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라 -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담아
함현규 지음 / 빛과향기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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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려면?
흔히들 지금 자신의 삶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막상 이런저런 생각해 보면 현실적으로 걸리는 것들이 많아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자신 있게 자신의 삶에 주인공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단 한번뿐이 삶인데 왜 그럴까? 누군가 대신 삶을 살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적 환경도 되지 못하기에 이런 저런 조건에 매어 자신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삶도 어느 정도 나이 들어가면서 부터는 자신만의 삶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우리 악기 대금을 배운지 만 4년이 되어간다. 함께 배우는 사람들 대부분이 현직에서 물러나 정년을 맞은 사람들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고 난 후 자신만의 일을 찾아 현재를 누리는 그분들에게 40대 중반인 내가 한편으로는 좋아 보인다고 한다. 자신들은 그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후회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늦은 나이지만 그렇게라도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 열정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경험하게 된다. 

‘자기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라’라는 책은 그렇게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면서도 그렇지 못한 삶을 살거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또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자기인생의 주인공이라고 해서 독불장군이나 외톨이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나와 가족, 이웃, 동료 등 사람들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가가 중심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삶에 지침이 될 만한 동서양의 경전과 조언들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삶에 지치고 주변 동료나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 좌절하게 될 때 이를 딛고 일어날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 힘은 동료나 다른 누구에게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기에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고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리라.  

역대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말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내 생활의 현장에서 겪게 되는 현실의 문제와 어떻게 결부되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화된 명제를 개별적이고 구체적이 자신의 사례에 결합시켜 그 속에서 현명한 해답을 찾아낸다는 것은 피상적인 사고로는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저자는 현실의 문제에 해답을 찾고 자아를 발견하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실마리를 재공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쉬운 명제를 이용하여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간 많은 사상가나 철학자들이 현실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수천 년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 속에 답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답은 나와 무관하게 느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책 속에 담긴 좋은 말이 현실로 이어지지 못하고 책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바로 깊은 성찰로 이어지지 못하고 또한 자신의 일상생활에 구체적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서 제시하는 200여 가지가 넘는 무수한 이야기 속에서 단 한 문장에라도 공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실마리 삼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하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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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
조한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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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역사교육을 생각하자
민족이라는 의미가 재정의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때, 민족이라는 의미는 한 국가의 이념에 우선되어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지구촌,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의미가 희석되거나 약화되는 경향성이 있다. 그렇다면 민족이라는 개념이 극대화 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그것은 한 나라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어질 때가 아닐까 싶다. 

이미 지나간 시간, 그 지나간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다시 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흔히들 역사를 보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희망으로 가꿔가기 위해라고 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본다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보고자 하는가이다. 필연적으로 가치판단이 결부될 수밖에 없는 이 역사보기는 그래서 그 시각이 중요한 것이리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역사를 평가하고 편리한대로 이용한다면 또 다른 피해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객관적이고 타당한 시각이 필요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거울로 삼고자 하는 시각이 제대로 반영된 책이 있다. 조한욱의 ‘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이 그것이다. 서양사를 전공한 저자는 서양사의 한 특정한 장면을 가져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의 모순과 연결시킨다. 저자가 서양사를 공부하며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교하여 찾아낸 것이 ‘야만’이라는 개념이다. 이 야만은 “물리적 폭력과 거친 감정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야만’이 아닌 “겉으로는 부드러운 말과 함께 포옹을 하면서 뒤에서는 친구와 친지들의 삶과 운명에 관한 음모를 꾸미는” ‘이성의 야만’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성의 야만’을 담고 있는 중심 키워드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탐욕’, ‘위선과 기만’, ‘강압’, ‘차별’, ‘배신’, ‘몽매’, ‘분노’ 등 7가지 개념이다. 이 개념들을 차용하여 서양사의 에피소드 44가지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의 모습을 비교 분석하며 우리 시대를 성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르주외젠 오스만의 파리 재건축을 통해 우리의 ‘디자인 서울’을 점검한다. 또한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한 아르테미시아 이야기를 통해 ‘천안함 침몰 사건’을 대하는 합동조사단의 ‘모순’과 정부의 ‘다른 의도’를 읽어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나폴레옹의 조카라는 이유로 대통령이 되고 황제가 된 나폴레옹 3세의 모습에서 헌정 파괴를 자행한 대통령의 딸을 유력한 대권후보로 지지하는 우리 사회의 ‘몽매’를 이야기 한다. 

인간이 만들어 온 역사는 환경이나 인종,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주목하는 이 키워드의 공통분모는 권력과 부의 중심인 지배자와 그 반대편에 선 피지배자 사이에 벌어지는 것으로 인간 본연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수천 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책에 담고 있는 저자의 시각은 권력의 편에서 보면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밝히고 있는 모순은 다양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만들어 낸 우리의 공통 유산일 것이다. 굳이 저자가 이러한 모순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보는 이유를 바로 설명하고 있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올바로 성찰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보는 우리 교육현실은 이와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점점 희박해지는 것과 같이 한 나라의 존립 근거가 되는 역사교육을 팽개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역사 교과서를 개정해서라도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판국에 그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의 경우 역사를 방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것이 단지, 안타까움에서 멈춘다면 다행이겠지만 보지 않아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뻔히 보이기에 우리의 미래는 그렇게 희망적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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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화가들의 반란, 민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1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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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대중들의 꿈의 표현이다
최근 개인적 관심사 중 하나인 ‘중요무형문화재’에 대한 검색을 하다가 웃지 못 할 현실을 접하게 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는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무형문화재 가운데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를 말하며 이때 그 대상이 되는 기·예능을 보유한 사람을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라고 부른다. 반드시 지키고 전승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출발했을 이 중요무형문화재에 인간문화재를 선정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거문고 등 12 분야가 있고 그렇게 공석으로 비어있는 기간이 10여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렇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의미와 가치도 충분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출발한다. 우리 손으로 만들고 우리의 소중한 삶이 스며있는 우리의 것이 우리들에게서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버림받았지만 오히려 외국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거꾸로 우리에게 들어와 뒷북을 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어 슬픈 현실임을 느끼게 된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이 책의 주제인 민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민화는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며 일반적으로 민속에 얽힌 관습적인 그림이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의 요구에 따라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여 그린 생활화를 말한다.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 대중들의 치졸한 작품 등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직업 화가인 도화서의 화원이나 화가로서의 재질과 소양을 갖춘 화공이 그린 그림도 포함시켜 말하고 있다. 

이런 민화가 우리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 출발한 민화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성리학에 의해 규정되어 있었으며 정통회화나 도화서 화원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에 의해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 사람들의 주목에 의해 비로써 국내에서도 주목 받게 된 것이라고 한다. 주객이 전도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민화의 가치에 주목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 정병모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현대인의 각광을 받고 세계화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통미술이라는 믿음’으로 민화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 결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민화를 전통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이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로 주목한다. ‘정통화가들이 아무리 격조가 있고 능란한 화풍을 구사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반면, 무명의 서민화가들은 어떤 권위에도 구애되지 않고 어떤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구가했다. 또한 서민의 진솔한 감성과 자유로운 미의식이 담겨 있지만, 양반도 함께 즐겼던 민화는 조선시대의 대중문화다.’라고 민화가 가지는 가치를 밝히고 있다. 

책거리, 문자도, 까치호랑이, 운룡도, 십장생도. 이것은 저자가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담고 있는 민화의 분야다. 조선이라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슴속에 담겨있던 삶에 대한 바람이 극적으로 표현된 부분이다.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길흉화복에 대한 염원,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던 바램 등을 담아 공유할 수 있었던 문화라는 점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국내외 박물관 등을 발품 팔며 접했던 민화를 생생한 도판을 통해 보여주고 설명하며 유사한 것들과 비교분석한다. 

정조의 책거리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있었다는 점이나 이것이 시간이 흘러 에로틱한 책거리가 등장하기에 이르는 시대적 상황을 통해 민화는 그 시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또한 까치호랑이가 우리만의 독특한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부분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이지만 조선 사람들은 이를 자신들만의 독특함으로 변화시킨 창조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민화 속에 다 담겨 있다고 본다. 

시대에 따라 주목받는 것은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민화가 다시 주목받는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찾을 실마리를 찾고자 함이 아닐까?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애환을 민화에 담았듯 현재 우리들도 미래를 희망으로 바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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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29통의 편지 - 스물아홉, 이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마지막 인생 조언
후쿠시마 마사노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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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의 손을 잡고가자
나를 둘러싼 세상은 늘 나만을 배신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싫어하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고, 무엇 하나 생각대로 되는 것도 없고, 하는 일도 재미없고, 무엇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제법 많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며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좌절도 한다. 그런 일상이 싫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데 막상 떠오르는 것 하나 없다. 

이런 생각으로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선배나 상사의 조언도 귀 기울이지 않을 상황이다 보니 그런 사람과 함께 있는 주변사람들조차 늘 불안한 일상을 보내게 된다. 살다보면 일순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면 이를 극복하는 대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일이다. 하여, 그 많은 자기개발과 관련된 책이나 프로그램이 등장하지만 자신에게 꼭 맞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모처럼 용기를 내 생각을 바꿔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만다. 

이런 모습의 전형적인 인간형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내 인생을 바꾼 29통의 편지’의 주인공 스물아홉 살의 ‘츠요시’다. 일어나기 싫은 아침 억지로 눈을 떠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며 회사에 출근하지만 즐거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이직한 친구와 술 한 잔하며 울적한 기분을 토로하는 것이 위안거리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발신지가 적혀있지 않은 편지를 받는다.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문구가 적힌 편지를 받고 의아해 하며 계속해서 전달되는 편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말썽 많은 후배와 더 이상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듣던 상사가 고객용 프리젠테이션을 맡기면서 더 깊은 좌절에 빠지게 된다.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한 주인공은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이런 일상 속에서도 의문의 편지는 계속되고 더군다나 발주를 했던 회사에서 문제제기를 하기에 이른다. 이런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지 난감하기만 한 주인공은 고객회사로 찾아가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지 못한 상황이라 더욱 당황하게 된다. 

‘내 인생을 바꾼 29통의 편지’는 이처럼 특정한 주인공을 내세워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현실을 실감나게 그려가고 있다. 주인공 ‘츠요시’는 나일수도 있고 내 동료일수도 있다. 굳이 30대를 눈앞에 둔 청년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난관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직면한 사람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그 난관을 해결해 갈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그 성찰의 매개로 편지를 활용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자기답게 하면 꿈이 된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무엇을 얻을지 생각하라’, ‘보려고 하는 대로만 보인다’, ‘비오는 날에도 구름 너머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없다’, ‘꿈이 있으면 싫은 사람도 필요한 사람이 된다’ 

절망의 순간에 해답을 손에 쥐어줘도 그것이 답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경우다. 하지만 주변 사람의 애정 어린 관심과 격려로 스스로 가지고 있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며 편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바로 자신이다’라는 것은 확인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막상 그것을 알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 현실 또한 잊지 않고 있다. 

아버지의 후배인 직장 상사와 그 상사의 친구 그리고 동료의 노력이 있었기에 주인공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편지에는 특별한 처방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나와 관련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편지를 통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나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주변의 손길과 더불어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길 희망을 찾아가게 하고 있다. 

이 책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를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편지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문제의 중심으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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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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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담보하는 내 삶의 중심이다
살다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도 있다. 어린 시절 익숙한 길모퉁이를 돌아 집으로 가는 길에 뒷목이 서늘해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거나 처음 가는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언젠가 이곳에 와 봤다는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일들이다. 또한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 등 이성적인 생각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해결되지 못하는 그런 일 말이다. ‘데자뷰’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기 마련이다.  

‘순례자’나 ‘연금술사’로 기억되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새롭게 선보인 이번 작품 ‘알레프’는 바로 그런 현상을 모티브로 자신이 겪은 환생이라는 경험을 토대로 지향하는 바를 이끌어 내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작가지만 그 자기만의 세계로 세계 많은 독자들과 공감하면서 사랑받고 있다. 독특함이라는 것은 때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요인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공감하는 사람들에게는 강한 끌림의 요소가 된다. 

코엘료의 모든 작품의 이야기 전개는 길 위에서 벌어진다. 순례자를 비롯하여 다수의 작품이 여행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았거나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 여행자의 신분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그 길 위에서 얻은 동기부여가 자신이 찾아가는 영적인 탐험의 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  

일상에 묻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흐려지는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새로운 순례길을 나서도록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이번 작품 알레프의 출발도 역시 여행이다. 스승 J의 강압적인 권유에 의해 시작되는 여행길에서 언제나 스스로를 갈 길을 안내하는 표식을 만나고 그에 따라 스스로의 길을 정하며 나선 길이다. 그 길이 바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이어지는 유럽에서 태평양에이 이르는 9288kM에 이르는 대장정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원죄라는 것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역시 자신이 전생에 저질렀던 여인들에 대한 배신으로 인해 자아를 찾아가는 길에서 단절된 무엇을 경험하게 된다. 그 단절된 고리를 찾고 자신의 왕국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대장정의 길에 오르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 길에서 운명 같은 여인을 만나 알레프를 경험하고 두 사람이 각자의 왕국으로 가는 길에 필요한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가까이에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때로는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있다”는 말은 결국 익숙해진 일상과 삶의 근거지에 있지만 자신을 가리고 있는 무엇에 의해 발견하지 못하고 한 참을 돌고 돌아 다양한 경험을 하고서야 비로써 찾았는데 그것이 내 이웃에 있었다는 옛사람들의 경험이 진실임을 알게 해주는 말로 다가온다. 코엘료 역시 자신이 찾아가는 영적인 길에서 주춤거리는 시기를 겪게 되면서 내면의 힘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9288Km에 달하는 길을 다 하고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지금 이 시간 동시에 존재한다는 그 말이 또한 삶은 열차가 달리는 레일이 아니라 그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이며 객차의 칸마다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시간은 그렇게 있는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한 우주 속을 여행하듯 각자의 생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가를 발견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 생의 이유라는 것”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나왔을 때는 분명하게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수많은 시행착오와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그 여정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사람을 알게 되며 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삶의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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