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처럼 한나 아렌트의 중요한 세 번의 탈출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일에서의 탈출, 파리에서의 탈출, 그리고 세 번째는 기존의 철학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세 번째의 경우 하이데거와의 실재적인 결별이고, 그의 존재론과의 결별이다.
그녀는 다섯 살 때 칸트를 알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많은 질문을 갖고 있었다. 독일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아버지의 죽음 등에 대한 질문들이다. 14살 때 칸트의 저서를 전부 섭렵했고, 독학으로 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했고, 그리스 비극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17살에 독일의 명문 마르부르크 대학을 진학하고, 그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마르틴 하이데거를 만나게 된다. 이미 하이데거의 강의는 명성을 얻고 있었고,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강의 출석부는 천재들의 명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였다.”(31p) 한스 요나스, 레오 스트라우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카를 뢰비트, 에마뉘엘 레비나스 같은 사람들이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어린 여학생의 뛰어난 지적능력에 주목한다. 35세의 유부남과 17세의 소녀는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철학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오랫동안 그의 사유 안에 갇혀 있게 된다. 이 감옥에서 탈출하게 해 준 것은 발터 벤야민의 사상이었다.
그녀의 독일에서의 탈출은 정말 즉각적이었다. 지금이다 생각하고 바로 실행에 옮기며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기지와 담대함도 두드러진다. 거침없다는 생각이다. 프랑스에서 유대인들을 이주시키는 일을 했던 그녀는 프랑스가 점령당하고 정부의 소집령으로 한동안 갇혀 있다가 빠져나온다. 은신하고 있던 한나 아렌트는 어머니와 남편 블뤼허와 발터 벤야민과 탈출을 계획한다. 발터 벤야민은 한나와 블뤼허가 비자를 만들러 간 사이 홀로 스페인을 향해 피레네 산맥을 넘다 국경이 폐쇄되고, 독일군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에자살한다.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비극은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써왔던 결과물 『역사철학테제』를 아렌트에게 맡겼었다.
미국을 향하는 배안에서 벤야민의 유작이 된 『역사철학테제』의 원고를 꺼낸다. 그리고 함께 읽는다.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항해 내내 블뤼허와 아렌트는 선실에 틀어박혀서 서로에게 원고를 읽어주고 또 읽어주기를 반복했다.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확실하게 아는 것이 적어졌다. 그만큼 발터 벤야민의 사상이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롭고 독특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아렌트의 읽기는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건 계속된다.
그들이 “발터의 마술에 휩쓸려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배는 뉴욕 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한나 아렌트의 주변에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던 지식인들의 모임에 놀라게 된다. 아렌트의 인생의 단계마다 교류했던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이름과 지식의 보고들을 만난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역시 발터 벤야민이었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당대의 것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아렌트가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보여 진다. 유대인으로 불운한 시대를 만나고, 불행한 죽음을 죽었지만, 그에 대한 평전이나 모든 저서를 읽고 싶어질 만큼 독특하고 뛰어났다. 아렌트가 쓴 『발터 벤야민』을 구입했다. 사고나니『어두운 시대의 삶』에도 포한되어 있는 내용이란다. 오래된 버전으로 갖고 있는 책이었다.
그녀가 독일과 파리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강단과 기지는 탁월하다. 파리에서 지식인들과 갇혀 있을 때 탐독했던 추리소설들은 그녀가 파리를 탈출할 때 힌트가 된다. 그녀가 읽는 책들은 모든 영역에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유롭고 탁월하며 매력적이다.
미국에 도착한 한나 아렌트는 브루클린 대학의 교단에 서게 된다. 그리고 프린스턴 정교수가 된다.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명성을 얻는다. 이 책에서부터 이미 하이데거의 철학과 결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하이데거를 그리워하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책에 하이데거가 구사하는 언어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는다. 아렌트는 전쟁이 끝난 유럽으로 답사하러 떠나는 팀에 합류한다. 거기에서 하이데거를 만난다. 나찌에 입당한 자신의 경력에 대해, 그리고 한나와의 관계에 대해 변론을 늘어놓는 하이데거. 한나는 돌아와 스스로 결별을 선언한다. 현재는 계속되며, 존재는 인류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답을 내리면서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부터 탈출한다. 이 세 번째 탈출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을 쓴다. 이 저술은 예술가와 음악가, 활동가들에게 찬사를 받는다.
그녀의 문제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함께 행동했던 유대인들, 지식인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존재의 사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을 분리해 건강하게 지키면서 현실에 대해 눈도 깜빡하지 않은 채 계속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231p
그녀의 사유는 존재의 사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그녀를 사랑하고 혐오했으며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그녀를 찬양하고 비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인간에게는 권리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존재론의 문제는 유년기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하이데거와의 관계에서 빠져나옴으로 새로운 철학에로 나갈 수 있었다.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문제를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었던 그녀의 힘은 질문하고 얻은 답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힘은 그가 독일에서와 파리에서 즉각적으로 탈출하고, 또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사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된다.
갖고 있는 발터 벤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