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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 - 늦깎이 답사꾼의 불교 문화재 기행
박필우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2월
평점 :
마음으로 느끼고 담아온 우리 문화재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국도를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길을 가다 가장 반가운 것이 고동색 안내판이다. 문화재를 안내해주는 이정표는 고동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모르는 길을 가다 고동색 안내판을 보면 반갑고 지금 아니면 언제라도 반드시 찾아가 봐야할 것 같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를 문화재 답사의 길로 나서게 만든 것이 있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보고난 후다. 높지 않은 언덕에 오직 하늘만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던 그 아름다움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로부터 시작된 문화재 답사는 수년 동안 이어져 가깝고 먼 길을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문화재가 몇 개 있다. 석탑으로는 이미 말한 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고 건물로는 보물 제1310호인 나주 불회사 대웅전이며 석등으로는 보물 제111호 담양군 남면에 있는 개선사지 석등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아 자주 찾아보곤 했다. 유홍준의 문화유적답사기가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전 일이지만 지금도 눈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모습만으로도 반갑기만 하다. 오랜만에 답사 다니면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하는 책을 만났다. 박필우의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가 그 책이다. ‘역사학자도 아니고 전문 답사가도 아니며 그저 우리 역사가 좋고 답사 여행이 즐겁다’는 저자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한의 애정을 나타낸다. 돈 주고 해라고 해도 안할 일들을 서슴치 않고 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온갖 어려움까지 즐거움을 주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여행이든 스포츠든 취미활동을 넘어선 일상의 무엇이 되는 것이다.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는 이런 과정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경험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렇게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화재는 대부분 불교와 관련이 있다. 이는 우리 역사와 불교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수궁이 가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불교와 민간신앙이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현재의 자신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특별히 신앙이 되는 종교적 이해요구와는 상관없다. 그렇더라도 불교의 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라는 제목에 낚였다. 이 낚임은 기분 좋은 낚임이다. 전통 문살이 주는 그 깊은 정을 느껴 수십 장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표지의 사진 한 장은 큰 미끼다. 이 제목이 본문을 따라가 보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영주 성혈사 나한전의 문살에 넋을 놓았던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저자는 일부러 찾아가서 만난 문화재에 대해 지극히 감성적 접근을 하고 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대부분의 마음을 대신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더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솔직히 문화재를 직접 대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전문 용어로 설명된 안내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만 한 이유도 있다. 건물, 탑, 등, 가람 등의 명칭에서부터 세부적인 사항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지식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이런 점은 문화재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흔적이나 마음을 알아가는 장애가 되기 일쑤다. 저자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전문 답사가도 아니라고 하지만 10여 년 동안 같은 길을 걸어왔기에 그러한 전문지식이 이미 익숙한 언어가 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전문용어에 매이지 않으면서 감성을 바탕으로 한 안내를 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걸어가는 길 위에 독자를 초대해 함께 걸어가듯 말이다.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라는 제목에 낚인 사람으로 저자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사찰 건물의 문살은 특이한 것이 많다. 이 책에서도 언급한 성혈사뿐 아니라 미황사, 불갑사, 내소사 등 독특하고 오래 묵어 더 깊은 속정을 보여주는 그 문살들만을 모아 저자의 감성적 마음으로 본 느낌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본다면 어떨까?
우리역사와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저자처럼 열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는 못한다. 그런 독자들에게 내가 살아가는 인근에 있는 문화재로 찾아갈 용기를 낼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을 발간한 저자의 속마음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처럼 비전문가인 사람도 감성적으로 바라본 문화재에서 감동을 얻기에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