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Silenc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황동혁
주연 : 공유, 김현수(2011)

 

이 영화는 상업영화다 

좀 늦은감도 없지않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 한편이 갖는 위력은 대단해서, 자애학원에 대한 법적 심판이 가해지고, 그곳에 있던 장애 아동들도 다른 학교에 배치가 되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평일 한낮이어서일까? 극장안은 한산한 것이 웬지 지금은 사람의 관심으로부터 조금은 밀려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구는 좀 우울할 수도 있다고 아침 조조로는 보지 말라고 주의를 주던데, 그렇지 않아도 영화는 어느 때 보아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니 우울하기 보다는 소태를 씹은 것마냥 쓰다. 무엇보다 의구심이 드는 건, 왜 지금에서야 이 문제가 수면위로 뜬 것인가 싶다.
2005년의 일이다. 이것이 공지영이란 작가에 의해 알려지고도 어느만큼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공지영도 문학계에서는 성공하였을지 몰라도 이렇게까지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문제는 공유란 영화배우를 통해 올해야 비로소 반향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자그마치 6내지 7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이 나라의 법은 무엇을 했으며, 경찰은 무엇을 했을까? 지금도 장애 아동들은 여전히 폭력에 시달리며, 어디선가는 새로운 '도가니'가 쓰여지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6년 내지 7년을 아우르는 동안, 아니 그에 몇 곱절에 해당하는 세월 동안 비장애인 부모들은 자기네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안된다고 피킷 들고 시위를 해왔다. 그렇게 자신의 뱃살과 지방을 태우고 있는 동안, 이 나라의 장애 아동들은 제대로 된 시설에서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고, 공부 한번 편히 못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단발적으로 영화 한편 보고 같이 분노해주며 장애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개기를 마련해 줬다고 우쭐대도 되는 것인가? 한낮의 한산했던 극장안만큼 사람들의 생각속에서 점점 잊혀져 갈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마다 제2,제 3의 '도가니'를 찍어댈수도 없는 일 아닌가? 설혹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이만큼 사람들이 보겠는가, 이만큼 분개할 것인가, 이만큼 반향을 일으킬 것인가, 저 영화 장애인 인권 팔아서 돈벌이 한다고 오히려 욕할 것이 아닌가? 

 이 영화는 문제가 있다 

나는 감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영화임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인권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저 사회 고발성 짙은 상업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듯 완벽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그로인해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여기엔 공유라는 배우도 한몫했을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는 그다지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성공이 반드시 완성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의 좋은 선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우선 이 영화는,  강인호(공유 분)가 무진이란 동네에 있는 한 청각장애인학교에 미술 교사로 부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이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이야기의 시작을 위한 장치 중 하나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나는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마다 이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과연 어땠길래 나타나 주기를 기다렸다는 양 저러는 것일까? 문제가 있다면 그전부터 있었다는 소린데 왜 자체적으론 문제 해결을 못하고 이렇게 그곳과 연고가 없는 사람이 나타나고서야 이야기는 사작되는 걸까? 뭔가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 더구나 이 영화의 경우, 그 동네 인권센터에서 일한다는 서유진 조차 그 학교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없지 않을 텐데, 어떻게 잘 생긴 공유가 나타나자 그때야 비로소 처음 안 사실인 양 천연덕스럽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또 그렇다치자.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너무 관객들에게 겁을 주고 공포 분위기를 조장한다.  일부러 모호함을 드러내기 위해 '무진'이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동네를 보여주고, 영화는 음침한 가운데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라는 정공법으로 승부를 내려고 하고 있다. 이를테면 학교장 일파는 악하고, 인호와 유진은 선해서, 선과 악의 싸움으로 몰아간다. 더구나 인호는 영웅의 고독한아우라까지 지녔다. 또 이 영웅은 정의롭고 슬기롭기까지 해, 분노할 때는 분노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피해 아이들이 직접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준다. 그것이 물론 잘못된 설정은 아닐 것이다. 응당 제대로된 선생이라면 그래야 한다. 자기 아이에게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한다고, 선생이라면 아이들 스스로 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교육이 아니다. 이미지다. 영화는 시종 너무 단순구도다. 물론 짧은 시간내에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경각심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것일테지만, 원래 악에는 선한면이 있고, 선에도 악한 면은 있는 법이다. 영화는 좀 더 이런 것들을 부각시키며 부조리한 면을 보여주고 디테일에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공법으로 돌파하려고 하니, 주제에 대한 심각성 보다 영화 자체가 주는 거부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영화상에서 나타나는 이 이분법은 그것만이 아니다. 최근 몇년 사이의 우리나라 영화들을 보면, 기독교와 경찰에 대한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비하시키거나 희화시킨다. 물론 우리나라 기독교계와 경찰계가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영화에서까지 그렇게 비약시키는 건 권리 침해로까지도 보여질 수 있으며, 성숙하지 못한 창작 태도란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라. 교장일파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양에 탈을 쓴 이리인지를. 그리고 그들을 따라 온 교회 사람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뿐인가? 영화에 나오는 그 형사 아저씨는 얼마나 사악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는가? 
과연 그렇게 보여주는 근거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교회가 그렇게 비이성 광신집단이라고 누가 말하던가? 경찰이나 검찰에 악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누가 말하던가? 그렇게 말한다면 영화계는 선한가? 선해서 지난 몇년 간 기독교와 경찰을 그런 식으로 울거먹는 것인가?  
어디든 악은 존재한다. 그와 같이 어디든 선 또한 존재한다. 우리가 언제나 바라는 것은 선한 영향력 악을 대항하고 승리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론이 그렇게 몰아간다고 해서 선한 기독교, 선한 경찰이 없으라는 법이 없는데 이렇게  감독이나 작가 개인적 취향을 고려해 그런 식으로 몰아간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자와 비장애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이분법은 또 있다. 장애자와 비장애자를 바라보는 시선. 이것이야 말로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공유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지만, 이 영화에선 상처가 있는 고독한 영웅으로 나온다. 왜 그가 이런 식으로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다. 비장애자들이 장애자들의 현실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오는 장면이 좀 많아서 그렇지 이 영화는 영웅주의를 배면에 깔고 있다. 그러면서 비장애인이 장애자를 지켜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우쭐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난 그런 시선이 우습다. 그런 식으로  몰고 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적은 있는가? 이것은 누가 누구를 지켜주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다. 왜 장애자는 비장애자의 도움만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다 어쩌다 비장애인이 장애자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심하게 말해, 모멸감에 죽고 싶기라도 하지 않을까? 
가끔 지하철을 타게 될 경우 묘한 기현상을 목격할 때가 있다. 거기엔 노약자 보호석이라는 지정좌석이 있다. 괜찮은 제도라는데는 이의가 없다. 어느 착한 비장애인은 그 자리엔 절대로 앉지 않는다. 객차안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서 잠시 앉을만도 한데 절대로 안 앉는다. 그것을 장애자가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또 그러니만큼 노약자가 일반칸에선 비장애인의 자리 양보를 받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약자 보호석도 있는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엉덩이를 비비고 앉을려고 하느냐? 우리도 쉬고 싶다. 이런 말 하는 사람이 과연 없을거라고 장담하는가? 혹 그렇지 않더라도 왜 장애자는 늘 앉아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때론 비장애인이더라도 피곤하다면 장애인이 양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보는 사람이나 양보 받는 사람이나 편치 않아서 그럴 생각을 안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보이지 않는 관계의 선이라는 것이다. 

오래 전 어느 날, 교회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본당 예배실이 지하에 있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언제나 그렇듯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한곳만 사용할 수 있어 응당 노약자나 장애인에게 우선 이용권이 있다(하지만 이것도 그렇게 잠정적인 사항이지 권장사항은 아니다. 필요하면 비장애인이 탔다고 뭐라하지 않는다.) 그때는 평소 때와 달리 젊은이들이 많이 예배드리는 시간대였고, 각 시간대마다 엘리베이터 봉사자가 배치되는데 그 시간대는 나이든 집사가 아닌 젊은 형제가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형제 열심이 지나쳤는지 오버를 한다 싶었다. 엘리베이터는 절대적으로 장애자만 이용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지, 이용하려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비장애자란 이유만으로 타는 사람을 저지시키고 있었다. 별로 상식적이지 않다 싶기도 하다. 장애자에게 우선 이용이란 특권을 주는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해도 왜 한산할 때 비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는가? 웃긴다 싶기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엘리베이터 진입을 시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형제 나를 붙들고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근엄하게 "비장애인을 타실 수 없습니다." 한다. 그래서 나는 똑바로 응수해 주었다. "저 장애잡니다." 그러자 이 형제는 순간 뭐에라도 맞은 듯 나를 위 아래로 훑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안해했고, 나는 그 사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순간 멍청한 이중고로 앓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몸을 어디서 감히 위 아래로 훑으며, 장애자 비장애자를 가르는 그 상식같지도 않은 상식은 어디서 배웠단 말인가? 사람이 모이는 곳엔 서로의 안전을 위해 양보하는 질서의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그런 봉사요원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고. 
단지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이들을 보호해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런 자애학교의 문제는 국가가 그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겠는가.  

이야기는 이미지다   

영화의 논리대로라면, 장애자는 학대를 받아도 비장애인이고, 도움을 받아도 비장애인을 통해서란 논리가 성립이 된다.  사람은 비장애자이기 때문에 사악한 것이 아니다. 또 비장애자이기 때문에 정의로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악에 분노해야 하는 것은 장애자이거나 비장애자이거나 똑같아야 한다.  사실 영화는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장애자의 인권을 다뤘다기 보단 그동안 봐온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또다른 버전을 보는 것은 아닌지 싶다.  결국 최후까지 도움을 줘야하는 검사가 배신을 하므로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렇더라도  표면상으로는
인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권의 문제를 다룰 때 물론 거기엔 성폭력의 문제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지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너무 자극적이다. 어떤 이야기든 작가나 감독이 그 이야기를 잘 풀어내겠지만 객관적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 과정속에 작가 자신의 해석이나 느낌, 이미지가 투영되기 마련이다.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는 상당히 중요한 것인데 그것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은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한다. 이런 영화 한편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대중이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해 보이긴 하지만, 이후  장애 아동의 인권의 문제를 성폭력의 문제로 국한시켜 인식하게 된다면 그도 문제는 아닌가 싶다. 
거듭 말하지만 이 영화는 인권 영화이기 전에 엄연한 상업영화다. 소설이 원작이고, 소설 역시 스토리고 이미지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논픽션도 아니다. 이것을 영상으로 옮겼을 때 파급 효과는 배가 된다.  
성에 관한 모든 것은 다 자극적이다. 나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볼 때 성폭력이나 당하는 불쌍한 인종으로 보게될까봐 걱정이다.    

소설이 원작이라고 했는데, 알다시피 이 영화는 공지영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솔직히 공지영은 나와는 별로 인연이 없는 작가다. 나는 그녀의 작품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외엔 읽은 것이 없으며, 그녀의 전작 <우행시>도 영화로만 접했다. 난 그녀의 작가정신은 높이사지만, 그녀의 작품은 좋아할 수가 없다.  그녀의 작품은 어딘가 모르게 편파적이며 경도되어 있다. <우행시>에서는 살인자를 무조건 감상적으로만 보게 만들어 사형제도의 폐지를 간접적으로 옹호하더니, 이 영화에서는 가장 민감한 장애 아동의 인권과 폭력의 문제를 가장 거칠게 풀어냈다(물론 거기엔 영화감독도 한몫을 했다). 대중은 언제까지 그녀에게 박수를 보낼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장애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높아져야 하는가

물론 내가 앞에서 이렇게 떠들어도 역시 장애자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는 없다.  내가 아쉬운 것은 세상의 모든 장애자들이 영화에서처럼 그늘져있고 불행한 것은 아닌데, 영화이나 소설에선 그  이미지에 있어서 늘 사회의 약자고, 그늘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소수긴 해도 메이저리거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들은  왜  비장애인이 베푸는 선처대로만 살아야하며 그 조금치의 선행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자극적인 내용도 내용이지만, 초두에 말했던 것처럼 장애자의 부조리한 측면을 다룬 내용이 이 사회나 비장애자들에게 장애자의 현실을 알리는데 더 설득력있고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안 그렇다면 이 마이너적인 이야기를 메이저급으로 풀어내던가. 이분법에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풀어내려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는 오버다. 

영화의 말미에, 그 사건 이후 1년이 흐르고, 인호에게 보내는 유진의 편지 나레이터가 인상에 남는다. 비록 (어처구니 없이) 재판에 지긴했지만 아이들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고 전한다. 너무 늦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사실 이 영화는 어설프게나마(이 말이 참 어설프게 안 어울린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에 이런 말이 어울리는가? 하지만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 들으리라) 장애자의 인권을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장애자의 인권이 높아져야 한다면 어디까지 높아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건 지금으로선 상정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워낙에 갈길이 머니 말이다. 그래도 상상해 볼 수는 있으리라. 적어도, 장애인도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메이저하게 영화로 만들어펼쳐 보일 수 있다면 좋아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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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0-2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공유가 나온 거 봤어요. 스텔라님 말씀처럼 영화는 투자자가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작품인만큼 극화될 수밖에 없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을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듯 대답하던데, 기사가 아닌 한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닌가 싶어요.(심지어 요즘은 공정성 빼면 시체라는 그 '기사'조차도 왜곡되죠. 저 학보사에서 신문 만들어봐서 이것도 너무 잘 알아요. 자본과 사실왜곡) 딱 하나만 인정하는 거죠. 내 힘으로는 이런 부조리를 사회로 끌어낼 수 없었을 거란 것.

저는 공지영 좋아했어요. 그녀가 후일담 문학을 내놓던, 그래도 진정성 있던 초기작들 때.^^

stella.K 2011-10-22 13:42   좋아요 0 | URL
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너무 감상적으로만 보는 것 같아 화가나요.
비장애자들에겐 충격일지 모르지만 장애자 보면 또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들을 생각한다면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무리 영화라도 디테일을 살리고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데
굉장히 편파적이잖아요.
보고나서 정말 씁쓸했습니다.
추천에 목숨거는 거 아니지만 너무 저조하네요.
나름 열심히 썼는데...ㅠㅠ

2011-10-24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5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체오페르 2011-11-02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저는 아직 안 봤지만 대략적인 것은 이미 알고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의견으 본뒤의 또 제 느낌은 어떨까 궁금합니다.
스텔라님의 정성 담긴 감상이 이 영화를 본 사람들과 널리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11-11-02 11:14   좋아요 0 | URL
오, 고맙습니다. 역시 루체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저에게 힘을
실어 주시는군요. 아이고, 반가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