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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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한 편지에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와 같은 작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1805년 제1차 나폴레옹 전쟁 직전부터 조국 전쟁이라 불리는 1812년의 제 2차 나폴레옹 전쟁을 지나 1820년까지 15년 동안 559명에 이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대하소설이다. 역사소설, 전쟁소설, 성장소설 등으로 불릴만한 서사가 담겨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를 거론할 만 하다.

 

작가는 유럽 국가들의 대 나폴레옹 동맹과 전쟁의 역사를 서술하고 평가한다. 이 산문 부분에서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보게 된다. 3권에서 제논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가설의 오류를 논증하는 부분은 독특하다. 역사는 인류의 운동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 운동은 무수한 인간들의 의지로부터 흘러나오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연속적인 사건들 가운데 임의로 한 사건만을 떼어 고찰한다 해도 그 시작점을 찾을 수 없다.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인간 의지의 총합으로서 고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관찰을 위해 무한소 단위역사의 미분, 즉 인간들의 동질적인 욕구를 가정하고 적분법(이 무한소의 총합을 취하는 것)을 가정할 때만 우리는 역사의 법칙에 대한 이해를 기대할 수 있다.(33519p)”

이 작품을 두 번 혹은 여러 번 읽으면 작가의 독특한 역사관에 더 관심을 두고 읽게 된다. 조급한 마음으로는 얼른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다.

 

특별히 작가는 이 소설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그는 나폴레옹이 특별히 뛰어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이 연속되는 인류의 운동에 의해 움직인 인물이다. 그는 애초에 이런 전쟁을 일으킬 욕망이 없었던 인물이라고까지 말한다. 한 인물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무수한 인간들의 의지의 총합에 의해 생성된 운동 에너지-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의 흐름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개인이 책임을 회피할 명분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적 영웅주의를 부정하고 권력을 부정하는 관()이다.

 

러시아의 제1차 대 나폴레옹 전쟁(1805)이 러시아의 의지와는 다르게 협상(틸지트)으로 끝난 후, 2차 전쟁(1812)의 시작은 개인들의 모욕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국경부근에서 시작된 긴장과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1812624일 나폴레옹은 50만 명의 대군을 직접 이끌고 러시아 원정길에 나섰다. 나폴레옹군이 승리할 때는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이 모스크바를 향하도록 진행된다. 보로지노 전투는 사실 나폴레옹의 명령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치러진 전투였고, 러시아 군 사령관 쿠투조프는 러시아군이 승리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만큼 프랑스에도 희생이 많았던 전투였다. 양군의 많은 희생에 쿠투조프는 눈물을 보이고, 이후 그는 러시아군 병사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명령을 한다. 모스크바를 비우고 피난과 퇴각을 결정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다. 나폴레옹 군대는 1812914일 목표하던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화재의 원인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 화재가 상징하는 것은 모스크바에 들어온 프랑스군의 앞으로 겪게 될 고난이다.

 

모스크바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6개월을 버틸 수 있는 군량이 모스크바에 있었음에도, 약탈을 허용함으로 스스로 위기에 빠지게 된다. 반면 모스크바를 떠난 러시아군은 페테르부르크를 향하는 가도를 따라 북쪽을 향하다 모스크바를 끼고 우회해서 남쪽을 향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측면 행군(42141p)”이다. 이 지역은 식량이 풍부했다. 106일 프랑스군의 퇴각이 시작되고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쪽을 향해 가고자 했지만, 남하해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에 막혀 북쪽 루트를 따라 서진하게 된다. 프랑스군의 퇴각과 러시아군의 추격이 시작되고, 양 군 모두 그 빠른 속도 때문에 많은 사상자와 낙오자가 나왔다. 다 떨어진 신발 혹은 신발조차 갖추지 못해서 천으로 칭칭 감고 행군하는 프랑스군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퇴각의 절정은 베레지나강 도하다. 프랑스군은 다리를 급히 놓아 수만 명이 건너지만 많은 병사가 얼어 죽거나 공격으로 희생되었다. 겨울 혹한과 굶주림, 질병으로 대부분의 병력이 소멸한 상태에서 간신히 국경을 넘어간다. 원정군 60만 명 중 살아 돌아간 병력은 극히 일부였다. 그들의 퇴각은 모스크바에서 스몰렌스크로 오르샤, 보리스, 민스크, 베레지나 강(181211월 말), 빌뉴스를 지나 폴란드 국경에 이른다. 러시아 사령관 쿠투조프는 러시아군이 프랑스군의 측면을 공격하여 나폴레옹을 생포할 수도 있었다. 사실 러시아군 역시 지쳐있었고 정면으로 부딪히면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작전명령은 내리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로 인해 황제의 신임을 잃고, 비난을 받는다. 톨스토이는 전설적인 노장 쿠투조프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바로 잡는다.

 

세 가문을 중심으로 젊은 남녀 주인공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죽는 서사보다 전쟁 부분이 더 부각되어 다가왔다. 러시아 사교계라든지 귀족들의 사랑이야기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에서도 반복되는 내용이라 식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812년 전쟁이 시작될 무렵 전장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참관인이었던 피에르가 모스크바에서 프랑스군의 포로로 잡혀 끌려가다 풀려나는 과정에서 보인 변화는 깊은 울림을 준다. 그와 함께 포로가 되었던 농민 출신 플라톤은 본래적으로 갖고 있는 훼손되지 않은 인간의 선함이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미사여구도 어떤 책의 인용도 아닌 말에 울림이 큰 이유는 그 정직하고 선한 마음 때문이다. 말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농노제가 있던 시절, 징병은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귀족들이 자신에게 속한 농노를 할당된 수만큼 나라에 제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국가에 바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귀족회의는 숫자로 계산되는 농노들의 처지를 실감하게 한다. 왕정국가의 전횡과 부조리다. 1805, 출정 전 들판에서 군대를 사열하던 왕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과 1812년 모스크바를 탈출하면서 남긴 왕의 메시지(칙령)를 듣는 민중의 마음은 확연히 다르다. 모스크바를 버릴 리 없다고 믿었던 왕이 나는 만찬 무렵에 돌아올 것이다.’라고 한 말은 민중을 낙담하게 한다. “민중의 이해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는데 그 말은 너무 단순하고 지나치게 쉬웠다. 그것은 군중 가운데 누구나 내뱉을 수 있는, 따라서 최고 권력으로부터 나온 칙령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33660p)” 곧 그 낙담은 분노로 바뀐다. 1917년 차르를 몰아내고 혁명을 일으키게 될 분노의 싹이 튼 시점이지 않을까?

 

20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볼콘스키가의 안드레이, 마리아와 로스토프가의 니콜라이, 나타샤, 그리고 피에르 베주호프는 방황하고 사랑하고 상실하고 자아를 찾아간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 쿠투조프 총사령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등 실존하는 역사적 인물을 중심에 배치하고, 거기에 이 주인공들과 다른 가상의 인물들을 투입한다. 이들은 러시아에게도 개인에게도 어려운 사건들을 통과하며 구도하고 사랑한다. 러시아가 치러낸 전쟁을 리얼리즘으로 엮고, 그 위에 인간 실존의 주제를 그려간다. 긴 시간동안 많은 양이었을 것이 분명한 자료와 문헌연구를 통해 그의 역사에 대한 꿰뚫는 통찰력 위에 인간의 삶이 구체화되고 있다.

 

역사에서 숙명론은 비합리적인 현상(우리가 타당성을 납득할 수 없는 현상들)을 설명하는데 불가피하다. 우리가 역사의 그런 현상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쓸수록 그것들은 우리 눈에 더욱 비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쓸수록 그것들은 우리 눈에 더욱 비합리적이고 불가해한 것이 되어 버린다.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를 위해 살고,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를 이용하며, 지금 이런저런 행동을 할 수 있거나 없는 것을 자신의 온 존재로 느낀다. 그러나 행동을 하는 순간 어느 한순간에 행해진 그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역사의 자산이 된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 행동은 자유로운 의미가 아닌 숙명적인 의미를 띄게 된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두 가지 측면의 삶이 있다. 하나는 그 관심이 추상적일수록 더 자유로워지는 개인적 삶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법을 불가피하게 따라야 하는 불가항력적이고 집단적인 삶이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지만 모든 인류의 역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일단 행해진 행위는 돌이킬 수 없으며, 인간 행위는 시간 속에서 다른 인간들의 무수한 행위들과 엮여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된다.(3118-19p)“

 

발레를 배웠다는 오드리 햅번의 날아갈 듯이 추는 나타샤 댄스는 전장에서 병사들의 싸우는 발, 부상당해 피흘리는 발, 필사의 탈출과 추적을 하는 군인들의 헐벗은 발의 이미지로 변해버렸다. 지도에 프랑스군과 러시아군의 이동과 전투가 있었던 지역을 이은 긴 선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 길을 걸었던 혹은 그 길에 묻힌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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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5-12-25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벽돌책의 아우라가 대단합니다!
그것을 읽으신 그레이스님도 멋지고요.^^

그레이스 2025-12-25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리크리스마스~ 모나리자님!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도 멋지세요^^
2026년에도 열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