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랑 - 왕을 움직인 소녀
이수광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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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의 근본은 무엇일까?
한 시대를 이끌어 간 정신적 지주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그 이념은 사회 제도적 차원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의 모든 것을 지배하며 삶의 척도를 규정하기 마련이다. 우리 역사 조선에서도 이는 예외 없이 그 힘을 발휘했다. 바로 유교적 이념이 그것이다. 인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이념으로 삼아,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 정치학이다. 이 이념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그 유교의 가치의 발현은 곧 효라고 볼 수 있다. 

효는 부모님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말하며 긍정적인 측면에 부응하는 면이 강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한편으로는 자식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부정적인 면도 함께 보여준다. 효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때론 강압적인 사회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도 당연시 여기는 풍토를 용납하기도 했다. 또한 사회를 유지시키는 통치기반으로 작용하며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온 나라 도처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정려문이나 열녀문 등이 그것을 대표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고 있는 기록으로는 정통 역사서라고 하는 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나타나 당시를 상상하는데 참고할 수 있다. 조선에서 효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이를 잘 알려주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조선시대를 현대사회로 가져온 역사소설 한 편을 만난다. 그것이 바로 이수광의 ‘차랑’이다. 

이 작품 ‘차랑’은 조선시대 있었던 사실 두 가지를 하나로 엮어 작품화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산송 기록과 이항복이 지은 ‘유연전’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성주 땅 천석지기 박수하는 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강압적인 과거급제에 대한 성화를 이기지 못해 집을 나가고 두 딸은 아버지를 도와 집안을 꾸려간다. 큰딸 문랑은 큰살림을 도맡아 꾸려가는 용맹하고 기개 있는 여장부로 작은 딸은 학문에 영민함을 보이며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 만권당이라 불리는 서옥 하헌당을 관리한다. 

어느 날 10여 년 전에 집을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면서 박수하의 집은 혼란에 빠져든다. 너무도 흡사한 외모는 분명 아들이지만 아들로 받아들이기에 뭔가 미흡한 점이 있어 집안에 들여 놓지만 못내 의구심을 풀지 못한다. 며느리 이숙영의 적극적인 옹호로 어느덧 아들로 자리 잡아가는 듯 하더니 모사를 꾸몄던 며느리의 오빠 이창래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며 더욱 혼란스러운 지경으로 치달아 간다. 이창래는 한양에서 나무꾼이자 사기꾼으로 연명하던 사람을 아들 박제구로 꾸며 그 집안의 재산을 가로챌 욕심이었다. 이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작은 딸 창랑이었다. 창랑은 어머니의 재사를 앞두고 불공을 드리기 위해 절에 가던 길에 화적에게 겁탈을 당할뻔 하다가 모면하고 이때 만난 박원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와 혼인하기를 바란다. 박원규와 박차랑은 그 일을 계기로 눈이 맞고 마음이 맞아 혼례를 약속한다. 

성주의 박수하 달성의 박경여의 집안이 산송을 벌이며 철천지원수가 되고 그 와중에 창랑의 아버지 박수하는 죽고 언니 문랑마저 죽임을 당하게 되어 박수하의 집안은 풍지박산이 난다. 언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간 창랑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당시 왕 숙종에게 신문고를 울려 왕의 명으로 암행어사와 탄핵사를 거듭 파견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고 만다. 이 틈을 타 이창래와 며느리 이숙영은 박수하 집안을 접수하여 재산을 빼돌리려 한다. 하지만, 영민한 작은 딸 차랑의 재치로 이창래 일당의 음모가 밝혀지고 두 가문은 화해하며 박원규와 박차랑은 혼인하고 언니 문랑은 정려문을 하사 받는다. 

부모에 대한 효, 풍수지리가 조선시대에 널리 펴져 산송이 많이 벌어졌던 사회풍경 등 조선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이야기는 역사 소설이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모습에서 조금은 다른 주인공들을 등장 시키며 시대를 뛰어 넘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 질투와 분노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근본적인 모습은 그리 변하지 않았나 보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은 어디에 있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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