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를 읽고 있다. 26만 단어가 넘고 3만 개의 어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1904년 6월 16일 목요일 하루 동안 여러 등장인물들이 더블린에서 경험하는 여러 일들을 싣고 있다. 그들의 여로를 따라 바닷가와 더블린 시내를 걷고, 그들의 문학과 철학에 관한 대화를 듣고, 그들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어떤 것이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지 모호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조이스는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둔다고 했지만, 오랜 시간을 통해 연재되었던 이 작품의 스키마, 사건의 동시성, 곳곳에 배어있는 아일랜드 역사에 대한 작가의 생각, 풍자를 위한 의도적인 언어의 유희 등은 작품 전체를 조감하고 숨겨진 상징을 읽어내는 능력을 요구한다. 또한 성서, 호머, 셰익스피어, 밀턴, 토마스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 단테, 니체, 괴테, 모차르트, 바그너 등의 신학, 철학, 문학, 예술과 아일랜드 민속음악, 유럽의 역사, 신화에 걸친 방대한 지식이 담겨있다. 이러한 내용이 주인공의 의식을 차지하고 있어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다가 자주 장애를 만난다.
『율리시스』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읽은 책은 제임스 조이스의 삶을 다룬 그래픽 노블이다. 알폰소 자피코의 『제임스 조이스』다. 제임스 조이스의 아버지 존 조이스와 어머니 머리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의 유년시절로 시작한다. 그 시절 아일랜드의 정치 외교 경제적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다. 청년 조이스에게 영향을 주었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일랜드의 정치인, 친구들, 연인들 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파리 유학시절의 경험은 모친상을 당해 아일랜드로 돌아왔던 그가 다시 떠나기로 결심하게 한다. 결혼과 함께 아일랜드를 떠나 스위스, 이탈리아, 파리에 체류하며 다시는 더블린에 가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항상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더블린은 그의 애증의 대상이다. 작품에서 그가 더블린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곳이 그의 존재의 뿌리가 되고, 동시에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술로 인해 더욱 심해지는 녹내장을 앓으면서, 작품을 써내는 열정을 보이기도 하고, 의기소침해져서 기행을 일삼기도 했다. 조이스의 죄의식을 만들어냈던 사건들을 엿보게 되고, 그 죄의식과 욕망의 충돌 사이에서 글을 쓰는 행위가 그에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조이스를 아는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읽고 오히려 칼 융과 만날 것을 권유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조이스의 작품에 그의 깊은 내면의 자아들을 잘 묘사되어 있다는 뜻이다. 『율리시즈』의 스티븐과 블룸은 조이스의 자아다.
동서문화사에서 출판된『율리시스』로 시작했다. 각 장마다 잘 요약된 줄거리는 더블린이라는 미로 속으로 들어갈 독자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이다. 동서문화사의 『율리시스』는 너무 친절한 번역 때문에 오히려 작가의 문체와 의도를 놓치게 된다. 아일랜드어나 그리스어 원문을 번역해놓아서 작가가 이 단어를 통해 던지는 중의적 의미라든지 계속해서 나타나는 이 단어가 내포하는 암시라든지, 언어유희를 통한비판 등을 놓치게 된다.
나보코프가 말하듯, 조이스는 “온갖 종류의 언어트릭,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 단어의 치환, 언어의 되풀이, 동사를 기괴한 한 쌍으로 만들기, 소리 흉내(508p 『나보코프 문학 강의』)” 등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천재적 작가다.
동서문화사와 범우사 번역본과 원서를 비교하며 읽었다. (원서는 책으로 읽다가 조이스 프로젝트를 알게 되어 그 사이트를 이용해서 읽었다. 이 사이트에는 조이스 연구서와 비평, 역사, 인물들에 대한 많은 자료가 들어 있다. http://dh.aks.ac.kr/~red/wiki/index.php/The_Joyce_Project) 주석의 방향이나 정보의 상세성에서도 두 번역에 차이가 있다. 김종건 교수의 『율리시스』는 언뜻 보면 어려운 듯하지만 의역보다는 더 이해하기 쉽다. 불행히도 범우사에서 출판 당시 따로 펴냈던 주석본을 갖고 있지 않아서, 어문학사에서 다시 출간된 김종건 역 『율리시스』를 샀다. 어문학사 『율리시스』는 현대적이 어투로 조금씩 수정이 되어있고, 주석 번호는 범우사의 것과 일치한다. 어문학사 주석부분을 펴놓고 범우사 책에 마음껏 줄 긋고 메모해가며 읽고 있다. 방대한 주석 분량 때문에 한 페이지 넘어가기가 시간이 걸렸지만, 3장과 10장, 11장에 이르면서 의도된 동시성, 시각을 통한 의식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문장과 부호들, 청각을 통한 음악적 구성들을 만나면서 조이스의 탁월함을 깨닫게 된다. 그의 세계의 일부는 선명하게 일부는 모호한 채로 경이롭게 다가온다. 조이스를 칭송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처음에 도움을 받은 책은 김종건 교수의 『제임스 조이스 문학 읽기』다. 이 책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 시, 산문, 희곡들을 소개하고 각 작품마다 내용과 해석을 담고 있다. 특별히 조이스 연구자들의 다양한 비평과 해석을 소개하고 있다. 『율리시스』각 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분석하고 있다.
가장 많이 도움을 받고 있는 책은 김종건 교수의 『율리시즈 연구1,2』 다. 1995년에 출판된 책이다. 책 제목 그대로 본격적인 율리시즈 연구다. 각 장마다 더블린 거리의 지도와 주인공들이 지나간 출발점과 조우한 장소, 도착점을 상세하게 그려넣었다. 실제로 김종건 교수는 더블린에 체류하며 이 지역을 탐색했음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각 장의 문체와 주제, 상징, 그들을 이끌어가는 이미지와 지각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개안이라고 해야하나, 모호했던 세계가 밝아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김종건 교수의 율리시즈와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34년간의 연구는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언제 다시 볼까 싶어서 도서관 대출로 읽다가 결국은 다 구매했다. 2권은 아직 오고 있는 중이다. 이 연구서를 읽다보면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의미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이스는 자신의 작품을 가볍게 읽을 것을 독자들에게 권했지만, 그의 의식은 그렇게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것이 조이스의 작품을 대하는 독자의 아이러니다.
이렇게 여러 권 읽고 나면 『나보코프 문학 강의』 제임스 조이스 편은 가볍게 리마인드하는 책으로 좋다. 만약 『율리시스』 읽기를 포기했던 경험이 있고,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면 『나보코프 문학 강의』'제임스 조이스' 편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위의 연구서와 달리 장벽을 느끼지 않도록 각 장에 대한 요약과 해석을 가볍게 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본문을 읽기 전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를 수도 있다. 특별히 나보코프는 독자가 『율리시스』에서 간과하게 되는 장면과 의미를 짚어준다. 아니 여기 그런게 있었어? 하고 놀라게 된다. 나보코프에 의하면 두 번째 정도 읽는 몇몇 독자들은 눈치채는 내용이라고 하니 첫 번째 읽으면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전체적인 조감을 한 후에야 알게되는 상징이다. 그 내용들은 조이스의 천재성을 확신하게 한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다보면『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더블린 사람들』의 인물과 사건이 다시 반복되거나 회상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율리시스』를 읽다가 잠시 『더블린 사람들』의 단편들을 찾아보는 것도 내용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너무 오래 전에 어렵게 읽었었던 기억만 남아있는데 이 기회에 다시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일랜드의 역사는 보통 영국의 역사에 포함되어 출간된 책만 갖고 있다. 서점에서도 따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어서 검색과 영국사를 참고했다. 이 기회에 아일랜드 배경인 청소년 소설『슬픈 아일랜드』을 읽었다.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때 굶주림과 이산, 전염병을 피해 여행하는 형제들 이야기다. 감자역병이 대기근의 원인이라는 기존 관점과 달리, 아일랜드에서 이루어진 식량수탈도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소설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아이들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찾아내도록 할 수 있다. 함께 아일랜드의 간략한 역사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하는 『율리시스』 읽기는 12월에 마친다. 함께 읽지 않았으면 못 읽었을 책이었다. 함께 읽기를 잘했다. 조이스의 역작이자 실패작인 『피네간의 경야』는 도전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