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 그들은 맥도날드만이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
에단 와터스 지음, 김한영 옮김 / 아카이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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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다양성은 인간 생존의 근간이다
현대인들은 문화의 다양성과 보편성이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말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적절한 표현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현대사회는 물리적 거리와는 상관없이 심리적 거리는 무척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각종 첨단 통신기기의 도움으로 인해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처럼 느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각기 나라와 민족이 갖는 고유한 문화적 특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현실이다 보니 다양성은 사라지고 보편성만이 강조되는 현실이 아닌가 싶다. 

지구촌은 이미 하나의 경제공동체나 마찬가지다. 거대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상품의 교역은 농산물이나 공산품을 막론하고 자본의 논리에 따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 선두에 미국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코카콜라, 햄버거 등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미국의 상품들은 상품으로 국한된 것만이 아닌 그 상품과 함께 전파되는 미국의 문화가 함께 동반된다. 이렇게 전파된 문화는 급속도로 한 문화권 내에서 기존문화를 밀어나거나 흡수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상품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간 정신활동의 산물이 학문이나 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음악, 미술, 영화 등은 상품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한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변화시켜왔다.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획일화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바로 그러한 현상을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저자인 ‘에단 와터스’는 심리학의 분야를 예로 들어 미국을 선두로 하는 선진국들의 문화적 영향과 압박이 얼마나 멀리 광범위하게 그리고 깊숙한 부분까지 미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간 정신의 고통과 치유’에 관한 진단과 치료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거나 그 적용이 강요되는 현실에 대한 진단이다. ‘거식증’이라는 질병은 현대사회의 모순을 대표하는 것이며, 심각한 정신적 고통은 심리 상담을 통해 치료를 모색하야 하며, 불안하거나 우울하면 약물을 통한 치료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 과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과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이러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을 찾아 구체적 사례를 통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홍콩의 거식증 환자의 사례 - 그녀는 왜 음식을 거부했을까?, 스리랑카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 쓰나미 이후,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정신분열병 - 다른 세계가 고통을 경험하고 치유하는 방식, 일본에서 다국적 제약회사가 벌인 ’마음의 감기’ 메가마케팅 - 우울증을 팝니다. 등에서처럼 저자는 질병이 발생하는 나라들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이나 사회적 환경을 무시한 일방적 진단이나 처방이 강요되는 현장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따라가며 분석하고 의미 있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정신의학회에서 발표한 기준이나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공세적 마케팅 활동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정신의학적으로 주목되는 특정한 사건에 대해 그것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화적 의미를 살피고, 정신질환 증상들이 특수한 시대, 특수한 장소의 문화와 믿음이 빚어내는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저자의 이러한 고찰은 ‘세계화 시대에도 인간 정신과 문화는 단일하지 않다.’는 전재가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자신만이 ’진리’라는 믿음에서 폭력은 시작된다.’는 것으로 모아지며, 결국,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무차별적인 문화적 폭력에 대항하여 ‘고통과 치유에 관한 다른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다른 문화 사이의 소통은 힘을 가진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흡수하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는 속에서 가능한 것이리라. 힘과 자본의 논리 앞에 다양성이 무기력하게 침몰한다는 것은 어쩜 인간 존재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다소 과격한 제목이 경고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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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 - 대중과 소통하는 '캠퍼스의 글쟁이들'을 만나다
박종현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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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공감을 넘어 통섭에 이르는 길
학자들이 변하고 있다. 닫힌 공간에서 자신들의 전문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해 가는 학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학자들을 떠올리면 그들만의 아성에 갇힌 듯 보였던 것이 또한 사실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바로 그런 학자들이 연구실을 넘어 대중과 호흡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학문 영역을 불문하고 우선 반갑다. 그 반가움은 버겁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이 있음을 느끼게 하는 암묵적 공감에 의한 안도감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를 대표하는 말로 소통과 공감 그리고 통섭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중심에는 특정한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경계를 구분하는 일도 아니다. 바로 인간을 중심에 두고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 막힌 곳을 뚫고 영역과 영역의 경계를 넘어 소통하고 공감하는 사회가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은 한 신문사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이라는 타이틀로 우리시대 자신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주목받고 있는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한 것을 바탕으로 기획된 책이다. 학자 60명이라고 하는 것은 60가지의 학문의 세계를 담았다고도 볼 수 있다. 책의 두께가 말해주듯 적지 않은 숫자이기에 거론 되어지는 학자들의 면면을 살피기에 적절한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목받는 학자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김난도, 박노자, 우석훈, 이덕일, 김정운, 유홍준, 이권우, 정민, 장영희, 최재천, 박석무, 안대회, 조선미, 최창조, 안철수, 정운찬 등 60명의 사람들은 명실 공히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의 관심분야에 따라 조금은 덜 친숙한 사람도 분명 있다. 그렇더라도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학문 분야의 연구 성과를 다른 영역이나 대중과 공유하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있기에 사회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문의 성과를 현실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저자가 선정한 60명의 학자들을 일곱 가지 분류로 나누고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기 때문에 다소 간결한 느낌이 들지만 그들을 대표하는 핵심적인 사항은 놓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한 사람의 학문 영역의 성과는 몇 페이지로 담아낼 수 없는 성질이겠지만 그들의 대중적 활동으로 이미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에 아쉬움은 각 학자들이 발간한 책이나 기타 자료들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솔직히 60명이라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다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관심분야의 사람들을 먼저 찾고 그들에 대한 그간의 정보와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를 비교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어가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시각으로 먼저 찾았던 사람들이 이덕일, 유홍준, 이권우, 정민, 안대회, 조선미, 최창조 등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눈에 먼저 띄는 사람부터 읽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에 실린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자신들의 학문 분야를 ’대중과의 부지런한 소통 속에 즐거운 교감’이라는 생각이 분명함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딱딱한 학문적 성과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분야에서 걸어온 발자취와 고뇌까지 보여주고 있어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의 ‘연구 없는 소통은 공허하고, 소통 없는 연구는 맹목이다.’ 라는 말이 더욱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동안 학문연구 분야에 팽배해 있던 모습의 반증일 것이다.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은 바로 그러한 우리나라 학문하는 풍토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넘어서려는 학자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기에 그들이 내 놓고 있는 목소리를 통해 우리의 현주소를 명확히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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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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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때 철학이 필요하다
강단인문학이 거리로 나오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주목받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대부분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획일적인 학문의 영역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하고 되짚어 본다. 하지만, 진정 인문학의 위기를 자초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가는 차지하더라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문학자들의 행보에 찬사를 보낸다. 젊은 인문학자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거리로 나서며 그들을 필요로 하는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사람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문제와 직면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노력에 의해 인문학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높아졌고 본래 인문학의 소임에 대한 자각과 함께 주목을 받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한다. 본래 인문학은 목적은 ‘주어진 현실과 인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꿈꾸려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강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함께하는 아주 현실적인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문학과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연결하며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젊은 철학자의 선두에 이 책의 저자 강신주가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곧 사람들의 삶의 위기와 동의어’라는 저자의 이야기는 인문학의 본질을 극적으로 대변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구체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과 밀접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이 책에 담긴 내용의 중심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는 저자가 그렇게 고민한 현실문제 중 48가지를 선정하고 그와 관련된 인문분야 고전을 빌어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고전은 동서양을 망라하고 있으며 철학적 사유가 함유된 서적들로 시작하여 현실의 문제와 접목시키는 탁월한 방식으로 사유를 이끌어 가고 있다. 세계적인 인문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저서 속에 담긴 사상의 핵심을 보다 쉽게 풀어 놓기도 하고 동양의 오래된 사유와 비교분석하며 보다 쉽게 현실의 문제에 접근하게 만든다. 이러한 것은 저자의 전작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 2010. 2)보다 훨씬 대중적이다. 사유의 중심은 같으나 이를 전개하는 방식과 흐름에서는 현학적인 언어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언어로 철학적 사유를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더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인문학은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와 직결되는 학문이라고 했다. 이는 책 속에 머물러 있거나 생각에 그치는 철학적 사유가 아닌 실천의 여부와 결부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실천의 문제를 정약용의 이야기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맹자와 주희의 윤리적 감수성이 인간의 본성에 집중되어 있다면, 정약용의 그것은 실천이라는 외적 방향으로 자신의 사유를 진행시킨 것이다.’에서 보여주듯 인문학의 중요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이 다른 무엇보다 돋보이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어려운 철학적 사유를 쉽게 접근하고 있다. 자신의 체험이나 주변에서 일어날만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기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 구체적인 것은 때론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힘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외면하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불편한 진실을 직면할 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게 된다. 이렇듯 철학의 근본적인 힘은 사유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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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노닐다 - 오주석의 독화수필
오주석 지음,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 엮음 / 솔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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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글로 사람을 그리워하다 
미술, 사진, 역사, 인문학 등 전문 영역에 속한다는 것으로 인해 정작 누려할 사람들은 그것들로부터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영역을 설정하고 벽을 쌓아온 것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언제부턴가 이러한 전문영역에 대한 벽을 허물고 있는 선각자들이 있다. 정민, 안대회, 이덕일, 강신주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역처럼 여겨졌던 전문분야의 벽을 과감히 허물어 대중과 공감과 소통을 꾀하며 한발 나아가 때론 당당하게 그 주인의 자리를 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노력에 의해 대중들은 글자 속에만 머물러 있는 옛사람들의 삶의 지혜를 만나게 되고, 강단철학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의 문제점을 바로 직시할 수 있으며, 역사와 현재를 공유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사람 중 전문가들 속에서나 많은 대중들이 마음에 안타까움으로 기억되며 짧지만 굵은 삶을 살았던 사람을 기억한다. 미술사학자 오주석(1956년 ~ 2005)이 그 사람이다.

자신이 속한 한 분야에서 선배들의 업적을 이어받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벅찬 일인지 작품을 읽는 저자의 태도 속에 나타나고 있다. 저자 오주석의 관심은 옛그림 속에 나타난 조상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굳건한 정신이다. 학문의 과정에서 얻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와 감성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유쾌하고 익살스러우며 재미있고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여 사람들의 문화적 감성의 지평을 넓혀준 점이 무엇보다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오주석의 우리문화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맹목적인 국수주의나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우리 것, 우리음악, 우리그림에 대한 그의 사랑이 자신이 공부한 동양사학, 주역, 한문 등 폭넓은 학문 탐구의 지평에서 아우르는 넓이와 깊이를 지녔다. 또한 그의 서양음악에 대한 이해는 일반인을 수준을 넘어선 탐미적인 깊이에 이르러 감성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의 작품해석이 대중들의 공감을 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리라.

이 책에는 옛그림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조상들이 남긴 그림을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가 사랑했던 김홍도의 작품과 김홍도를 있게 했던 정조임금에 대한 관심은 특정한 인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넘어 우리문화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오주석의 가치관과 일상을 알 수 있는 수필형식의 글이 있어 저자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만큼 본다. 그것이 경험이건 지식이건 혹은 추억이건 감수성이건 간에 내 안에 간직되어 있는 것에 비추어 바깥의 사물도 이해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다양한 편견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땅에 살아가며 자신을 오늘에 있게 했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벗어나 올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나아가는 것 같다.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만큼 본다는 저자의 말에 우리는 우리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하는 반성을 해 본다. 알지 못하기에 그 소중한 가치를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결국,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림 속에 노닐다’는 이 책은 그간 발행된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유고간행위원회에서 발행한 유고집이기에 그의 미 발표작들과 살아생전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가슴시린 마음들이 담겨 있어 남은 자들의 슬픔과 떠난 사람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평소 오주석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은 가고 없는 사람을 기억하게 하며 그가 남긴 글을 통해 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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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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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진실 사이 무엇이 있어야 하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출발하여 이웃, 학교, 사회로 그 범위를 넓혀가는 동안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필수조건인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의에 의해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는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순전히 타의에 의해 그것도 강압적인 내몰림이라면 그 압박을 견뎌낼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인 ‘왕따’는 학교라는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강제적인 단절을 의미한다. 어린 나이에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내면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렇듯 한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인간관계는 문학작품 속에서 자주 다양한 인간형으로 묘사되곤 한다. 

‘7년의 밤’에서 사회적 관계의 배경이 되는 것은 가족이다. ‘세령호의 재앙’이라고 불리는 사건의 속내를 들어가 보면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족이 나온다.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가장 최현수를 중심으로 부인 은주와 아들 서원의 가족, 탄탄한 사회적 부와 성공의 대명사처럼 보이는 치과의사 오영재의 감춰진 악마적 본성으로 파탄에 이르는 세령의 가족이 그것이다. 현수나 영재 두 아버지는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서원과 세령이라는 자식들이 그것이며 그를 기반으로 한 가족이다. 한 아버지는 딸의 복수를 해야 하고 한 아버지는 아들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령호의 재앙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살인자의 아들’이 된 열두 살 서원, 또 다른 가족인 친척집으로부터 강압적 단절을 겪고 혼자가 된 서원은 세령마을에서 룸메이트였던 승환을 다시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다. 소설가이자 잠수부인 승환은 아버지의 부하 직원이었고 서원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내 몰린지 7년 후, 등대마을에서 조용히 살던 승환과 서원에게 다시 사건은 시작된다. 복수를 끝내지 못한 세령 아버지 영재의 마수가 시작된 것이다. 아들을 지키려던 아버지의 사형집행이 된 시점이었던 것이다. 소설가의 기록에 의해 사건 전말을 알게 된 서원의 선택은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온 7년이라는 시간, 살인자 아버지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이다. 

‘여자아이가 살해되었고, 엄마가 죽임을 당해 강물에 버려졌으며, 수문을 열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는 사실이다. 분명 일어났던 사건으로 만으로 보면 사실로 무엇 하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들의 나열들로만 마무리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 소설의 중심은 바로 여기서 시작하고 있다. ‘사실과 진실사이 그러나’로 이어지는 그 무엇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실수로 인한 살인과 그것이 불러온 파멸,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의 갈등, 복수를 향한 집념, 한 사람의 선의에 의한 선택이 불러온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지켜야만 하는 무엇,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짊어져야 하는책임, 사실과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나’ 와 같은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딸아이의 복수를 해야 하는 오영재의 삶이 옳다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불가피한 선택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최현수의 입장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간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하며 모두 자신의 삶의 방식이 맞다 는 전재 하에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타협이나 공존의 여지가 지극히 좁으며 때론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각자 자유로운 의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에 모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다 올바른 것일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일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이 쉽지 않은 이유이리라. 이 소설은 탄탄한 구성, 숨 막히는 사건의 전개, 먹먹해지는 가슴으로 짙은 안개 속을 랜턴도 없이 길을 찾아야 하는 암담한 기분을 들게 한다. 꼭 우리 내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그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무거운 과거를 짊어지고 살아온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누구하나 이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못한 존재이기에 그들이 각자 살아가는 삶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성에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이 진실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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