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혀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요리를 주제로한 작품들은 참으로 흥미롭다. 물론 몇 작품 보지는 못했지만 <바베트의 만찬>이나 <초콜릿>같은 작품은 인간의 식욕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통해 음식이 가진 은혜를 베풀며, 나아가 종교적인 이유에서 금욕하는 인간들을 점잖게 또는 경쾌하게 조롱한다. 물론 이 두 작품들은 금욕 자체를 꼬집는 것이 아니다. 금욕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의 위선과 권위 의식을 까발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음식 하나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여줬던 드라마 <대장금>같은 경우는 이영애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드라마 자체만으로도 숨 죽이고 볼만한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음식을 소재로한 영화나 문학작품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음식을 소재로 한 독특한 작품이 나왔다. 바로 조경란의 <혀>이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은 요리를 통해 인간의 위선이나 권력을 까발렸다면, 조경란은 독특하게 식욕과 성욕 나아가서는 애욕에 관해 지적이고도 음울하지만 훌륭한 성찬을 차려주었다.
조경란의 작품을 처음 대해 본 나로선 이 작품이 적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작품은 결코 빨리 읽히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 이미지도 상당히 강렬하다. 독특하게도 이 책의 부록으로 그녀가 이 작품을 쓰면서 참고했을 참고 문헌이 나오는데, 작품속에서 그것들을 정말로 적절히 잘 녹여내, 읽으면서 지적인 만족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사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인간이 갖는 식욕과 성욕이 서로 얼마만한 연관이 있을까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어느 한 모임에서 우연찮게 식욕과 성욕에 관한 열띤 토론(?)을 하게 되었다. 즉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이라 할 수 있는 식욕과 성욕 중 어느 것이 더 우위이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래 생각할 것 없이 당연히 식욕일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은 하루 이틀 섹스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배가 고프면 못 사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게다가 성욕은 일부러 금욕하고도 나름 만족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신부나 수녀들 또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어도 다른 등등의 이유에서. 하지만 금방 그 자리에 있었던 이를 뒤엎는 반론이 나왔다.
영장류의 동물 실험이 있었단다. 뇌에 전류를 흐르게 하고 한쪽에선 버튼을 누르면 여러 가지 성적 상상이 가능하게 했고, 한쪽엔 실제로 풍성한 먹을거리를 쌓아 놨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실험에서 그 동물(침팬치나 오랑우탄쯤 됐겠지?)은 코 앞의 먹을 것을 놔두고 성적 상상을 할 수 있는 그 버튼만을 굶어 죽을 때까지 하고 있더란다(물론 그러다 진짜 죽었는지 아사 직전에 그 실험을 멈췄는지 그후의 일은 알길이 없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일말의 의심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생명체가 갖는 성욕이란 것도 무시 못하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흥미로운 건, 수컷들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암컷들이 그들의 성욕을 잘 달래주면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기야 인간의 모든 역사 배후에 이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말은 결코 근거없는 말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갖는 욕구는 그 하나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식욕. 즉 인간의 절대 미각를 좌우하게 되는 '혀'는 정말 잘 다스려야 하는 인체기관임에 틀림없다. 보라.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그들은 혀로 신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서 맛을 보았으며 수 많은 애증 낳게 했다. 사실 인간의 역사는 애증의 역사라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는가?
이 작품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시종 낮고 음울하다는 것일게다. 적어도 요리에 관한 작품이라면 좀 밝고 경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 봤더니 내가 본 요리를 소재로한 일련의 작품들 역시 그리 밝지마는 않았던 것 같다. 그중 이 작품이 조금 더 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왜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는지는 마지막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마지막 반전이 참 놀랍고 그로테스크 하다. 갑자기 예전에 보았던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생각이 났다.
아직 읽어 보지 않았다면 한번쯤 읽어 보라고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그럼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도 이해할 것이다.