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 Unbowe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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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정지영
주연 : 안성기, 박원상

 

혼자하는 외출에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잠시 무엇을 혼자 사러갔다오는 것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혼자 음식점에 가 음식을 시켜먹는 다든지 혼자 영화 보는 것은 그닥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왔다. 그것도 영화 시사회를. 하긴, 시사회가 아니면 그 시간에 영화를 보겠다고 집을 나서는 것도 귀찮긴 할 것이다. 저녁 8시 10분에 하는 거니까. 

둘(또는 그 이상)이 함께하는 시간은 길지만 혼자하는 시간은 짧을 수 있다. 그 시간이면 난 으레 독서를 하고 그런 후 TV를 보다 잠을 잘 준비를 한다. 게다가 7시나 8시나 밤인 건 마찬가지다. 남들은 귀가를 서두르는 시간에 나는 오히려 외출한다는 건 익숙치 않는 일이다.

그래도 이왕 가기로 했다면 눈 딱감고 갔다오자 했다. 집에서도 가까운 강남CGV가 아닌가.

강남 지역의 극장에서 시사회 하기는 근래에 들어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도 난 꾸역꾸역 밤 외출을 결행한 것이다. 만일 집에서 먼 거리에서 하는 거라면 앓느니 죽는다고 했을 것이다. 

 

이런 흔치 않는 기회를 혼자만 만끽한다는 것도 또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전에 한번 아는 지인에게 시사회 티켓이 생겼는데 시간되면 같이 가지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자기는 시사문제를 다룬 영화는 머리가 아파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그래서 그 유명하다던 '도가니'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러냐며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하긴 '도가니'는 나도 별로였다. 지금 내가 보려고 하는 영화가 그런 배려심 없는 영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감히 더 이상 누구한테 권하지도 못하겠다. 또 생각해 보니 그런 현실문제를 다룬 실화 영화치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없었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그런 모험은 정말이지 나 혼자로도 족할 일이었다.

누구는 '도가니'가 성공하지 않았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영화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데 성공한 영화일지는 몰라도 영화적으로 볼 때 작품성도 떨어지고 전혀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갖기 어려운 영화다. 한마디로 난 그런 식의 영화는 그 한 작품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이 영화를 제2의 도가니라는 표현을 쓰기를 서슴치 않는데, 그런 표현은 가당치 않다.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확실히 확인했던 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진화다. 그동안 ('도가니'를 포함해서)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일련의 영화들이 어땠는가를 생각해 보라. 다큐멘터리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극영화도 아닌 것이 그야말로 영화계에서 서자 취급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충분히 뛰어넘었다. 진지하면서도 신랄했고, 그러면서도 시종 유머를 잃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유쾌한 기분마저 들게 만드는 영화였다. 자칫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실화 영화를 이토록이나 훌륭하게 윤색할 수 있었던 것엔 시나리오의 힘이 컸다는 생각이든다. 

 

 

 

 

사실 어느 교수의 석궁 저격사건은 당시 나로써도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교수가 그런 끔찍한 사건을 저지를 수 있을까? 놀랐다. 하지만 그런 건 단순상해 사건이 아니라면, 배울만치 배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느냐고 사람을 비난하기 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정황에 대해 알려고 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 그건 괜히 엄한 사람 편들어 주기 위한 것마는 아니다. 그 이면을 알려고 하므로해서 지금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석궁 저격을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면엔 우리나라 사법부의 오만과 정직 보다는 조직사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 사회가 얼마나 썪어 있는지를 영화는 잘 짜여진 이야기로 포장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위해 작가는 정말 많은 자료들을 섭렵했을 것이다. 이야기에서의 자료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너무 많은 자료를 갖다 보면 버리고 싶지 않다는 욕망 때문에 이야기에 이 많은 자료를 끼워넣고 싶어한다. 더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면 그 유혹은 배로 뛸 것이다. 사실 어찌보면 이 영화도 너무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용케도 다큐멘터리가 될 운명을 피해갔던 건 등장인물을 잘 살렸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특히 변호사 보다 더 많은 법률지식으로 중무장한 석궁 저격사건의 용의자 안성기가 배역을 맡은 김경호는 실제 그런 성격의 인물이라면 아마도 21세기 천연기념물은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올곧은 선비지식을 갖췄다는 것이. 그를 보고 있으면 마치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를 보는 것 같다. 얼마나 치밀하고도 거침이 없는 인물인가.

그에 비해 사건을 의뢰 받은 박준은 배째라식의 막 굴러먹은 변호사다. 그도 그럴 것이 인권 변호사라고 해서 마냥 인간미 넘치고 정직과 정의를 얼굴에 수놓지는 않았다. 나름 찌질하고 궁상이 철철 흘러넘치지만 그래서 때로는 엉뚱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박원상이 맡은 박준은 김경호가 법정에서 스스로를 변호사로 착각하는 바람에 할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누구 못지 않다.    

 

이 영화에서의 백미는 철갑을 두른듯한 우리나라 사법부의 오만함을 까발렸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김경호가 건드렸던 사람이 왜 하필 법조계 사람이었을까?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렸다. 그것은 확실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그런 이야기에서 언제나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건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역전 드라마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건 김경호가 갖는 인물의 독특함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가 상대한 판사와 검사들 앞에서 굴하지 않는 결연함이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그의 입에서 나온 독설같은 대사가 인상적이다. 오늘 재판이 마음에 드냐고 물으니, "이게 무슨 재판이냐 개판이지." 한다. 또한 그렇게 변호사를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하니 전문가를 이렇게 무시해도 되냐는 항의에, "이 나라에서는 사기꾼외에 전문가는 없다."는 말은 탄성을 지르게 한다. 그러면서 뒤에 따라오는 것은 우리나라는 자국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것이 씁쓸함이 베어 올라왔다.

그래도 박준 변호사 마지막에 김경호에 대한 마지막 최후 변론에서 100년 전 프랑스에서 자국의 위상을 위해 죄없는 사람을 희생시킨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하면서 최후변론을 마치는 장면은 정말 멋진 시퀸스였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 사건은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주 완벽히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침대에서 남녀가 나뒹군 장면은 없어도 뻑하면 술 마시는 장면은 짜증유발 그 자체다. 우리나라 TV나 영화나 그 놈의 술 장면은 안 나오면 안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영화를 보러 갔을 땐 다소 피곤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는 오히려 좋은 영화 보고 나왔다는 느낌 때문에 피로도 이길 수 있었다. 물론 결국 김경호는 재판에서 졌지만 내적으로는 승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의 마지막 미소가 참 인상적이다. 아무리 세상이 썪었다고 해도 깨어 있으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솔직히 우리는 교도소 안에 있건 바깥에 있건 자신을 자신이 책임지지 못하고 남 탓을 얼마나 많이하고 사는가. 그에 반해 김경호는 너무 똑똑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까? 사실은 굉장히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다. 이런 건 확실히 우리가 배울만 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본다. 그중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영화 '도가니'도 그렇고(불만은 있지만 그 영화가 거둔 사회적 파장은 무시 못할 일이다) 이 영화도 그렇고, 그렇다면 영화는 이 사회를 구원하고 정화시키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영화의 가능성을 볼 때 이제 영화도 결코 작지 않은 권력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영화는 정말 오랜만에 괜찮은 영화라고 자신있게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식 개봉을 하면 꼭 보기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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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01-10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부러진 화살>이라는 책도 있죠.
실제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가 석궁을 쏜 직후,
제가 당시 일하던 단체에서 부랴부랴 교수들 단체에서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그때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데,
참 재미있는 상황이더라구요.

영화로 나올거라는 소문은 들었는데, 벌써 나왔군요.
얼마나 현실을 담고 있는지.
얼마나 각색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김명호 교수는 과연 이 영화를 보고 뭐라고 할지도 무척 궁금하구요.
참고로 <부러진 화살>이라는 책은 김명호 교수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stella.K 2012-01-10 18:00   좋아요 0 | URL
아, 이게 책이 있었군요.
뭐 아무래도 본인의 이야기를 한 것이니까 그닥 좋아할리는 없겠죠.
다행으로 석궁이 빛나가긴 했어도 그 행위 자체가 정당하진 못했으니까.
그래도 어쨌든 주인공은 나름 매력적이었어요.
시나리오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야기 자체로 좋았다는 것일뿐이어요.^^

차트랑 2012-01-1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1년에 한 편 보는 간큰 사람인지라 영화에 대해서 언급할 입장이 못됩니다만
좋은 참고가 될만한 리뷰입니다. 영화리뷰는 또 어찌 이리도 잘 쓰시는지...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2-01-10 18:27   좋아요 0 | URL
에이, 그럼 추천이 있으셔야죠.ㅎㅎ
그런데 써놓고 보니 너무 지저분하게 썼다 싶어요.
알라디너분중에 잘 쓰는 분은 정말 잘 쓰는데 전 왤케 뭉개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 정말 괜찮아요. 나중에 VOD로라도 꼭 보세요.^^

아이리시스 2012-01-10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스텔라님. 저도 밤에 약속이 있어 갑자기 외출해야 할 때 되게 불편해하는 편이에요. 여자들은 준비해야 할 게 많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나와, 할 때도 좀 꺼리게 되는 편이고ㅋㅋㅋ 뭐 쭉 놀다가 밤에 오는 거야 원래 그런 거지만.

저는 우리나라 술집이나 음식점도 저녁 8시면 문을 좀 닫았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돈을 제일 많이 벌 수 있으니 대한민국에서 그럴 일 절대 없겠지만 술 말고는 취미생활이 없나요, 헉. 이 영화는 참, 리뷰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용에 대해 짐작하지만 드레퓌스 사건과 닮았다면 참 답이 없네요. 그래도 많이들 볼 만한 영화 같아요.

stella.K 2012-01-10 18:4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쭉 놀다 밤에 들어가면 좋은데
밤에 나와서 밤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많이 싫죠.
그래도 영화가 마음에 들어서 그 고생이 아깝지 않아요.
그리고 강남 지역 영화관도 시사회 좀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강남이라고 다 잘 살아서 그런 거 없어도 보고 그런 거 아니거든요.ㅋㅋ

아, 정말 술 장면 좀 그만 썼으면 좋겠어요.
이건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까 술도 달라 붙어서 떨어질 줄 몰라요.
그래도 영화는 영화에요.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한데가 있어요.
참, 이 영화 부산영화제 출품작이었다매요?
성과가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아시는 것 좀 없수?ㅎ

아이리시스 2012-01-10 18:59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제를 스물 세 살인가 그때 딱 한 번 갔었는데요ㅋㅋㅋ 죄송해요, 무늬만 부산사람이었어요 으하하^^ 그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남포동,해운대 뒷전으로 하고 살아요. 저는 그러고보면 엄청난 영화팬도 아닌 듯. 그때도 과제 땜에 보긴 봤는데 두 편 모두 비인기영화라서 앉아있다가 지겨워서 죽을 뻔 한 기억만 있어요. 같이 갔던 당시 엄청 친했던 친구와 이제 더이상 친구가 아닌데;; 흐흐흐.

stella.K 2012-01-10 19:1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랬군요.
하긴 저도 강남에 산다고 강남을 다 아는 건 아니예요.
부천영화제 십 몇년 전에 한번 간게 다에요.
확실히 영화는 집에서 퍼져서 보는 게 딱이죠.ㅋㅋ

이진 2012-01-1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사회 다녀오셨군요!
시골남인 저로서는 도대체 시사회라는 것이 무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ㅋㅋ
뮤지컬도요;;

아우, 저는 술담배그냥 다 싫어요...
그런데 제가 토치우드 본다고 했잖아요?
19금인데 잘못선택했어요. 하아, 술담배는 기본이고 (나오지는 않지만)
제가 보면 안되는 장면까지!!
아이참, 6화까지는 그래도 재밌게 봤는데 서서히 재미가 떨어지더라구요.
부담스러워 ㅠㅠ

stella.K 2012-01-10 19:26   좋아요 0 | URL
서울 산다고 시사회 다 보는 거 아니란다.
이거 VOD로 나오면 그때 봐도 돼.
뮤지컬은 훗날 내가 쓰는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게 되면
꼭 너 사는 동네에 가서 공연하자고 바득바득 우겨 볼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ㅎㅎ

토치우드가 그런 영화였어?
보지 마라. 너의 그 맑은 영혼이 더러워질까 심히 걱정된다.ㅋㅋ

차트랑 2012-01-1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서재에 방문해주시고 추천까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글에 추천을 깜박했습니다 ㅠ.ㅠ 한방드렸습니다~^

stella.K 2012-01-11 11:17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2-01-13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저도 한 방 드립니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 사법부의 오만함을 까발렸다는 것, - 신문 보며 그런 걸 자주 느꼈는데, 통쾌하겠는데요.
시사회까지 참석, 참 부지런하셔라...ㅋㅋ
세상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저는 요즘 심하게 게으름뱅이랍니다.
이 영화, 보고 싶네요. 영화 보고 나서 다시 이 리뷰를 읽고 싶다는...ㅋ
안성기님, 제가 좋아하는 배우예요. ㅋ

stella.K 2012-01-13 14:19   좋아요 0 | URL
오, 고맙습니다.
이 영화 꼭 보세요.
저도 간만에 나가서 본 거예요.
시사회만 아니었다면 저도 안 봤을 거예요.
알라딘이 저를 뽑아주길 잘한 거죠.ㅋ
안성기의 연기가 좋았습니다.^^

wlsgus0727 2012-01-2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제 심야영화로 봤었는데, 정말 괜찮은 영화던데요.
법정 영화라길래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고 봤었는데, 법에 대한 지식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은 저도 정말 재밌게 봤어요.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할때 사법부가 피고인이 허위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뭔가.. 안타깝네요..

stella.K 2012-01-21 19: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아주 재밌게 봤어요.
이 영화 잘됐으면 좋겠어요.^^
 
토드와 코퍼 - Tod & Copp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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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디비를 보니, 무려 30년 전에 제작된 에니메이션이다. 1981년 작. 

지금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워낙에 그림이 좋아 거의 빠져들면서 봤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어느 날 사냥꾼에 의해 어미를 잃은 새끼 여우가 마음씨 착한 호호 아줌마(원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임의로 부쳤다)에게 입양이 되고, 토드란 이름을 얻는다.

이웃에 사는 비슷한 또래의 사냥꾼의 개 코퍼와도 더 없이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사냥꾼을 따라 사냥을 나가 성견이 되서 돌아온다. 물론 그동안 새끼 여우 토드도 다 자랐다.  

오랜만에 만난 토드는 코퍼와의 옛 우정을 생각하며 변함없이 자신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코퍼는 예전의 그 코퍼가 아니다. 그는 주인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사냥개로 거듭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평소 여우 사냥을 해왔던 주인과 코퍼에겐 토드는 더 없이 좋은 사냥감. 

 

그렇지 않아도 토드는 자신의 주인인 호호 아줌마에겐 더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지만 이웃해 사는 사냥꾼에겐 눈엣가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준 호호 아줌마는, 비록 잘 못 지내는 이웃이지만 더 이상 이웃간의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고, 여우의 야생성을 잃기전에 숲속에 토드를 두기로 결심을 한다.

이것은 또, 할 수만 있으면 주인이 토드를 죽이려는 사냥꾼에겐 더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주인의 뚯이 그러하니 코퍼 역시 사냥꾼 기질을 발휘하여 주인을 도움와야 한다. 하지만 코퍼는 어릴 적 친하게 지낸 정이 있어서 그런지 토드가 있는 곳을 지나쳐 주인을 따돌린다.

 

그러던 어느 날 코퍼의 동료 늙은 개가 사고로 다리를 다쳤는데 그것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 토드다. 그렇게까지 자기를 살려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가 오해한 코퍼는 더는 봐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주인이 토드를 사냥하는데 적극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뜻밖에 숲속에서 큰곰을 만난 이들은 속수무책이다. 사냥꾼은 다쳤으며 그리도 날렵한 코퍼도 당해낼 제간이 없어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그러자 토드는 마지막 힘을 다해 큰곰과 맞서 싸우고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토드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냥꾼과 코퍼는 이웃간의 평화를 되찾고, 잊혀졌던 옛 우정도 회복하며 해피엔딩이다.

 

물론 이건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잘 살자.' 뭐 이런 교훈 정도겠지만, 나는 이걸 보면서 새삼 인간은 어떻게 사회화를 이루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어차피 이런 만화영화는 동물을 의인화한 영화로 재미는 있지만,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일수 밖에 없다.

어렸을 땐 세상 모든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 다인종 국가라는 미국의 경우도 어렸을 땐 친구가 안될 세계인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자라면서 피부색이 다르고, 그들의 조상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실력이나 소득 격차로 인해 알게 모르게 담이 쌓여진다.

이것은 꼭 미국의 경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도 이제 다문화 가정으로 인해 점점 혼혈인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빈부격차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개가 자라 사냥꾼 기질을 갖게 되고, 여우가 자라 야생 기질을 발휘한다. 그들은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들처럼 보인다.

그런 것처럼, 사람을 꼭 그런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더라도 어렸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커서도 친하게 지내지지도 않는다. 사는 정도, 자녀들이 어느 학교를 진학했느냐에 따라 레벨로 나눠지고 어느새 사는데 바빠 서로 연락도 멀어진다. 이런 인간관계의 공동화를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의외로 즐겁게 봤다가 생각하면 할수록 심각해졌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니 뜬금없이 뭔가의 정치 풍자적 요소도 있는 것 같아 묘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토드와 코퍼의 싸움이 정치인들 서로 비등해서 싸우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들은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혹은 개인으로는 더 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에선 여야로 나눠지고, 같은 당 내에서도 파가 나눠져 서로 싸운다.

또 어찌보면 그들은 같이 넘어야할 산이 없어서 저토록 서로 기싸움만 하는가 싶기도 하다.토드와 코퍼 사이에 큰곰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저렇게 기싸움만 하는 걸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같이 넘어야할 큰 산이 아직 없으니 싸움 구경 만한 구경이 없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심정으로 지켜 본다?

아니면, 같이 넘어야할 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끼자루만 썩이는 그들이 위험하다?

아니면, 그들은 서로가 같이 넘어야할 산을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먼저 굽히고 들어올 것인가를 지켜보느라 날만 새고 있다? 이 셋 중 어떤 것이 이 나라와 국정을 바로 보는 시각일까?

 

큰곰을 상대한 토드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던 걸까?

후에 코퍼와의 우정을 되살려 보려고?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위기에 빠진 친구를 살려보려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것처럼, 당장 그 존재가 나를 괴롭힌다고 해서 언제나 쓸모없는 존재인 것은 아니다. 긴 안목으로 봤을 때 토드가 숲속으로 와서 야생성을 회복하지 않았더라면 큰곰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코퍼는 아무리 사냥기질이 있고 날렵해도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몸이니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야생성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멀리는 호호 아줌마와 사냥꾼 간에도 관계회복도 이루었다. 그 아수라장에서 사냥꾼도 무사할리 없고, 호호 아줌마의 치료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간중간 숲속의 새들의 감초연기도 정말 맛깔스럽고, 사랑스럽다.

당연 어린 아이를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어른이 봐도 좋고, 특히 우리나라 여야 정치인들이 같이 보고 토론해도 좋을 것도 같다. 비록 일개의 국민이 이것을 정치인들에게 권해야 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구차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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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2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디즈니입니까?
역시 저희세대랑은 안맞는 그림체인 것 같아요...
우리는 블리치나 원피스 같은 일본 그림체에 눈이 익어버려서..

stella.K 2011-12-29 12:04   좋아요 0 | URL
그래도 30년 전 저 기술이었으면 대단한 거지.
난 역시 디즈니가 좋아.
블리치나 원피스는 그림은 훨씬 좋은데 끌리지 않는 것을 보면
난 확실히 구세대다.ㅋㅋ

cyrus 2011-12-2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이 만화, 어렸을 때 디즈니 동화책으로 봤어요,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 때 제가 본 동화책은
확실하게 영어 이름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만화 속에 등장하는
새들도 기억이 나요. 디즈니 만화들은 대개 미국인 관점에다가
원전 동화를 왜곡한 부분이 있어서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인만큼은 내용은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거 같아요ㅎㅎ

사실 저는 일요일 아침 8시만 되면 KBS 2TV에 하던 디즈니 만화동산을
애청했던 디즈니 키드(?)에요ㅋㅋㅋ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아이들 중에
디즈니 만화동산을 아는 사람이 없을걸요 ^^

stella.K 2011-12-2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진이랑 시루스랑 어쩌면 그렇게 세대차이가 나냐?
댓글 쓴게 확 차이난다.ㅎㅎ
그런데 또 이렇게 보니까 시루스가 나랑 더 가까운 것 같아.
그러고 보면 일욜날 디즈니가 꽤 오랫동안 했던 것 같아.
물론 난 그 시간에 보지는 않았지만 말야.
그렇지. 미국적 관점과 왜곡이 있긴 하지만 오랜만에 보니까 그도 볼만 하더라구.
물론 약간 그림의 디테일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 난 그래도 괜찮게 봤어.^^
 
쌍화점 - A Frozen Flow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유하
주연 : 주진모, 송지효,조인성(2008)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연애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여자 하나를 놓고, 여자 하나 때문에 벌어지는 참극 정도랄까? 또는 트로이의 목마의 또 다른 버전 일수도 있겠다. 남자와 여자는 그 두 존재로만 온전히 존재할 수 없는 걸까 싶기도 하다. 꼭 그 두 존재 사이에 아이가 있어야 완성이 되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 구조를 정치적 책략까지 끌어 올린 것이 왕조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비슷한 구조를 갖는 영화는 하정우가 나왔던 '두번째 사랑'에도 나온다. 아기를 갈망하는 여자가 한 불법 이민자와 거래를 하다가(여자는 남자의 정자를, 남자는 여자의 돈을) 진짜 사랑에 빠져 버리는. 그러나 그것은 용인할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이기도 하다. 여자의 남편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으니까 말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아 후사를 이어야 하겠지만 고려사의 마지막 왕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그는 가장 신뢰하는 신하(조인성 분)에게 왕비와 합궁하기를 명한다. 그렇게 해서 후사를 얻으려고. 하지만 그건 이야기의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신하에게 자신의 아내를 준다. 왜 남자는 사랑없는 섹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함정에 빠트리는지 모르겠다. 당연 몸이가면 마음도 가는 것이 인간의 체온 아니던가. 그렇게 되도록 들이민쪽은 이 비극의 왕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자신의 아끼던 신하가 왕비와 바람이 나서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둘이 그렇게 사랑에 빠져버리니 홀로 남는 자신이 슬프고 안타까워서 그토록이나 사랑에서 증오로 돌변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니 왕은 마지막 죽기직전 물어봤겠지. 너는 나를 사랑했었냐고. 그때 조인성은 아니라고 했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자를 품이 봤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영화는 남자들의 섹스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여자는 마음이 가야 몸도 간다.는 말을 뒤집어 보이고 싶어하는 것도 같다. 처음 자신의 남편도 아닌 남편이 아끼는 신하와 합궁을 해야한다니 얼마나 굴욕적이었을까? 그런데 바로 그 굴욕 넘어에 진짜 사랑이 있는 거라고 믿게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생각하는, 꼭 마음이 가야 몸이 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뭐 그것에 반은 동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하면 뭘하겠는가? 그 나머지를 둘러싼 건 비극일 뿐인 것을. 역시 도덕과 섹스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영화에서 또 한 가지 발견했던 건 확실히 섹스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다르다는 건 정사 장면을 찍는 감독의 방식이다. 만일 이 영화를 여자 감독이 맡았다면 비교적 많은 정사 장면을 더 많은 복잡한 심리 묘사로 대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 감독이 맡은 이 영화는 참 과하다 싶으리만치 정사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럴 때 관객의 반응은 또 어떤 것일까? 남자는 아랫도리가 뻐근해질까? 적어도 여자인 나는, 알았어. 알았다구.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꼭 남자 감독이냐 여자 감독이냐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관객을 누구를 타켓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 수위는 조절할 수도 있는 문제다. 이쯤되면 벗기는 것도 예술이고 ,능력이라고 우길텐가?  

왜 남자 감독들은 그토록이나 벗기길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 적어도 그렇게 믿는 것 같다. 나 이 남자 배우, 이 여자 배우 벗겨봤어.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그 벗는 영화에 자신을 기꺼이 맡기는 배우는 어떤 정신 상태인가 좀 궁금하다. 물론 벗는 영화 찍을 때 나름 여러 가지 장치를 쓴다고는 하는데 그래봐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일과 실제를 구분하리만치 건강한 사람들일까? 그것도 예술이기 전에 하나의 인권은 아닐까? 자진해서 벗겠다는데 인권은 무슨, 하며 썩소를 날린다면 그도 할 말은 없지만.       

감독이 그렇게 배우들의 옷을 벗길 때 벗기면 벗길수록 멀어지는 건, 관객들의 점잖은 예술적인 평가다. 대신 프로이트의 이론에 동조해 주길 바라는 것이겠지. 실제로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여성 관객들은 조인성의 엉덩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예술이었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나도 드디어 보았다고 외치고 싶기도 했다. 그래봐야 속도 느린 3G 스마트폰과 같은 처지 밖엔 안되는 것이니 조용히 입 닦치고 있으련다).  아무리 여성들이 마음이 가야 몸이 움직이는 족속이라고 해서 보이는 것 자체를 말하지 않을만큼 점잖빼는 족속은 아니다. 그것을 감독은 즐겼을까? 
그리고 그런 배우는 예술에 헌신했다고 해서 몸값이 올라가고,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는다. 확실히 벗는 것과 예술과 돈은 뭔가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없는 듯도 하고. 

영상은 나름 좋았다고 생각한다.
정말 고려시대 무사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쁘게 하고 나오니 정말 동성애도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역시 영화는 비극적이다. 주진모와 송지효가 각각 불렀던 노래가 귓가에 멤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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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06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목이 재밌어요.
저도 이 영화 TV에서 하길래 보려다가
그러한 장면들이 나오길래 바로 돌렸습니다...

stella.K 2011-12-07 11:25   좋아요 0 | URL
이건 정말 중요한 건데 너무 그쪽으로 경도되면
영화가 가로 갈수도 있다는 거죠.
이를테면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그런 현상.
딴소리 하지 않겠습니까? 흐흐

아이리시스 2011-12-06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는 재밌었어요. 역사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끄집어내는 것이 초창기일 때는 굉장히 놀라웠지만 지금은 아닐 것 같아요. 그런데 조인성 엉덩이를 봤는지 아닌지는 긴가민가ㅋㅋㅋ 이런 몹쓸 기억력.

stella.K 2011-12-07 12:1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엉덩이 그게 무에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영화의 기획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좀 그래서 그렇지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건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좀 아쉬움이 있어요.
조인성 연기도 기대보다는 아니었고.

페크pek0501 2011-12-0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티브이 방송 프로에선가 김혜선 탤런트가 나와서 하는 말, 조금이라도 젊을 때 벗은 몸을 보여 주려고 영화 찍었다,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 심리도 있는 모양이에요. 저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러나 또 그런 생각 들어요. 이왕 연예인으로서 활동할 거면 화끈하게 해야죠. 열심히...

stella.K 2011-12-09 15:5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열심히...!
그러게 말입니다. 그쪽 동네 정신 세계를 우리 같은 사람이
어찌 알겠습니까?ㅋㅋ
 
127시간 - 127 Hou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대니 보일
주연 : 제임스 프랭코, 리지 캐플란(2011)

이 영화를 보고 있으려니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어떤 한 남자가 일을 하다가 냉동창고에 갇혔다. 바깥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갈 방법이 없다. 더구나 그 시간은 동료들이 다 퇴근하고 나머지 자신에게 맡겨진 잔업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 주위엔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순간 절망에 빠진 남자는  그대로 얼어 죽어 버렸고, 다음 날 동료에 의해서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확실히 그럴만도 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영하 2,30도 되는 상황을 무엇으로 이기겠는가. 하지만 그의 죽음은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마침 그 창고는 고장이나 냉동이 가동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 남자는 얼어 죽은 것이 아니라, 지레 겁을 먹고 절망감에 죽은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 영화는 그 반대 선상에 있다. 이 남자는 그런 위기 상황에서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무려 5일하고도 7시간을 버텼다.  그것도 영화를 위해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제로 2003년 미국 유타주에 있는 블루 존 캐년이라는 곳을 아론(제임스 프랭코 분)은 혼자 등반하다 그만 바위덩어리와 함께 굴러떨어져 암벽 사이에 끼면서 고립된다.  그것도 한쪽 손이 끼인채. 워낙에 외진 곳이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와, 감독은 무엇으로 94분이란 러닝 타임을 이끌어갈까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거기엔 실화의 주인공이 견뎠을 127이란 실제적 시간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만큼 영화는 영리하게 잘 짜여져 있다. 주어진 시간에서 보여줄 것만 보여주니까.   

 

 

우선 난 저 상황이라면 몇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무엇보다 낮엔 그나마 견딜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밤이 주는 그 적막감과 공포를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을 하룻밤도 아닌 다섯번의 밤을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맹수로부터의 습격도 공포의 대상이다. 그뿐인가, 손이 바위 사이에 끼었으니 그 고통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주인공은 이런 암벽 등반의 경험을 많이 해 본 사람이라 필요한 장비를 가지고 있다. 나도 그랬을까? 그것도 최소한일 것 같다. 로프와 칼, 목마를 때를 생각해 물통과 헤드 라이트, 소형 비디오 카메라까지.   

사람은 위기 상황일수록 침착하라고 한다. 그럴 때 무조건 상황을 벗어나려고 소리치는데 기운을 빼면 안된다.  대신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을 생각해서 짬짬히 카메라에 자신의 이야기를 녹화해 놓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난 옛 일을 회상한다.  그것은 즐거울 수도 있고, 한없는 회한에 젖게도 만든다. 그건 나라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열심히 일하고, 좋은 일도 더 많이하며 살았을 텐데란 생각은 하나 같을 것이다. 또 아마도 그런 생각이 그 적막하고도 막연한 시간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물을 몇번에 나눠 마시며, 자신의 오줌조차 소중히 받아 갈증을 해결한다. 그것을 보니 오래 전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생존자 몇 명이 서로의 오줌을 나눠마시며 견뎠다는 그 얘기가 생각이 났다.  위기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는 건 역시 그런 알 수 없는 인류애 같은 것이 불쑥 나온다는 것일게다.
그리고
그런 위기상황 일수록 할 일은 더 많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계란으로 바위 깨기라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조그만 칼 가지고 바위 갈아 틈을 내어 손을 빼볼려고 안간힘다. 승부가 안 나는 게임 같지만, 개미 한 마리 지나다니는 구멍하나가 둑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일이 전혀 어리석은 일마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그 바위에서 몸을 빼내는대는 성공을 했다. 
그런데 아뿔사! 손은 바위에 끼워둔 채 몸만 빠져 나왔다. 팔이 떨어져 나간다란 말이 있던데 액면 그대로의 상황이 된 것이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얼마나 황당할까? 자신의 팔은 저 바위에 여전히 끼어 있는데 살기 위해 그런 상황이 되어버리다니.  하긴, 팔과 함께 빠져 나왔더라도 이미 너무 오래 동안 그러고 있던 상태라 피가 통하지 않아 괴사가 일어났고 절단을 해야했을 것이다.  

나는 갑자기 그 장면부터 충격을 받았고 만감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팔이 잘려 나갔을 때의 미식거림은 차치하고라도, 몸이 빠져 나왔다는 그 안도감 보단 과연 외팔이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가 더 걱정되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주인공은 동굴 같은 곳을 벗어나기 위해 무조건 달렸다. 그곳을 빠져 나가는 것도 필요했지만 알에서 부화한 새끼 거북이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해 달리듯, 그는 물이 있는 곳을 향해 달린 것이다. 달리면서 그의 표정은 한껏 고양되어 있다. "거봐. 나는 행운아라구. 죽는 줄만 알았지? 난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왜냐구? 난 행운아니까." 그 의기양양함이 얼굴에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도 물을 찾지 않으면 너무 이른 자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막같은 불루 존 캐년에서 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시 행운은 그를 비껴가지 않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물웅덩이를 발견한다. 하지만 깨끗한 물웅덩이였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아쉬운 것은 그 물은 어찌보면 자신이 받아 마신 오줌 보다 못한 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는 무조건 그 물웅덩이를 향해 힘껏 몸을 던진다. 그만큼 인간의 생존에 대한 욕구는 강렬하다. 그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 토해 놓은 것을 주워 먹었다는 그 전설같은 이야기와 오버랩 되고, 어찌보면 그 보단 낫다는 생각도 든다. 까짓 거, 그렇게 더러우면 병원에 가서 위세척 한 번 해 주면 되는 일 아닌가.  

아무튼 그는 그곳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는 그 후에도 암벽 등반을 했을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팔이 잘렸으니 불가능 했을 것이다. 내가 말하려 하는 건, 그가 팔이 잘리지 않았더라도 등반을 했을 것이냐는 것이다. 아마도 하지 않았을까?
인간은 왜 그렇게 자연에 몸을 맡기는지 모르겠다. 자연과 내가 하나되는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그 보단 더 궁극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인간은 자꾸 나를 증명하고픈 욕구가 있어서이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니까. 그러려면 도전과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그 모험과 도전에서 이기는 쾌감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도 조난을 감수하고라도 산을 자꾸만 오르려 하는 사람을 이해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찌됐건 그런 자연의 품을 혼자 가는 건 확실히 미련한 짓이다. 자신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구. 

나중에 에필로그를 보니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산다고 한다. 강연도 하면서. 역시 몸이 불구라고 해서 그 인생도 불구일 수는 없다.
별로 맞는 얘기 같지는 않지만, 순간 성경 말씀이 생각이 났다. 누구든지 눈이 죄를 짓거든 그 눈을 뽑아 버리라. 눈을 뽑아 버리고 불구인채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 보다 낫다고 했다.  행복은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나 싶다.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은 맞는 말 같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 순간 살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런 인생에서의 행복을 어떻게 누렸겠는가.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은 절망의 존재일까, 희망의 존재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좋은 것을 받아들이기 보다 나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절망을 느끼는 것이 희망을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르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은 약한 것 같아도 질기다. 아무리 포기가 빠른 성격이라고 해도  누구도 자기 생의 마지막은 자신이 원하는 때 오길 바란다. 하지만 인생의 
위기상황은 언제든지 올 수 있다. 거기서 살아남는 법은 꼭 배워야 한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는 절망부터 생각하지 말고,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자꾸 되내어라. 그리고 살길은 반드시 있다고 믿어라. 그러면 길은 반드시 있다. 이것이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아닐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해서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생각하면 안된다.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지만, 이 영화는 유독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것 같이 감각적으로 만들었다. 난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는 30대일거라고 착각을 한다. 하긴, <트레인스포팅>을 만들었을 때만해도 그는 젊었다. 젊은 감독이 그런 영화를 만들면 감동은 그리 크지 않다. 그냥 재치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 하지만 그의 영화적 감각은 더 젊어진 느낌이다. 이제는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새삼 감동이 느껴지고,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어쨌든 잘 만들었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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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1-2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다큐를 책보다 영화보다 엄청 좋아하는데, 겨울이 되니까 다큐가 땡겨요. 여행,전쟁,모험,역사 이런 것들. 예전에도 그런 게 있었어요. 독극물 주사 실험을 할거라고 사형수를 데려와서 앉혀놓고 주사를 했는데, 다 들어가기도 전에 죽어버렸대요. 심장마비. 사실 그건 물이었는데요. 참, 인간이란 게, 죽는게 낫지, 사는거 재미없어, 달고 살면서도 막상 죽는 건 정말 어려운 거예요. 사는 것보다 훨씬 더.

stella.K 2011-11-25 17:52   좋아요 0 | URL
아, 맞다. 그얘기도 들은 것 같아요.
죽음의 공포.
그런데 이 사람 대단한 것 같아요. 꼼짝없이 죽을 상황이었는데.
모르긴 해도 어렸을 때 굉장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2011-11-25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6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1-11-25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리뷰를 쓰셨군요! 잘쓰셨어요 ㅋㅋ 제가 이 영화로 리뷰를 쓰라면 이 정도는 못썼을텐데 말입니다. 하도 그냥 감상만 해서요 ㅋㅋ
저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팔을 자를때.. 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거의 반년은 족히 넘은드해보이는데 아직도 그 뼈를 건드리는 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답니다 ㅠㅠ

stella.K 2011-11-26 10:57   좋아요 0 | URL
아, 칼로 팔을 잘랐구나. 그 부분에서 저는 잠시 졸았나 봅니다.
분명히 주인공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봤는데.ㅠ
잘 쓰면 뭐합니까? 추천은 소이진님 밖에 없는데...
전 왤케 영화평을 못 쓸까요?
영화평 쓰는 거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ㅠ

이진 2011-11-26 15:04   좋아요 0 | URL
ㅠㅠㅠ 저도 곧 영화리뷰 쓰려고 하는데
스텔라님께서 그러시면 저도 ㅠㅠㅠㅠ 엉엉

stella.K 2011-11-26 15:10   좋아요 0 | URL
ㅎㅎ 아이 그렇다고 못 쓸건 뭐가 있어요?
느낀대로 쓰면 됐지.
소이진님은 어떻게 느꼈는지 알고 싶어요.
쓰세요. 어여.^^

소나무집 2011-11-26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인데 극장에서 너무 빨리 사라졌어요.^^

stella.K 2011-11-26 10:59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하긴 롱런하는 영화는 몇 작품되지 않죠.
이런 극장에서 영화는 봐줄만 한데.
특히 블루존 캐니언의 광할한 대자연은 큰 스크린에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극장엘 잘 안 가는 관계로다가 아까운 영화 그냥 제 방에서 보고
말았네요.ㅠ
 
도가니 - Silenc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황동혁
주연 : 공유, 김현수(2011)

 

이 영화는 상업영화다 

좀 늦은감도 없지않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 한편이 갖는 위력은 대단해서, 자애학원에 대한 법적 심판이 가해지고, 그곳에 있던 장애 아동들도 다른 학교에 배치가 되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평일 한낮이어서일까? 극장안은 한산한 것이 웬지 지금은 사람의 관심으로부터 조금은 밀려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구는 좀 우울할 수도 있다고 아침 조조로는 보지 말라고 주의를 주던데, 그렇지 않아도 영화는 어느 때 보아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니 우울하기 보다는 소태를 씹은 것마냥 쓰다. 무엇보다 의구심이 드는 건, 왜 지금에서야 이 문제가 수면위로 뜬 것인가 싶다.
2005년의 일이다. 이것이 공지영이란 작가에 의해 알려지고도 어느만큼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공지영도 문학계에서는 성공하였을지 몰라도 이렇게까지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문제는 공유란 영화배우를 통해 올해야 비로소 반향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자그마치 6내지 7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이 나라의 법은 무엇을 했으며, 경찰은 무엇을 했을까? 지금도 장애 아동들은 여전히 폭력에 시달리며, 어디선가는 새로운 '도가니'가 쓰여지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6년 내지 7년을 아우르는 동안, 아니 그에 몇 곱절에 해당하는 세월 동안 비장애인 부모들은 자기네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안된다고 피킷 들고 시위를 해왔다. 그렇게 자신의 뱃살과 지방을 태우고 있는 동안, 이 나라의 장애 아동들은 제대로 된 시설에서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고, 공부 한번 편히 못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단발적으로 영화 한편 보고 같이 분노해주며 장애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개기를 마련해 줬다고 우쭐대도 되는 것인가? 한낮의 한산했던 극장안만큼 사람들의 생각속에서 점점 잊혀져 갈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마다 제2,제 3의 '도가니'를 찍어댈수도 없는 일 아닌가? 설혹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이만큼 사람들이 보겠는가, 이만큼 분개할 것인가, 이만큼 반향을 일으킬 것인가, 저 영화 장애인 인권 팔아서 돈벌이 한다고 오히려 욕할 것이 아닌가? 

 이 영화는 문제가 있다 

나는 감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영화임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인권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저 사회 고발성 짙은 상업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듯 완벽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그로인해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여기엔 공유라는 배우도 한몫했을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는 그다지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성공이 반드시 완성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의 좋은 선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우선 이 영화는,  강인호(공유 분)가 무진이란 동네에 있는 한 청각장애인학교에 미술 교사로 부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이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이야기의 시작을 위한 장치 중 하나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나는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마다 이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과연 어땠길래 나타나 주기를 기다렸다는 양 저러는 것일까? 문제가 있다면 그전부터 있었다는 소린데 왜 자체적으론 문제 해결을 못하고 이렇게 그곳과 연고가 없는 사람이 나타나고서야 이야기는 사작되는 걸까? 뭔가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 더구나 이 영화의 경우, 그 동네 인권센터에서 일한다는 서유진 조차 그 학교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없지 않을 텐데, 어떻게 잘 생긴 공유가 나타나자 그때야 비로소 처음 안 사실인 양 천연덕스럽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또 그렇다치자.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너무 관객들에게 겁을 주고 공포 분위기를 조장한다.  일부러 모호함을 드러내기 위해 '무진'이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동네를 보여주고, 영화는 음침한 가운데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라는 정공법으로 승부를 내려고 하고 있다. 이를테면 학교장 일파는 악하고, 인호와 유진은 선해서, 선과 악의 싸움으로 몰아간다. 더구나 인호는 영웅의 고독한아우라까지 지녔다. 또 이 영웅은 정의롭고 슬기롭기까지 해, 분노할 때는 분노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피해 아이들이 직접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준다. 그것이 물론 잘못된 설정은 아닐 것이다. 응당 제대로된 선생이라면 그래야 한다. 자기 아이에게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한다고, 선생이라면 아이들 스스로 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교육이 아니다. 이미지다. 영화는 시종 너무 단순구도다. 물론 짧은 시간내에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경각심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것일테지만, 원래 악에는 선한면이 있고, 선에도 악한 면은 있는 법이다. 영화는 좀 더 이런 것들을 부각시키며 부조리한 면을 보여주고 디테일에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공법으로 돌파하려고 하니, 주제에 대한 심각성 보다 영화 자체가 주는 거부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영화상에서 나타나는 이 이분법은 그것만이 아니다. 최근 몇년 사이의 우리나라 영화들을 보면, 기독교와 경찰에 대한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비하시키거나 희화시킨다. 물론 우리나라 기독교계와 경찰계가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영화에서까지 그렇게 비약시키는 건 권리 침해로까지도 보여질 수 있으며, 성숙하지 못한 창작 태도란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라. 교장일파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양에 탈을 쓴 이리인지를. 그리고 그들을 따라 온 교회 사람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뿐인가? 영화에 나오는 그 형사 아저씨는 얼마나 사악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는가? 
과연 그렇게 보여주는 근거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교회가 그렇게 비이성 광신집단이라고 누가 말하던가? 경찰이나 검찰에 악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누가 말하던가? 그렇게 말한다면 영화계는 선한가? 선해서 지난 몇년 간 기독교와 경찰을 그런 식으로 울거먹는 것인가?  
어디든 악은 존재한다. 그와 같이 어디든 선 또한 존재한다. 우리가 언제나 바라는 것은 선한 영향력 악을 대항하고 승리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론이 그렇게 몰아간다고 해서 선한 기독교, 선한 경찰이 없으라는 법이 없는데 이렇게  감독이나 작가 개인적 취향을 고려해 그런 식으로 몰아간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자와 비장애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이분법은 또 있다. 장애자와 비장애자를 바라보는 시선. 이것이야 말로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공유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지만, 이 영화에선 상처가 있는 고독한 영웅으로 나온다. 왜 그가 이런 식으로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다. 비장애자들이 장애자들의 현실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오는 장면이 좀 많아서 그렇지 이 영화는 영웅주의를 배면에 깔고 있다. 그러면서 비장애인이 장애자를 지켜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우쭐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난 그런 시선이 우습다. 그런 식으로  몰고 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적은 있는가? 이것은 누가 누구를 지켜주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다. 왜 장애자는 비장애자의 도움만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다 어쩌다 비장애인이 장애자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심하게 말해, 모멸감에 죽고 싶기라도 하지 않을까? 
가끔 지하철을 타게 될 경우 묘한 기현상을 목격할 때가 있다. 거기엔 노약자 보호석이라는 지정좌석이 있다. 괜찮은 제도라는데는 이의가 없다. 어느 착한 비장애인은 그 자리엔 절대로 앉지 않는다. 객차안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서 잠시 앉을만도 한데 절대로 안 앉는다. 그것을 장애자가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또 그러니만큼 노약자가 일반칸에선 비장애인의 자리 양보를 받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약자 보호석도 있는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엉덩이를 비비고 앉을려고 하느냐? 우리도 쉬고 싶다. 이런 말 하는 사람이 과연 없을거라고 장담하는가? 혹 그렇지 않더라도 왜 장애자는 늘 앉아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때론 비장애인이더라도 피곤하다면 장애인이 양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보는 사람이나 양보 받는 사람이나 편치 않아서 그럴 생각을 안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보이지 않는 관계의 선이라는 것이다. 

오래 전 어느 날, 교회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본당 예배실이 지하에 있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언제나 그렇듯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한곳만 사용할 수 있어 응당 노약자나 장애인에게 우선 이용권이 있다(하지만 이것도 그렇게 잠정적인 사항이지 권장사항은 아니다. 필요하면 비장애인이 탔다고 뭐라하지 않는다.) 그때는 평소 때와 달리 젊은이들이 많이 예배드리는 시간대였고, 각 시간대마다 엘리베이터 봉사자가 배치되는데 그 시간대는 나이든 집사가 아닌 젊은 형제가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형제 열심이 지나쳤는지 오버를 한다 싶었다. 엘리베이터는 절대적으로 장애자만 이용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지, 이용하려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비장애자란 이유만으로 타는 사람을 저지시키고 있었다. 별로 상식적이지 않다 싶기도 하다. 장애자에게 우선 이용이란 특권을 주는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해도 왜 한산할 때 비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는가? 웃긴다 싶기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엘리베이터 진입을 시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형제 나를 붙들고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근엄하게 "비장애인을 타실 수 없습니다." 한다. 그래서 나는 똑바로 응수해 주었다. "저 장애잡니다." 그러자 이 형제는 순간 뭐에라도 맞은 듯 나를 위 아래로 훑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안해했고, 나는 그 사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순간 멍청한 이중고로 앓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몸을 어디서 감히 위 아래로 훑으며, 장애자 비장애자를 가르는 그 상식같지도 않은 상식은 어디서 배웠단 말인가? 사람이 모이는 곳엔 서로의 안전을 위해 양보하는 질서의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그런 봉사요원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고. 
단지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이들을 보호해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런 자애학교의 문제는 국가가 그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겠는가.  

이야기는 이미지다   

영화의 논리대로라면, 장애자는 학대를 받아도 비장애인이고, 도움을 받아도 비장애인을 통해서란 논리가 성립이 된다.  사람은 비장애자이기 때문에 사악한 것이 아니다. 또 비장애자이기 때문에 정의로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악에 분노해야 하는 것은 장애자이거나 비장애자이거나 똑같아야 한다.  사실 영화는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장애자의 인권을 다뤘다기 보단 그동안 봐온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또다른 버전을 보는 것은 아닌지 싶다.  결국 최후까지 도움을 줘야하는 검사가 배신을 하므로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렇더라도  표면상으로는
인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권의 문제를 다룰 때 물론 거기엔 성폭력의 문제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지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너무 자극적이다. 어떤 이야기든 작가나 감독이 그 이야기를 잘 풀어내겠지만 객관적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 과정속에 작가 자신의 해석이나 느낌, 이미지가 투영되기 마련이다.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는 상당히 중요한 것인데 그것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은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한다. 이런 영화 한편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대중이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해 보이긴 하지만, 이후  장애 아동의 인권의 문제를 성폭력의 문제로 국한시켜 인식하게 된다면 그도 문제는 아닌가 싶다. 
거듭 말하지만 이 영화는 인권 영화이기 전에 엄연한 상업영화다. 소설이 원작이고, 소설 역시 스토리고 이미지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논픽션도 아니다. 이것을 영상으로 옮겼을 때 파급 효과는 배가 된다.  
성에 관한 모든 것은 다 자극적이다. 나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볼 때 성폭력이나 당하는 불쌍한 인종으로 보게될까봐 걱정이다.    

소설이 원작이라고 했는데, 알다시피 이 영화는 공지영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솔직히 공지영은 나와는 별로 인연이 없는 작가다. 나는 그녀의 작품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외엔 읽은 것이 없으며, 그녀의 전작 <우행시>도 영화로만 접했다. 난 그녀의 작가정신은 높이사지만, 그녀의 작품은 좋아할 수가 없다.  그녀의 작품은 어딘가 모르게 편파적이며 경도되어 있다. <우행시>에서는 살인자를 무조건 감상적으로만 보게 만들어 사형제도의 폐지를 간접적으로 옹호하더니, 이 영화에서는 가장 민감한 장애 아동의 인권과 폭력의 문제를 가장 거칠게 풀어냈다(물론 거기엔 영화감독도 한몫을 했다). 대중은 언제까지 그녀에게 박수를 보낼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장애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높아져야 하는가

물론 내가 앞에서 이렇게 떠들어도 역시 장애자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는 없다.  내가 아쉬운 것은 세상의 모든 장애자들이 영화에서처럼 그늘져있고 불행한 것은 아닌데, 영화이나 소설에선 그  이미지에 있어서 늘 사회의 약자고, 그늘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소수긴 해도 메이저리거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들은  왜  비장애인이 베푸는 선처대로만 살아야하며 그 조금치의 선행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자극적인 내용도 내용이지만, 초두에 말했던 것처럼 장애자의 부조리한 측면을 다룬 내용이 이 사회나 비장애자들에게 장애자의 현실을 알리는데 더 설득력있고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안 그렇다면 이 마이너적인 이야기를 메이저급으로 풀어내던가. 이분법에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풀어내려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는 오버다. 

영화의 말미에, 그 사건 이후 1년이 흐르고, 인호에게 보내는 유진의 편지 나레이터가 인상에 남는다. 비록 (어처구니 없이) 재판에 지긴했지만 아이들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고 전한다. 너무 늦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사실 이 영화는 어설프게나마(이 말이 참 어설프게 안 어울린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에 이런 말이 어울리는가? 하지만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 들으리라) 장애자의 인권을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장애자의 인권이 높아져야 한다면 어디까지 높아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건 지금으로선 상정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워낙에 갈길이 머니 말이다. 그래도 상상해 볼 수는 있으리라. 적어도, 장애인도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메이저하게 영화로 만들어펼쳐 보일 수 있다면 좋아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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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0-2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공유가 나온 거 봤어요. 스텔라님 말씀처럼 영화는 투자자가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작품인만큼 극화될 수밖에 없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을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듯 대답하던데, 기사가 아닌 한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닌가 싶어요.(심지어 요즘은 공정성 빼면 시체라는 그 '기사'조차도 왜곡되죠. 저 학보사에서 신문 만들어봐서 이것도 너무 잘 알아요. 자본과 사실왜곡) 딱 하나만 인정하는 거죠. 내 힘으로는 이런 부조리를 사회로 끌어낼 수 없었을 거란 것.

저는 공지영 좋아했어요. 그녀가 후일담 문학을 내놓던, 그래도 진정성 있던 초기작들 때.^^

stella.K 2011-10-22 13:42   좋아요 0 | URL
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너무 감상적으로만 보는 것 같아 화가나요.
비장애자들에겐 충격일지 모르지만 장애자 보면 또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들을 생각한다면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무리 영화라도 디테일을 살리고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데
굉장히 편파적이잖아요.
보고나서 정말 씁쓸했습니다.
추천에 목숨거는 거 아니지만 너무 저조하네요.
나름 열심히 썼는데...ㅠㅠ

2011-10-24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5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체오페르 2011-11-02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저는 아직 안 봤지만 대략적인 것은 이미 알고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의견으 본뒤의 또 제 느낌은 어떨까 궁금합니다.
스텔라님의 정성 담긴 감상이 이 영화를 본 사람들과 널리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11-11-02 11:14   좋아요 0 | URL
오, 고맙습니다. 역시 루체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저에게 힘을
실어 주시는군요. 아이고, 반가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