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일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호치민 지음, 안경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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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유명한 여배우인 제인 폰다(Jane Fonda)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에게 추천해줬던 책이 있다. 그 책이 바로 2차세계대전 당시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이 감옥에 있으면서 썻던 옥중일기이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 이후 미국은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미국의 참전으로 태평양에서도 미,영,중을 중심으로 하는 반파시즘 연합전선이 형성되자 호치민은 중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 그러나 호치민을 공산당 스파이로 오인한 중국 국민당 지지자들은 그를 체포했고 감옥에 가뒀다. 결국 호치민은 1942년 8월 29일 부터 1943년 9월 10일까지 아까운 1년을 감옥에서 생활했다.

 

호치민 주석의 감옥 생활은 참으로 처참했다. 시대가 2차세계대전 때인지라 감옥에서는 밥도 제대로 안나왔고 물도 제대로 안나왔으며 심지어 4달동안 씻지도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할정도로 열악했다. 그리고 그가 있던 감옥에선 결핵에 걸려 죽는 사람도 적잖게 있었다. 이런 처참했던 감옥생활을 약1년간 했던 호치민은 시의형태로 기록을 남겼다. 그게 결국 호치민이 쓴 옥중일기가 된다.

 

옥중일기를 읽으며 호치민 주석의 처참한 감옥생활과 그가 느꼈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아쉬운 점은 호치민이 감옥에 있을 당시 2차세계대전의 전황이 너무나도 빨리 전개되어 1943년 석방된 호치민은 2차세계대전이 사실상 끝나가던 1945년이 되서야 미국하고 접촉했고 그 접촉도 일본의 조기항복으로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이와같은 펙트를 놓고 봤을때 호치민의 감옥생활은 확실히 베트남 독립운동에 있어서 크나큰 손실이었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4행시니 읽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고 1시간 정도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호치민 주석이 쓴 옥중일기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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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us_fugit 2018-05-21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만지 책이군요 지만지 책은 홈페이지에서 99원에 책 본문 전체가 열람이 가능하더라고요 요새 베트남에 관한 관심도 늘었는데 주말에 시간내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추천 감사드립니다. :)

NamGiKim 2018-05-21 18:48   좋아요 1 | URL
이 책은 1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습니다. 네 꼭 읽어보세요.ㅎㅎ
 
데모사이드
R. J. 러멜 지음, 이남규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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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대신 비판글로 대체합니다.)

1.공산주의는 생지옥?

데모사이드라는 말을 창조해낸 루돌프 럼멜이라는 사람이 있다. 집단학살을 주로 연구한 미국의 교수이다. 그는 20세기 당시 정부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2억6척만명이라 주장했고 그중 1억6천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통계에 따르면 소련 중국에서 데모사이드로 죽은 사람이 가뿐히 1억명을 넘는다고 되어있다.)

그런 소리를 하는 인간이기에 럼멜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미국식 자유민주조의적 가치관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럼멜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본질적인 핵심과 평등사상을 이해하기 보다는 학살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여 공산주의 이론을 절대악으로 규정해 버리는 우를 범했다.

물론 스탈린이나 마오시기 사람이 많이 죽고 공산주의 국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던건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학살만을 뜻하는 아주 악랄한 사상일까? 그건 절대로 아니다. 미국 학자 럼멜은 마르크스가 왜 공산주의 이론을 창시했고 레닌은 왜 러시아 혁명을 주도했으며 그외의 수많은 혁명가들의 혁명적 대의를 위해 싸우다 죽었는지 그리고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국가는 얼마나 복지가 보장됐는지는 보지 않고 스탈린시기 숙청과 마오의 대기근 그리고 그외의 공산권 국가에서의 사망자만 가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뒤틀린 미국식사상에 입각하여 공산주의=학살이라는 논리적인 우를 범한 것이다.

쉽게말해 뒤틀린 수구사상 소유자다.

2.민주평화론

럼멜은 민주평화론이라는 이론을 만들어낸 걸로도 유명하다. 그가 창시해낸 민주평화론의 핵심은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급적 전쟁은 피한다. 그러나 비자유주의적 비민주적인 국가들과는 전쟁을 하는 건을 기피하지 않는다."다.

이 민주평화론의 핵심을 돌려얘기하자면 즉 미국식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는 무력으로 침공해도 되고 그런 국가의 사람은 가차없이 죽여도 된다는 논리가 된다. 한마디로 럼멜 이작자는 제국주의적인 이론을 아주 교묘하게 민주평화론이라는 말로 합리화 시킨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진 럼멜은 부시정권시기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이 단행한 베트남 전쟁의 연장선상일 뿐이며 미국의 전쟁범죄일 뿐이다. 이런 전쟁을 적극지지하는 사람이 평화론을 얘기하는 것 부터가 모순됐다.

각잡고 따져보자면 럼멜말대로 미국은 평화를 위해 이라크와 아프간 그리고 중동문제에 개입했는데 중동에 민주국가가 탄생하고 평화가 왔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이후 ISIS라는 더 막장인 놈들이 등장하여 중동을 피바다로 그리고 테러의 현장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럼멜의 민주평화론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혹은 자신들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이론 밖에 되지 않는다.

결론

루돌프 럼멜은 미국식 우익 논리를 대변하는 수꼴이다. 몇몇 사람들이 암것도 모른채 럼멜의 이론을 어느정도 긍정적으로 보는것 같은데 그러지 말자.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낸 수꼴일 뿐이다.

럼멜이론의 영향을 받아 현재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이 조시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였던 라이스 국무장관이다. 그외에도 럼멜이 키운 미국의 네오콘들이 찾아보면 은근히 많다. 누구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렘멜의 한국인 제자중엔 현재 대한민국의 수꼴 교수도 있다.

이 사람이 쓴 책중에 소설 데모사이드도 있는데 정말 황당무계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고 그 책에는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막기 위해 한국 독립군에게 자금을 전달하여 암살을 막는다는 이상한 내용도 있다. 거기다 그 책 국내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곳은 수꼴책들을 양산해내는 기파랑이다.

내가 럼멜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뒤 페북에다 럼멜을 검색했는데 내 페친에 페친(수꼴아니다)이 쓴 글중에 럼멜의 데모사이드를 인용하며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글을 봤다. 순간 좀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데모사이드 이론을 창시해낸 럼멜은 수꼴이니 그를 찬양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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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us_fugit 2018-05-21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NamGiKim 2018-05-21 09:44   좋아요 1 | URL
그리고 럼멜은 베트남 전쟁 당시 수많은 사람의 반대했음에도 그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 했죠. 한 마디로 답없는 수꼴입니다.
 
굿모닝 베트남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배리 레빈슨 감독, 로빈 윌리암스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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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용평리조트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주인공으로 나온 굿모닝 베트남을 봤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은 베트남 전 당시 미군 방송국 그리스 지부에서 활동하다가 베트남 사이공 지부로 새로 부임한 DJ 에이드리언 크로나워(로빈 윌리엄스 역)가 사이공에서 일상생활과 방송을 하면서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사이공에서 미군 방송을 하게 된 크로나워는 방송 자체를 매우 유쾌하게 진행하는 타고난 능력을 가진 DJ였기에 미군 병사들의 인기를 누렸다. 그의 방송은 다른 미군 병사들이 진행하는 방송들에 비해 굉장히 자유분방 적이고 사회적인 풍자 및 현실 비판도 어느 정도 들어갔기에 방송을 듣는 미군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정작 그런 자유분방한 진행방식 자체를 싫어하던 상관은 항상 경계하고 문제 삼았다. 방송을 진행하던 크로나워가 있던 베트남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자신이 자주 다니던 술집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고 병사들을 위로하러 기지로 가던 중 차가 지뢰를 밟고 터지는 둥 크로나워는 베트남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다. 그는 방송일도 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했는데 처음에는 자신을 의심했던 한 남자학생과 친해지면서 특별한 친구가 되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믿었던 친구는 베트콩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은 이런 전개를 통해서 베트남 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베트남 전 당시 파병오는 미군들의 모습과. 습한 지역에서 진흙을 밟아가며 행군하는 미군의 모습. 베트남 농촌을 전투헬기로 폭격하는 장면 그리고 남베트남 독재정권에 대항하다 경찰들에게 강경진압 당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같이 틀어주는 장면은 정말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영화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서 미국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크로나워의 친구가 자신의 정체를 들킨 뒤 자신이 왜 베트콩에 가담하게 됐는지를 얘기하는 장면 또한 기억에 남는다. 이와 같은 장면을 통해서 영화 굿모닝 베트남은 베트남 전의 현실을 아주 날카롭게 보여줬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로빈 윌리엄스가 우울증으로 인하여 자살로 생을 마감한지 이제 4년이 흘렀다. 영화 주만지와 박물관의 살아 있다.를 매우 재밌게 본 나로선 이 영화를 보면서 로빈 윌리엄스를 같이 보기 있으니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파지기까지 했다. 무튼 이 영화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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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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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73년전인 5월 9일 소련은 나치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소련이 치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약 4년간의 전쟁동안 2500만명의 소련사람이 전쟁에서 죽었다. 거기다 독소전쟁시기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사자 비율을 보면 소련군 희생자가 독일군 희생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치른 전쟁이었기에 소련 사람들은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 어떤국가들 보다 자신들이 승리한 날을 기념한다.

2차세계대전 종전 73주년을 맞아 오늘은 영국학자 리처드 오버리가 쓴 책인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에 대해 리뷰를 남겨볼까 한다.

 

2차세계대전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전쟁중에 가장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 그리고 수많은 국가들이 참전한 전쟁이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고 가장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던 곳이 동부전선이었다. 독소전쟁은1941년 6월22일 독일의 침공으로 시작되었다. 개전 초반기 독일군은 러시아 전역에서 진격했고 그해 12월 독일군은 모스크바 외각까지 진입했다. 모스크바를 점령 할 수 있었음에도 독일군은 점령하지 않았고 1942년에는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수많은 독일군과 소련군이 죽었지만 독일군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했고 보급마저 끊기는 바람에 1943년 2월 파울루스 장군이 항복하면서 소련군의 승리로 끝이났다. 1943년 7월 독일군은 쿠르스크에서 대규모 전차를 동원해 반격했지만 소련군의 물량을 막지는 목했다.  1944년 1월에는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소련군의 승리로 끝났고 그해 6월부터 바그라티온 작전을 통해서 8월말까지 소련군은 수많은 동유럽국가로 진군해나갔다. 1945년 4월 소련군은 드디어 독일국경을 넘었고 4월 30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붉은 깃발을 꽂음으로서 파시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르고 가장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여 독일군을 몰아내는데 있어서 1등공신 역할을 했던 나라가 소련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경우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랜드리스 지원 때문이라 얘기하지만 기본적으로 소련군이 매우 잘싸웠던 점도 있다. 1944년 6월 서방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8월 말 프랑스 파리를 해방했을때 소련군은 그 두달동안 엄청난 동유럽 전역에서 진격했고 수많은 동유럽국가를 해방시켰다. 이점만 보더라도 소련군이 서방 연합군 보다 더 치열하게 싸웠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은 국내에 출판된 책중에 독소전쟁을 주제로 하는 몇 안되는 서적이다. 그렇기에 전승기념일인 오늘따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오늘따라 2년전 모스크바에 가서 참배했던 무명용사의 묘와 3일전 참가햇던 신도림역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행사가 유난히 더 생각이 난다. 오늘만큼은 파시즘에 맞서 싸운 소련 병사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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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5-09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직접 찍으신 사진이세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기념 행사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NamGiKim 2018-05-09 22:05   좋아요 1 | URL
네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처음 두장은 모스크바 크렘린 근처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에서 찍은거고 나머지는 올해 5월6일 한국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이 신도림역에서 했던 기념행사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09 22:09   좋아요 1 | URL
그들에게 그날이 얼마나 특별한지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레닌그라드 전투> 란 책 읽고 몸서리치던 생각이 납니다.
 
킬링 필드 (2disc)
샘 워터슨 외, 롤랑 조페 / 익스트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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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영화 감상평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킬링필드를 봤다. 내가 폴포트의 광적인 킬링필드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던 건 지금으로부터 9년전인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캄보디아에 봉사하러 갔다 온 국어 선생님께서 폴포트의 킬링필드에 대해 얘기해 줬고 그 얘기를 들은 나는 폴포트의 킬링필드로 인하여 수백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그 얘기를 들은 나는 폴포트라는 인물을 잘은 몰랐지만 나치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이자 대학살자로 간주했고 그런 관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킬링필드라는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건 kbs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영화 킬링필드에 나온 주인공에 대해 리뷰 했던 파트를 보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차달남에서 꽤 감동적으로 리뷰를 했기에 그 영화 리뷰를 본 나는 이 영화가 보고 싶었다. 이 영화를 알게 된 건 7,8개월 전이지만 어제가 돼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됐다.



영화의 시작은 1970년대 베트남 전쟁 시기 호치민 루트에 있는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을 소탕하겠다는 목적으로 캄보디아에 폭격을 했던 것부터 시작한다. 당시 캄보디아는 시아누크 정권이 무너지고 친미적 성향을 가진 론놀 정권이 들어서 정부군과 폴포트의 크메르 루주간의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영화 주인공인 뉴욕 타임스의 기자 시드니와 캄보디아 기자이자 시드니의 통역관인 프란은 처음에는 캄보디아 내전에 개입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취재하고자 했다. 그러나 캄보디아 내전이 격해지면서 전세는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에게 유리해졌고 캄보디아 내전은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종결과 동시에 크메르 루주의 승리로 끝이 났다. 시드니와 프란은 취재를 더 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남았고 결국 크메르 루주군과 만나게 되었다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를 장악한 뒤 폴포트는 광적인 숙청을 벌이기 시작했고 수많은 캄보디아 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어딘가로 끌려갔다. 크메르 루주는 캄보디아의 지식인들을 숙청하기 시작했고 영화 주인공인 프란도 이에 위협을 느꼈다. 시드니와 프란은 프랑스 대사관으로 피신을 하여 같이 미국으로 가려 했지만 프란은 결국 탈출하지 못했고 시드니와 프랑스 대사관에 있던 서양인들만 캄보디아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온 시드니는 자신의 절친인 프란을 잊지 못하고 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시드니가 미국에 있을 때 프란은 강제 수용소에서 막노동을 하며 인간이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를 견디지 못한 프란은 강제 수용소에서 탈출했고 탈출 도중 프란은 너무나도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크메르 루주가 벌인 킬링필드 현장이다. 수많은 해골이 쌓여있고 부패한 시체들이 강가 근처에 떠다니는 것을 보고 프란은 경악을 했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폴포트와 크메르 루주는 60년대 중국 마오쩌둥이 했던 문화대혁명 보다 더 광적인 짓을 했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800만이었는데 폴포트는 4년간의 킬링필드를 통해 200만을 학살했다. 폴포트의 미친 짓은 결국 베트남 캄보디아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고 폴포트 정권은 1979년 베트남 하노이 정권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영화 킬링필드에서 나온 크메르 루주의 참상은 영화가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온다. 사실상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80년대 대한민국에선 이 영화를 반공영화로 간주하고 단체관람을 하게 했다. 그런 점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종종 본 것 같다. 그래도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나름 명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킬링필드를 통해서 크메르 루주의 만행을 잘 알 수 있었고 전쟁이라는 광기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비틀즈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은 뭔가 찐한 느낌을 주었다. 노래 Imagine처럼 많은 사람들이 화합과 평화를 갈망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영화 평을 마친다.



영화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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