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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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탈진 음지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일제 침략기를 힘겹게 살아냈으며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일구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겪었고 이웃이나 친구들이 어쩔 수 없이 내몰렸던 우리 시대 이야기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살아 있는 오늘날 까마득히 먼 이야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게 금방 잊혀질 이야기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다시 꺼내는 작가가 있다.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앞서 절대 절명의 지상목표로 되었던 시대, 그 그늘에서 삶을 이어왔던 우리 이웃들이 아직 가슴 한켠에 담아두고 있으면서도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라도 대하듯 생소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새롭게 개작하여 우리 앞에 내 놓았다. 조정래 작가의 ‘비탈진 음지’가 그 작품이다. 

40여 년 전에 발표했던 작품을 다시 내 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종이라도 울리듯 깊고 무거운 소리를 묵묵히 내 놓은 것이 어쩌면 작가가 작품 속에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잊혀져 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당시 이야기 하고자 했던 현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지만 외면하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이야기 하고 싶은 작가의 사명감일까? 

50을 바라보는 내 나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되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벌러 도시로 떠난 친구들의 뒷모습이다. 그들을 다시 만난 것은 추석명절 말끔한 옷차림에 옷때깔이 변하고 말씨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나서였다. 낫선 도시에서 적응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표로 남들이 교복입고 가방매고 학교로 가는 시간 공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디뎠을 그들의 모습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너머 무엇인지 모를 쓸쓸함을 보았던 그 모습이 여전히 살아 있다. 

‘비탈진 음지’는 경제성장이 최고의 선이었던 시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들이 겪었던 이야기다. 자의든 타의든 도시로 내 몰리던 그때 남의 소를 몰래 팔고 야간 열차에 몸을 싣고 낫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한 남자의 고달픈 삶의 행로가 그려지고 있다. 낫선 곳에서 고만고만한 이웃들이 모여 판자집을 짓고 살았던 비탈진 산동네에 터전을 잡고 어떻해든 살아보려고 막노동판, 지게꾼, 땅콩장사, 칼갈이 등으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의 몸을 밑천삼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던 주인공에게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은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칼갈이로 연명하는 복천 영감, 하루 밤 사이 연탄가스로 온가족이 죽음을 맞았던 떡장수 아줌마, 가족의 입을 줄이기 위해 서울로 온 식모 아가씨, 복권 파는 소녀 등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그런 일이 40여 년 전 우리 부모 세대들의 삶을 나타낸다는 것으로는 다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다시 작품을 독자들에게 내놓은 이유가 그것이리라. 작가의 눈에 40여 전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 바로 그것이리라. 

국민소득 150달러에서 20만 달러로 급성장을 이룬 만큼 눈에 보이는 세상을 바뀌었다. 그저 보이는 겉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든 알 수 있다. 점심을 먹지 못하는 학생이 널려있고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격차는 40년 전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가던 작가의 작품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다. 굳이 참여문학이니 민중문학이니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작가의 눈에 비친 현실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조정래 작가가 그런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기에 광범위한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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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랑 - 왕을 움직인 소녀
이수광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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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의 근본은 무엇일까?
한 시대를 이끌어 간 정신적 지주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그 이념은 사회 제도적 차원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의 모든 것을 지배하며 삶의 척도를 규정하기 마련이다. 우리 역사 조선에서도 이는 예외 없이 그 힘을 발휘했다. 바로 유교적 이념이 그것이다. 인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이념으로 삼아,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 정치학이다. 이 이념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그 유교의 가치의 발현은 곧 효라고 볼 수 있다. 

효는 부모님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말하며 긍정적인 측면에 부응하는 면이 강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한편으로는 자식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부정적인 면도 함께 보여준다. 효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때론 강압적인 사회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도 당연시 여기는 풍토를 용납하기도 했다. 또한 사회를 유지시키는 통치기반으로 작용하며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온 나라 도처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정려문이나 열녀문 등이 그것을 대표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고 있는 기록으로는 정통 역사서라고 하는 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나타나 당시를 상상하는데 참고할 수 있다. 조선에서 효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이를 잘 알려주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조선시대를 현대사회로 가져온 역사소설 한 편을 만난다. 그것이 바로 이수광의 ‘차랑’이다. 

이 작품 ‘차랑’은 조선시대 있었던 사실 두 가지를 하나로 엮어 작품화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산송 기록과 이항복이 지은 ‘유연전’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성주 땅 천석지기 박수하는 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강압적인 과거급제에 대한 성화를 이기지 못해 집을 나가고 두 딸은 아버지를 도와 집안을 꾸려간다. 큰딸 문랑은 큰살림을 도맡아 꾸려가는 용맹하고 기개 있는 여장부로 작은 딸은 학문에 영민함을 보이며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 만권당이라 불리는 서옥 하헌당을 관리한다. 

어느 날 10여 년 전에 집을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면서 박수하의 집은 혼란에 빠져든다. 너무도 흡사한 외모는 분명 아들이지만 아들로 받아들이기에 뭔가 미흡한 점이 있어 집안에 들여 놓지만 못내 의구심을 풀지 못한다. 며느리 이숙영의 적극적인 옹호로 어느덧 아들로 자리 잡아가는 듯 하더니 모사를 꾸몄던 며느리의 오빠 이창래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며 더욱 혼란스러운 지경으로 치달아 간다. 이창래는 한양에서 나무꾼이자 사기꾼으로 연명하던 사람을 아들 박제구로 꾸며 그 집안의 재산을 가로챌 욕심이었다. 이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작은 딸 창랑이었다. 창랑은 어머니의 재사를 앞두고 불공을 드리기 위해 절에 가던 길에 화적에게 겁탈을 당할뻔 하다가 모면하고 이때 만난 박원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와 혼인하기를 바란다. 박원규와 박차랑은 그 일을 계기로 눈이 맞고 마음이 맞아 혼례를 약속한다. 

성주의 박수하 달성의 박경여의 집안이 산송을 벌이며 철천지원수가 되고 그 와중에 창랑의 아버지 박수하는 죽고 언니 문랑마저 죽임을 당하게 되어 박수하의 집안은 풍지박산이 난다. 언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간 창랑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당시 왕 숙종에게 신문고를 울려 왕의 명으로 암행어사와 탄핵사를 거듭 파견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고 만다. 이 틈을 타 이창래와 며느리 이숙영은 박수하 집안을 접수하여 재산을 빼돌리려 한다. 하지만, 영민한 작은 딸 차랑의 재치로 이창래 일당의 음모가 밝혀지고 두 가문은 화해하며 박원규와 박차랑은 혼인하고 언니 문랑은 정려문을 하사 받는다. 

부모에 대한 효, 풍수지리가 조선시대에 널리 펴져 산송이 많이 벌어졌던 사회풍경 등 조선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이야기는 역사 소설이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모습에서 조금은 다른 주인공들을 등장 시키며 시대를 뛰어 넘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 질투와 분노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근본적인 모습은 그리 변하지 않았나 보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은 어디에 있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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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 테마가 있는 역사기행, 태백산에서 파진산까지 그 3년간의 기록
박기성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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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후 다시 현장을 가다
수십 년 전, 나의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을 연사의 현장으로 안내하고 역사적 사실과 현실의 자신을 이어가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또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책을 통해 그날을 상상해보거나 정통역사서를 공부하는 방법도 그것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렇게 역사를 가까이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통해 접근하는 역사는 당시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이해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역사가 자신과 무관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역사로 접근하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선 대단히 의미 있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최근 한권의 책에 주목한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이라는 이주한의 저작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인 식민지사관과 민족사관의 대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론권력의 지배적인 조선후기에서 그 권력이 조선총독부 권력으로 이어지고 다시 미군정의 핵심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는 시각에 대한 비판을 주로 담아내고 있다. 이는 역사를 볼 때 무엇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한다.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되 당시 시대적 상황과 비교분석하며 종합적으로 살피는 자세가 필요함도 더불어 제시한다. 또한 역사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사라지며 기록에 남는 것이 전부 일 때가 많다. 하여, 역사를 읽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동해야 하는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는 바로 그 역사를 읽는 사람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펼쳐지는 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잡지 ‘사람과 산’에서 책을 만들어온 경험을 살려 ‘삼국사기’(1145, 고려 인종 23년)에 나오는 역사적 현장을 답사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삼국사기의 맥을 살핀 결과를 모은 책이다. 그 기반은 삼국사기로 삼았다. 저자 박기성이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기본서로 삼은 것은 ‘삼국사기’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며, 정사라고는 하지만 편찬시기가 고려시대로 이미 몇 백 년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사실에 따른 한계점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는 분야의 일을 찾아서 하기에 글 속에 즐거움이 묻어있다. 불충분한 사료의 기록, 달라진 지명과 변한 들과 산천으로 정확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저자의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상황이 책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역사계에서 정사로 자리매김한 삼국사기를 전적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한 역사기록이지만 바로 삼국사기를 기반으로 현장을 발로 누빈 결과다. 이런 상황은 전문 사학자로 고증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저자의 발품과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순간도 매력적인 측면이 있지만 또 하나 이 책이 가지는 흥미로움은 ‘궁화운홀>궁불은홀>활불은홀>활벌성? 궁화운홀의 화를 불>벌로 읽으면 궁벌성이나 활벌성이 된다’ 처럼 단어의 변천에 대한 저자의 추적이다. 이렇게 상상력을 동원한 저자의 발굴의 노력에 힘입어 삼국사기의 기록을 확인해 간다. 더불어 삼국사기의 불완전한 틈을 메우고자 활용하는 ‘일본서기’에 대해 저자의 태도다. 일본서기가 날조된 기록이라고 전재하면서도 일본서기의 기록을 적극 수용하는 듯 보이는 태도에 의구심이 일기도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로써는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기가 버거운 점도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연맹, 왜 등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흐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고 이 책을 따라간다면 보다 현실적인 흥미가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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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2 - 노르망디의 코리안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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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주목하는 이유가 뭘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해결되지 못한 과제가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시각을 달리하면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그 시대를 주목하면 자신들이 가진 무엇을 읽어버리기라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과거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시도 자체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일제침략 시대는 그럴지도 모른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편에 서서 같은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살아 그때 얻은 권력과 부를 통해 오늘도 당당히 살아가는 세상이니 말이다. 

과거를 올바로 청산하지 못한 관계로 현실에서 만나는 모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발목이 잡힌 우리는 그것을 알지만 해결할 힘이 없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 힘을 이용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묻어두자고 한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못한 과거는 그대로 있을 뿐이다. 해결될 날이 오기를 기대라며 말이다. 

‘아버지의 길 1’은 주인공 김길수의 파란만장한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무슨일이 일어나더라도 살아남아 아들이 있는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대 절명의 과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일본과 소련의 전쟁에서 소련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혔을 때까지만 해도 그 다짐은 현실의 고통을 이어나가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 전쟁이 주는 인간성 말살을 온몸으로 겪으며 삶의 의미를 잃어가게 된다. 살아남아 조선으로 돌아가 아들을 만나야 한다는 신념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점점 무너진다. 하지만,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돌아가야 할 조선에 있지 않겠냐는 고려인의 이야기에 희미해져 가는 신념을 다시 갖게 된다. 소련군의 일부가 되어 독일과 전투에 참여하면서도 이제는 자신이 돌아갈 조선과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보고 싶고 만나야만 하는 아들과의 대화는 현실을 이겨가는 힘으로 작용하지만 독자들에게는 가슴 아픔을 전해주는 전달자로 등장한다. 전쟁, 죽음, 살인, 조국, 독립 등과 같은 이념은 사라지고 오직 가슴 속에서 울리는 슬픔만이 남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아버지의 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다수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터로 끌려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죽을 목숨인지 알면서도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사람이 가지는 뜨거운 마음을 나눈다. 권력과 부에서 소외된 그들만이 살아가는 방식일지라도 언제 어느 때나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보여주는 인간성의 발현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최대한의 행복을 구하려는 노력은 인간으로서의 본능이자 권리이자 스스로에 대한 의무야.”라는 외침은 그런 인간이 보여주는 한 측면이 아닐까? 시대의 흐름, 민족의 독립, 전쟁과 같은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최대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지만 행복의 가치를 무엇에 두느냐는 사람에 따라 달라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인간의 가치는 바로 자신이 살던 시대의 시대정신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가치를 말살하는 환경에서도 그 가치를 빛나게 하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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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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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역사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니다. 미약하게나마 그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생존해 있다. 가뭄에 계곡물이 모이듯 긴 시간을 두고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서 겨우 듣게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직접 겪었던 일이지만 이렇게 외면당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른 것이 아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된 것인지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 받았다는 사람이나 정부기구 역시 이웃집 불구경보다 못한 처사를 보여준다. 왜 그럴까? 잊고 싶은 기억이 때문인지, 아니면 부정하고 싶은 과거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은 지난 시간이고 또한 그것은 우리 모두의 시간이다. 

역사교과서 왜곡, 정신대 할머니, 독도문제 등 한일 양국 간 현재 진행형의 이러한 문제의 출발이 바로 일제침략기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현안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지난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모든 것의 중심에 청산하지 못한 이제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이재익의 ‘아버지의 길’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사라지고 있는 우리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다루고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항일운동, 독립무장투쟁,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동포들의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다. 저자 이재익이 밝힌 바에 의하면 ‘아버지의 길’을 쓰게 된 모티브는 2005년 한 방송사에서 기획한 ‘노르망디의 코리안’이라는 방송이라고 한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우리의 근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실을 슬프게 그러내고 있다.  

김길수, 조선에서 태어나 제2차세계대전의 격전지 노르망디 전투에서 독일군으로 참전하여 미군의 포로로 잡힌 사람이다. 연합군의 승리를 전하는 사진 한 장 속 인물로 조선사람이 어떻게 그곳에서 포로가 되었으며 더군다나 독일군으로 참전하게 되었을까? 그는 어떤 인생역정에 대한 호기심은 매워가는 과정이 바로 이 작품에 담겼다. 김길수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는 과정에 바로 우리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역사의 가혹한 수레바퀴가 있으며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한 맺힌 그리움과 절규가 녹아 있다. 

일제의 침략만행이 극한으로 치닫던 1938년 9월, 한때 함께한 무장독립투쟁의 동지였던 아내가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키우며 대장간에서 힘겹지만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길수는 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 건우에게 줄 피리를 만들어 조금 일찍 집으로 가던 길에 조선인 징용병을 찾던 스기타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열차에 태워진다. 열차 안에는 비슷한 처지로 끌려온 사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스스로 입대한 사람, 장남인 형 대신에 입대한 열네 살의 어린 아이, 힘은 장사지만 애끓는 슬픈 사랑의 사연을 간직한 청년 등이 타고 있다. 온갖 고난을 뚫고 생사의 순간들을 넘어가며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면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한편, 독립운동을 위해 산으로 갔던 길수의 아내는 게릴라 무장투쟁에서 혁혁한 성과를 보여주며 성장하지만 탈영병으로 신분을 위장한 배신자에 의해 일본군 포로로 잡히고 만다. 또한 슬픈 사랑의 주인공 역시 그 사랑하는 여인이 같은 부대안에 위안부로 끌려 온지도 모르고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추운 만주벌판 일본군 막사에서 군사훈련으로 생활하던 조선인 징병자들에게 처음 전투에 돌입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소련과의 전투가 그것이다. 1부까지의 이야기는 서두에 불과한 것일까? 아직 주인공 김길수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의 행로가 보이지는 않는다. 

처음 접하는 이재익의 글에서는 감정의 흐름이 최대한 억제되고 있다. 슬픈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 그 슬픔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흐려지는 것을 아는 것이리라. 슬프지만 억제된 감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깊이와 폭을 증폭시키게 만들어 한층 감정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의 글이 가지는 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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