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성의 부름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7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2월
평점 :
숨겨진 본능이 표출되는 순간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서 타인처럼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모습은 예고도 없이 이방인처럼 불쑥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내 어디에 그런 낯선 모습이 숨겨져 있다가 이렇게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는가 싶어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그 모습도 내 안에 잠재된 본성의 발로가 아닌가 싶어 멋쩍은 미소를 짓게 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숨겨진 본성에 대해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닐 것이다. 특수한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어떤 무엇에 대한 막연함을 넘어 실체로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야성의 부름]은 인간이 중심이 아닌 벅이라는 개를 전면에 내세워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수묵화의 실경 산수처럼 그러나가고 있다. 대 저택의 판사집안에서 가족의 신뢰와 다른 개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벅은 정원사 보조의 도박빚으로 인해 가족 몰래 파려가는 신세가 된다. 문명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던 벅은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며 결정적으로 빨간 스웨터의 사나이로부터 무차별적인 몽둥이세례를 받고는 ‘몽둥이니 엄니의 법칙’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알래스카 썰매개로 팔려간 후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에 하나하나 적응하는 동안 숨겨져 있던 야서의 본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되고 원시시대 야생을 누비던 본능이 점차 살아나다. 어떤 개들보다 뛰어난 적응력으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썰매개의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몽둥이, 야생 개들의 사투, 목숨을 위협하는 다양한 개들 그리고 혹독한 알래스카의 환경은 생존하는 법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은 그나마 개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주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천8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썰매를 끌고 달려온 벅 일행은 쉬지도 못하고 생판 처음으로 썰매 개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되지만 마지막 순간 존 손톤이라는 사람에 의해 구조되고 이후 벅과 손톤의 가슴 벅찬 사랑이 이어진다. 독특한 서로만의 애정표현 방식과 손톤의 목숨을 구해주고 돈을 벌어주는 등 손톤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까지 함께한다.
섬세하게 그려지는 개들의 행동양식 그리고 말래스카의 자연은 저자 잭 런던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한다. 누구보다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고 생의 마지막을 비참하게 마감한 저자가 야생으로 돌아간 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물인 개와 인간이 나누는 이러한 사랑이 이뤄질 수 있는 근간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의 소통이 아닌가 한다. 같은 종족인 개들 사이는 물론이지만 문명을 이룩해 오는 동안 소통보다는 단절이 중심에 서 왔던 인간들 사이에서 이 점은 더 분명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문명에서 나고 자라온 벅 속에 감춰진 야성의 본능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부모를 거슬러 올라 원시 야생에서 습득한 유전인자에 의해 벅에게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면 환경의 변화에 의해 다시금 그 야성의 본능은 유감없이 발휘되는 과정을 보았다. 이는 비록 개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문득 문득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낯선 모습으로 나타나는 인간들의 야만성이 그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양성의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소외되어가는 사람들의 숨겨진 야만적 본성이 나타나 오싹할 정도로 낯선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야생으로 돌아갔지만 손톤이 죽음을 맞이한 곳에 해마다 찾아오는 벅이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