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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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알 수 있게 하는 3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만만찮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는 미학이 담보해야 하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 중심에 분명 미술이 있지만 철학과 수학이나 과학 등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학문 간의 소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완결판으로 3권에 이르렀다. 1,2권이 근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쳤다면 3권은 그 중심에 현대예술과 철학이 담겼다. 1,2권과 형식은 비슷하게 전개되지만 3권에서는 ‘피라네시’를 따라가고 있다. 피라네시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건축가이면서 화가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대화체의 중심이 1,2권에서는 플란톤과 아리스였다면 3권에서는 그 둘에 디오니게네스를 초대했다. 둘 보다 앞선 시대 사람으로 이들의 대화를 부추 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미술이라고 하면 우선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이 점이 예술과 대중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으로 그림하면 작품을 보는 사람 모두 같은 생각과 느낌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내가 보고자 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나마 공감하는 꺼리가 분명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그 꺼리가 불분명하다.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인상이 현대미술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기에 여전히 고전적인 미술의 지평은 대단히 넓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고전 예술과 현대 예술에 대한 저자의 구분은 ‘타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다고 한다. 앞에서 말했듯 현대 예술의 모호성은 바로 대중과 예술이 공유하는 코드의 상실로 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예술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오직 예술가 자신만의 코드를 만들어 내고 대중과 공유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피카소나 칸딘스키의 난해한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점이 현대 예술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대상을 모방하거나 예술가의 새로운 창조라고 하더라도 화폭에 담겨졌을 때 그것을 발보고 인식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생각에 의해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과 이를 역으로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공감과 소통이 중심이 아니라 창조자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으로 변화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변화는 바로 미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크’에서 ‘낭만주의’로 다시 ‘현대 예술’로 이어지며 그러한 변화가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이 과정이 철학 등의 사상적 흐름과도 맥을 같이하며 진행되어 온 것이다. 그러하기에 저자가 주로 이야기하는 벤야민, 하이데거, 아도르노 등의 독일 사상가, 그리고 푸코, 데리다, 들뢰즈, 료타르 등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미학을 전개하고 있는 사상가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3권에 걸쳐 미학 오디세이를 읽으며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흐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활동은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과 동떨어질 수 없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특히, 세계인식에 대한 사상사적 흐름과의 관계는 주목해서 보았던 점이기도 하기에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렇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인 예술은 여전히 어려움 부분일 수밖에 없다. 특히 현대 예술이 대중과의 교감을 코드로 상정하지 않고 예술의 창조자들만의 독자적인 코드가 만들어져 온 점에 대하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작품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조그마한 공감이라도 찾고 싶은 순수하한 아마추어라 어쩔 수 없는 한계 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인간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감을 기본으로 하는 소통이 전재되지 않는다면 그 예술이 추구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미학을 이야기 하는 책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평이 대부분이기에 일반인이 미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란 좀처럼 어렵기만 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책은 그러한 아쉬움을 덜어주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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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2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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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알 수 있게 하는 2
예술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00주의, 00사조 등 전문용어로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예술은 어렵기만 하다. 예술이란 것에 대한 규정이 꼭 무슨 전문용어를 동원해서 그들만이 이해되는 이야기라면 어쩜 간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예술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는 음악, 미술, 공연,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주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결국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대중들이 아닌가? 그렇게 예술의 주요 수용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에 대한 개면 규정이나 평가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예술을 생산하는 예술가와 그 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과 대중의 소통이 없다면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이러한 예술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전문가들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는 그러한 일을 일찌감치 벌린 사람이 진중권이다.

이 책 ‘미학 오디세이’는 현재 한국에서 진보적인 논객으로 통하는 저자 진중권의 또 다른 면모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진중권에게 이러한 면모가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쉽게 상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예술분야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이러한 작업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저자가 1권을 이끌어가는 동반자로 선택한 사람이 ‘에셔’였다면 2권에서는 ‘마그리트’와 다시 10가지 주제로 함께하고 있다. 중심주제는 물론 현대미술에 중심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이 여전히 모호한 상태에서 예술은 ‘모방’이냐 ‘창조’ 또는 예술가의 ‘직관’ 등 보다 대중들이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작가나 대중들이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눈앞에 보이는 작가의 작품일 것이다. 이러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대상과 작품 사이 개입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있다. 대상 자체에 대한 인식부터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정신활동이나 감정의 상태 등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전주의적으로 볼 때 보단 현대미술에 들어서면 더 다양하다. 특히, 비디오 아트로 우리에게 친숙한 백남준의 퍼포먼스 피아노 부수기나 변기까지 작품으로 버젓이 등장하는 모습까지 장르의 범주가 확대되었다. 예술이 특정한 범주에 속하던 예술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며 활동하는 거의 모든 부분이 속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솔직히 난감할 수밖에 없다.

예술, 미학에 대한 이야기이니 세잔, 렘브란트, 뒤샹 등처럼 당연히 화가들이 등장 하겠지만 범위를 넘어 여전히 음악이나 다른 분야의 이야기가 접목된다. 특히 컴퓨터의 활용으로 특정 음 다음에 올 음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또한 작품의 경향성에서 작품의 ‘안과 밖’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간다.

2권에서도 여전히 플라톤은 상대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히려 이 부분이 해학적이면서도 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읽기 쉽고 친숙한 저자의 글 솜씨가 한 몫 한다. 더욱 이야기의 흐름에 적절한 그림의 제시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에 한층 더 쉽게 다가서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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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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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알 수 있게 하는 1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 보편성이 있을까? 어떤 대상에 대해 모두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전재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이나 변화하기 마련인 것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역시 그런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발로라고 한다면 이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성은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움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아름다움은 인류가 이룩한 창조물에 부여하는 가치는 시대에 따라 그 흐름을 달리해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 아닌가 한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논하는 것이 미학일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말하는 미학에 대한 규정은 너무 어렵다. ‘예술, 자연, 인생 따위 위에 널리 경험되는 다양한 미를 미적(美的)이라 총칭하고, 이 미적 현상이 지닌 본질이나 법칙성을 명백히 하는 학문을 미학’이라고 한다니 출발부터 막막한 느낌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미학에 대한 벽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적 속성이 분명 있다면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인간의 창조물을 보고 자신이 느끼는 그래서 기쁘고 때론 우울하고, 슬픔까지 느끼는 그 어떤 감정은 무엇일까? 이런 기본적인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예술이란 학문을 넘어선 일반 대중과의 공감과 소통이 가능한 것이리라. 하여 이런 것을 다루는 미학이 넘어서기 어려운 분야에 머물고 있다면 이는 어쩜 그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명백한 한계가 아닐까 한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는 그런 장벽을 허물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누구나 누릴 수 있다는 전재가 있어 보인다. ‘그들만의 미학에서 우리 모두의 미학’으로 변화를 꿈꾸었다는 대단한 작업의 일환이 아닐 수 없다. 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는 인류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하면서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현대 다양한 예술 장르에 이르고 있다. 

이 책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 ‘에셔’(1898~1972)는 네덜란드 출신의 판화가로 수학과 논리학의 난제를 다룬 독특한 작품을 발표한 사람이다. 교묘한 수학적 계산에 따라 작품활동을 했는데 ‘뫼비우스의 띠’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미학의 중심주제를 바로 ‘에셔의 세계’로 이름 붙이며 전개하고 있다.

‘미학 오디세이 1’은 그 예술의 출발선으로 ‘태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로 시작한다. 예술 작품은 시간의 영원성에서 보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영원히 남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원시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자주 들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동굴 벽화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 된다. 하지만 동굴 벽화에 대한 시각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출발이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여겨진다.

이 책에서는 인류 역사의 전개과정에 맞추어 예술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 원시예술에서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의 예술에 대한 중요한 사람과 작품을 통해 당시 미술사조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독특한 글맛으로 전개되고 있다. 역사의 전개되는 과정에서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시대를 비교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이집트와 그리스에 조각상의 차이점이나 중세 모든 것에 우선이었던 종교 그리고 논리학을 비롯한 수학자과 과학들이 예술의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등은 오늘날 학문 간의 벽을 허물고 소통하고자 하는 통섭의 이론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는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을 어떻게 하는가의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라면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지, 취미는 논할 수 없다는 논리로 본다면 공통의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는지의 여부처럼 예술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의 변화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보인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오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미학 오디세이 1’은 바로 이러한 부분으로의 이야기를 모아오고 있는 것이다.

생생한 사진과 그림 등이 다소 어렵고 딱딱함을 벗어나게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비평가들의 전문적인 용어를 피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구성된 책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또한 플라톤과 아리스의 대화형식으로 중요한 점을 강조하듯 보여주는 부분에선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미소가 번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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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지음 / 더블유북(W-Book)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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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읽은 책이 공유되는 모습을 본다
읽는 책마다 느낌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한 사람이 같은 시각으로 볼 때도 책마다 다른 느낌이다. 책이 달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읽을 때마다 사람의 감정 상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들이 가지는 궁금증 하나가 다른 사람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책을 소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기만 하다.

책은 언제나 혼자 읽기 마련이다. 책을 발간한 저자와 읽어가는 독자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어떤 것이라도 분명 소통되는 무엇이 있기에 책은 늘 혼자 읽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는 저자와 독자의 다양한 감정이 노출되게 된다. 이렇게 같은 책에 대한 다른 느낌을 확인하고 싶은데 여건이 허락하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인 것이다. 독자들의 이런 한계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책과 관련된 각종 블러그 활동이나 카페들이 있게 되는 근거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가지는 한계를 넘어선 더 넓고 깊은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리라. 

‘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는 바로 이런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네이버 책 카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는 그야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다른 세상을 경험한 또 다른 느낌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5만 명이 넘는 회원들 중에서 카페에서 1차적인 검증을 거친 리뷰를 다시 선별하여 담았다고 하니 우선 내용의 충실성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책 속에서 같은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는 묘한 기분이 앞선다.

이 서평 집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이 담겨있다. 그것도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소설과 시, 에세이는 물론 인문 사회, 경제 분야 등 여러 분야의 책이 망라되어 있다. 이미 읽은 책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아직 접해보지 못한 다른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출발인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이미 발간된 책에 관한 책들은 한 사람에 의해 일관된 시각을 보여주는 장점이 있지만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이기에 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매력적인 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환경에서 발간된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본다고 해도 편집자의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5만 명 중에서 회원들이 선정한 베스트 글이라고 하지만 특정한 사람들의 중복적인 선정은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다. 특히, 인문, 사회, 경제 분야에서 그러한 점이 집중된다. 한 사람 서평이 2~3개, 혹은 5~6개나 들어간 점은 사람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그 서평이 특출해서 일까? 또 다른 한 가지는 회원들의 서평을 모은 책이라는 의미를 상실하게 하는 책 소개가 그것이다. 그 지면을 활용하여 보다 많은 회원들의 다양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더라도 이 책의 발간 목적이 우선 좋다. 순수하게 책이 좋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 그리고 발생되는 수익금을 사회 환원한다는 점 등은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본다. 어떤 무엇에도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일반인들의 책이 발간되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책읽기에 대한 새로운 모습의 창출이 아닐까 싶다. 이를 출발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책과 더불어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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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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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완성이 사랑으로 가는 길일까?
사랑은 대부분 사람들의 공통된 화두다. 사랑이라는 보이지도 않고 확인도 불가능한 감정에 대해 대단한 호감을 가지면서 그 주변을 멤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랑에 대한 격언이나 정의 등이 있지만 막상 당사자에겐 무용지물처럼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은 철저하게 개인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사람들의 감정인 것이다.

이별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 하는 이별은 없다. 이별이라는 말 속에 이미 다른 사랑이 내재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특정한 단어나 상황 또한 감정이 이처럼 이중적이고 모순되는 상황의 중첩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별 리뷰’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이중적이고 모순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극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주제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랑의 시작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별’이 사랑의 시작이며 ‘이별’에 대한 완전한 작별만이 그 새로운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찾아가는 이별은 현실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모두 문학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실마리로 풀어가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이 또한 문학이 현실의 모습을 다른 언어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법이라면 아주 밀접하게 현실 개개인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저자가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살피는 문학작품은 무려 서른두 편이나 된다. 황지우-너를 기다리는 동안, 배수아-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이만교-결혼은 미친 짓이다, 깃믕옥-무진기행, 황순원-소나기, 전경린-물의 정거장, 김경옥-장국영이 죽었다, 김훈-칼의 노래, 공무도화, 박완서-그 남자네 집, 그 여자네 집, 김형경-외출,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우애령-정혜, 박현욱-아내가 결혼했다 등 모두 사랑과 이별에 대한 선이 굵직한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이미 익숙한 문학작품 속에서 찾고 있기에 더욱 친근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서는 이야기들이다.

‘호모세퍼러투스-
이별하는 사람, 즉 너무 많이 생각하는 사람, 너무 많이 집착하는 사람, 너무 많이 배려하는 사람, 너무 많이 이해하는 사람, 그래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더 사랑받으려고 애쓰고 집착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람. 그만큼 상처받는 사람’

이 범주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직면해야 하는 것이 이별이다. 주변 가까운 사람 누구도 이별을 겪었지만 그들이 내 이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이별은 그래서 다 자신이 감당해야한 운명인지도 모른다. 즉, 스스로 어떻게 이별과 완전한 작별을 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별은 이미 다른 사랑을 포함하는 말이다. 결국 저자가 이 다양한 사례를 들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역설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다른 사랑에 대한 존중, 그것은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은 한때 영화로 만들어져 파문을 일으켰던 ‘외출’이라는 작품을 이야기 하며 이 책의 저자가 한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별이 가슴 무너지는 슬픔이고, 견기기 힘든 아주 구체적인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갈망하고 그 사랑의 완성을 꿈꾸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가야 할 모범답안이 아닐까 한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 이별을 예감하는 사람, 이미 이별로 인해 아픈 사람 누구든 이 책에서 제시하는 서른두 편의 문학작품을 한번쯤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여 지금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한 숨김없는 진단을 해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에 충분한 저자들의 작품이기에 말이다. ‘이별한 자는 불안정한 책이다. 그러므로 다른 책의 힘으로 다시 편집해야 한다.’는 것처럼 자신의 이별을 편집하고 다시 맞이할 사랑에서 이별을 지워야 할 것이다.

‘이별리뷰’는 이별이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그 뒤에 붙어 있는 리뷰에 있다. 이별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리뷰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일 것이다. 저자는 그 경험을 문학작품 속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이 어쩌면 어느 누군가의 이별에 대한 아픔을 구체적으로 건드리지 않고도 일반화 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묘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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