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 동방의 성자, 이야기를 품다 키워드 한국문화 8
강판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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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나무 한그루 심을 일이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의 대표적인 나무가 있다. 삭막한 도심에 계절이 변화는 것을 때마침 알려주는 은행나무가 그것이다. 지금 그 은행나무들은 새싹을 내 놓고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그 잎을 키워가며 회색 도시를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 잎이 더 크고 짙은 녹색으로 변하면 여름일 테고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이제 사람들은 본격적인 가을을 누릴 준비를 할 것이며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하나 둘 은행이 떨어지면 겨울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처럼 이 도시의 사계절은 은행나무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다 깊은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은행나무 뿐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나무 한그루쯤은 자신의 마음에 심어두고서 그 나무가 전하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살아갈 것이다. 그 나무는 곁에 있어 자주 보거니 멀리 있어 가끔 보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문득 생각나 떠올리는 순간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나무와 얽힌 추억은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리라. 그런 나무들 중에 우리민족과 특별히 친숙한 나무로는 단연 소나무가 꼽힐 것이며 그 다음으로 은행나무나 느티나무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 강판권은 직업으로 봐서는 나무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무에 관한한 전공자 못지않은 사랑과 지식으로 무장하고 나무 사랑의 길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책 ‘나무열전’, ‘나무사전’,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등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나무들과 생활하며 ‘은행나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담아 전국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들을 찾아 은행나무와 우리민족의 얽힌 이야기를 ‘은행나무 : 동방의 성자, 이야기를 품다.’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저자는 우선 은행나무의 생물학적 의미를 설명한다. ‘은행나무’는 ‘낙우송’, ‘메타세콰이어’와 더불어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고 있다. 이는 중생대인 지금으로부터 2억 2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의 사이에 번성하며 오랜 시간동안 인류와 함께 해온 나무로 오직 1속 1종으로 인척이 없는 외로운 존재라고 보고 있다. 은행나무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경로는 중국을 통해 들어왔으며 수나무와 암나무로 구분되지만 일반인이 구분하기에는 어려운 점 등 은행나무의 생물학적 특성을 설명해 준다. 

이 책에서 은행나무를 주인공으로 삼는 이유는 생물학적 특성보다는 우리 민족과 더불어 살아온 문화사적으로 살펴보는데 있다. 이는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 등에서 식물을 다루는 식물의 약효가 아닌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생명체로 바라본 것에 의의를 둔다는 것이다. 하여, 마을 입구를 지키며 사람들과 동거 동락해온 이야기가 중심이며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가 관심 갖는 은행나무는 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로 천 년이라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온 나무들이 대부분이며 그 나무들이 뿌리 내리고 있는 용문사, 영국사, 적천사, 소수서원, 도동서원, 성균관, 공자묘 등 사찰, 서원, 향교 등지를 발품 팔아 찾고 있다. 마의태자와 의상대사의 전설이 얽혀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보조국사 지눌의 지팡이에서 자라났다는 청도 적천사의 은행나무, 홍수가 났을 때 이색을 구해주고 그의 무죄를 밝혀준 청주 중앙공원의 은행나무 등 우리 역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과의 사연이 얽힌 은행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이런 은행나무를 찾아 부모가 자식을 품에 안 듯 사랑하는 사람을 반기듯 마음으로 가슴으로 안고 만지고 바라본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은행나무와 우리민족의 정신 사상사적 흐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교와의 만남이다. 유독 서원, 고택, 정자, 성균관, 향교 같은 유교 관련 유적지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이 남아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그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행단’(杏壇)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은행나무가 가지는 생물학적 속성과 유교의 정신이 이어지는 코드가 어울렸다는 것이다. 즉, 은행나무의 긴 수명과 친인척 하나 없다는 특징이 유교의 유구한 정신과 독자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이의 극단적인 모습은 소수서원에서 보이는 경(敬)이라는 한자에 주목한다. 경은 성리학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다스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삶 자체가 공부이고 삼라만상이 스승이라는 성리학의 요체는 은행나무로 집결된다는 것이다.

시간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 흔적은 나무의 몸통에서도 주변 어린 자식나무에서도 찾을 수 있고 그 나무를 기억하는 사람들 마음에도 있다. 이렇게 시간을 담아낸 나무를 세고 안으면서 자신을 돌아본 저자 강판권의 나무사랑은 자신을 성찰하게 만들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삶의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저자처럼 가슴에 나무 한 그루 심어 그 나무처럼 곧고 바르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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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 17명의 건축가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흥미진진 건축가의 세계 부키 전문직 리포트 14
이상림 외 지음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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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보여 지는 공간을 행복으로 채워가는 사람들
한창 특정한 건물들이 늘어나던 시기가 있었다. 국적불명으로 주변 건물과도 어울리지 않고 그 만의 독특함도 없이 생경함마저 느끼게 하는 그런 건물들을 보면서 그 건물을 세우는 건축주나 설계한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건축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본다. 그때 그런 불쾌감을 주었던 건물은 이제 하나둘 사라지고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들은 획일적인 틀이나 어색함을 넘어선 신선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분명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의 반증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떤 특정 관계 속에 속하기 마련이며 이러한 관계는 ‘공간’이라고 하는 범위 안에서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은 대부분 건축물의 범위 안에 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건축물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공간에 대해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인간과 건축물에 대한 배려를 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마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아파트가 아닌가 싶다. 성냥갑으로 표현되는 공간은 인간들의 삶 속에서도 영향을 미처 사람마저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는 그렇게 인간들 일상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공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인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로선택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이나 많은 구직자들에게 한국 건축가들의 삶과 고민과 도전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발간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되는 건축가들의 세계는 건축가들이 건축물에 관여하는 내용에 따른 구분을 하고 있다. 공공 건축, 주택 건축, 상업 공간 건축, 병원 건축, 한 옥 건축 등에서 자신들이 경험한 건축과 관련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건축가들의 실제 건축과정에서 그들의 고유영역을 어떻게 실현해 가고 있는지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이 이런 것이다.’ 라는 학문적이고 사전적 의미보다는 현장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건축가들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장점이 아닌가도 싶다. 여기에 등장하는 건축가는 17명으로 나이나 경력, 성별을 떠나 자기만의 건축 철학을 보여주고 있거나 이제 건축 세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건축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이 건축이라는 ‘보여 지는 건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얻은 자기성찰, 건축이 사람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고 또 건물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며 건축 허가 관련 관청 업무를 비롯해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이 말은 건축가가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규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에 앞서 땅 위에 보여 지는 공간을 만들아 내는 사람으로 그 보여 지는 공간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먼저 생각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정기용 건축가는 우리에게 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편집자의 의견으로 제시된 건축과 건축가의 세계와 문답형식으로 구성된 16가지 관련 궁금증 그리고 전국 건축대학 일람표는 이 책의 발간 목적에 부합하는 건축가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건축가를 직업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가 사는 도시 중심부에 한창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인 건축현장이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이 그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있었지만 아직 그 결말이 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중장비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독특한 설계로 이목을 집중했고 그만큼 기대도 크지만 지상 건축물의 철거 논쟁에 휘말려 시끄럽기만 했다. 건물이 들어설 공간에 대한 지역사람들의 정서와 이후 그 공간 활용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진통은 건축물이 단순히 지상에 솟은 건물로써의 상징적인 의미뿐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그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본다.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를 통해 자연과 사람이 공존, 사람과 건물의 조화, 행복을 전해주는 건물에 기여하는 건축가의 세계를 만날 수 있어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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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깨진 청자를 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 깨진 청자를 품다 - 자유와 욕망의 갈림길, 청자 가마터 기행
이기영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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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시간을 거슬러 인간을 보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기에 무엇이 올바르고 그른 것인지 판단에 앞서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자세를 먼저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수만도 없고 그렇다고 각기 모든 사람들의 삶을 다 올바를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섣부른 무엇인가가 있다. 굴곡 많은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결코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바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이를 어떻게 실현해 가는가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본다면 ‘나, 깨진 청자를 품다’의 저자 이기영은 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다시 도자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사업체까지 운영하고 이제 도자사(陶磁史)를 연구한 책을 발간하였다. 학문간 경계를 넘어서는 활동으로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현재 이기영그릇제작소 대표, 한국도자재단 이사로 재임 중이다.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심히 흘려보내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느 것이 찾고자하는 그 무엇의 실마리를 풀어갈 단서를 제공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의 고려청가 가마터를 순례하는 동안 무엇 하나 허투루 보낸 것이 없어 보인다. 천 년이라는 시간 앞에 온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그 흔적 속에서 자자가 찾아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암 구림을 시작으로 강진, 고흥, 영암, 해남, 장흥, 진안, 고창 등 호남 11개 지역, 서산, 공주 등 충청도 4개 지역, 양주, 고양, 인천, 시흥, 용인 등 경기도 5개 지역을 직접 발로 걸으며 하나하나 확인한 여정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황해도 지역 2곳에 대한 저자의 사색의 결과까지 담겨 있다. 깨진 청자 조각 하나 하나에 눈길을 돌리며 그가 걸어간 길은 만만치 않다. 순례길이었다는 저자의 회고에 공감이 간다.

저자는 우리나라 청자의 초기 과정을 5세대로 구분하며 주목한다. 1세대 신라 말 장보고의 청해진을 주목한다.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장보고의 꿈이 결부된 인근지역에 분포된 가마터를 찾아 그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장보고의 죽음이후 벽골제로 이주한 도공들에 의해 퍼진 시기를 2세대로 보고 있다. 진안과 공주 등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시 시기에 들어서면 흙의 가공이나 유약의 제도 가마 등에서 축적된 기술이 형성된 시기라 보고 있다. 3세대는 중국 월주 계열과 강진의 기술이 접목되는 시기로 지역 호족과 결부되어 청자와 백자가 함께 만들어진다. 4세대는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대량생산체제에 들어선 시기로 본다. 5세대는 한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기로 청저 생산에 있어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생각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초기 청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이나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서 남쪽 바닷가에서 한강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중심부로 이동하는 청자를 만드는 기술이나 가마 등의 모습을 비교 분석을 통해 추론해 들어간다. 저자는 이렇게 청자의 이동 경로를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저자가 발품 팔아 찾아간 가마터에서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시간 앞에 무상한 역사를 돌아보고 있다. 가마터 현장에 남은 관련 유물과 지리적 특색을 살펴 당시 기술 형편과 인력, 재료 수급 등 청자 생산을 둘러싼 환경을 추적하고, 그곳에서 직접 수습한 깨진 도자기 조각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각 지역 청자의 특징을 비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흔적을 찾아보기도 어렵게 변해버린 그곳에서 깨진 조각하나를 두고 저자가 엮어내는 이야기는 청자 파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천 년 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며 인간의 자유와 욕망, 희열과 애환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천 년의 시간은 인간의 개념으로 짐작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무엇이 있다. 깨진 파편들을 보며 저자의 마음에 무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도자기를 빗고 굽는 저자의 마음이 녹아 있으며 그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도자기산업의 현실과 결부되어 그 무게감을 더해갔을 것이다. 그 심정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이미지와 자긍심을 대표하는 청자, 그 미래는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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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 오래된 사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
민병일 지음 / 아우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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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물건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내는 예술
우연한 기회에 내가 사는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화가를 만났다. 그가 거쳐하는 곳을 찾은 사람들은 젊은 국악인들이었고 나는 우연이 그 자리에 합석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젊은 국악인들에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면 세상에서 성공한 누구와도 어께를 나란히 할 수 있다면서 ‘한 분야에 정통하면 통한다.’고 했다. 그 자신도 화가로 그림을 그렸으며 ‘죽설원’이라는 정원을 그렇게 가꾸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 누구와도 당당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본성을 충실한 것이 어쩌면 예술인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예술분야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어떨까? 하루살이가 벅찬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내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풍경하나 물건하나를 보더라도 예술적 감상에 기초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본성을 발견하는 그 눈이 부럽기만 하다. 

민병일은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본성이 깃든 무엇으로 보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유학생활이라는 어려운 과정에서 자신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이 담긴 물건을 사고 또 보관하며 예술적 감성을 보듬어 온 것이리라.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은 저자가 독일 유학생활에서 벼룩시장과 엔티크시장을 발품 팔아 다니며 모았던 ‘물건’들에 얽힌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보고 느낀 독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전해주고 있다. 물론 단순히 전달하는 차원이 아닌 그 속에서 발견한 사람들의 삶의 지혜를 이야기 한다. 

무엇이든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된다. 저자가 그런 마음으로 찾아낸 물건으로는 고서, 그림, 램프, LP 음반, 습도계, 편지 개봉칼, 무쇠촛대, 타자기, 펜촉, 진공관 라디오 등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일상을 함께해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일상의 감성이 녹아 있으며 그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온 물건들에서 저자가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연필하나에서도 그 연필이 다 닮도록 기록한 한 사람의 삶을 발견하고, 편지 개봉칼에서는 연인의 마음을 찾고, LP판의 재킷에서는 반세기 동안 음반 디자인이 변모해온 과정을 발견한다. 이렇듯 옛 물건, 오래된 물건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 그 담긴 시간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려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찾아낸 물건들에서 시간 속에 스며들어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찾아낸다. 그가 찾아낸 사람들은 음악, 미술, 문학 등 사람의 아름다운 본성을 일깨우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예술인의 눈으로 예술적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렇게 그 속에 녹아 있는 인간의 본성인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그 아름다움을 눈과 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현상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은 아님을 안다.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삶의 철학, 정신을 바라보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 어떻게 구현해 나갈 것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찾아갈 수 있는 것은 이 글 속에 담겨 있는 자자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예술적 소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그것도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삶을 성찰하는 깊이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접하는 동안 독자들은 특정한 물건을 매개로 예술의 세계를 안내하는 자자의 독특한 감성을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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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관에 놀러간다
문희정 지음 / 동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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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나도 놀러갈 수 있다
그림, 어렵다. 어렵다기 보다는 잘 모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고, 잘 모른다는 표현보다는 관심 없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사람들의 대다수가 관심 있고 좋아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한다고 이야기 한다. 무엇에 대한 관심은 다른 것들보다 눈길을 많이 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고 또 누릴 수 있게 될 때 관심 있고 좋아한다는 표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도 않으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아하고 싶다는 의지표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몇몇 교류하는 화가들 때문이라도 갤러리나 미술관엘 종종 간다. 화가들을 알아서 가게 되는 것 보다는 미술관과 갤러리를 둘러보며 누리는 시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좋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시된 그림도 감상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것처럼 좋은 것이 있을까 싶다. 바로 이런 마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게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림을 접하기에 녹녹치 않은 벽이 있음을 실감한다. 그것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그 관련 종사자들이 자신들만의 영역을 두고 누군가 그 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대중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전시 또한 한 몫 한다고 여겨진다. 창조된 예술작품이 물론 창조자인 예술가들의 자기실현과정이기도 하지만 대중들과 소통을 통해 예술가가 담아내고 싶은 것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 싶다. 이런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많은 양자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한 측면이 대중 스스로 찾아가서 누리는 것이리라.

‘나는 미술관에 놀러간다’는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주변 곳곳에 숨어있는 듯 존재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직접 찾아가 전시된 작품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일이 만만하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 주말에 뭐할 거냐? 물어보거나, 그림 좀 볼 줄 아냐고 물으면 ‘폼 나게’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추천하면서 함께 갈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고 있어 더 유익한 내용이라는 생각이다.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표갤러리, 헛, 아르코미술관, 국제갤러리, 보안여관, 간송미술관, 상상마당, 리움, 경인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쇳대박물관, 토탈미술관 등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모두 다 서울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 대한민국 인구의 25%이상이 살아가는 곳이고 온갖 문화 예술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서울이기에 어쩜 당연할 수 있다고도 보이지만 수도권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한편으로 그림에 떡이 될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창피해하지 말고 손을 번쩍번쩍 들면서 모르는 건 물어봐야 한다. 미술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왜? 알고 나면 정말 재미있으니까. 꼭 곡 숨겨두고 그들끼리 즐기게 나두기엔 너무 아까우니까'

벽을 넘는 것은 어렵다. 미술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을 가진다면 결코 누리지 못하는 무엇이 있고 그 무엇을 한번이라도 느낀 사람들은 꼭 다시 누리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아갈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제시한다. 우선 보러가고자 하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주변에 함께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공간까지 알려주고 있다. 또한 미술관과 친해지는 세 가지 방법, 올바른 전시 관람법, 미술관에 갈 때 어떻게 입어야 할까?, 누구랑 갈까? 전시정보는 어디서 얻을까? 등 아주 구체적인 방법까지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젊다. 그리고 당당히 즐길 줄 안다. 자신이 즐기는 것을 자신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친구, 부모, 애인 등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거침이 없이 톡톡 튀는 이야기를 주저 없이 할 줄 안다. 그 만의 매력이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곳곳에서 만나며 미술, 그거 별거 아니네. 나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꼭 서울 어느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곳의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저자가 예술을 감상하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아가는 마음을 담아내는 그 내용만 숙지한다면 말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어디에 있느냐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찾아갈 마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안내하는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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