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와 코퍼 - Tod & Copp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디비를 보니, 무려 30년 전에 제작된 에니메이션이다. 1981년 작. 

지금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워낙에 그림이 좋아 거의 빠져들면서 봤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어느 날 사냥꾼에 의해 어미를 잃은 새끼 여우가 마음씨 착한 호호 아줌마(원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임의로 부쳤다)에게 입양이 되고, 토드란 이름을 얻는다.

이웃에 사는 비슷한 또래의 사냥꾼의 개 코퍼와도 더 없이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사냥꾼을 따라 사냥을 나가 성견이 되서 돌아온다. 물론 그동안 새끼 여우 토드도 다 자랐다.  

오랜만에 만난 토드는 코퍼와의 옛 우정을 생각하며 변함없이 자신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코퍼는 예전의 그 코퍼가 아니다. 그는 주인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사냥개로 거듭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평소 여우 사냥을 해왔던 주인과 코퍼에겐 토드는 더 없이 좋은 사냥감. 

 

그렇지 않아도 토드는 자신의 주인인 호호 아줌마에겐 더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지만 이웃해 사는 사냥꾼에겐 눈엣가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준 호호 아줌마는, 비록 잘 못 지내는 이웃이지만 더 이상 이웃간의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고, 여우의 야생성을 잃기전에 숲속에 토드를 두기로 결심을 한다.

이것은 또, 할 수만 있으면 주인이 토드를 죽이려는 사냥꾼에겐 더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주인의 뚯이 그러하니 코퍼 역시 사냥꾼 기질을 발휘하여 주인을 도움와야 한다. 하지만 코퍼는 어릴 적 친하게 지낸 정이 있어서 그런지 토드가 있는 곳을 지나쳐 주인을 따돌린다.

 

그러던 어느 날 코퍼의 동료 늙은 개가 사고로 다리를 다쳤는데 그것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 토드다. 그렇게까지 자기를 살려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가 오해한 코퍼는 더는 봐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주인이 토드를 사냥하는데 적극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뜻밖에 숲속에서 큰곰을 만난 이들은 속수무책이다. 사냥꾼은 다쳤으며 그리도 날렵한 코퍼도 당해낼 제간이 없어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그러자 토드는 마지막 힘을 다해 큰곰과 맞서 싸우고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토드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냥꾼과 코퍼는 이웃간의 평화를 되찾고, 잊혀졌던 옛 우정도 회복하며 해피엔딩이다.

 

물론 이건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잘 살자.' 뭐 이런 교훈 정도겠지만, 나는 이걸 보면서 새삼 인간은 어떻게 사회화를 이루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어차피 이런 만화영화는 동물을 의인화한 영화로 재미는 있지만,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일수 밖에 없다.

어렸을 땐 세상 모든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 다인종 국가라는 미국의 경우도 어렸을 땐 친구가 안될 세계인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자라면서 피부색이 다르고, 그들의 조상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실력이나 소득 격차로 인해 알게 모르게 담이 쌓여진다.

이것은 꼭 미국의 경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도 이제 다문화 가정으로 인해 점점 혼혈인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빈부격차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개가 자라 사냥꾼 기질을 갖게 되고, 여우가 자라 야생 기질을 발휘한다. 그들은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들처럼 보인다.

그런 것처럼, 사람을 꼭 그런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더라도 어렸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커서도 친하게 지내지지도 않는다. 사는 정도, 자녀들이 어느 학교를 진학했느냐에 따라 레벨로 나눠지고 어느새 사는데 바빠 서로 연락도 멀어진다. 이런 인간관계의 공동화를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의외로 즐겁게 봤다가 생각하면 할수록 심각해졌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니 뜬금없이 뭔가의 정치 풍자적 요소도 있는 것 같아 묘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토드와 코퍼의 싸움이 정치인들 서로 비등해서 싸우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들은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혹은 개인으로는 더 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에선 여야로 나눠지고, 같은 당 내에서도 파가 나눠져 서로 싸운다.

또 어찌보면 그들은 같이 넘어야할 산이 없어서 저토록 서로 기싸움만 하는가 싶기도 하다.토드와 코퍼 사이에 큰곰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저렇게 기싸움만 하는 걸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같이 넘어야할 큰 산이 아직 없으니 싸움 구경 만한 구경이 없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심정으로 지켜 본다?

아니면, 같이 넘어야할 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끼자루만 썩이는 그들이 위험하다?

아니면, 그들은 서로가 같이 넘어야할 산을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먼저 굽히고 들어올 것인가를 지켜보느라 날만 새고 있다? 이 셋 중 어떤 것이 이 나라와 국정을 바로 보는 시각일까?

 

큰곰을 상대한 토드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던 걸까?

후에 코퍼와의 우정을 되살려 보려고?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위기에 빠진 친구를 살려보려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것처럼, 당장 그 존재가 나를 괴롭힌다고 해서 언제나 쓸모없는 존재인 것은 아니다. 긴 안목으로 봤을 때 토드가 숲속으로 와서 야생성을 회복하지 않았더라면 큰곰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코퍼는 아무리 사냥기질이 있고 날렵해도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몸이니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야생성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멀리는 호호 아줌마와 사냥꾼 간에도 관계회복도 이루었다. 그 아수라장에서 사냥꾼도 무사할리 없고, 호호 아줌마의 치료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간중간 숲속의 새들의 감초연기도 정말 맛깔스럽고, 사랑스럽다.

당연 어린 아이를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어른이 봐도 좋고, 특히 우리나라 여야 정치인들이 같이 보고 토론해도 좋을 것도 같다. 비록 일개의 국민이 이것을 정치인들에게 권해야 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구차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1-12-2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디즈니입니까?
역시 저희세대랑은 안맞는 그림체인 것 같아요...
우리는 블리치나 원피스 같은 일본 그림체에 눈이 익어버려서..

stella.K 2011-12-29 12:04   좋아요 0 | URL
그래도 30년 전 저 기술이었으면 대단한 거지.
난 역시 디즈니가 좋아.
블리치나 원피스는 그림은 훨씬 좋은데 끌리지 않는 것을 보면
난 확실히 구세대다.ㅋㅋ

cyrus 2011-12-2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이 만화, 어렸을 때 디즈니 동화책으로 봤어요,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 때 제가 본 동화책은
확실하게 영어 이름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만화 속에 등장하는
새들도 기억이 나요. 디즈니 만화들은 대개 미국인 관점에다가
원전 동화를 왜곡한 부분이 있어서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인만큼은 내용은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거 같아요ㅎㅎ

사실 저는 일요일 아침 8시만 되면 KBS 2TV에 하던 디즈니 만화동산을
애청했던 디즈니 키드(?)에요ㅋㅋㅋ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아이들 중에
디즈니 만화동산을 아는 사람이 없을걸요 ^^

stella.K 2011-12-2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진이랑 시루스랑 어쩌면 그렇게 세대차이가 나냐?
댓글 쓴게 확 차이난다.ㅎㅎ
그런데 또 이렇게 보니까 시루스가 나랑 더 가까운 것 같아.
그러고 보면 일욜날 디즈니가 꽤 오랫동안 했던 것 같아.
물론 난 그 시간에 보지는 않았지만 말야.
그렇지. 미국적 관점과 왜곡이 있긴 하지만 오랜만에 보니까 그도 볼만 하더라구.
물론 약간 그림의 디테일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 난 그래도 괜찮게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