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요즘도 가끔 퀴즈 프로그램을 볼 때가 있다. 막상 나 같은 사람이 이 소설에 나오는 이민수만큼이나 퀴즈쇼에 나가면 버벅거리고 아는 문제도 틀리고 그럴텐데도 한 두 문제 맞춘 것 가지고 나도 한번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보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곤한다. 나가면 우승은 못할지라도 못해도 본선진출에 재수 좋으면 등위 안엔 들지 않을까? 요즘엔 상금도 짭짤하다 못해, 저걸 정말 다 준단 말야? 하고 의심할 정도로 많이 주던데. 물론 그것을 다  맞춰야 한다는 전제있긴 하지만. 못 마쳐도 반타작을 할 수 있으니 그또한 나쁘지 않다. 그래도 난 낭패를 볼 확률이 좀 많아 보인다. 왜냐하면 퀴즈하면 순발력인데, 난 아는 문제도 부저를 누르는 속도가 느려서 떨어질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김영하의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소설로는 이 책이 처음이지 않은가 싶다. 그만큼 김영하와 나는 인연이 없었던 것일까? 그래도 읽으면서, 아, 김영하가 소설을 이렇게 쓰는구나. 꽤 감탄하며 읽었다. 그 느낌은 뭐랄까? 상당히 도회적이면서도, 지적이고, 회색톤이며, 한땀 한땀 뜨게질 하듯 촘촘하게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가 이야기 중간중간에 소개해 놓은 소설들만 해도 몇십 권은 돼 보이는데, 그것을 나름 정교하게 배치해 놓고 있다. 게다가 이민수가 갔다던 일명 '퀴즈 회사'라는 곳도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고 있어서 정말 그런 곳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그런 지엽적인 것은 아닐터. 그가 얼마나 20대의 방황하는 청춘을 오늘 날에 맞게 그려놓고 있느냐일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작가는 상당히 충실하게 그려냈다고 생각하는 바, 독자인 나는 대체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에 나오는 20대 후반의 자조섞인 목소리를 들어 보자.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 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헐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편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작가 김영하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했다. 사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20대를 건너왔고, 나의 20대랑 요즘의 20대는 전혀 다르며, 20대를 건너왔기 때문에 요즘의 20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세대의 변화라는 갭은 역시 뛰어넘지를 못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지금의 내 나이도 더 버겁다고 비중을 실어서일까? 그닥 와 닿지 않는 면도 없지 않다. 그냥, 그래, 너희들도 힘들지? 앞으로 더 살아 봐라. 삶의 무게가 더 무거우면 무겁지 새털같이 가벼울 줄 아니? 하며 측은지심이 들어가기도 한다.

사실 이 소설이 세태를 표방하는 만큼 각 개인은 시대의 불운아처럼도 보인다. 그래서 상처받고, 소외되고, 뭔가 병든 것 같은 사람들. 그것을 자위하고 자조하는 것이 우리들의 본분은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영웅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그 지긋지긋한 희망 때문에라도 말이다. 그래도 우린 이민수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봐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주변인으로 봐야하는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누군가는 이 세태를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무엇을 빗대어서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김영하는 오늘의 세태를 자신의 글에 충실히 반영했던 충실한 기록자는 아닐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희망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야될 싯점에서도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없고, 어두운 전망과 서로의 엇갈린 진술속에 진창을 딩군다. 희망을 말하지 않게 된 것이 정말 희망이 없어서 그런 건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그것은 알 길이없다. 이 전망없는 세대가 이 소설속에서도 그대로 묻어나와 조금은 마음이 씁쓸해 진다.

조금 다른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덮으면서 공교롭게도 이번에 나의 조카가 대입수학능력고사를 봤다. 나의 조카는 저주받은 트라이앵글 세대라는 89년 생이다. 트라이앵글은 내신, 논술, 수능을 지칭한다고 한다. 얘네들이 취직을 해야하는 6,7년 후에는 누가 또 어떤 20대를 주인공으로 한 세태소설을 쓸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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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1-25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영하 소설은 이 책이 처음인데 이 사람은 이렇게 소설을 쓰는구나...하며 감탄했어요. 대단히 재밌게 보았는데도 이상하게도 별점은 저도 넷을 주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stella.K 2007-11-26 10: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다섯 주면 독자로써 너무 싸 보인다는, 뭐 그런 심리도 있었을 것 같아요. 네개 주면서 다시한번 이 별점 자체에 대한 묘한 불만이 생기더라구요. 없으면 허전하고, 주자니 껄끄럽고. 이젠 필요악쯤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