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
촘촘한 열매가 빈틈이 없다. 품을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다짐일까? 잎에까지 가시를 달아 그 틈을 메꾼 마음이 세상을 향한 닫힌 것으로 보여 안쓰럽기도 하다. 겨울 오후 짧은 햇살받아 눈부시다. 어느 고등학교 교정에서 만났다.


늘푸른넓은잎나무로 한국과 중국 등에 분포하며 변산반도와 완도, 제주도에 자생한다. 묘아자나무, 호랑이발톱나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늙은 호랑이의 가시라는 뜻으로 노호자 또는 개의 뼈라는 뜻으로 구골이라고 부른다.


꽃은 4∼5월에 피고 향기가 있으며 5∼6개가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열매는 둥글고 9∼10월에 적색으로 익는다. 한방에서는 잎과 열매를 약재로 이용한다.


*부안 도청리의 호랑가시나무 군락 - 천연기념물 제122호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 천연기념물 제516호 로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도 제법 오래된 나무가 있다.


'가정의 행복', '평화'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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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들다'
둘이 아닌 하나다. 서로가 서로를 허용한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서로의 다름이 한 범주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근거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빛이 어둠을 향하고 어둠이 그 빛을 받아들임으로 서로를 품었다. 둘이 만나 하나될 수 있는 지점이 여기서 출발한다.


한 범주를 지향하는 그대와 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서로가 스며듬을 허용한 순간부터 그렇게 쌓아온 시간이 쌓여 오늘 여기에 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며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계는 그대의 순하고도 넓은 아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모든 것이 다 그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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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친근함은 나라꽃이라는 것에서 시작되나 꽃 자체로도 근사한 모양과 색으로 반긴다.


대한민국의 국화다. 한국,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 등지에서 심어 재배하고 있다. 정원, 학교, 도로변, 공원 등의 조경용과 분재용 및 생울타리로 널리 이용된다.


꽃은 7~10월까지 피며 보통 홍자색 계통이나 흰색, 연분홍색, 분홍색, 다홍색, 보라색, 자주색, 등청색, 벽돌색 등이 있다. 꽃의 밑동에는 진한 색의 무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꽃은 홑꽃과 여러 형태의 겹꽃이 있다. 열매는 길쭉한 타원형이고 10월에 익으며 5개로 갈라진다. 종자는 편평하며 털이 있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보면 “우리 나라에는 단군이 개국할 때 무궁화가 비로소 나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 나라를 일컫되 반드시 ‘무궁화의 나라’라 말하였으니,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봄을 장식하였음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라는 기록도 있다.


무궁화가 보라색, 자주색, 붉은색, 연분홍색,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이 있다.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 '일편단심', '끈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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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 4
윤진영 지음 / 다섯수레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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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에 담긴 조선 사회

사람들은 기록에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다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며 관심사를 기록하고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며 심지어 자신의 얼굴의 변화까지 수시로 가록한다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기는 시대다사진이라는 수단이 생기면서 일어난 변화다훗날 이런 기록들은 역사의 산물로 그것을 기록했던 시대를 회상하는 매개로 사용될 것이다우리가 조선시대를 담았던 풍속화를 통해 그 시대를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상을 담았다그 일상 속에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과 의지가 담겼다관인과 사인 풍속화를 통해 이제 까지 쉽게 접해 보지 못했던 임금을 비롯한 조선사회 관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한 '관인 풍속화', 선비와 양반사회의 운치 있는 삶과 오늘 날 까지도 전해지는 우리사회의 생활 풍속의 유래를 담은 '사인 풍속화', 그리고 조선 후기에 들어 풍속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해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서민들의 등장으로 조선 풍속화의 전형을 이룬 서민 풍속화까지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사회의 다양한 삶을 들여다본다.

 

조선시대 풍속화라고하면 김홍도와 신윤복 만 있는 것은 아니다풍속화의 선두주자였던 사대부 출신 윤두서를 선두로 그의 영향을 받았던 조영석과 이 흐름을 이어받은 김홍도와 신윤복 그리고 조영석과 유숙 등의 그림도 만날 수 있다더욱 주목되는 것은 같은 주제의 다른 그림들을 나란히 보면서 그림 감상의 즐거움을 더 한다.

 

개인적 주목한 그림은 1499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십로도상축이다전라북도 순창이라는 곳에서 열 명의 노인들이 모여 십로회를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렸던 그림이다오백년 전 노인들의 만남과 사연이 담겨 있다이 모임을 주도했던 사람이 신숙주(1417~1475)의 동생 신말주(1429~1505)신말주는 단종 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나 이듬해 세조가 즉위하자 사직하고 순창으로 내려와 귀래정을 짓고 은거했다그의 10대손인 신경준(1712~1781)은 귀래정유허비를 통해 은둔의 삶을 살았던 신말주의 삶을 전하고 있다가까운 곳에 이런 문화적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 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일반적인 풍속화에 대한 인식의 폭을 관인 풍속화와 사인 풍속화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조선 사회를 구성했던 전반적인 계층의 주요한 관심거리를 통해 사회 전반적인 모습에 대한 이해를 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그렇더라도 조선 풍속화의 백미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주목받으며 등장했던 일반백성들을 주인공으로 한서민 풍속화'에 있다고 보인다.

 

형상을 보전하는 데에는 그림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고전 속의 구절은 풍속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문자 기록으로 대신할 수 없는 실존의 모습들은 풍속화를 통해 세상에 전해지고 거듭날 수 있게 된다풍속화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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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의 순간'
쌓고 쌓아서 비로소 형체를 만들었다. 간절함에서 비롯된 조심스러운 마음의 결정체이다.


아침 햇살의 온기에도 사라질 미약한 존재이지만 순간을 살기 위해 짧지않은 시간을 수고로움으로 견디고 버텨온 것이다.


눈에도 보이지 않은 미세한 존재가 방울로 뭉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함에서 온다.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벽을 허물고 거리를 좁혀 상대가 스며드는 것을 허용할때 가능해진다.


이슬방울의 영롱함은 그렇게 스며듬을 허락한 마음이 빚어낸 꽃이다. 꽃으로 쌓아온 우리의 시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스며듬을 허락한 그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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