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역사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니다. 미약하게나마 그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생존해 있다. 가뭄에 계곡물이 모이듯 긴 시간을 두고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서 겨우 듣게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직접 겪었던 일이지만 이렇게 외면당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른 것이 아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된 것인지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 받았다는 사람이나 정부기구 역시 이웃집 불구경보다 못한 처사를 보여준다. 왜 그럴까? 잊고 싶은 기억이 때문인지, 아니면 부정하고 싶은 과거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은 지난 시간이고 또한 그것은 우리 모두의 시간이다. 

역사교과서 왜곡, 정신대 할머니, 독도문제 등 한일 양국 간 현재 진행형의 이러한 문제의 출발이 바로 일제침략기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현안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지난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모든 것의 중심에 청산하지 못한 이제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이재익의 ‘아버지의 길’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사라지고 있는 우리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다루고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항일운동, 독립무장투쟁,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동포들의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다. 저자 이재익이 밝힌 바에 의하면 ‘아버지의 길’을 쓰게 된 모티브는 2005년 한 방송사에서 기획한 ‘노르망디의 코리안’이라는 방송이라고 한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우리의 근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실을 슬프게 그러내고 있다.  

김길수, 조선에서 태어나 제2차세계대전의 격전지 노르망디 전투에서 독일군으로 참전하여 미군의 포로로 잡힌 사람이다. 연합군의 승리를 전하는 사진 한 장 속 인물로 조선사람이 어떻게 그곳에서 포로가 되었으며 더군다나 독일군으로 참전하게 되었을까? 그는 어떤 인생역정에 대한 호기심은 매워가는 과정이 바로 이 작품에 담겼다. 김길수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는 과정에 바로 우리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역사의 가혹한 수레바퀴가 있으며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한 맺힌 그리움과 절규가 녹아 있다. 

일제의 침략만행이 극한으로 치닫던 1938년 9월, 한때 함께한 무장독립투쟁의 동지였던 아내가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키우며 대장간에서 힘겹지만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길수는 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 건우에게 줄 피리를 만들어 조금 일찍 집으로 가던 길에 조선인 징용병을 찾던 스기타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열차에 태워진다. 열차 안에는 비슷한 처지로 끌려온 사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스스로 입대한 사람, 장남인 형 대신에 입대한 열네 살의 어린 아이, 힘은 장사지만 애끓는 슬픈 사랑의 사연을 간직한 청년 등이 타고 있다. 온갖 고난을 뚫고 생사의 순간들을 넘어가며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면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한편, 독립운동을 위해 산으로 갔던 길수의 아내는 게릴라 무장투쟁에서 혁혁한 성과를 보여주며 성장하지만 탈영병으로 신분을 위장한 배신자에 의해 일본군 포로로 잡히고 만다. 또한 슬픈 사랑의 주인공 역시 그 사랑하는 여인이 같은 부대안에 위안부로 끌려 온지도 모르고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추운 만주벌판 일본군 막사에서 군사훈련으로 생활하던 조선인 징병자들에게 처음 전투에 돌입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소련과의 전투가 그것이다. 1부까지의 이야기는 서두에 불과한 것일까? 아직 주인공 김길수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의 행로가 보이지는 않는다. 

처음 접하는 이재익의 글에서는 감정의 흐름이 최대한 억제되고 있다. 슬픈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 그 슬픔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흐려지는 것을 아는 것이리라. 슬프지만 억제된 감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깊이와 폭을 증폭시키게 만들어 한층 감정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의 글이 가지는 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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