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베레 - 베트남 전쟁과 그린베레의 전설 KODEF 안보총서 11
로빈 무어 지음, 양욱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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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제국주의자가 미화한 역사 소설 그린베레(The Green Beret)

베트남 전쟁(Vietnam War)은 미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이었다. 19648월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을 조작한 미제국주의자들은 본격적으로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대략 8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수백만이나 되는 동남아시아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그러나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기 전에도 미국은 남베트남 문제에 개입하고 있었는데, 이는 바로 미군사고문단 이라는 형식으로 남베트남 정권을 돕는 방법이었다.

 

미국의 존F케네디 정권때부터 베트콩에 맞서 남베트남에서 군사활동을 전개했던 미군사고문단은 1963년이 되어 대략 11000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이들은 남베트남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물적, 인적 지원을 아낌없이 했다. 미국의 존F케네디가 남베트남에 미군사고문단 형식으로 지원했던 부대들 중에는 특수부대가 존재했는데, 그 부대가 바로 초록색 베레모로 상징되는 그린베레(The Green Beret)’.

 

미국의 특수부대 그린베레의 기원을 따지자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미국의 첩보기관인 전략 사무국(OSS)은 미군 비정규전 전문가들을 추축국 후방에 침투시켜 저항세력을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태평양 전쟁 시기 중경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와 협력했던 미국의 기관이 바로 OSS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OSS는 해체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군은 또 다시 비정규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미군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북한 침투를 위한 특수부대를 만들기도 했었다.

 

1952년 미국에서 창설된 제10 특수전단은 미 육군 특수 부대의 시대를 열었다. 이 특수전단은 주로 공수부대나 전직 전략사무국 파견요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특수부대는 서독에서도 활동했었고, 그 외의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배치되었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존F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특수부대는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고,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베레모 착용이 허용되면서 그 특수부대는 그린베레가 되었다.

 

케네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창설된 미국의 그린베레는 냉전 시기 여러 곳에 배치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베트남이었다. 남베트남에 군사고문단 형식으로 배치되었던 그린베레는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키기 위해 부패하기 짝이 없는 남베트남군을 물적, 인적으로 지원했고, 라오스와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 들어가 소수민족들을 가지고 군대를 조직했다. 라오스에서는 반공산주의 감정이 심했던 몽족(Hmong)을 이용했고,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선 몽타냐르족(Montagnard)으로 대표되는 브루족(Bru)이나 에데족(Ede) 같은 산악소수민족들을 이용했다. 그들이 바로 그린비레가 계획한 CIDG 군대(비정규 민병대라고도 함)로 거듭났다. 물론 이 군대는 제국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할대로 이용당하다가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버려진다. 아무튼 그린베레는 베트남 전쟁 시기 남베트남군을 지원했던 미국의 특수부대였다.

 

베트남 전쟁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미국의 작가 로빈 무어(Robin Moore)가 집필한 그린베레를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몇 달 전 인종차별주의자인 존 웨인(John Wayne)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반공영화 그린베레(The Green Beret Film)를 감상하였기에 이 책의 내용이 어떨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읽는 내내 반공주의자들의 저급함과 수준 낮은 역사관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린베레의 무용담 뿐만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다룬 책이며, 베트남 전쟁 반전론자들이 책도 제대로 안 읽고 미화물이라 비판한다고 말하며 반전주의자들을 비웃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필자가 한마디 하자면, 반전주의자들이 이 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책의 내용이 시작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침략자인 그린베레의 미화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남베트남에서 자생적으로 창설된 베트콩들이 왜 세계최강의 미국 군대에 맞서 싸웠는지는 생각지 못하는 역사적 몰이해를 보여준다. 저자는 자국의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해방 전사들을 마치 아무런 민간인들이나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다니는 존재로 묘사하는데, 영화 그린베레가 보여줬던 베트콩 악마화랑 다를 게 없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이 무슨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처럼 나오는데, 역사 왜곡의 극치다. 저자 로빈 무어는 그린베레의 필요성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그린베레 부대원과 베트남 여성의 러브 스토리, 그린베레 부대원과 몽족 여성의 러브 스토리 그리고 그린베레 부대원과 몽타냐르족 여성의 러브 스토리 따위를 넣는데, 이런 가상의 러브 스토리는 단순히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선동일 뿐이다.

 

가장 기가 막혔던 파트는 어떤 가톨릭 여성인 린의 스토리인데, 이 파트는 베트콩과 북베트남에 대한 심각한 악마화로 얼룩져 있다. 그 파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베트콩에게 가족을 잃은 가톨릭 신자인 린이 베트콩 장교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그린베레를 본 사람은 이 내용이 영화에서도 나온다는 걸 알 것이다. 저자 로빈 무어는 소설에서 무슨 베트콩을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존재로 묘사했는데. 진실을 말하자면 실제 전쟁에서 그런 짓을 했던 것은 게릴라를 토벌했던 연합군 측의 모습이 그러했다.

 

저자 로빈 무어는 자신이 이 책에서 남베트남의 부정부패를 거리낌 없이 고발했다고 서문에 밝혔다. 물론 책에서도 남베트남군의 부패상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로빈 무어는 그것만큼 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정통성 문제와 분단 원인이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즉 로빈 무어는 남베트남군이 왜 부패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뿌리가 누구인지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들이 프랑스군에 있었던 사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으며, 베트남 인민들이 왜 호치민과 공산당을 지지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우리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베트남에서 열심히 싸웠다.”와 같은 무용담만 읊었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왜 베트콩들이 그린베레와 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서 싸웠는지를 가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로빈 무어의 역사 소설 그린베레는 미군에 대한 무한한 미화와 베트콩에 대한 악마화로 가득차 있다. 쉽게 말해 반공주의자가 저지르는 역사 왜곡의 전형적인 사례다. 책의 마지막을 보면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공산군을 압박해야 한다. 이제 공산군은 하노이 주변에 A팀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 것이고, 호치민은 새로운 평화 협정을 요구해올 거다. 우리는 힘으로만 대화할 거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것은 새루운 형태의 전쟁이다. 승리와 패배 같은 건 없다. 협상이 시작되면 어느 쪽이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라는 대사로 끝을 맺는데, 전형적인 반공주의자의 생각을 반영해준다.

 

베트남 전쟁을 지극히 미국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책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중에 이 책의 저자 로빈 무어에 대해 좀 찾아보았다. 그는 하버드 대학 출신에 아버지 밑에서 호텔 경영을 했던 전형적인 미국 부르주아였다. 1960년대 그가 쓴 피델 카스트로 관련 책이 있는데, 그 책 제목이 바로 대가를 치러야 할 악마(The Devil To Pay)’. 정말이지 반공주의가 극에 달한 인물이다. 이런 뒤틀린 역사관을 소유한 인물이니 미국의 침략전쟁인 베트남 전쟁을 미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베트남 전쟁을 공부해본 필자로선 로빈 무어의 저급한 역사관이 한심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그린베레에 대해 얘기하겠다. 로빈 무어 책에서 나온 그린베레는 매우 정의로운 존재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베트남 전쟁 시기 그린베레는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을 벌였는데, 그게 바로 피닉스 작전(Phoenix Program)’이다. 피닉스 작전을 통하여 그린베레를 비롯한 미국 특수부대는 무고한 민간인 27000명을 아무런 증거도 없이 베트콩으로 몰아 학살했다. 따라서 그린베레는 베트남 전쟁에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제국주의 침략자들이었다. 이런 그린베레의 침략은 베트남에서 멈추지 않았다. 저자 로빈 무어는 맺음말에서 우리는 인류가 대참사를 당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아프리카의 폭군이든 발칸의 독재자든 중국의 인권 침해자든 누구를 상대하든 간에 단호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루돌프 럼멜과 같은 네오콘들이 가진 극단적인 제국주의 사상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관점이다. 그린베레가 참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엄연한 미제국의 침략전쟁이다. 그런 침략전쟁은 벌인 미국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책 저자 무어가 미화한 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알아야할 것은 제국주의 침략자 그린베레의 무용담이 아닌, 그들에 맞서 투쟁했던 베트콩과 같은 민족해방투사들의 이야기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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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 실천론.모순론 레볼루션 시리즈 1
마오쩌둥 지음, 슬라보예 지젝 서문, 노승영 옮김 / 프레시안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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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세기 봉건제 국가였던 중국에서 혁명을 주도했던 대륙의 혁명가가 있었다. 그는 1949년 10월 1일 수도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고,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그가 바로 현대 중국의 아버지 마오쩌둥(Mao Ze Dong)이다.

프레시안북에서 출판한 이 책은 일제의 침략으로 중일전쟁이 시작되던 1937년 그가 연안에서 집필했던 ‘실천론‘과 ‘모순론‘ 그리고 그외에 1930년부터 1964년까지 마오쩌둥이 집필하거나 연설한 글들을 모아놓았다.

마오쩌둥이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실천론과 모순론은 사실 1937년 그가 연안의 항일군정대학 철학수업에서 강연했던 내용이다. 마오쩌둥의 얘기한 모순론이란 혁명가 레닌이 얘기한 ‘대립물 통일 법칙‘이라는 변증법적 관점을 ‘모순‘이라는 이론으로 체계화 시킨 것이었다.

혁명가 마오쩌둥은 모순론을 통하여 중국 내에서 문제시 되었던 소위 ‘교조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고, 중국내 사회주의자들을 철학적으로 각성시키며, 중국 인민 대중을 일제 침략자들에게 저항하도록 하고자 했다. 즉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의 철학적 이론을 실천론과 모순론을 통해 정리했고, 교조주의를 비판하며 더 나아가 일제 침략에 맞서 저항했다. 그가 쓴 모순론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거기서 요약해서 발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물의 모순 법칙, 즉 대립물의 통일 법칙은 자연과 사회의 근본적인 법칙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유의 근본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가 연구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요점을 정말로 이해했다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고 우리의 혁명 과업을 저해하는 교조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험을 쌓은 동지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정리하고 이를 원칙으로 만들어 경험주의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마오쩌둥 실천론, 모순론 p.137~138 내용을 일부 발췌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집중적으로 생각해 본 것은 소위 교조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마오쩌둥이 쓴 글이나 연설에는 교조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온다. 1930년 그가 린뱌오에게 쓴 편지에도 당시 중국 공산당 내의 노동자주의로 대표되던 노선을 교조주의로 간주하며 이에대한 비판이 나오는데, 마오가 그런 비판을 했던 것은 아무래도 중국이라는 특수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필자가 이 책에서 또 재밌게 읽었던 파트는 ‘소련 사회주의 경제 문제에 대하여‘, ‘스탈린의 소련 사회주의 경제 문제 비판‘ 그리고 ‘미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은 토지개혁을 실행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경제재건에 나섰다. 그러나 스탈린 사망 이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을 시작으로 과거 스탈린식 경제 개발의 문제를 보완할 프로그램을 하고자 했는데, 그 점에서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생각하게 된 것이 대약진 운동이었다.

이것은 1930년대 스탈린의 경제개발에서 보인 만성적인 소비재의 부족과 농업 생산 해결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대약진 운동의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극심한 생산력 저하로 이어졌다. 물론 중국 공산당 정부의 정책적 실책도 있었으나, 스탈린 격하 운동으로 중소갈등이 격해지면서 소련의 지원이 전면적으로 끊겼던 것도 생산력 증진과 경제 재건 실패의 한 요인이었다.

결과가 어찌됐든 당시 마오쩌둥이 썻던 글들을 보니 비록 스탈린의 공업화 보단 절대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상당부분 현실적인 것도 나름 반영되었던 것 같다. 필자가 그 파트를 읽으면서 알 수 있었던 건 분명 마오는 소련보다 더 나은 경제정책을 목적으로 대약진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그 시도는 대실패로 끝났지만 말이다.

책에서 다룬 ‘미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1950년대 마오쩌둥이 라틴아메리카의 인사 두 명과 나눈 대화다. 그 대화에서 마오쩌둥은 ˝미제국주의가 반공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른 나라들을 수도없이 침략하고 있고, 수많은 인민들이 미국을 싫어하며, 그러한 제국주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으며, 전 세계 인민 또한 제국주의를 원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당시 마오가 라틴아메리카 인사에게 말한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타당했고, 합리적이었다고 본다. 자유라는 이름아래 미국이 치른 전쟁의 대다수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이었고, 그런 미제국의 침략전쟁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오의 견해는 매우 타당하다.

이번에 읽은 책을 통해 마오쩌둥의 사상을 공부할 수 있었다. 사실 필자가 마오쩌둥이 집필한 책을 읽어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을 통해 마오쩌둥에 대해 필자가 내린 결론은 그는 중국 현실에 맞게 혁명을 실천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다. 물론 어디까지나 중국 현실에 맞게 실행했기에 민족해방투쟁에 가까웠던 점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론을 절대 버리지 않았으며, 실천론과 모순론을 통해 기존의 교조주의하고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마오쩌둥은 봉건제 중국에서 혁명을 성공시킨 위대한 혁명가고, 마르크스-레닌주의자다. 오랜만에 마오쩌둥의 사상을 공부할 수 있었다. 많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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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두 발의 권총소리는 초저녁 궁정동의 적막을 깼다. 간발의 차이를 두고 십수 발의 총성이 콩 볶듯이 뒤를 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2분, 박정희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탄에 맥없이 쓰러졌다. 박정희의 절대통치 18년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형님, 각하를 좀 똑바로 모십시오”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

“차지철이 이놈”

“탕!”

 

김계원 비서실장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마지막 ‘건의’를 올린 김재규는 곧바로 차지철을 향해 권총을 뽑아들었다. 순간 연회석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차지철은 권총을 낚아 채려고 오른팔을 내밀었고 동시에 김재규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은 차지철의 오른손 팔목을 꿰뚫었다.

 

“김 부장, 왜 이래, 왜 이래.”

“이거 무슨 짓들이야!”

“탕!”

 

차지철과 박 대통령의 고함소리는 곧이어 처진 또 한 발의 총성에 묻혀버렸다. 김재규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쏜 총탄은 박 대통령의 오른쪽 가슴 윗부분을 뚫고 들어가 등 아래 쪽 중앙부위를 관통했다.

 

이렇게 해서 18년 5개월 10일 동안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군림해 온 박정희는 자신의 심복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사망했고, 동시에 1인독재의 막이 내렸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부정행위를 일삼았다. ‘동백림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인혁당 사건’같은 무시무시한 일도 일어났고, 그의 정권에 반대하여 부마항쟁과 같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역사에선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지만, 그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술파티를 하던 박정희는 부마항쟁을 걱정하며 얘기하는 김재규의 발언을 질책하며, “앞으로 서울에서 4.19 같은 데모가 일어난다면 대통령인 내가 발포 명령을 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러자 경호실장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정도 죽어도 까닥 없었는데 데모대원 100만~200만 정도 죽어도 걱정 없다”는 말을 하며 박정희를 부추겼다. 당시 박정희와 차지철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만약 박정희가 안죽고 살아있었다면 경상남도의 부산과 마산은 제2의 광주 학살이 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랬기에 김재규가 그를 권총으로 쏴죽인 것이다.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죽은지 40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의 잔재는 대한민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도 국내에서는 박정희를 찬양해대는 책들이 시중에 돌고 있고, 그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기념 도서관까지 만들어 샤머니즘적으로 숭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친일 독재 세력의 결집력은 어버이 연합이나 엄마 부대와 같은 관제 데모에서 잘 드러난다. 이제는 박정희라는 신화적 인물을 걷어내야 한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에 맞서 ‘박정희 평전’을 집필했던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씨는 평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 그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다.

 

“넘어야 하는 질곡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한국자본주의 괴물이다. 박근혜의 몰락은 한 비리 정치인의 몰락에 그치지 않고 56년 망령처럼 우리 주위를 떠돌던 박정희 개발 독재 신화의 확실한 종언이 되어야 한다. 개발독재로 얼마간의 번영을 누렸지만, 그것이 뒤틀린 산업화의 결과일 수 없다는 반박논리는 접어둔다 해도 결과적으로 공짜는 없었다. 산업화의 과실은 왜곡된 분배구조를 통해 불평등심화를 초래하고, 중산층을 붕괴시켰다. 세계화에 특화된 재벌기업과 자본은 부를 무한 축적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지속적 임금삭감과 자산하락으로 고통받아왔다. 더욱이 승자들의 패자들에 대한 손실전가 행위는 날로 더 심해지고 있으며, 최대의 희생자 중 하나는 나라의 미래인 청년서대다. 불평등과 갑질천국의 헬조선을 만든 한강의 기적은 던져버리고, 이제 대한민국은 광화문의 기적 위에 우뚝 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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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의 붉은 별 - 러시아 혁명은 제3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원영수 옮김 / 두번째테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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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이 바쁜 와중에 시험 공부를 하며 짬짬이 읽은 책이 있다. 그 책이 바로 제3세계의 붉은 별(The Red Star Over The Third World)다.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어마무시한 영향을 주었다. 볼셰비키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외쳤던 식민지 해방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단결을 통한 궁극적인 사회주의 국가 건설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알던 당대의 식민지 국가의 젊은이들을 감동시켰다. 대표적으로 대략 70개의 가명을 사용했던 베트남의 혁명가 호치민이 그랬고, 일제 시기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그러했다.

러시아 혁명은 비단 유럽과 서방 세계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냉전기 소위 ‘제3세계(The Third World)‘라 불렸던 국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 혁명의 전파는 비록 교조적이지는 않을지라도 1949년 중국에서 공산당이 집권을 하게 되었고, 쿠바에서는 친미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축출하여 피델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켰으며, 1975년 미제국주의에 맞선 베트남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더 나아가 제3세계에선 미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독재에 맞서 공산당을 비롯한 각종 사회주의 단체들이 활동했는데, 책 저자의 출신지인 인도도 그러했고, 인도네시아와 콩고 그리고 그외의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런 투쟁은 독재정권이나 소위 서방 제국주의에 의해서 무자비한 학살로 끝나기도 했는데, 1960년대 인도네시아의 발리섬에서 일어난 대학살은 대략 100만이나 되는 공산주의자와 혁명가 그리고 민간인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외에도 칠레와 같은 남미국가들에서도 미제와 군부독재에 의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했었다.

책 저자는 제3 세계 국가들이 1917년 레닌의 혁명으로 탄생하고 1930년대 스탈린의 공업화로 성장한 소련의 사례로 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비록 소련의 공업화 과정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부분도 있었지만, 하늘을 치솟던 소련의 문맹률이 1930년대를 거치며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국가라는 기구가 인민대중의 삶과 복지를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전쟁기계를 막아냈던것도 역시 소련이었기에, 제3세계의 의식있는 젊은이들은 이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제3 세계가 소련의 사례를 교조적으로만 따랐던 것은 아니었다.

저자가 인도인이다 보니 인도의 사례가 책에서 적잖게 등장한다. 이를 통해 필자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비록 현재 인도는 카스트 제도라는 봉건적 잔재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런 수구적인 체제에서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온 의식있는 인도의 남녀혁명가들이 100년 전 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이 책은 러시아 혁명이 어떤식으로 제3세계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간략하게 분석한 소책자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제3세계의 운동이 단순히 소련을 모방한 것이 아닌 토착적 뿌리를 지닌 해방적 근대의 한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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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놈들은 남북전쟁 이전기 흑인 노예들의 삶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미화물로 합리화 해도 전혀 문제가 안되는데, 스탈린 시기의 굴라그는 반공분자들에 의해 매우 과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소련 악마화에 반대되는 소리를하면 악마를 옹호하는게 된다. 이거야말로 편향된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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