽기에는 벅찬 무엇이 있다. 첫 장 [서시]부터 마지막 [묘비명]까지 그가 절필을 선언하고 산방에 은거하는 동안의 기록이라는 것을 읽으며 몇 편을 제외한 많은 시들이 ‘뭔가...다른 것이 있을 거야’가 함께한다. 겨우 시집을 해설해 놓은 문학평론가 김승희의 해설을 접하고 나서야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뭔가...다른 것이 있을 거야’라는 내 생각은 문학의 울타리에서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의 성을 쌓고 허물며 다시 쌓기를 반복한 저자의 깊은 울림을 먼저 생각한 것이리라. 굳이 소설가내 수필가내 시인이내 하는 벽이 필요한가는 모르겠다. 그 무엇이든 문학이라는 장르 안에 담긴 글쓴이의 삶의 흔적이라면 소설이든 시든 표현방법 차이일 뿐 아닌가 소심한 생각을 해 본다.

개가 달을 보고 짖는 것은 심심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세상을 보고 짖는 것은 무섭기 때문인데

그대는 오늘도 개보다 많이 짖는다

(소음 전문)

내가 느끼는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는 저자의 최근작 소설 [은교]에 적절하게 녹아있는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아마 [은교]의 틀 속에 갇힌 내 정서상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순간순간 생각을 멈추게 하는 꽃, 봄, 4월, 독백, 사랑, 산에게, 작가, 임에게4, 소음, 불의 나라가 있어 위안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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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용복 -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전용복 지음 / 시공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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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장이 - 자존심을 일궈온 삶
장인이란 어떤 한 분야에서 스스로 우뚝 선 경지를 이룬 사람들을 부르는 말일 것이다. 그가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지난한 시간과 노력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변 사람들의 어떠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간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의 칭송과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장인들이 이룩한 눈부신 성과를 폄하하고자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이룩한 성과에는 혼자만의 노력의 결과가 아닌 그가 살아온 역사 문화적 유산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숨겨진 일꾼들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그 위대한 성과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함께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장인정신의 표본으로 삼을 만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옻칠장이 전용복, 그가 나고 자란 우리 땅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현대 옻칠의 자존심이라 자칭하는 일본에서 우리 조상의 옻칠을 이어받아 우뚝 선 사람이다.

[한국인 전용복]은 바로 그 옻칠장이 전용복의 옻칠과 더불어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혼란과 가난으로 점철되었던 시절에 태어나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느라 학업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묶였던 시절부터 옻칠을 만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일본에 건너가 국보급 문화재를 복원해낸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한국인 전용복] 이 책의 압권은 무엇보다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메구로가조엔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자존심을 건 장인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년의 준비과정 3년에 걸친 복원과 창조의 순간순간 그와 함께한 한국의 장인들의 숨결이 눈앞에 펼쳐지듯 담겨진 이 책은 단순한 전용복 개인의 자서전 성격을 넘어서고 있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부러운 점은 전용복의 불굴의 장인정신도 있지만 문화재를 대하는 일본사람들의 마음이다. 천문학적인 경비가 들어가지만 선조들의 정신을 현대에 이어가려는 그들의 마음은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또한 자신의 외로운 길에서 얻은 귀중한 결험을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 나누려는 마음, 선조들이 물려준 빛나는 유산을 현실에서 살려내 공감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려는 눈물겨운 노력은 진정한 장인정신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시대의 장인정신을 말하다]라는 책에서 장인의 현대적 의미가 전통을 되살려 복원하는 것과 함께 그 결과물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 [한국인 전용복]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다.

옻칠의 신비를 영구성, 자연친화성, 아름다움에서 찾는다는 장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옻칠공예가, 한국인 전용복이 왜 23년 간 이나 일본에 머물러야 했을까? 한밤중에 불길에 휩싸인 숭례문이 다시금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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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7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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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본능이 표출되는 순간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서 타인처럼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모습은 예고도 없이 이방인처럼 불쑥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내 어디에 그런 낯선 모습이 숨겨져 있다가 이렇게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는가 싶어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그 모습도 내 안에 잠재된 본성의 발로가 아닌가 싶어 멋쩍은 미소를 짓게 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숨겨진 본성에 대해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닐 것이다. 특수한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어떤 무엇에 대한 막연함을 넘어 실체로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야성의 부름]은 인간이 중심이 아닌 벅이라는 개를 전면에 내세워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수묵화의 실경 산수처럼 그러나가고 있다. 대 저택의 판사집안에서 가족의 신뢰와 다른 개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벅은 정원사 보조의 도박빚으로 인해 가족 몰래 파려가는 신세가 된다. 문명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던 벅은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며 결정적으로 빨간 스웨터의 사나이로부터 무차별적인 몽둥이세례를 받고는 ‘몽둥이니 엄니의 법칙’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알래스카 썰매개로 팔려간 후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에 하나하나 적응하는 동안 숨겨져 있던 야서의 본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되고 원시시대 야생을 누비던 본능이 점차 살아나다. 어떤 개들보다 뛰어난 적응력으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썰매개의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몽둥이, 야생 개들의 사투, 목숨을 위협하는 다양한 개들 그리고 혹독한 알래스카의 환경은 생존하는 법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은 그나마 개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주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천8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썰매를 끌고 달려온 벅 일행은 쉬지도 못하고 생판 처음으로 썰매 개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되지만 마지막 순간 존 손톤이라는 사람에 의해 구조되고 이후 벅과 손톤의 가슴 벅찬 사랑이 이어진다. 독특한 서로만의 애정표현 방식과 손톤의 목숨을 구해주고 돈을 벌어주는 등 손톤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까지 함께한다.

섬세하게 그려지는 개들의 행동양식 그리고 말래스카의 자연은 저자 잭 런던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한다. 누구보다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고 생의 마지막을 비참하게 마감한 저자가 야생으로 돌아간 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물인 개와 인간이 나누는 이러한 사랑이 이뤄질 수 있는 근간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의 소통이 아닌가 한다. 같은 종족인 개들 사이는 물론이지만 문명을 이룩해 오는 동안 소통보다는 단절이 중심에 서 왔던 인간들 사이에서 이 점은 더 분명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문명에서 나고 자라온 벅 속에 감춰진 야성의 본능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부모를 거슬러 올라 원시 야생에서 습득한 유전인자에 의해 벅에게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면 환경의 변화에 의해 다시금 그 야성의 본능은 유감없이 발휘되는 과정을 보았다. 이는 비록 개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문득 문득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낯선 모습으로 나타나는 인간들의 야만성이 그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양성의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소외되어가는 사람들의 숨겨진 야만적 본성이 나타나 오싹할 정도로 낯선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야생으로 돌아갔지만 손톤이 죽음을 맞이한 곳에 해마다 찾아오는 벅이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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