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반에 보기 시작한 미드 ‘높은 성의 사나이(The Man in the High Castle)’를 2015년에 나온 시즌1부터 지난달 11월에 나온 시즌4까지 연속으로 봤다.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는 1960년대 집필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의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승리한 세상을 전제로 한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 상에서의 세계를 보면 미국 동부는 나치 독일이 점령했고, 미국 서부는 일본 제국이 존재했으며 그 중간 사이에 중립 지역이 존재한다.


드라마는 미국 동부 지역에 사는 남자 주인공 조 블레이크와 미국 서부 지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여자 주인공 줄리아나 크레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일본의 합기도를 좋아한 백인 여성 줄리아나 크레인은 여동생인 트루디 워커가 준 한 필름을 받게 되고, 받게 된 필름을 시청하게 되는데, 그 영상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 영상을 주인공 줄리아나가 보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다. 그 영상을 보게 되면서 주인공 줄리아나는 남자 주인공인 조 블레이크를 중립 지역에서 만나게 되고, 나중에서야 그가 나치 협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영상을 통해 확신했는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항운동을 전개해 나가게 된다.


이렇듯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는 일반인이 레지스탕스가 되어가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단순히 일반인이 저항운동가로 변모해 가는 과정만 보여주지만은 않고, 변절자가 권력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도 아주 세세히 보여주면서, 그 변절자의 인생을 아주 비참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치치하 미국에서 고위 관직을 거쳐 올라가는 드라마의 숨겨진 주인공인 존 스미스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나치가 워싱턴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걸 직접 보게 되면서 나치에 협력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나치 독일의 제2인자 하인리히 힘러에게 총애를 받게 되기까지 한다. 그렇게 고속승진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가족에게 있어서 구 누구보다 엄청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하고, 가부장적인 질서가 강조되는 사회속에서도 가족에게 화 한번 내지 않는 엄청난 참을성과 침착함을 보여준다. 물론 그런 점은 다른 정적을 제거할 때도 아주 잘 드러난다. 그로 인하여 그는 권력 정점에 서서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아들을 잃어야 하는 슬픔을 겪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은 불치병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치에게 있어서 제거돼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드라마는 권력의 쟁점까지 오른 인물에게 인생무상을 느끼도록 만든다.


드라마는 숨겨진 주인공을 시점으로 전개되기도 하는데, 일본 제국의 무역부 장관인 타고미와 현병대 대령 키도 경감이다. 타고미의 경우 주인공인 줄리아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녀의 여동생 트루디가 사망한 것에 대해 추모와 사과까지 하는 등 나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온건주의자로써 나치 독일과의 평화를 추구하고, 힘의 균형을 맞추고 싶어 하며, 양국의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병대 대령인 키도의 경우 누군가를 잡아 고문하거나, 협박하고 총으로 처형하며 누군가를 폭력으로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비를 배풀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그 외에도 이 드라마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을 뽑자면 줄리아나의 남친이자 유대인인 프랭크 프링크다. 그의 경우 태평양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이자 줄리아나의 남자친구다. 줄리아나가 중립 지역에 가있는 동안 그는 일본 헌병대와 키도 경감에게 잡혀 고문받고, 가족을 잃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되며, 일본 헌병대에게 총살당할 뻔했다가 운 좋게 살아났다. 그런 절망적인 과정에서 그는 저항운동에 투신하게 되고 여러 활약을 펼친다. 평범한 일개 소시민이 고난과 학대를 겪으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를 아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렇듯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가 가장 좋았던 점을 뽑자면, 필자가 10대 시절 하던 상상력과 호기심을 채워줬다는 것이다. 드라마 상에서 추축국이 이긴 사회는 어떨까 하며 보는 재미도 꽤 있었다. 드라마에 나온 나치 독일은 매우 인종주의적인 세계인 것에 반해, 일본 제국은 적어도 나치 독일 보다 인종적으로 다양함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 제국의 경우 과학 기술력이 좋지는 않지만, 나치 독일은 최첨단 항공 기술력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흥미로웠던 것을 뽑자면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관계다. 그들의 경우 겉으로는 친한 척하지만, 양국의 강경파들은 전쟁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참으로 이 드라마에서 재밌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오히려 일본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 히틀러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 재밌을 따름이다.


그 외에도 드라마상에서 나치 독일 치하의 일상과 일본 제국 치하의 일상을 아주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아 나치 사회는 저랬겠구나 혹은 아 일본 제국 사회는 저랬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게 된는 재미도 있고, 중간중간에 연합국이 승리한 세계와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번 학기 동안 정말 흥미롭고 재밌는 드라마를 끝까지 감상했다. 특히나 10대 때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선 드라망 높은 성의 사나이가 흥미로운 상상 및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일상을 위주로 전개되는 드라마이기에 전투 장면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그 점은 드라마를 볼 때 감안하고 봐야할 것이다. 아무튼 정말 재밌는 드라마를 끝까지 다 감상했다. 대체 역사물 좋아하는 사람들과 제2차 세계대전 마니아들에게 이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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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초 칭기스칸은 자신의 나라 몽고를 세계 제국으로 만들었다. 칭기스칸의 몽고제국은 중국의 송나라를 무너뜨렸고, 러시아 일대에 킵차크 한국을 세웠으며, 폴란드까지 진격했고, 유라시아 일대와 이라크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고려와 일본까지 침공하기 까지 햇었다. 이시기 몽고제국에 맞서 끈질긴 항전을 전개하여 침략을 막아낸 국가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 또한 몽골의 침입을 겪게 되었는데, 1252년 몽고군이 운남성의 대리국으로 진격하여 그곳을 점령하자 몽골과 베트남은 국경을 맞대게 되면서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1257년 몽고군은 홍 하 유역을 따라 남하하여 베트남을 침공했다. 베트남 국경 지대를 단숨에 돌파한 몽고군은 수도 하노이를 함락시켰다. 당시 몽고 군대가 들어오자 수도 하노이는 텅 비어 있었고, 베트남 측이 후퇴할 당시 모든 것들을 다 불태우고 떠나서 몽골측에서 얻을 것이 없었다. 거기다 베트남의 기후가 매우 더웠기 때문에 몽고군 내에서도 각종 질병으로 인하여 운남성으로 철수했다. 그 과정에서 몽고군의 침략에 대비했던 장군 쩐 흥 다오(Trần Hưng Đạo)는 철수하는 몽고군에게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고, 1257년 12월 몽골 조정과 화약을 맺고 3년에 한번 입공할 것을 약속했다.


베트남이 다시 몽골 침입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은 몽고가 남송을 멸망시켰던 1276년부터다. 1278녀에 재워한 년 똥과의 갈등을 겪게 된 원나라는 1280년대 초 참파(Champa)와 캄보디아를 공격했다. 당시 원나라는 참파에 원정군을 파견하면서 베트남에게 ‘길을 빌려 달라’는 것과 군량의 제공을 요구했지만 쩐 왕조는 그 요구를 거절했다. 1283년 원나라는 참파에 이르러 비자야를 함락시켰다. 하지만 참파측은 산으로 도피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원나라 원정군을 고전하게 만들었고, 그런 상황은 쿠빌라이칸으로 하여금 쩐 왕조에게 “베트남 통과와 쩐 왕조 군대의 출병”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물론 베트남은 이에 거부했고, 현재 퀴논 지역에서 폭풍을 만나 원나라군의 해군이 큰 타격을 받자 베트남을 다시한번 침공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몽골의 제2차 베트남 원정이 시작되었다.


몽고는 제2차 원정에서 육로로 참파를 점령하고자 대략 50만 대군을 거느리고 광시 성을 출발하여 베트남의 록 쩌우(Loc Chau, 지금의 랑 썬 Lang Son)지역으로 진격하게 했다. 당시 쩐 왕조는 1257년 몽고의 1차 침입때 혁혁한 공을 세운 쩐 흥 다오를 국공으로 삼아 군대를 통솔하게 했다. 당시 베트남의 군대는 20만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들은 전국의 덕망있는 촌로들을 모아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전쟁 초기 쩐 흥 다오의 군대는 중과부적으로 몽고군에게 밀렸고, 1285년 초에는 탕롱이 함락되기도 했다.


그러나 쩐 왕조의 군대는 서울 탕 롱을 점령한 원군을 사방에서 공격하여 점령군을 수세로 몰아넣었고, 게릴라 전을 전개하여 몽고군을 고전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쩐 흥 다오는 많은 활약을 했다. 그는 항복하는게 어떻겠느냐는 년 똥의 물음에 최후까지 저항할 것을 권유하고, ‘격정사’를 써서 장수와 병사들에게 왕조의 위급함을 호소했다. 이런 쩐 흥 다오의 활약으로 사기를 높인 쩐 왕조의 군대는 여러 곳에서 원군을 격파하고 1285년 6월 다시 탕 롱을 탈환했다. 이렇게 하여 몽골의 제2차 침입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베트남에서의 쓰라린 패배에 격노한 원의 쿠빌라이 칸은 당시 계획하고 있던 일본 원정을 포기하고 1287년 말에 다시 수륙 30만 대군과 500척의 함대를 이끌고 베트남을 침공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몽골의 마지막 침입이기도 한 제3차 베트남 원정이다. 쩐 흥 다오의 군대는 제1,2차 원정에서 그랬듯이 탕 롱에서 군대를 철수시켜 원나라군에 맞서 일종에 게릴라 전을 전개했고, 주민들은 몽고군이 먹을 식량을 놔두지 않았다. 거기다 원나라군의 군량 공급 선단이 오늘날 홍 가이(Hong Gai) 부근의 앞 바다에서 쩐 왕조의 군대에게 격파되었고, 배 300척이 침몰했다. 그리하여 쩐 흥 다오는 바익 당 강에서 후퇴하는 원의 수군을 맞아 일전을 벌였고, 3세기 반 전에 응오 꾸옌이 그랬듯이 강에 말뚝을 박고 만조 때 원의 전함을 유인했다가 간조때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리하여 몽골의 제3차 베트남 원정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쿠빌라이칸은 이것에도 만족하지 못했기에 다시 한번 원정을 준비했지만 1294년 그가 사망하면서 4차 원정은 실행되지 않았다. 어쨌든 베트남은 30년간의 대몽고항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몽고의 침략에 맞선 항쟁은 베트남 인민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몽고의 침략을 무찌르고 승리한 경험은 베트남인들의 민족 자긍심을 한층 드높였다. 세계 제국 몽골을 한 번이 아닌 세 차례나 물리친 그들의 역사는 세계 역사에서 보더라도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베트남인들의 대몽항쟁사는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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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 -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짐 해스킨스 지음, 최성애 엮음 / 문예춘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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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사소한 행동이 사회를 변혁하기도 한다.

1955년의 미국의 남부에선 그 악명높은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이 여전히 실행되고 있었다. 사회의 공공시설에서 흑백분리가 이어졌고, 식당, 화장실, 식수대, 도서관 등에선 흑인과 백인을 분리했다. 그 중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했던 게 버스안에서의 흑백분리였다.

이런 흑백분리는 많은 흑인들로 하여금 반감을 가지게 했다. 그 반발은 1955년 몽고메리 지역에서 발생했던 한 여성의 사건에서 비롯됐다. 그 여성이 바로 ˝미국 흑인민권운동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로자 파크스(Rosa Parks)다.

로자 파크스는 1913년 미국 저남부인 엘라배마에서 태어났다. 로자 또한 다른 흑인인민들과 다를게 없이 어린 시절부터 미국사회의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었었다. 심지어 그의 할아버지는 KKK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 했고, 그 바람에 로자와 그의 가족들은 침대에서 잠을 잘 때도 평상시 옷을 입고 자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로자 또한 남부에서 살면서 그 힘든 밭농사도 했었고, 흑인들이 어떠한 고생을 하며 사는지 몸소 체험했다.

당시 미국남부에선 흑인 투표권을 막기 위해 흑인들에게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문제를 내어 투표권을 부여치 않게 했는데, 로자 또한 그 때문에 3번이나 유권자 등록을 신청했다.

로자의 말에 따르면 사실 1955년에 미국 경찰에게 체포당했을 때, 버스에서 일어나길 거부했던건 일부러 의도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일하고 난 뒤 몸이 피곤했고, 버스에서 자리를 비키는 것이 피로로 인하여 짜증이 났었던 것이고, 그 때문에 백인들에게 자리를 비키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로자가 체포되어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미국에 있는 흑인들은 이에 저항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렇게 해서 벌어진 것이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다. 로자 파크스 사건을 계기로 미국 몽고메리주의 흑인들은 힘들더라도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투쟁했다. 그 결과 1956년 11월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버스안에서의 흑백 분리주의를 위법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후 로자는 1957년 미국 디트로이트로 이사했고 흑인인권운동에도 참여했다. 1963년 마틴 루터 킹이 주도했던 워싱턴 대행진과 1965년 셀마 투표권 투쟁에도 참여했다.

로자 파크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사소한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미국이라는 사회가 인종차별이 심한 사회였다는 사실을 로자의 자서전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는 20세기 흑인민권운동하면 그 운동을 이끌었던 분리주의자 말콤X와 통합주의자 마틴 룾더 킹을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들의 투쟁은 역사적인 측면과 인류애적인 측면에서 존경받고 본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로자 파크스와 같이 미국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종차별에 저항하며 투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된다. 로자 파크스의 자서전은 암울했던 20세기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역사와 그 민낯을 독자들로 하여금 얘기해줄 것이다. 많은 동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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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 악의 뿌리 미국이 지목한‘악의 축’그들은 왜 나쁜 나라가 되었을까?
권태훈 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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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정권을 잡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귀가 따가워지도록 했던 발언이 있다. 그 발언 바로 소위 반미국가들에게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단어를 시전하는 것이었다. 조지 부시는 반미국가인 북한, 이란, 이라크를 지목하여 악의 축이라 결론을 내림과 동시에 그 나라를 대상으로 하여 각종 경제 제재를 걸었고, 더 나아가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략했다. 그렇다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목했던 국가들은 과연 악의 축인 것일까?

책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은 “이것이 미제국주의와 지배계급이 미국 인민들과 전 세계 인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해온 선전”이라고 반박한다. 사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것처럼 과거에도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경제적으로 제재를 걸었었고, 현재도 진행중에 있다. 적잖은 나라들이 미국에 맞서 나름의 방식으로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대표적으로 책에서 다룬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베트남, 북조선, 이란, 리비아가 그러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로 유명한 임승수 선생을 포함하여 대략 7명이서 집필한 이 책은 7개 국가의 반제국주의 투쟁과 정치체제와 경제정책 그리고 그 투쟁이 전 세계적으로 미친 여파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고립시켰던 쿠바의 사례를 먼저 보자. 미국 남부의 플로리다주에서 보일 정도로 아주 가까이 존재하는 쿠바는 콜럼버스의 약탈로 시작된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맞서 독립투쟁을 전개했었다. 그러나 미서전쟁을 통하여 쿠바를 식민지배로 만든 미제국은 쿠바를 경제적으로 식민지배 했다. 그래서 20세기의 쿠바는 풀헨시오 바티스타와 같은 친미 제국주의자들은 미제국의 기업들이 쿠바를 착취하도록 도왔고, 쿠바 인민들은 값싼 사탕수수를 미국에게 바쳤다.

 

그러던 1956년 그런 미제국의 착취와 제국주의 지배에 반대하여 의식있는 82명의 젊은이들이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에 상륙했다. 상륙하자마자 항공기의 지원을 받은 바티스타군의 포위를 받았던 그들은 대략 12명만이 살아남아 쿠바의 밀림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해 나갔다. 그 게릴라전을 지휘했던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는 민심을 잘 사로잡았다. 의대를 나온 체게바라는 마을에 사는 민간인들을 무료로 치료해줬고, 수많은 민주인사들과 정당인들 그리고 종교인과 학생운동가들까지 혁명적인 게릴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결국 그렇게 민심을 잡은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는 1959년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그들은 미제국이 쿠바에 퍼뜨려 놓았던 악덕 자본기업들을 국유화했고, 자본주의적 착취를 종결시켰으며 무상의료 무상복지에 입각한 정책들을 실행했다. 그러자 미국은 쿠바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피그스만 침공을 벌이기도 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를 시작으로 쿠바 전체를 포위하여 3차 대전의 위기까지 이끌어 갔었지만, 그들은 제국주의에 굴복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델 카스트로는 미제국주의의 고립속에서도 예산 절반을 의료에 투자하기도 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그 이후에도 제국주의의 고립속에서 무상의료를 중심으로한 국가를 탄생시켰고, 1990년대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붕괴속에서도 무상의료를 비롯한 복지제도를 고수했다. 또한 식량 생산도 자급자족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매우 친환경적인 시스템적 생산을 유지하며 발전해나갔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의 고립속에서 쿠바가 해낸 것이다. 쿠바의 무상의료가 얼마나 대단한 시스템인지 알려주는 단편적인 예가 있다. 이는 9.11 테러 당시의 얘기인데, 9.11 테러 당시 미국의 소방관들을 치료한 것이 바로 쿠바였다. 책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겠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라는 다큐멘터리에서 9.11 테러의 영웅들인 미국 소방관들이 유독물질에 따른 후유증으로 온갖 병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미국의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료보험의 폐해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미국의 의료는 국가가 아닌 기업에서 모든 것을 통제해 값 비싼 의료보험에 들지 않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치료받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쿠바였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이들을 직접 쿠바로 데리고 가 치료를 받게 해준 것이다.(쿠바는 외국인도 무료로 치료한다.) 병원에 입원하여 쿠바 의료인들의 정성어린 치료를 받으면서 소방관들은 눈물을 흘린다. 미국이 외면한 자신들의 병을 미국의 적국인 쿠바 의사들이 치료해준 것이다.”

 

출처: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p.42~43

 

이렇듯 비록 미국이나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도저히 해내지 못한 일이 쿠바에서는 가능하다. 이러한 쿠바의 사례를 따라 냉전의 종식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맞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선언했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가 바로 트럼프가 전복시키고자 했던 베네수엘라다.

 

2019년 당시 미제국주의자 도널드 트럼프가 우익 반혁명 분자 후안 과이도를 내세워 전복시키고자 했던 베네수엘라는 각종 사회주의적 정책을 시도했던 나라였다. 비록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와 서방의 극심한 고립으로 인하여 현재의 경제 사정은 좋지 않지만, 베네수엘라 인민들은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거부했다.

 

니콜라스 마두로가 정권을 계승하기 이전 베네수엘라를 신자유주의로부터 방어했던 인물은 바로 우고 차베스였다. 우고 차베스는 2000년대 당시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온갖 음해와 근거없는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심지어 미국의 제국주의 세력들은 그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는 망발을 일삼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만큼 미국에게는 눈앳가시와도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남미 원주민 혈통을 가지고 있는 우고 차베스는 참으로 멋있는 인물이었다.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기 이전 베네수엘라는 빈곤층이 총 인구의 80%에 달하는 나라였다. 우고 차베스는 노동자가 주인인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조합장과 조장을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민주적인 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그 결과 2006년 베네수엘라에는 10만 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아무튼 이런 협동조합의 증가로 1999년에 16.6%였던 실업률이 2007년 1월에는 11.1%로 감소했다.

 

또한 우고 차베스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에 기반한 복지정책을 실행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에선 글을 배우지 못한 노인들이 무상으로 글을 배울 수 있었고, 많은 지역 학생들이 무상으로 대학에 진학하여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차베스의 무상의료 정책은 많은 부분에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무상의료 정책으로 인하여 암치료와 같은 수술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고, MRI 치료와 같은 것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쿠바와 마찬가지로 외국인도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이런 무상치료는 단순히 감기치료와 같은 간단한 치료만이 무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책에선 베네수엘라의 무상의료 혜택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무슨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냐고? 혹시 감기주사 한 방 놔주고 무상의료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남한에서는 100만 원을 줘야 받을 수 있는 MRI 진료가 공짜다. 남한에서는 200만 원이 드는 임플란트가 공짜다. 한 번 걸리면 집안이 풍비박산 날만틈 엄청난 치료비가 드는 암 치료가 베네수엘라에서는 공짜다. 놀랍게도 외국인도 공짜로 치료해준다. 앞서 얘기했듯이 필자는 2007년 1월에 비행기를 타고 직접 베네수엘라를 방문해서 이러한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우리의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베네수엘라에서 지금(2008년 기준)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베네수엘라가 가능하면 우리도 당연히 가능하지 않을까?”

출처: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p.65~66

 

비록 이 책 자체가 11년 전에 나와서 그 이후의 상황을 어느정도 생각하고서 봐야할 수 있겠으나, 미국과 소위 자본밖에만 모르는 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운 신자유주의에 맞서 그러한 시험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이 했다는 사실 만큼은 역사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 아무튼 이 책은 정말 감명깊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부분이 많은 책이다. 필자가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챕터가 쿠바와 베네수엘라였기에 대표적으로 쿠바와 베네수엘라이기에 이를 좀 더 중심적으로 얘기 했다. 그 외에도 미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콘트라 우익 반동 지원 맞선 니카라과 인민들의 투쟁, 미국의 침략에 맞선 베트남 전쟁에서의 민중들의 투쟁,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선 북조선의 저항, 미제국의 봉쇄에 맞선 이란 인민들의 저항 그리고 미국의 탄압에 맞선 리비아의 저항 등 필자는 아주 흥미롭게 잘 읽었다.

 

이 책을 통해 필자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소위 미국이 악의 축으로 간주하거나 침략하여 전복시키고자 했던 국가들은 절대 악의 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마지막 파트로 다룬 리비아만 보더라도 카다피 정권 시기 많은 진보적인 성과물이 있었다. 즉 미국이나 서방에서 얘기하는 것만큼 인간쓰레기 정도의 통치를 보였던 지도자는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런 국가들에게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 그리고 경제적 고립을 통해 고통을 주었던 미국의 행위가 더더욱 비판받을만 하다. 무슨 반미하면 오히려 더 못살기에 미국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역으로 친미를 강하게 해서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진 나라들도 많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있는 좌담회의 한 구절과 노엄 촘스키의 말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도록 한다.

 

“제가 베네수엘라 쪽 연구하면서 들여다보면서 놀란 게 뭐냐면 이 나라가 옛날에 꽤나 잘 살았다는 거에요. 아르헨티나도 굉장히 잘살았잖아요. 세계 4대 부국 중 하나였다던데. 우리는 남미를 되게 무시하는데 옛날에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들 많아요. 그리고 민주주의 수준도 우리보다 훨씬 높았고요. 그런데 그런 나라들이 한순간에 망하더라고요, 한 순간에. 그놈의 신자유주의 때문에요……. 제가 우려스러운 건 뭐냐면 남미가 옛날에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고, 민주주의 수준이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IMF, FTA 같은 거 통해서 신자유주의식, 미국식 사회경제 체제가 들어가면서 쫄딱 망했거든요.”


출처: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p.288


“미국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불량국가’는 이라크나 리비아가 아니라 미국 자신이다.”


-노엄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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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베레 - 베트남 전쟁과 그린베레의 전설 KODEF 안보총서 11
로빈 무어 지음, 양욱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미제국주의자가 미화한 역사 소설 그린베레(The Green Beret)

베트남 전쟁(Vietnam War)은 미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이었다. 19648월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을 조작한 미제국주의자들은 본격적으로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대략 8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수백만이나 되는 동남아시아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그러나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기 전에도 미국은 남베트남 문제에 개입하고 있었는데, 이는 바로 미군사고문단 이라는 형식으로 남베트남 정권을 돕는 방법이었다.

 

미국의 존F케네디 정권때부터 베트콩에 맞서 남베트남에서 군사활동을 전개했던 미군사고문단은 1963년이 되어 대략 11000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이들은 남베트남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물적, 인적 지원을 아낌없이 했다. 미국의 존F케네디가 남베트남에 미군사고문단 형식으로 지원했던 부대들 중에는 특수부대가 존재했는데, 그 부대가 바로 초록색 베레모로 상징되는 그린베레(The Green Beret)’.

 

미국의 특수부대 그린베레의 기원을 따지자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미국의 첩보기관인 전략 사무국(OSS)은 미군 비정규전 전문가들을 추축국 후방에 침투시켜 저항세력을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태평양 전쟁 시기 중경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와 협력했던 미국의 기관이 바로 OSS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OSS는 해체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군은 또 다시 비정규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미군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북한 침투를 위한 특수부대를 만들기도 했었다.

 

1952년 미국에서 창설된 제10 특수전단은 미 육군 특수 부대의 시대를 열었다. 이 특수전단은 주로 공수부대나 전직 전략사무국 파견요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특수부대는 서독에서도 활동했었고, 그 외의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배치되었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존F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특수부대는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고,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베레모 착용이 허용되면서 그 특수부대는 그린베레가 되었다.

 

케네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창설된 미국의 그린베레는 냉전 시기 여러 곳에 배치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베트남이었다. 남베트남에 군사고문단 형식으로 배치되었던 그린베레는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키기 위해 부패하기 짝이 없는 남베트남군을 물적, 인적으로 지원했고, 라오스와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 들어가 소수민족들을 가지고 군대를 조직했다. 라오스에서는 반공산주의 감정이 심했던 몽족(Hmong)을 이용했고,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선 몽타냐르족(Montagnard)으로 대표되는 브루족(Bru)이나 에데족(Ede) 같은 산악소수민족들을 이용했다. 그들이 바로 그린비레가 계획한 CIDG 군대(비정규 민병대라고도 함)로 거듭났다. 물론 이 군대는 제국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할대로 이용당하다가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버려진다. 아무튼 그린베레는 베트남 전쟁 시기 남베트남군을 지원했던 미국의 특수부대였다.

 

베트남 전쟁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미국의 작가 로빈 무어(Robin Moore)가 집필한 그린베레를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몇 달 전 인종차별주의자인 존 웨인(John Wayne)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반공영화 그린베레(The Green Beret Film)를 감상하였기에 이 책의 내용이 어떨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읽는 내내 반공주의자들의 저급함과 수준 낮은 역사관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린베레의 무용담 뿐만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다룬 책이며, 베트남 전쟁 반전론자들이 책도 제대로 안 읽고 미화물이라 비판한다고 말하며 반전주의자들을 비웃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필자가 한마디 하자면, 반전주의자들이 이 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책의 내용이 시작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침략자인 그린베레의 미화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남베트남에서 자생적으로 창설된 베트콩들이 왜 세계최강의 미국 군대에 맞서 싸웠는지는 생각지 못하는 역사적 몰이해를 보여준다. 저자는 자국의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해방 전사들을 마치 아무런 민간인들이나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다니는 존재로 묘사하는데, 영화 그린베레가 보여줬던 베트콩 악마화랑 다를 게 없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이 무슨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처럼 나오는데, 역사 왜곡의 극치다. 저자 로빈 무어는 그린베레의 필요성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그린베레 부대원과 베트남 여성의 러브 스토리, 그린베레 부대원과 몽족 여성의 러브 스토리 그리고 그린베레 부대원과 몽타냐르족 여성의 러브 스토리 따위를 넣는데, 이런 가상의 러브 스토리는 단순히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선동일 뿐이다.

 

가장 기가 막혔던 파트는 어떤 가톨릭 여성인 린의 스토리인데, 이 파트는 베트콩과 북베트남에 대한 심각한 악마화로 얼룩져 있다. 그 파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베트콩에게 가족을 잃은 가톨릭 신자인 린이 베트콩 장교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그린베레를 본 사람은 이 내용이 영화에서도 나온다는 걸 알 것이다. 저자 로빈 무어는 소설에서 무슨 베트콩을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존재로 묘사했는데. 진실을 말하자면 실제 전쟁에서 그런 짓을 했던 것은 게릴라를 토벌했던 연합군 측의 모습이 그러했다.

 

저자 로빈 무어는 자신이 이 책에서 남베트남의 부정부패를 거리낌 없이 고발했다고 서문에 밝혔다. 물론 책에서도 남베트남군의 부패상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로빈 무어는 그것만큼 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정통성 문제와 분단 원인이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즉 로빈 무어는 남베트남군이 왜 부패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뿌리가 누구인지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들이 프랑스군에 있었던 사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으며, 베트남 인민들이 왜 호치민과 공산당을 지지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우리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베트남에서 열심히 싸웠다.”와 같은 무용담만 읊었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왜 베트콩들이 그린베레와 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서 싸웠는지를 가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로빈 무어의 역사 소설 그린베레는 미군에 대한 무한한 미화와 베트콩에 대한 악마화로 가득차 있다. 쉽게 말해 반공주의자가 저지르는 역사 왜곡의 전형적인 사례다. 책의 마지막을 보면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공산군을 압박해야 한다. 이제 공산군은 하노이 주변에 A팀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 것이고, 호치민은 새로운 평화 협정을 요구해올 거다. 우리는 힘으로만 대화할 거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것은 새루운 형태의 전쟁이다. 승리와 패배 같은 건 없다. 협상이 시작되면 어느 쪽이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라는 대사로 끝을 맺는데, 전형적인 반공주의자의 생각을 반영해준다.

 

베트남 전쟁을 지극히 미국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책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중에 이 책의 저자 로빈 무어에 대해 좀 찾아보았다. 그는 하버드 대학 출신에 아버지 밑에서 호텔 경영을 했던 전형적인 미국 부르주아였다. 1960년대 그가 쓴 피델 카스트로 관련 책이 있는데, 그 책 제목이 바로 대가를 치러야 할 악마(The Devil To Pay)’. 정말이지 반공주의가 극에 달한 인물이다. 이런 뒤틀린 역사관을 소유한 인물이니 미국의 침략전쟁인 베트남 전쟁을 미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베트남 전쟁을 공부해본 필자로선 로빈 무어의 저급한 역사관이 한심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그린베레에 대해 얘기하겠다. 로빈 무어 책에서 나온 그린베레는 매우 정의로운 존재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베트남 전쟁 시기 그린베레는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을 벌였는데, 그게 바로 피닉스 작전(Phoenix Program)’이다. 피닉스 작전을 통하여 그린베레를 비롯한 미국 특수부대는 무고한 민간인 27000명을 아무런 증거도 없이 베트콩으로 몰아 학살했다. 따라서 그린베레는 베트남 전쟁에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제국주의 침략자들이었다. 이런 그린베레의 침략은 베트남에서 멈추지 않았다. 저자 로빈 무어는 맺음말에서 우리는 인류가 대참사를 당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아프리카의 폭군이든 발칸의 독재자든 중국의 인권 침해자든 누구를 상대하든 간에 단호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루돌프 럼멜과 같은 네오콘들이 가진 극단적인 제국주의 사상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관점이다. 그린베레가 참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엄연한 미제국의 침략전쟁이다. 그런 침략전쟁은 벌인 미국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책 저자 무어가 미화한 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알아야할 것은 제국주의 침략자 그린베레의 무용담이 아닌, 그들에 맞서 투쟁했던 베트콩과 같은 민족해방투사들의 이야기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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