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다, 내 인생 - 이 시대 최고 명사 30人과 함께 하는 한 끼 식사
신정선 지음 / 예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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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삶의 특별한 기억이다

사람에게 기억되는 것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시간일까? 모든 것은 바로 기억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도 입맛을 사로잡았던 음식도 그 기억이 있어 추억할 수 있고 추억은 곧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나이 들어가면서 더욱더 깊이 알게 된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는 사람, 맛에 목숨 건 사람, 관심 없는 사람 중 나는 어디에 속할까? 겉으로 보기에는 관심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나에게도 기억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을 무료하게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 친척집을 찾아가는 기차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때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한 시절이기에 마땅한 간식거리도 없었다. 처음타보는 기차와 집을 떠나 어딘가에 가고 있다는 설렘으로 들뜬 내 손에 쥐어준 삶은 계란과 사이다 한 병은 아버지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함께 생각나는 것이다. 삶은 계란이 어떤 맛이었는지 보다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기에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서른 명의 각기 다른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의 중심에 음식 한 가지를 둘러싼 추억과 더불어 지금 자신을 있게 한 그 무엇이 동시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일간지 신문에 ‘내 인생의 맛’을 연재하던 기자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만의 특별한 맛, 기억을 찾아 나섰다. 사회 각 분야별로 알만 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기반으로 엮은 책이 ‘맛있다, 내 인생’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에겐 맛에 대한 어떤 기억이 존재할까? 책을 읽지 않고 책 이야기를 하거나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맛에 대한 이야기는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여, 저자는 그들의 기억을 사로잡고 삶의 한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음식과 마주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꺼낸다.

 

이순재와 비빔냉면, 신경숙과 깻잎장아찌, 이승철과 간장게장, 에드워드권과 순댓국, 김대우와 초밥, 윤대녕과 고등어회, 패티김과 물냉면, 배병우와 민어찜, 김수영과 좁쌀미음, 황주리와 짜장면, 강수진과 양념갈비, 박찬일과 우동, 이원복과 돈가스, 하성란과 콩국, 이지나와 낙지볶음, 배한성과 인절미, 서상호와 물회, 이진우와 볼락구이, 진태옥과 잔치국수, 문훈숙과 오믈렛, 이왈종과 복맑은탕, 장석주와 호박젓국, 조태권과 홍계탕, 이희와 막회, 승효상과 김치죽, 전무송과 라면, 정끝별과 팥칼국수, 안효주와 핫도그, 김윤영과 만두, 조은과 수수부꾸미

 

생애 잊을 수 없는 맛이라는 코드에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도 있고 이 사람과 이 음식이 과연 어울리기나 할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조합도 보인다. 이런 느낌은 유명인들에 대해 생긴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어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음식이 있고 그 음식들에 대해 느끼는 맛에 대한 감각도 천차만별이기에 같은 음식에 대한 느낌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 삶의 한 순간에 특별한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이룬 맛에 대한 기억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서른 명의 맛에 대한 기억은 맛 자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삶의 추억과 동일시되는 맛에 대한 기억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매개로 남는다.

 

맛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는 것은 어쩜 삶을 추억하는 매개가 없다보고 여겨진다. ‘맛이 아니라, 삶과 추억’을 나누고 싶었다는 저자의 소망이 실현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서른 명의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삶의 진한 맛을 추억하는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맛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기에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삶은 특별한 삶이었으리라. 나 역시 맛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있는 삶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나만의 특별한 삶을 추구해 갈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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