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3
심재우 외 지음 / 돌베개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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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를 바라보는 한 통로, 왕

인간에게 권력 욕구는 무한한 것일까?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목숨이지만 권력은 때론 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접한다. 그만큼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권력의 최고 정점은 민주제에서는 대통령이며 왕조 국가에서 왕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 정점을 향해 뛰어들었지만 성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권력은 다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였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여기서 사대부의 나라였다는 점은 왕조 국가에서 왕고 더불어 권력의 한 축을 사대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권력의 한 축이었던 사대부들에 관한 연구는 많은 책들을 통해 접했지만 다른 한 축이었던 왕에 대한 접근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었기에 그만큼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았을 것이고 ‘왕’이라고 하는 단어가 주는 카리스마에 의해 지래짐작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나마 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대부분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공적인 측면에 치우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왕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함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진들이 모여 연구한 결과를 엮은 책이다. 한마디로 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살피고 간추려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의 왕으로부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망라한 연구 결과의 총화라고도 볼 수 있다. 왕은 곧 국가라고 보았던 측면에서 왕의 존재와 존재방식 그리고 그들이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구중궁궐 속 왕의 진면목을 살피기에 아주 적절한 텍스트로 여겨진다.

 

‘조선의 왕실과 궁중문화는 유교 통치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핵심이며,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중심축이었다.’고 평가는 왕과 궁중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절름발이 식으로 조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말로 들린다. 이 점이 왕을 주목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왕에 대해 살피는 것에는 ‘왕의 권위와 역할’, ‘국왕의 하루 엿보기’, ‘왕의 사생활’, ‘한시漢詩로 보는 국왕의 문학’, ‘국왕의 건강관리’ 등으로 구분하여 접근하고 있다. 이는 조선의 공식적인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왕이 남긴 여타의 기록물을 통해 조선 왕의 일상생활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사회에서 왕은 온전히 권력을 향유하는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순간부터 왕은 수많은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다. 유교의 가르침에 의해 올바른 군주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했으며 관료의 임명에서도 절차에 따라야 하고 천재지변에도 책임을 져야 함과 동시에 백성을 위해서 끊임없이 민정을 살펴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왕들은 은밀한 사생활까지 정해진 법규에 따라 간섭을 받아야 했다.

 

국가의 상징, 최고의 권력자로써의 왕에 대한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유교국가에서 왕의 존재근거와 방식 그리고 삶에 관한 전반적인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묘호가 정해지는 과정, 관료 임명에 거쳐야 하는 수순, 경연을 통한 공부, 먹고 입는 문제에서 잠자리 등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설명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해 주는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단순한 부분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사람들은 가끔 왕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하지만 왕은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왕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인지를 알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권력에는 책임과 의무가 반드시 수반됨을 왕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 권력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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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활용 긍정 사전
장 피에르 마뉴.뤽 테시에르 도르푀유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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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말에 담긴 긍정성을 찾아서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다. 비슷비슷한 일상의 연속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현재를 어떻게 꾸려가는 가에 따라 많은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 하여, 일상을 돌아보며 미래를 예측 가능한 요인들로 채워가고 싶어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러한 자기계발 방법들이 제시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자신에게 딱 맞는 방법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 이럴 때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생각을 바꿔보는 것이다.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한 방법을 찾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며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이럴 때 우선 그 말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살피고 자신이 처한 조건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또한 그런 말들 속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 말고도 다른 의미로도 사용가능한 것들이 많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담고 있는 것이 지금 살피는 ‘일상 활용 긍정 사전’이다.

 

‘일상 활용 긍정 사전’은 사전은 사전이되 일반적인 사전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사전이라고 하면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일상 활용 긍정 사전’은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 단어가 사용되는 일상에서의 의미를 넘어 때론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함께 담고 있다.

 

결과 - 끝까지 가야 얻는 것, 개선 - 내 마음의 책상 정리, 기다리다 - 기다림은 약속을 믿는 행위, 돈 - 돈의 사용처가 나를 말한다, 미덕 - 참된 아름다움 갖추기, 미래 - 오늘은 남은 생의 첫날, 보편 - 너와 내가 믿는 것, 쏘다니다 -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사람, 이제 - 과거를 매듭짓는 말, 주다 - 기대하지 않고 베풀기, 행복 - 자신과 잘 지내는 것, 휴식 - 더 달리고 싶을 때가 쉴 때, 휴가 - 시계를 보지 않는 시간

 

일상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환경을 표현하는 용어를 선정하고 이를 일정한 순서로 묶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에서 시각을 달리한 방법으로 자신의 기분과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단어를 통해 자신을 잘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게 한다. 한 단어에 한 장을 할애하여 유명한 문학작품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리하여 그 뜻을 전하고 명언이라고 할 수 있는 말들을 통해 자신의 일상과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또한 마지막에는 일상활용법을 담아 구체적인 적용방법을 제시해 준다.

 

흔히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 시각을 바꾸어 긍정적인 마인드로 전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이를 자기계발로 이어지게 만들어 주는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다. 단어 속에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을 성찰 할 수 있고 또 삶을 긍정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시각이다. 늘 곁에 두고 순서에 관계없이 펼쳐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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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있다 샘깊은 오늘고전 13
이경혜 지음, 정정엽 그림, 허균 원작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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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인간 허균의 속내로 다가가다

조선의 역사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을 찾으려 한다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위로는 왕으로부터 일반 백성 그리고 노비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억울하다는 죽음은 대개 시간이 흘러 상황이 바뀌면 그 억울함이 풀리기도 한다. 억울함이란 때론 상황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임을 당하곤 난 후 아주 오랫동안 거론조차 금기시된 사람이 있다. 조광조나 허균이 그런 사람들에 포함된다.

 

허균(許筠, 1569~1618)은 우리에게 홍길동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동생으로도 허난설헌의 시집을 간행하게도 했다. 양천 허씨로 당대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관직에 나아가 벼슬을 하였으나 세 번의 파직과 광해군 때인 1618년 역모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처형을 당했다. 관직생활 중 중국에 원접사 종사관으로 다섯 번이나 다녀왔다. 그는 무엇보다 시문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며 당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자유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교산시화’, ‘성소부부고’, ‘성수시화’, ‘학산초담’, ‘도문대작’, ‘한년참기’, ‘한정록’ 등이 있다.

 

사람을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것도 자연인이 아닌 정치적 삶을 살다간 사람은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균에 대한 시각은 대부분 정치인으로써 허균의 활동과 그의 문학에 집중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할 말이 있다’는 시인으로 그가 남긴 시를 통해 한 인간인 허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의 제목은 그가 형장에 끌려갈 때 할 말이 있다고 외친 기록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결국 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저자는 허균이 남긴 시를 통해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찾아간다. 허균이 살았던 조선 중기의 시대상황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던 그의 자유분방함은 사대부들의 질시와 탄압에 의해 좌절을 겪게 된다. 또한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의 보살핌 속에서 살다 형과 누나마저 떠나고 일본의 침략에 의한 전쟁과정에서 부인마저 잃게 되면서 심리적인 좌절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이 허균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당시로써는 선진적인 사고와 개혁적 성향을 보여주며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치며 행동으로 옮겨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저자가 선택한 시를 다섯 분야로 나누고 각 시를 통해 시가 담고 있는 허균의 마을을 유추해 보는 형식을 취했다. 좌절된 자신의 삶의 모습이 반영되는 것들이 많으며 해학과 풍자적인 시와 당시 궁궐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시들도 있다. 사대부들의 시각에 의해 유교사상과 배치되는 모습을 보였던 허균이지만 그러한 사대부들의 시각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피해가지 않고 정면 승부를 펼치는 모습이다. ‘너희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삶을 살아갈 것이다.’ 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얼들과 어울리며 평등의 세상을 꿈꾼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시대적 규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스러운 행동, 자신에게 닥친 시련에 정면 대결을 하는 모습, 일찍 천주학을 받아들이는 등 그의 삶은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오늘날까지도 명쾌하게 설명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그 중심에 허균을 죽음으로 몰아간 역모 사건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모함인지 적극적인 허균의 행동인지에 대해 설명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삶을 평가하는데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은 그런 정치인으로써 허균의 삶보다는 시 속에 담겨 있는 인간적인 모습에 주목하여 ‘인간 허균’의 참 모습에 접근하려는 저자의 시각이 중심이기에 죽음의 현장에서 할 말이 있다고 외친 그의 말이 무엇인지 유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인간 허균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그가 남긴 작품이기에 이 책을 통해 허균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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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내 인생 - 이 시대 최고 명사 30人과 함께 하는 한 끼 식사
신정선 지음 / 예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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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삶의 특별한 기억이다

사람에게 기억되는 것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시간일까? 모든 것은 바로 기억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도 입맛을 사로잡았던 음식도 그 기억이 있어 추억할 수 있고 추억은 곧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나이 들어가면서 더욱더 깊이 알게 된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는 사람, 맛에 목숨 건 사람, 관심 없는 사람 중 나는 어디에 속할까? 겉으로 보기에는 관심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나에게도 기억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을 무료하게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 친척집을 찾아가는 기차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때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한 시절이기에 마땅한 간식거리도 없었다. 처음타보는 기차와 집을 떠나 어딘가에 가고 있다는 설렘으로 들뜬 내 손에 쥐어준 삶은 계란과 사이다 한 병은 아버지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함께 생각나는 것이다. 삶은 계란이 어떤 맛이었는지 보다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기에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서른 명의 각기 다른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의 중심에 음식 한 가지를 둘러싼 추억과 더불어 지금 자신을 있게 한 그 무엇이 동시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일간지 신문에 ‘내 인생의 맛’을 연재하던 기자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만의 특별한 맛, 기억을 찾아 나섰다. 사회 각 분야별로 알만 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기반으로 엮은 책이 ‘맛있다, 내 인생’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에겐 맛에 대한 어떤 기억이 존재할까? 책을 읽지 않고 책 이야기를 하거나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맛에 대한 이야기는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여, 저자는 그들의 기억을 사로잡고 삶의 한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음식과 마주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꺼낸다.

 

이순재와 비빔냉면, 신경숙과 깻잎장아찌, 이승철과 간장게장, 에드워드권과 순댓국, 김대우와 초밥, 윤대녕과 고등어회, 패티김과 물냉면, 배병우와 민어찜, 김수영과 좁쌀미음, 황주리와 짜장면, 강수진과 양념갈비, 박찬일과 우동, 이원복과 돈가스, 하성란과 콩국, 이지나와 낙지볶음, 배한성과 인절미, 서상호와 물회, 이진우와 볼락구이, 진태옥과 잔치국수, 문훈숙과 오믈렛, 이왈종과 복맑은탕, 장석주와 호박젓국, 조태권과 홍계탕, 이희와 막회, 승효상과 김치죽, 전무송과 라면, 정끝별과 팥칼국수, 안효주와 핫도그, 김윤영과 만두, 조은과 수수부꾸미

 

생애 잊을 수 없는 맛이라는 코드에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도 있고 이 사람과 이 음식이 과연 어울리기나 할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조합도 보인다. 이런 느낌은 유명인들에 대해 생긴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어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음식이 있고 그 음식들에 대해 느끼는 맛에 대한 감각도 천차만별이기에 같은 음식에 대한 느낌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 삶의 한 순간에 특별한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이룬 맛에 대한 기억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서른 명의 맛에 대한 기억은 맛 자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삶의 추억과 동일시되는 맛에 대한 기억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매개로 남는다.

 

맛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는 것은 어쩜 삶을 추억하는 매개가 없다보고 여겨진다. ‘맛이 아니라, 삶과 추억’을 나누고 싶었다는 저자의 소망이 실현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서른 명의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삶의 진한 맛을 추억하는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맛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기에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삶은 특별한 삶이었으리라. 나 역시 맛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있는 삶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나만의 특별한 삶을 추구해 갈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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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 - 늦깎이 답사꾼의 불교 문화재 기행
박필우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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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느끼고 담아온 우리 문화재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국도를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길을 가다 가장 반가운 것이 고동색 안내판이다. 문화재를 안내해주는 이정표는 고동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모르는 길을 가다 고동색 안내판을 보면 반갑고 지금 아니면 언제라도 반드시 찾아가 봐야할 것 같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를 문화재 답사의 길로 나서게 만든 것이 있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보고난 후다. 높지 않은 언덕에 오직 하늘만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던 그 아름다움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로부터 시작된 문화재 답사는 수년 동안 이어져 가깝고 먼 길을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문화재가 몇 개 있다. 석탑으로는 이미 말한 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고 건물로는 보물 제1310호인 나주 불회사 대웅전이며 석등으로는 보물 제111호 담양군 남면에 있는 개선사지 석등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아 자주 찾아보곤 했다. 유홍준의 문화유적답사기가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전 일이지만 지금도 눈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모습만으로도 반갑기만 하다. 오랜만에 답사 다니면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하는 책을 만났다. 박필우의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가 그 책이다. ‘역사학자도 아니고 전문 답사가도 아니며 그저 우리 역사가 좋고 답사 여행이 즐겁다’는 저자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한의 애정을 나타낸다. 돈 주고 해라고 해도 안할 일들을 서슴치 않고 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온갖 어려움까지 즐거움을 주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여행이든 스포츠든 취미활동을 넘어선 일상의 무엇이 되는 것이다.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는 이런 과정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경험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렇게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화재는 대부분 불교와 관련이 있다. 이는 우리 역사와 불교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수궁이 가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불교와 민간신앙이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현재의 자신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특별히 신앙이 되는 종교적 이해요구와는 상관없다. 그렇더라도 불교의 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라는 제목에 낚였다. 이 낚임은 기분 좋은 낚임이다. 전통 문살이 주는 그 깊은 정을 느껴 수십 장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표지의 사진 한 장은 큰 미끼다. 이 제목이 본문을 따라가 보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영주 성혈사 나한전의 문살에 넋을 놓았던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저자는 일부러 찾아가서 만난 문화재에 대해 지극히 감성적 접근을 하고 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대부분의 마음을 대신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더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솔직히 문화재를 직접 대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전문 용어로 설명된 안내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만 한 이유도 있다. 건물, 탑, 등, 가람 등의 명칭에서부터 세부적인 사항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지식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이런 점은 문화재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흔적이나 마음을 알아가는 장애가 되기 일쑤다. 저자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전문 답사가도 아니라고 하지만 10여 년 동안 같은 길을 걸어왔기에 그러한 전문지식이 이미 익숙한 언어가 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전문용어에 매이지 않으면서 감성을 바탕으로 한 안내를 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걸어가는 길 위에 독자를 초대해 함께 걸어가듯 말이다.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라는 제목에 낚인 사람으로 저자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사찰 건물의 문살은 특이한 것이 많다. 이 책에서도 언급한 성혈사뿐 아니라 미황사, 불갑사, 내소사 등 독특하고 오래 묵어 더 깊은 속정을 보여주는 그 문살들만을 모아 저자의 감성적 마음으로 본 느낌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본다면 어떨까?

 

우리역사와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저자처럼 열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는 못한다. 그런 독자들에게 내가 살아가는 인근에 있는 문화재로 찾아갈 용기를 낼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을 발간한 저자의 속마음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처럼 비전문가인 사람도 감성적으로 바라본 문화재에서 감동을 얻기에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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