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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섰다.
멀리 사는 이들이 '내일이야'는 한마디에 주저없이 나선 길이다. 곡성과 옥천, 울진과 서울에서 출발은 달랐지만 정해진 시간에 한곳에 모였다. 초봄 제주에 이어 오랜만이다.

김밥을 사고 물을 챙기고 누군가는 배낭을 메고 다른이는 지팡이를 챙기는 동안 모두는 신발끈을 조였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꽃을 찾으며 걷는 중에는 혹 힘들어하는 이는 없는지 속도를 조절하며 산길을 걷는다. 누구 한사람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서로를 부르며 눗맞춤 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상으로 삼은 꽃만이 아니다. 풀이든 나무든 익숙하거나 생소한 것도 가리지 않고 나누다 보면 어느순간 같은 장소에 함께 머문다.

서두르거나 재촉하지도 않으면서 각자 독특한 자세와 방법으로 꽃들과 눈맞춤하고 있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달라도 마음이 닿는 곳은 하나임을 알기에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이 쌓여 벗들의 마음 가득 꽃 닮은 미소가 넘친다. 표정만 봐도 그날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한 벗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전설적인 나무 주목 앞에 섰다. 나무가 건너온 시간을 눈으로만 짐작하기에는 정성이 부족하기에 품에 들어 가만히 안겨 본다. 안기는 내가 안았지만 어디 나무의 시간이 내어준 품의 풍덩 빠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한 꽃친구들의 품에 안긴듯 한없이 포근한 든든하다. 나무를 안거나 안겨본 이들만이 공유하는 느낌이리라.

모두는 서로에게 이런 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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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24-05-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람한 만남과 우정. 모두 행복한 동행 같습니다
 

오월의 숲이다.

짙어지는 녹음 속으로 아직은 부드러운 햇살이 만나 꽃으로 피어난다. 잎과 햇살 사이를 부지런한 바람이 길을 터주고 있다. 숲이 주는 다독거림으로 옮긴 발걸음이 한없이 느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곡을 오르다 올라다본 잎이 수줍어 보이는 것이 아직은 덜 여물었다. 잎만큼이나 수줍은 볕이 여름으로 가는 길목임을 알려주는듯 환하다. 아직은 겁먹지 말라는 위로와 함께.

적당한 그늘에 아무 곳이나 주저앉아도 좋다. 그렇게 멈춘 걸음에 나뭇잎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가슴에 품어 그 싱그러움을 채워둔다.

마주본 빛이 나뭇잎을 통과하는 동안 나도 빛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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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가遊山歌

화란춘성하고 만화방창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를 구경을 가세.

죽장망혜단표자로 천리강산 들어를 가니, 만산홍록들은 일년일도 다시 피어 춘색을 자랑노라.

색색이 붉었는데, 창송취죽은 창창울울한데 기화요초난만중에 꽃 속에 잠든 나비 자취 없이 날아난다.

유상앵비는 편편금이요, 화간접무는 분분설이라. 삼춘가절이 좋을씨고 도화만발점점홍이로구나.

어주축수애산춘이라던 무릉도원이 예 아니냐. 양류세지사사록하니 황산곡리당춘절에 연명오류가 예 아니냐.

제비는 물을 차고 기러기 무리져서 거지중천에 높이 떠 두 나래 훨씬 펴고 펄펄펄 백운간에 높이 떠서 천리강산 머나먼 길을 어이 갈꼬 슬피운다.

원산 첩첩 태산은 주춤하여 기암은 층층 장송은 낙락에 허리 구부러져 광풍에 흥을 겨워 우쭐우쭐 춤을 춘다.

층암절벽상의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 드리운 듯 이골 물이 수루루루룩 저골 물이 솰솰 열의 열골 몰이 한데 합수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져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 문답하던 기산영수가 예 아니냐.

주곡제금은 천고절이요 적다정조는 일년풍이라. 일출낙조가 눈앞에 어려라(버려나니) 경개무궁 좋을시고.

*경기 12잡가 중 한 곡으로 봄을 맞아 구경하기를 권하고 봄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다.

초록에 초록을 더하더니 어느사이 경계가 사라졌다. 어느 무엇이 더 돋보이는 시절보다야 눈요기 거리는 덜하지만 서로 품어 안아 너와 내가 구분 없는 이 시절이 더 귀한 것 아니던가. 봄도 끝자락으로 달려가는 이때, 마음씨 좋은 벗님들과 산천경개 어느 곳에서 만나지기를 빌어본다.

https://youtu.be/oPRAvjCFAjQ

매번 이춘희 명창의 유산가를 듣다가 이번엔 젊은 소리꾼 강효주의 소리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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嗛 마음에 맞을 겹

우연히 한자 한자를 들여다 본다. 마음에 맞을 겹이다. 평소 주목하고 있는 '겹치다'에 닿아있어 그 의미를 헤아려 본다. 겹은 거듭하여 포개진 상태를 일컫는다. 겹쳐지려면 겸손함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서로가 통하여 겹에 이르러야 비로소 마음에 맞는다.

뜰에 핀 작약이 빛을 품었다. 화사한 꽃잎이 서로를 품으니 더 깊어진 색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겹쳐지니 비로소 조화로움을 얻어 생기롭다.

겹쳐져야 비로소 깊어진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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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생살을 찟듯 묵은 둥치를 뚫고 움을 틔웠다. 가능성으로 출발한 꿈이 현실화 되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나무 둥치에 봄볕에 병아리 나들이 하듯 싹이 돋았다. 보아주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자리다. 애초에 설 자리가 아닌듯 싶으나 그건 구경꾼의 심사에 지나지 않을뿐 싹은 사생결단의 단호함으로 이뤄낸 결과일 것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이 봄 뿐이겠냐마는 더디기한 한 봄을 애써 기다린 이유가 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꿈을 펼치느라 곱고도 강인한 싹을 내는 식물의 거룩한 몸짓을 본다. 일상을 사느라 내 무뎌진 생명의 기운도 봄이 키워가는 새 꿈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봄은 틈이며 숨이자 생명이다.

그 봄 안에 나와 당신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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