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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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탈진 음지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일제 침략기를 힘겹게 살아냈으며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일구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겪었고 이웃이나 친구들이 어쩔 수 없이 내몰렸던 우리 시대 이야기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살아 있는 오늘날 까마득히 먼 이야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게 금방 잊혀질 이야기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다시 꺼내는 작가가 있다.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앞서 절대 절명의 지상목표로 되었던 시대, 그 그늘에서 삶을 이어왔던 우리 이웃들이 아직 가슴 한켠에 담아두고 있으면서도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라도 대하듯 생소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새롭게 개작하여 우리 앞에 내 놓았다. 조정래 작가의 ‘비탈진 음지’가 그 작품이다. 

40여 년 전에 발표했던 작품을 다시 내 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종이라도 울리듯 깊고 무거운 소리를 묵묵히 내 놓은 것이 어쩌면 작가가 작품 속에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잊혀져 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당시 이야기 하고자 했던 현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지만 외면하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이야기 하고 싶은 작가의 사명감일까? 

50을 바라보는 내 나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되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벌러 도시로 떠난 친구들의 뒷모습이다. 그들을 다시 만난 것은 추석명절 말끔한 옷차림에 옷때깔이 변하고 말씨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나서였다. 낫선 도시에서 적응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표로 남들이 교복입고 가방매고 학교로 가는 시간 공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디뎠을 그들의 모습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너머 무엇인지 모를 쓸쓸함을 보았던 그 모습이 여전히 살아 있다. 

‘비탈진 음지’는 경제성장이 최고의 선이었던 시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들이 겪었던 이야기다. 자의든 타의든 도시로 내 몰리던 그때 남의 소를 몰래 팔고 야간 열차에 몸을 싣고 낫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한 남자의 고달픈 삶의 행로가 그려지고 있다. 낫선 곳에서 고만고만한 이웃들이 모여 판자집을 짓고 살았던 비탈진 산동네에 터전을 잡고 어떻해든 살아보려고 막노동판, 지게꾼, 땅콩장사, 칼갈이 등으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의 몸을 밑천삼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던 주인공에게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은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칼갈이로 연명하는 복천 영감, 하루 밤 사이 연탄가스로 온가족이 죽음을 맞았던 떡장수 아줌마, 가족의 입을 줄이기 위해 서울로 온 식모 아가씨, 복권 파는 소녀 등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그런 일이 40여 년 전 우리 부모 세대들의 삶을 나타낸다는 것으로는 다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다시 작품을 독자들에게 내놓은 이유가 그것이리라. 작가의 눈에 40여 전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 바로 그것이리라. 

국민소득 150달러에서 20만 달러로 급성장을 이룬 만큼 눈에 보이는 세상을 바뀌었다. 그저 보이는 겉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든 알 수 있다. 점심을 먹지 못하는 학생이 널려있고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격차는 40년 전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가던 작가의 작품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다. 굳이 참여문학이니 민중문학이니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작가의 눈에 비친 현실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조정래 작가가 그런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기에 광범위한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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