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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4월
평점 :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본다. 어떤 단어는 사전적 의미보다 더 다양한 느낌을 담고 있다. 전라도의 ‘그것’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처럼 문장 속의 위치나 상황과 어울리는 단어의 의미는 때론 어렵기만 하다.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사용되는 단어 역시 감으로 느껴지는 ‘그것’ 이외 숨겨진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시적표현’이다 ‘시 언어’다 라는 말이 있다. 시인이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온 세상을 표현할 때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고뇌하는 깊이를 짐작은 하지만 초보 독자인 나는 그냥 순간 느껴지는 느낌 이상을 벗어나진 못한다. 그렇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몇 문장에 지나지 않은 짧은 시 한편이 대하소설 읽는 것 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최근 [고산자], [은교] 등의 출간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박범신의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는 시집 역시 감성으로 그저 느낌만을 얻기 위해 읽기에는 벅찬 무엇이 있다. 첫 장 [서시]부터 마지막 [묘비명]까지 그가 절필을 선언하고 산방에 은거하는 동안의 기록이라는 것을 읽으며 몇 편을 제외한 많은 시들이 ‘뭔가...다른 것이 있을 거야’가 함께한다. 겨우 시집을 해설해 놓은 문학평론가 김승희의 해설을 접하고 나서야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뭔가...다른 것이 있을 거야’라는 내 생각은 문학의 울타리에서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의 성을 쌓고 허물며 다시 쌓기를 반복한 저자의 깊은 울림을 먼저 생각한 것이리라. 굳이 소설가내 수필가내 시인이내 하는 벽이 필요한가는 모르겠다. 그 무엇이든 문학이라는 장르 안에 담긴 글쓴이의 삶의 흔적이라면 소설이든 시든 표현방법 차이일 뿐 아닌가 소심한 생각을 해 본다.
개가 달을 보고 짖는 것은 심심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세상을 보고 짖는 것은 무섭기 때문인데
그대는 오늘도 개보다 많이 짖는다
(소음 전문)
내가 느끼는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는 저자의 최근작 소설 [은교]에 적절하게 녹아있는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아마 [은교]의 틀 속에 갇힌 내 정서상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순간순간 생각을 멈추게 하는 꽃, 봄, 4월, 독백, 사랑, 산에게, 작가, 임에게4, 소음, 불의 나라가 있어 위안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